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태평로에서



거리에 수많은 인파가 쏟아져 나온다.

부장님, 과장님, 차장님, 대리님 등등

내 선배, 친구, 후배들의 다른 이름이다.

똑같은 양복을 입고 똑같은 넥타이에

모두 남산만한 배를 방패로 두르고

얼굴에 칼 하나씩 치켜뜨고 있다.

건물 유리창 속 내 얼굴도 똑같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이들도 모두 자신의 품속에

자신만의 꽃의 말을 품고서

밤이면 꽃 안에 숨겨둔 벌들의

더듬이로 더듬더듬 분칠을 하고

자신의 목숨을 다해 평생 한 번

쓸 수 있는 독침으로 누군가를 위해

스스로 생채기를 내고서 더듬더듬

서서히 그렇게 체내의 모든 독들을

씻겨내고 있다는 사실을,

실은 얼굴의 칼들로 배의 방패들로

위장한 꽃과 벌의 노래란 그 사실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