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집 - 서정주 시집
서정주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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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집 - 뱀의 자화상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기퍼도 오지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뿐이

었다.

 어매는 달을두고 풋살구가 꼭하나만 먹고싶다하였으

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아들.


..........(중략)..........


 스믈세햇동안 나를 키운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하드라

 어떤이는 내입에서 죄인을 읽고가고

 어떤이는 내입에서 천치를 읽고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찰란히 티워오는 어느아침에도

 이마우에 언친 시의 이슬에는

 맻방울의 피가 언제나 서껴있어

 볓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느러트린

 병든 수캐만양 헐덕어리며 나는 왔다.


 

                               ---<자화상>---


 

 창씨개명을 하고, 신식교육까지 받은 아버지 덕택에 유복한 생활을 해온 미당이었지만, 그의 자화상 속에서의 아버지는 종이었다. 그리고 어매는 어떠했던가? 달을 두고서 풋살구가 먹고 싶다는 어매. 동상이몽이었을까? 아니면, 오지 않는 애비에 대한 그리움이었을까? 이러한 부모 때문에 그의 젊음을 키운 것은 결국 팔할이 바람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바람을 따라 어떤 후회도 없는 그의 핏빛 시편을 써내려 왔다. 대체 왜 그는 그런 시들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리고 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을 수 있었단 말인가?

 

 

 사향 박하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베암....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여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둥아리냐

 

꽃다님 같다.

 

 너의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든 달변의 혓바닥이

 소리잃은채 낼룽그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눌이다. ....물어뜯어라. 원통히무러뜯어,

 

 다라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중략)...................

 

 

 바눌에 꼬여 두를까부다. 꽃다님보단도 아름다운 빛....

 

 크레오파투라의 피먹은양 붉게 타오르는

 고흔 입설이다....슴여라! 배암.

 

 우리순네는 스믈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흔 입설.....슴

 여라! 배암.


 

                                                ---<화사>---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난 사내. 징그러운 몸뚱이로 태어난 사내. 그렇게 뱀이란 운명으로 결정지어져 태어난 사내. 그런데 미당은 말한다. 꽃다님 같다고. 그리고 이브를 꼬여냈던 그 달변의 혓바닥으로 아름다운 입술들을 훔치려 한다. 그렇게 하늘을 물어뜯으려 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자칫 잘못하면 그 입술의 임자가 지닌 발꿈치로 대가리가 부셔질 수 있다. 그러하기에 그는 자꾸 자꾸 숨어서 기회를 노린다. 꽃뱀이란 태생의 운명처럼.

 

 

 복사꽃 픠고, 복사꽃지고, 뱀이 눈뜨고, 초록제비 무처

오는 하늬바람우에 혼령있는 하눌이여. 피가 잘 도라....

아무병도없으면 가시내야. 슬픈일좀 슬픈일좀, 있어야겠다.


 

                                                    ---<봄>---


 

 오랜 동안 기다려 왔다. 긴 동면을 깨고서 돌아온 피가 돌기 시작하는 계절. 그는 그의 선조가 그랬던 운명처럼 다시 여인을 꼬여낸다. 그리고 적도해바래기 열두송이 꽃심야, 횃불켜든우에 물결치는 은하의 밤으로 데려간다.

 

 

 적도해바래기 열두송이 꽃심야,

 횃불켜든우에 물결치는 은하의 밤.

 자는 닭을 나는 어떻게해 사랑했든가

 

 모래속에서 이러난목아지로

 새벽에 우리, 기쁨에오열하니

 새로자라난 치가 모다떨려.

 감물듸린빛으로 지터만가는

 내나체의 삿삿이....

 수슬 수슬 날개털디리우고, 닭이 우스면

 

 결의형제가치 의좋게 우리는

 하눌하눌 국기만양 머리에 달고

 지귀천년의 정오를 울자.


 

                           ---<웅계 上>---

 

 

 그 태고 적부터 지닌 그 요사한 능력 때문일까? 아니면 그 선조가 받은 저주 때문에 생겨난 요술일까? 닭으로 둔갑한 뱀은 꼬여낸 암컷의 닭과 함께 치가 떨릴 만큼 기쁨에 오열을 한다. 그리고 심지어 지귀천년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그의 숨길 수 없는 본성은 바로 그 다음 시에 이렇게 드러난다.

 

 

 어찌하야 나는 사랑하는자의 피가 먹고 싶습니까

 (운모석관속에 막다아레에나!)

 

 닭의벼슬은 심장우에 피인꽃이라

 구름이 왼통 젖어 흐르나....

 

 막다아레에나의 장미 꽃다발.

 

 

 ................(중략)...................

 

 

 임우 다다른 이 절정에서

 사랑이 어떻게 양립하느냐

 

 해바래기 줄거리로 십자가를 엮어

 죽이리로다. 고요히 침묵하는 내닭을죽여....

 

 카인의 새빩안 수의를 입고

 내 이제 호을로 열손까락이 오도도떤다.

 

 애계의생간으로 매워오는 두개골에

 맨드램이만한 벼슬이 하나 그윽히 솟아올라....


 

                              ---<웅계 下>---

 

 

 마치 성서의 이야기 같기도 한 이 시 속에서 그는 결국 그의 사랑하는 닭을 죽인다. 그리고 형용할 수 없는 죄의식과 수치심으로 오들오들 떤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는 묻는다. 사랑이 어떻게 절정과 양립할 수 있느냐고?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사랑이 아닌 절정이었다. 그러하기에 사랑하는 이의 절정으로 남겨진 그의 두개골 사이로 커다란 뿔 하나가 솟아오르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어릴 적 만화에서 자주 본 악마와의 형상과도 같이.

 

 

 내 너를 찾아왔다 유나. 너참 내앞에 많이있구나 내가

혼자서 종로를 거러가면 사방에서 네가 웃고오는구나. 새

벽닭이 울때마닥 보고싶었다....


 

...............................(중략)..............................

 

 

                          종로네거리에 뿌우여니 흐터저서,

뭐라고 조잘대며 햇볓에 오는애들. 그중에도 열아홉살쯤

스무살쯤되는애들. 그들의눈망울속에, 핏대에, 가슴속에

드러앉어 유나! 유나! 유나! 너 인제 모두다 내앞에 오는

구나.

 

 

                                                ---<부활>---

 

 

  한 번의 죽음이란 절정으로 끝일 줄 알았다. 그러면 모든 것이 사라지고 그 절정만이 남아 오래도록 기쁨에 오열할 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가 죽였던 애계의 형상들이 도처에 다시 피어나고, 다시 생생이 살아, 다시 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어쩌면 여기서 미당은 비록 그 스스로 뱀으로 태어난 저주스런 운명이지만, 그러한 뱀의 저주를 통해서만이 또 다른 생명의 부활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자기항변이든 그 무에든 간에 이것은 소름끼치도록 무섭고 아름다운 사실이다. 그러하기에 미당의 자화상은 단순한 징그러운 몸뚱이가 아닌 꽃다님이란 또 다른 페이소스를 지닌 죽음이면서도 생명인 꽃뱀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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