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태평로에서
거리에 수많은 인파가 쏟아져 나온다.
부장님, 과장님, 차장님, 대리님 등등
내 선배, 친구, 후배들의 다른 이름이다.
똑같은 양복을 입고 똑같은 넥타이에
모두 남산만한 배를 방패로 두르고
얼굴에 칼 하나씩 치켜뜨고 있다.
건물 유리창 속 내 얼굴도 똑같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이들도 모두 자신의 품속에
자신만의 꽃의 말을 품고서
밤이면 꽃 안에 숨겨둔 벌들의
더듬이로 더듬더듬 분칠을 하고
자신의 목숨을 다해 평생 한 번
쓸 수 있는 독침으로 누군가를 위해
스스로 생채기를 내고서 더듬더듬
서서히 그렇게 체내의 모든 독들을
씻겨내고 있다는 사실을,
실은 얼굴의 칼들로 배의 방패들로
위장한 꽃과 벌의 노래란 그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