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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에 (2DISC) - 아웃케이스 없음
장 피에르 주네 감독, 마티유 카소비츠 외 출연 / 이오스엔터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아멜리에 - 가장 작은 일상에로의 그녀의 침투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유머라는 것은 욕이라는 것이 들어가야 제 맛이다. 우리의 가장 간지러운 곳을 살살 긁어 주는 것처럼 욕이란 건 참 묘한 뉘앙스의 매력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 경우 세계에서 욕에 관한 어휘가 가장 많다고 하니, 우리 민족만큼 그 효용 가치에 대 해 절실히 고민해 본 민족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인지 얼마 전 한 참 영화극장에서 개봉한 ‘공공의 적’은 그러한 우리의 뉘앙스의 틈새를 잘 파고들어, 통렬하고 시원한 유쾌함을 선사해 준 바가 있다. 사실 강석우식 개그라는 것이 원래 투캅스에서도 이미 보여주었지만, 그러한 욕과 비린 인간군상의 졸렬함을 더티하지 않게 섞어 사람들을 유쾌하게 하는 식이도 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아말리에를 이야기하려는 찰나, 욕과 ‘공공의 적’을 들먹이면서 처음부터 삼천포로 빠지느냐 하면, 프랑스식 코미디인 아멜리에는 이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바이겠지만 우린 가끔 프랑스식의 코미디를 접할 때 조금 어이가 없을 때가 많다. 이건 완전히 몽상적인 것이 전혀 현실과 동떨어진 상태에서 개그를 하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같이 욕과 비린 인간군상의 리얼리즘이란 코미디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참으로 프랑스식 유머는 부르주아하고 느끼한 느낌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유머가 지닌 어처구니 없는 풍자는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이라는 그 이유로 우리의 현실을 유쾌하지만 결코 가볍진 않게 다시 바라보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가 없다. 특히 내 개인적으론 이 아멜리에라는 작품이 더욱 요즈음 내 상황과 엇물려 그러한 감성과 단상들을 제공해 주었던 것 같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볼까 한다.
영화는 시작부터 뭔가 유치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한다. 몇 시 몇 분에 몇 번의 날갯짓을 하는 쇠파리 얘기와 뜬금없는 사람들의 우연 속에 누군가의 정자가 누구가의 난자를 침투해 들어가는 이야기.. 그리고 아멜리에의 탄생.. 그것도 모질라 이제 아멜리에의 가족에 대한 인물 묘사는 다소 현실과는 동떨어진 인물 묘사로 가득하다. 예를 들면 히스테리투성의 어머니, 그리고 자기 세계에 옹골차게 빠져 있는 아버지... 특히, 이 집안이 가장 어처구니없는 것은 의사라는 아버지가 딸을 일주일에 한 번씩 청지기를 대고서 진찰을 하는데, 아버지에게 안기길 원해 심하게 콩닥거리는 딸의 심장 박동 수에 딸을 심장병이라 착각하여, 딸을 일반학교로 보내지 않고 그냥 집안에서 교사인 어머니 밑에서 공부하도록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황당한 설정도 얼마 안 가, 어느 성당에서 자살 기도를 하여 떨어지는 사람에 깔려 어머니가 죽음으로써, 이제 아말리에는 완전한 외톨이가 되어버린다는 무리한 설정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사실 이쯤 되면 보통, 평범한 영화의 분위기라면 무언가 슬픈 사랑의 예감이라든가 인간내면의 깊은 상처에 대해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비현실적인 가정 속에서 이 영화는 되려, 고독한 아멜리에의 공상의 순수함과 천진함 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여하튼 영화의 서론은 이쯤에서 끝나고, 이제 본격적으로 이러한 불우한 환경 속에서 다 자란 아멜리에라는 처녀에 대한 이야기가 새로이 시작된다.
