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홀 욜로욜로 시리즈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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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홀 마음속 깊은 응어리이거나 괴물 같은 형상이거나

 

 

 얼마 전 집중호우로 어린 남매 둘이 맨홀에 빠져 죽은 사건이 있었다. 평소라면 누구도 신경도 쓰지 않을, 맨홀이 갑자기 언론에 집중조명 되었다. 하수도가 흐르는 곳, 혹은 공사 때 간혹 볼 수 있는 어두운 공간과 사다리, 하지만 그 누구도 쉽게 들어가 보지 못한 곳. 만약 이 소설이 어설프게 관념적인 마음의 구멍에 관해 설을 풀었다면, 제대로 된 소설이 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맨홀을 등장시켜 그 안에 구축해놓은 주인공의 세계와 누나와의 추억, 그리고 마지막 시체를 집어삼키는 자기 안의 괴물까지, 생생하게 눈에 보이고,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놓았기에, 이 소설은 평범한 가정 이야기로도 좋은 소설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결코 평범한 가정이라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은 안다. 맨날 엄마를 구타하는 아버지, 그 아버지를 피해 맨홀로 숨는 남매의 이야기가 어떻게 평범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 아버지가 소방관으로서 한 가정을 구하고 순직하여, 세상에 집중조명된 영웅이 되었다면, 어떻겠는가? 여기서 한 가지 모순이 발생한다. 늘 맞은 엄마는 새삼 말할 것도 없이 그런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자신에게 맨홀의 자리를 가르쳐주고, 인도해준 누나가 갑자기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아버지를 아버지로 인정한다. 그런데 주인공은 도저히 이 상황을 납득할 수가 없다. 어떻게 수년간 자신들을 폭행하고, 한 집안을 좌지우지한 공포의 대상을 아버지라고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인정할 수 없는 주인공은 바깥으로 자꾸 맴돌고, 집안에선 누나와 부딪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가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그 자신이 누나에게 폭행의 전조를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끔찍한 전조는 결국 외부의 파키라는 외국인을 향해 폭발한다. 물론,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 그냥 친구들 사이에서 쪼다가 되고 싶지 않아, 몇 번 발로 같이 찬 것뿐이다. 아니, 같이 모여서 발길질을 했는데, 그냥 인형처럼 맥을 못 추고 죽어버린 것이다. 그때 그의 여자친구가 맨홀을 떠올려, 다 같이 시체를 맨홀에 던져버린 것, 그뿐이었다. 그런데 약 39일 동안 주인공은 내면의 고통과 실질적인 대상포진까지 겹치면서, 악몽에 시달린다. 자신과 누나와의 아름다운 추억이었던, 아니 아버지로부터 유일한 도피처였던 맨홀이 시체구덩이가 되어, 이제 주인공의 내면을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결국, 주인공은 견디지 못하고 자수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아이러니가 또 발생한다. 다른 아이들은 사실 모두 주인공이 예전에 그 외국인으로부터 맞은 것을 복수해주기 위해 가담했을 뿐인데, 제대로 된 변호사를 선임할 형편이 못 되었다. 그 때문에, 친구들은 폭력을 행사하여 살인을 주도한 죄로 3년 형을 받았고, 주인공의 여자친구는 살인 방조죄로 1년 형을 선고받는다. 그런데 주인공은 영웅인 아버지 때문에 정상참작이 되어, 재활센터에서 16주의 생활 후 1, 2년의 보호관찰 처분으로 판결을 받는다. 게다가 가장 아이러니의 극은 변호사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주인공이 방황했다는 사실을 재판부에 호소했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여기에 대꾸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다. 이 소설은 이렇게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은 채 끝을 맺는다. 아버지를 용서하지도, 그렇다고 쿨하게 저주하지도 못하면서, 구멍은 구멍으로 남겨둔 채, 더 이상 다가설 수 없는 맨홀로 우두커니 존재한 채, 그렇게 끝을 맺는다.

 

 소설을 읽고서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한 가지는 정말 죽도록 증오하는 감정이란 게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이 해결되지 않는 감정의 응어리를 어떻게 푸는 게 정답일까, 하는 또 다른 의문이었다. 소설처럼 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감히 알지도 못하는 응어리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소설가도 침묵으로 남겨둔 것 아닐까, 잠시 생각해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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