인생 - [초특가판]
장예모 감독, 강문 외 출연 / 기타 (DVD)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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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 역사를 도구화하는 방법 배우기

 

 

 

 

  ‘병아리가 자라면 닭이 되고, 닭이 자라면 양이 되고, 양이 자라면 소가 되고, 소가 자라면 그 다음엔 뭐가 되는 거죠?’

 

 

  붉은 수수밭, 귀주 이야기, 책상 서랍 속의 동화 등으로 이미 중국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자리 잡은 장예모 감독의 '인생'은 복잡다단했던 중국의 현대사 속에서 일반 서민들의 심리를 대변하고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 속엔 조금은 다르지만 중국과 같이 같은 아시아로서 그러한 과정을 겪었던 우리의 자화상이 그려져 있다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는 그 속에서, 모두는 아니겠지만, 역사라는 거대한 구조물의 억압 속에서도 삶에 대한 끝없는 긍정을 발견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9세기 말, 서구세력의 침략으로 주변 모든 국가에게 하늘과도 같던 중국대륙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것은 20세기에 이르러 신해혁명으로 급전되어, 무려 8000년에 이르는 중국왕조의 역사에 종결을 고하게 되기까지 이른다. 우리의 주인공 ‘복귀’는 바로 그러한 시대 가운데 태어난 사람으로서, 영화 속에선 대대로 그 지역에서 행세하던 지주로서 첫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알다시피 그러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기존의 지주들이 몰락했던 것처럼, ‘복귀’ 또한 몰락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왜냐하면 그 이전의 시대와 달리, 이제 중국이란 사회는 아직 감당키 어려운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신개념의 신시대이고, 그것은 누구든지 지주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자신의 조상들이 해왔던 대로 흥청망청 노름만 하던 ‘복귀’는 그러한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노름으로 집안을 파탄에 지경에 이르게 함으로써, 늙은 자신의 아버지를 화병으로 죽게 만들고, 늙은 어머니를 병들게 하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부인을 떠나보내기에까지 이르게 된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인지, 하루아침에 변한 자신의 신세를 자각하고, (영화 속에서 ‘복귀’는 다시는 도박을 안 하겠다는 의미로 ‘부도’로 개명한다.) 새로운 사람이 된 ‘복귀’에게, 다시 그의 부인이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옴으로써, 이제 ‘복귀’는 ‘복귀’가 아닌 ‘부도’로서 새로운 삶의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그에게 새로운 사고방식, 지주로서가 아닌 이제 일반 민중으로서, 그 무엇보다 자신의 가족이 소중하다는 의식을 심어놓게 된다. 그리고 다시, 지루했던 중일전쟁이 끝나고 난 1940년대 후반, 중국은 국민당과 공산당간의 국공합작이 깨지면서, 내분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고, 이 가운데 우리의 주인공 ‘부도(복귀)’ 또한 자연스럽게 엮이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우스운 것은 그가 어떤 사상이나 이념 등에 의해 어딘가에 선택을 하고, 투쟁을 하였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살기 위해 그 속에서 선택되어졌다는 사실이다. 말 그대로,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자연스럽게 엮여버린 것이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중일전쟁 직후, 지방이야 어떻든 간에, 중국을 좌지우지했던 것은 국민당이었다. 그러하기에 ‘부도’는 자연 힘없는 일반 서민으로서 국민당에 끌려가,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역사가 이미 우리에게 알려주듯이, 그 당시 무능했던 국민당은 그 처음 전선의 유리했던 국면과 함께 미국을 등에 업은 풍부했던 인적, 물적 자원에도 불구하고 공산당에게 패하게 된다. 그러면서 애초 자신의 처자식 걱정에만 몰두하고 전혀 전쟁에 관심이 없었던 ‘부도’ 또한 공산당의 포로가 되어, 자연스럽게 다시 공산당을 위해서 일하게 된다. 여하튼 이와 같은 과정 끝에, ‘부도’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공산당의 승리로 지주세력들이 사형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면서 과거 지주세력이었던 ‘부도’는 이에 공포에 질리지만, 공산당 정권 아래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법을 깨닫게 되고, 다시 철저히 사회에 순응해 나간다. 그런데 뜻밖에도 영화는 우리의 생각과 달리 그러한 공산당 정권 아래 사회도 살만한 사회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가령 예를 들면, 1950년대 모택동은 중국이 경제적으로 서구에 비해 낙후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경제발전을 위한 무리한 계획을 설정한다. 목표 달성을 위해 모택동은 일반 민중들의 노동력을 무리하게 착취하는데, 그 속에서도 일반서민들의 모습은 이제까지와 전혀 다를 바 없이, 삶의 갖은 즐거움들을 발견하고 찾아내는 것이다. 심지어, 1960년대 모택동의 거대한 이상의 일환이었던 문화혁명을 기점으로 시작된 모택동 숭배 속에서도 그들의 삶은 전혀 억압되어 있거나,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영화 속에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부도’의 딸의 혼인식 날, 모택동의 초상화 앞에서 모주석 어록을 들고 사진을 찍는 ‘부도’와 ‘가진(부인)’, 그리고 그의 딸과 사위의 즐거운 모습을 통해 이를 드러내고 있다. 다만, 1960년대 후반 이르러 급격해진 문화혁명의 혼돈으로 인한 사회상에 대해선 장예모는 은근히 풍자를 하고 있긴 하다. 왜냐하면 당시 문화혁명은 사회의 기존 체제의 전복이란 미명하에 모든 권위와 전통 그리고 낡은 것이라 여겨지는 모든 것을 배척하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말 못하는 ‘부도’의 딸이 임신하여 출산하던 날, 병원에는 오랜 경험으로 숙련된 늙은 의사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젊은 간호사들만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부도’의 딸의 생명을 앗아가게 만들고 만다. 영화의 마지막은 이렇게 산모의 죽음으로 출산된 ‘부도’의 손자와 사위 그리고 그의 부인 ‘가진’이 함께 딸의 묘소를 찾은 후, 같이 소담하게 식사를 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데, 거기서 새 시대의 표상이라 할 수 있는 손자는 ‘부도’에게 묻는다. 병아리가 크면 무엇이 되냐고? ‘부도’는 대답한다.