23세살의 아멜리에는 어느 술집에서 서빙을 하며 혼자 살아간다. 그리고 주말엔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그밖에 달리 사람과의 접촉은 없어, 주로 사람을 관찰하거나 혼자 공상하기를 즐긴다. 사실 그녀의 이웃들 또한 괴팍하기 그지없어 각자 자신의 똬리 속에서 나오려 하질 않는 인간들이라 그녀가 호기심을 안 가지려야 안 가질 수가 없기도 하다. 예를 들면, 뼈가 약하여 ‘유리인간’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맞은편 밑에 층 노인은 자신의 집안의 모든 물건들에 헝겊을 둘러싸고서 자신 또한 푹신한 헝겊으로 칭칭 감아 외부로 은둔한 채 평생 고독하게 그림만을 그리며 살고 있다든지, 집주인인 듯한 관리인 아주머니는 십 수 년 전 어떤 여자와 눈이 맞아 파나마로 달아난 남편에 대한 집착을 지우지 못하고 평생 자신의 젊을 적에 남편이 자신에게 보냈던 연애편지만을 되풀이해서 읽고 있고, 아멜리에가 항상 들리는 채소가게에 일하는 청년은 사람보다 채소를 사랑하는 약간은 아둔한 사람이며, 그 주인은 그런 청년을 맨날 못살게 구는 재미로 살고, 아멜리에가 일하는 술집의 단골들 중에는 한 여자를 스토킹 하는 데 골몰하는 사람이 있다든지, 평생 작가라 하여 실패한 자신의 삶에만 골몰하는 어처구니없는 소설가라든지, 심한 신경쇠약증이 있는 담배가판대의 아줌마라든가... 온통 비정상적이고 괴팍한 사람들만 가득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꼬이고 꼬인 인간군상의 모습 속에서 아주 우연히 아멜리에에게 하늘에서 내린 선물이 눈에 띄게 된다. 바로 무엇이냐 하면, 자신의 아파트의 한 귀퉁이 속에 십 수 년 전부터 숨겨져 있던, 이젠 다 늙은 중년 노인이 되어 있을 법한 사람의 장난감 상자였다. 그런데 왜 하필 장난감 상자일까? 일단, 이 답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하고, 어떻게 이 장난감 상자를 통해 엉켜진 인간군상의 매듭이 풀어져 가는 지를 먼저 지켜보기로 해보자.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아주 우연히 수 십 년 전 어느 소년의 장난감 상자를 아멜리에는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이 장난감 상자를 만일 이제는 늙은 중년이 되었을 그 사람이 되찾는다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돌변하지 않을까? 너무나 천진한 아멜리에는 그리고서 바로 결심하게 된다. 이 보물 상자의 주인을 찾아주겠노라고. 그리고 만일 그 사람이 기뻐한다면 자신은 평생 남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살고, 그렇지 않으면 뭐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이렇게 해서 우리의 어처구니없는 여주인공 아멜리에는 보물 상자의 주인을 수소문하기 위해 처음으로 닫힌 자신의 세계를 열고서 주위의 이웃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자연 왜 자신의 이웃들이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닫혀 살고 있는 지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다. 아울러 장난감 상자의 주인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 아멜리에는 너무나 부끄러움이 많은 주인공이다. 하여, 보물 상자의 주인에게 상자를 직접 건네주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을 발휘하여 보물 상자 주인을 감동시킨다.
