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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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누구를 위해 복무해야 하는가? 

 


 중국 문학에 대해서 과연 나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적지 않게 읽어왔지만, 동시에 현대문학에 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삼국지, 노자, 장자, 중국 역사서 10권의 서적 등, 모두 과거의 중국일 뿐, 현대의 중국과는 관련이 없는 책들이다. 그나마 가장 최근 읽은 책이 루쉰의 아큐정전정도? 이것도 사실은 1920년대 나온 책이니, 중국이 공산주의 사회로 들어선 후 책을 읽은 바는 전혀 없다고 말해야 할 거 같다. 사실, 관심도 없었다. 너무나 다른 사회인 것처럼, 북한이 오늘날 말은 같은 민족이지만, 전혀 다른 민족 같은, 아니 짐 덩어리 같은 느낌인 것처럼, 아니 전혀 모르는 사회인 것처럼, 중국에 관심 가질 일이 없었다. 솔직히 내가 어릴 적 북한에 대해 나온 한 만화는 김일성의 정체를 돼지 두상으로 해놓을 정도였다. 그러니 중국의 폐쇄성에 관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어디 있었겠는가? 하지만 그 폐쇄성은 어찌 보면, 중국 사회의 폐쇄성이라기보다는 내가 가진 시선의 폐쇄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번 기회에 해보게 되었다. 가장 많은 공산품을 수입하는 나라, 동시에 가장 많은 우리 사회의 선진성과 그 안에 감춰진 부패를 답습해가는 중국에 대해, 왜 나는,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걸까? 사실, 그 사회도 똑같이 사람이 사는 한 사회일 뿐인데.

 

 이 소설의 배경은 아마 1970년대이거나 80년대쯤일 거로 추측해본다. 그러니까 아직 본격적으로 중국이 문화를 개방하지 않은 때이다. 이 소설 속에서도 소련 수정주의에 대해 비판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으로 볼 때, 아직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기 전인 것만은 분명하다. 중국 역사에 대해 자세히 몰라서 기술하기는 애매하지만, 중국 문화대혁명 후기쯤이 아닌가도 생각해본다. 그만큼 중국 공산주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확립하던 시기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주인공인 우다왕은 이 시대에 충직한 당원으로서, 모범적인 군인이다. 그는 모든 마오쩌둥의 어록을 외울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 타의 모범이 되어 군 사단장의 사택의 취사병으로 뽑히게 된다. 이제 출세의 길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의 아내와 장인에게 약속했던 대로 군인이 되어, 당 간부가 되고, 도시에 진출할 가장 좋은 발판을 마련하게 된 셈이다. 그런데 어느 날 묘한 일이 발생한다. 항상 벽 위에 세워진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나무 팻말을 사단장의 부인인 류롄이 들어서 식탁 위에 놓더니, 앞으로 이 나무 팻말이 원래 자리에 없으면 2층의 자기 침실로 오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마침, 사단장은 중요한 회의로 두 달간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벌써,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웬걸? 사단장 부인인 자신에게 누나라고 부르라고 하지를 않나, 속옷 바람으로 침실에 있지를 않나, 말 그대로 유혹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우다왕은 사상 무장이 투철한 사나이로 절대 그럴 수 없다고 거절은 한다. 그러자 바로 다음 날 사단장 사택에서 나가야 한다는 명령이 떨어진다. 그렇지만 그를 추천한 지도원은 그에게 하루의 기회를 더 준다. 결국, 진퇴양난에 빠진 우다왕은 류롄을 누님이라고 부르고, 거기서부터 남녀의 운우지정이 시작된다. 거의 이 책의 삼 분의 이가량을 할애한 우다왕과 류롄의 정사에 관해선 따로 논하지 않겠다. 그저 이 정사가 남녀의 애절한 상열지사로 묘사된 것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넘을 수 없는 신분의 차이가 존재하는 까닭이다. 그 이유로 그들의 마지막 3일간의 사랑은 짐승과도 같은 섹스의 묘사로 치중되어 있다. 이때까지는 그저 이 소설이 이러다가 주인공 우다왕이 총살당하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야기가 급전환하는 장면이 발생한다. 류롄이 임신을 했다고 고백하는 장면이다. 사실, 사단장은 사내로 구실을 하지 못한다. 그 때문에 이제 갓 30대를 넘은 류롄은 우다왕을 애초에 쳐다볼 때부터 예사롭지 않은 눈길로 바라보았고, 은연중에 사단장의 사택으로 추천받도록 힘을 쓴 것처럼 보인다. , 여기엔 어떤 음모가 도사리고 있던 것이다. 물론, 책에서 정확하게 그 음모에 관해 기술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애를 못 낳는 사단장이 애를 갖고 싶다면, 남자구실을 할 수 있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다면, 어떤 방법을 선택하겠는가? 애초에 이 모든 것은 기획이고, 계획된 정사라고밖에 나로선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사단장 복귀 전날 우다왕은 한 달의 휴가를 받는다. 아니, 사실은 기약 없는 휴가였다. 부를 때까지 오지 말라는 그런 휴가였는데, 한 달이 넘는 휴가 동안 류롄에 대한 그리움으로 우다왕은 일찍 복귀한다. 그런데,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사단이 갈가리 해체되고 있었다. 사단장이 솔선하여 사단을 해체하여 다른 부대에 예속시키는 중임을 떠맡았다는 것이다. 이런 급변하는 정세에도 우리 주인공 우다왕은 그저 류롄 누님 생각뿐이다. 그렇지만 그를 추천했던 지도원과 중대장이 그를 만류한다. 애초에 그들도 공모자였던 것이다. 사단장이 남자구실을 못 하고, 류롄은 사단장 부인으로서 아이를 임신해야 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아는 모든 이들은 조용히 사라져야 한다. 그렇기에 모든 부대는 뿔뿔이 흩어져야만 한다. 다만, 우다왕은 류롄의 적극적인 선처로 도시 공장의 공장장 자리를 얻게 된다. 그렇게 우다왕의 사랑은 허무하게 끝이 난다. 15년 후, 우다왕은 예전과 달리 성처럼 높아진 사단장 사택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보초병에게 아마도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고 써진 나무 팻말을 보자기에 싸서 류롄에게 전해주기를 부탁하며, 이 글은 끝을 맺는다.

 

 이 글을 읽고 놀란 점은 일단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글 속에서 어느 누구도 총살을 당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단장의 비밀을 아는 세 사람 모두 현역 군인을 은퇴하기는 했지만, 누구도 유괴를 당하지도 않았고, 총살을 당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주인공의 경우는 나름의 특혜까지 얻는다. 중국 사회에 대한 편견이 그동안 얼마나 심했는지, 스스로 자각하게 되었다. 동시에 놀란 점은 이 소설이 말살되지 않고, 번역되어 출판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책이 나왔을 때 중국에선 전면 출판과 유통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역으로 이 때문에, 이 책의 명성이 자자해져, 몰래 읽혔고, 이제는 세계 각국에 번역되어 읽히고 있다. 물론, 작가도 총살되지 않았고, 어디 잡혀가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아직도 현직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까닭이다. 사실, 아무리 2000년대 중국 사회가 서구화되었다고 해도,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그들 나름의 위대한 마오쩌둥의 경구를, 이렇게까지 조롱하는 책을 중국 사회가 암암리이긴 해도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생각해볼 거리가 있다. 끝으로, 이런 내 개인적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를 깨고, 처음 접한 이유로 신선했던 중국 문학을 앞으로 기회가 있다면 종종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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