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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이정호 그림 / 알마 / 2016년 8월
평점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 조금 씁쓸하면서도 아릿한 여운이 남는 이야기들
이 책은 소설이라고 하기엔 분명 무리가 있다. 그렇다고 수필이라고 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학문적인 저서를 이야기로 풀어쓴 책이라고 하는 게 가장 가까운 설명 같다. 사실, 처음 이 책의 제목인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경우엔 가슴에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안면인식장애라는 게 도통 내 머릿속에서 그려내기가 쉽지 않았던 까닭이다. 하지만 그다음 ‘길 잃은 뱃사람’ 이야기서부터는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 여기서 나온 많은 인물들이 겪고 있는 코르사코프 증후군이 내게도 남아 있는 까닭이다. 기억을 잃어버리는 공포, 물론 나는 여기에 나오는 인물처럼 과거의 한 시대를 살고 있지도 않고, 어느 시점으로 계속 기억이 리셋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루이스 부뉴엘의 격언은 나를 공포에 떨게 만든다. 과연 기억을 잃어버린 삶을 삶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는 환자 하나, 하나를 세심하게 관찰한 후 인간의 존재가 이성이 아니더라도 감성이라는 측면으로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물론, 여기엔 종교적인 측면이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저자가 가끔 프로이트나 많은 철학자 이름을 인용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자가 나름 기독교 신앙인이라는 걸 느낄 수가 있다. 아니, 굳이 기독교 신도가 아니더라도 인간 보편의 감수성이나 도덕률, 다시 말해서 칸트가 고민했던 인간의 도덕률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 때문에, 저자는 상실에 대해 아파하고, 고민하면서도, 동시에 과잉에 대해서는 조금 이해력이 부족한 면도 보인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 내가 감히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 ‘정체성의 문제’에 나오는 거짓말쟁이 톰슨의 경우는 어떤 따뜻한 인간적 관심에도 거짓말을 멈출 길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도 저자는 톰슨이 식물을 대할 때면 인간 근원의 평온함과 충족감을 맛보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지만, 글쎄 정말 쉽지 않은 문제 같다. 3부 ‘이행’의 부분은 어떻게 보면, 상실과 과잉이 낳은 특수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대부분 간질로 인한 환상을 겪는 환자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환상에 대해 해석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코카인을 누군가 한두 번 흡입했다고 하면 문제 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누군가 코카인 없으면, 그런 환상이 없으면, 살 수가 없게 된다면, 문제가 될 것이다. 물론, 누군가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그 환상성으로 도피한 누군가의 주변인들이 과연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을까? 여기서 나온 환자들은 물론 그런 경우가 다르기는 하다. 인도로 가는 길의 나온 소녀 이야기나 힐데가르트의 환영 같은 경우는 죽음을 초월하는 승화나 종교적 신앙심으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 인정하는 태도는 취하지 않지만, 결코, 부인하진 않는다. 마지막으로 ‘단순함의 세계’는 자폐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는 각가지 재능을 지닌 자폐아들이 나온다. 문학적 천재인 리베카, 바흐에 관해선 전문가 그 이상의 감수성이 있었던 마틴, 그리고 수학의 천재였던 쌍둥이 형제, 모두 어딘가 한 부분에선 비범하고 특별한 인물들이었다. 다만, 그밖에 나머지 모든 삶의 영역에서 그들은 뒤떨어졌고, 삶을 스스로 영위할 힘에 부쳤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폄하해야 할까? 저자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인간은 그렇게 이성적이고, 평균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존재가 아닌 까닭이다. 물론, 인간의 기본 욕구들은 이런 이성과 평균에 대한 압박과 사회성을 통한 진출로 일궈내 왔다. 하지만 인간 본연의 모습이란 어린아이와 같이 발가벗은 모습이다. 누가 어릴 때 옷을 입고 태어나고, 부모나 주위의 아무런 관심 없이 혼자 일어나 걸어 다닐 수 있단 말인가? 조금 늦게 어른이 된다고 해서, 아니 어른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인간이 아니라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책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