보물상자의 주인공 "브레또도"씨는 매주 화요일 닭을 사서 푹 삶아서 닭의 안쪽 허벅다리를 골라 먹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중년의 늙은이이다. 그런데 그 화요일엔 이상하게도 닭을 사지 못하고 어느 공중전화 박스 앞에서 멈추게 된다. '따르릉.. 따르릉..' 난데없이 공중전화에서 전화벨 소리가 계속 울려 퍼진다. 브레또도씨는 다소 어이없는 상황에 얼떨떨해 하다 공중전화 박스 안으로 들어가 전화를 받는다. 그런데 '뚜- 뚜-", 전화는 바로 끊겨버린다. 이 게 무슨 상황일까? 의아하게 생각하던 그 때, 공중전화 박스 위엔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조금한 상자가 하나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한다. 자신의 이름이 써져 있고, 안에는 누군가의 사진과 조금한 장난감 자전거와 몇 개의 작은 장난감들이 담겨 있다. 순간, 브레또도씨는 과거의 모든 일을 기억해낸다. 자신이 사이클 대회에서 일등 했던 일, 숙모의 속치마, 그리고 자신의 딸과 어린 손자... 하염없는 눈물이 새어나오고.. 맞은 편 어느 술집에서 아멜리에는 그 광경을 훔쳐보고 있다. '뚜벅.. 뚜벅..' 까닭 없이 눈물을 참지 못하는 중년의 남자가 아멜리에가 몰래 숨어있는 술집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술을 시키면서 술집 주인에게 감격하여 혼잣말하듯 말한다.
"여보게 술 한 잔 주게.. 참 이상하지.. 누군지 모를 나의 천사가 나의 보물 상자를 찾아 주었어.. 그런데.. 참 인생은 너무나 신기하단 말이지.. 나는 수 십 년간 살았는데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이 상자 말고는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아말리에의 입가엔 미소가 지어지고, 이제 아멜리에 삶의 잔잔한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다시 이야기의 앞으로 돌아가 잠깐 왜 하필 장난감 상자인지 생각해 보자. 어릴 적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소중한 것들이 있게 마련일 게다. 그런데 그것은 조금 나이가 들어서 생각해 보면 아주 하잘 것 없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내 경우에는 어릴 적 조금한 고무 인형과 지우개를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난 하나하나 이름을 붙이는 습관이 있었다. 물론, 대개의 이름이라는 게 스포츠 선수 이름이거나 어디선가 들은 위대한 인물들의 이름이었지만. 여하튼, 난 고무인형과 지우개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이고 그들을 가지고 노는 것이 가장 나의 큰 낙 중 하나였다. 그러나 공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던 그 중학교 시절, 나의 고무인형과 지우개는 어머니, 아버지에 의해 어딘가로 버려져야만 했다. 물론, 몰래 동네 쓰레기장까지 뒤져 거의 고스란히 되찾기는 하였지만, 그것이 다시 발각되어 어딘가로 숨겨진 후, 난 그것들을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고등학생이 되어 난 어떤 만화책에 열광한 적이 있었다. ‘난 알아요.’라는 당시 유명 가수의 히트곡 이름을 제목을 갖다 붙인 해적판 만화책이었는데, 당시 거의 용돈을 타지 못했던 내가 꼬박꼬박 돈을 모아 전권을 다 산 다음 그 책을 얼마나 또 읽고 또 읽었던 지. 그렇지만 결국, 그 책들 또한 어딘가로 숨겨져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얼마 전 동생이 어딘가에서 그 만화의 애니메이션을 다운받아 놓아, 나는 다시 그 만화를 볼 수가 있었다. 내용의 수준을 떠나, 얼마나 재밌던지.. 나는 수 십 번 보았던 그 만화를 대사까지 외워가면서 자꾸 또 보고 또 보게 되는 것이다. 왜? 왜.......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너무나 많은 기준들과 책임들 속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실제로 좋아하는 것 또한 그러한 기준과 책임들 따위에 얽혀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 기준과 책임이라는 외부적 요인이 놓여 있지 않을 때는 정말 무가치 한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어릴 적 자신의 장난감 상자엔 그런 것들이 놓여 있을 리 만무하다. 그네들은 늘 그 자체로 소중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비록 현실이라는 외부적 요인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아무 가치 없는 것일지라도, 아직도 나의 고무인형과 지우개 그리고 만화책은 그 존재 자체로 나를 지탱하고 이루고 있는 것들인 것이다. 