 

 

  '병아리가 자라면 닭이 되고, 닭이 자라면 양이 되고, 양이 자라면 소가 되고, 소가 자라면 네가 어른이 되지.'

 

 

  이제 이야기를 정리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너무나도 자연스럽지만 은근히 위트 있는 영화, 아니 어쩌면 거대한 이념들에 좌지우지되는 우리 젊음에 독설을 퍼붓는 영화...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그러한 시대 변화 속에 혼돈과 투쟁정신, 아니면 진보를 향한 끝없는 갈망들 그런 것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이 영화 속에선 그러한 것들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너무나도 비굴해 보이는 ‘복귀’와 ‘가진’은 사실, 전혀 비굴하지도 그렇다고 밉살스러워 보이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삶을 묵묵히 받아내며, 그 가운데 어른이 되고, 늙어갈 뿐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 영화 속에서 공산주의니 혹은 민생주의니 왕조니 하는 것들은 그들에게 하나의 도구일 뿐, 삶 그 자체가 되어주질 못하고 있다. 물론, 닭보다는 양이 크고, 양보다는 소가 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크기의 변화일 뿐, 같은 종이 아니기에, 실질적인 변화는 아니라는 말이다. 사실 그러하기에 양이면 어떻고, 소면 어떻겠는가? 중요한 건 모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삶을 살아내는 것이고,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즉, 여기서 역사란 것은 하나의 환경일 뿐, 우리의 중심이 되고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우리가 앞으로 다가올 것이라 믿고 있는 새 우주 새 천년 시대에도 계속 될 것이라고 영화는 은근히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진보를 믿고 죽어간 많은 이들에겐 미안하지만, 매우 자연스러운 우리의 모습이라고 공감하였다. 또, 진보를 향해 한없이 목말라하고 굶주려 있는 내가 이렇게 될 수 있기를, 이렇게 소담하게 어른이 되는 법들을 배워가기를, 우리 아버지들처럼 만큼만 살아지기를, 그럴 수 있기를, 지금 이 순간 잠시,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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