즉, 실제로 나를 이루고 있고,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란 이런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이 아닐까? 그러나 그네들은 그 자체로 내게 너무나 소중한 것들이다. 그 어떤 이유나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그 자체! 그러니 자신의 인생을 나중에 아주 나중에 돌이켜 보게 될 때, 혹 가장 생각나는 것은 이런 보잘 것 없고 자잘한 것들이 아닐까? 물론 너무나 오랫동안 묻혀 있어 빛바랜 그 색채를 되살리기란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여담은 이쯤 해두기로 하고, 다시 우리의 주인공 아멜리에에게로 돌아가 보기로 하자.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아멜리에는 브레또도씨의 보물 상자를 찾아 준 후 이제 삶의 변화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동안 공상의 나래 속에서만 인형과 더불어 살던 그녀의 생을 다소 헝클어진 자신의 이웃들과 더불어 살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 그러나 역시 너무나 오랫동안 자신의 성에 갇혀 있던 탓에 우리의 주인공 아멜리에가 주위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법은 소리 없이 다가가는 비상한 작전들로 시작된다. 먼저, 앞에서 이야기한 채소가게의 채소를 사람보다 사랑하는 청년과 그 못된 주인아저씨 이야기를 해보자. 사실 아멜리아 같이 순박한 처녀에게는 늘 무언가 남다른 구석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하기에 사람을 보는 시각 또한 매우 다른 것이 통례적이다. 예를 들면, 그 채소 청년의 경우 다소 아둔하기에 일반적인 처녀들의 시각에는 다소 피하고 싶은 존재일지도 모를 것이다. 그러하기에 어쩌면 그 못된 채소가게 주인이 채소 청년을 괴롭히고 모욕하는 걸 보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당연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해맑기 그지없는 주인공 아멜리에는 채소청년의 그 우둔함 속에서 순수함을 발견해 낸다. 하여, 그 못된 채소가게 주인을 골려주기 시작하는데.. 그 방법이 기가 막히다.
어느 날 우연히 채소가게 주인의 집에 들를 일이 있어 들렸던 차에, 아멜리에는 채소 가게의 주인집 열쇠가 그대로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착한 마음에 채소가게 주인에게 돌려주려 채소가게로 다시 발길을 돌린다. 그런데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채소가게 주인이 또 불쌍한 채소 청년을 여러 사람 앞에서 모욕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 멍청이가 어떻다는 둥 그렇다는 둥. 아주 개인적인 프라이버시까지 무시해가면서 채소 청년을 모욕하는데... 순간, 분노한 아멜리에는 그 길로 열쇠 집으로 달려가 버린다. 그리고 똑같은 열쇠를 복사하고선 아주 몰래 채소가게 주인집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선 채소가게 주인의 아주 사소한 일상들을 밉지 않고 귀엽게 망가뜨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시계를 앞으로 빨리 앞당겨 채소가게 주인이 새벽에 일어나 일할 채비를 하게 한다든지, 포도주에 소금을 가득 뿌려 맛을 변질시킨다든지, 디자인은 똑같지만 작은 실내화로 바꿔치기를 한다든지.. 아주 사소하지만 삶에서 익숙했던 것들을 낯설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채소 가게 주인이 자기 자신이 무언가 잘못 되어 가고 있음을 스스로 느끼게끔 한다. 더불어, 순박한 채소 청년을 교묘히 이웃에 옹골진 유리인간 노파와 맺어줌으로써 평생 고독하게 살아온 노파의 마음 문을 움직이게 만들고, 또 평생 자신을 배신한 사랑했던 남편 때문에 슬픔으로 살아가는 아파트 관리인에게 40년 만에 되돌아온 거짓편지를 찾아주어 관리인 아주머니에게 다시금 행복을 되찾아준다든지... 하지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하였던가? 이렇게 주위 이웃의 수호천사처럼 행복의 전령사가 된 아멜리에는 유독 심한 자신의 그 부끄러움 때문에 사랑하는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할 수가 없다. 아주 우연히 어느 즉석 사진기계에서 두 번 부딪친 남자...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재밌는 설정은 이 남자 또한 아멜리에 못지않은 공상가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그의 취미는 즉석 사진기계에 사람들이 찢어버린 사진 조각들을 모아 스크랩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우연히 그 스크랩북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를 쫓아가다 그것을 발견한 아멜리아가 습득하게 된다. 그러면서 두 몽상가의 몽상적 사랑이 우연히 시작된다. 하지만 몽상가가 사랑한다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몽상이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실 몽상이란 건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기반으로 한다. 그렇다면 몽상가라 함은 현실의 실체를 보지 못하고, 늘 가 닿을 수 없는 이상에 목이 메어 있는 종류의 사람을 의미할 것이다. 하여, 보통 이런 경우 사랑이란 것은 미지의 대상일 경우 가능할 뿐, 정작 현실에선 사랑을 못하는 것이 공식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또 다시 색다른 시각으로 이 두 몽상가의 사랑을 맺어주고 있다. 바로 처음부터 은근히 강조하였던 아멜리에의 몽상의 그 순수성 그 천진난만함이 되려, 두 사람의 연결고리가 되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아멜리에의 그 순수성은 너무나 부끄러움이 많다. 이것은 순수하기에 오는 결과이다. 자신의 그 순수함을 지속적으로 지켜내고 싶은 마음... 하지만 이것은 타인을 받아들이는 데 커다란 장애가 된다. 그렇다면 역시 몽상가의 사랑은 다가서지 못하는 그 거리에서만이 존재하며 끝이 나야 하는가? 그렇지만 다행히도 영화 전반에 두드러지는 해피한 분위기는 결코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면, 남이 머리를 깎아주면 되는 것이다. 몰래 행복의 전령사 노릇을 하였지만 그것을 이미 그 이 전 부터 간파하고 있었던 유리인간 노파는 자신의 빚을 아멜리에의 사랑을 맺어줌으로써 갚는다. 그리고 영화는 두 몽상적 연인의 사랑과 더불어 모든 것이 아멜리에의 공상처럼 아름답게 풀리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제 모든 이야기를 정리해 봐야 할 것 같다. 사실 한 편의 영화를 보고서 자신의 모든 감정을 기술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야기 전개와 상관없이 유독 내 자신에게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부분이 있을 뿐더러, 반대로 그렇지 못한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영화 내내 난 우리나라의 코미디처럼 통렬하진 않지만 잔잔한 미소를 띨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그 전반적인 분위기 속에서 무언가 감지하고 정리하고 싶었던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특히, 그러한 주제로 나는 보물 상자 이야기와 함께 아멜리에의 작은 일상으로의 침투가 가져다주는 소소한 행복에 대해 떠올려 본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 영화의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인 것 같다. 모든 것은 우연에 기인하고 있고, 또 설정 또한 괴팍하고 비현실적이지만... 그런 걸 떠나서 사람들 각자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어떤 거대한 신념이라거나 혹은 현실적인 것이 아닌 되려, 매우 하찮고 비현실적인 공상과 우연들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행복을 가능하게끔 하며, 우리는 거기서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물론, 이것은 말처럼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것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모두가 부인하기 힘든 너무나 명료하고 자명한 사실이다!! 일단 영화라는 그 전반적인 분위기를 떠나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찬찬히 아주 작지만 익숙하게 우리를 지탱해 주는 것들을 살펴보자. 그다음 자신의 보물 상자를 하나 만들어, 거기에 그것들을 하나하나 집어넣어 보자. 그리고 그런 달콤한 몽상들을 시간이 한참 지나서 오롯이 꺼내어 놓고서 남몰래 미소 지어볼 수 있다면, 그래도 삶은 살아볼만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