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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신춘문예 당선소설집
이언주 외 지음 / 한국소설가협회 / 2022년 1월
평점 :
품절
2022년 신춘문예 당선작을 평가하며
이번 신춘문예는 내 개인에게 있어서도 특별했다. 문학 모임에 있으면서도 7년 만에 신춘문예에 도전한 탓에,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일단, 총 네 작품을 추려서 신문사에 투고했는데, 역시나 모두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애초에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조금 아쉽기는 하다. 일단,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히 느낀 건, 글쓰기가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안이하게 글쓰기를 대하고, 생각했는지, 그리고 그 때문에 즐긴다는 핑계를 대면서, 얼마나 아무런 노력도 안 해왔는지 통감하는 기회였다. 그래서 기대했다. 이번 신춘문예 작품들을, 그리고 거기에 대한 평들을. 그런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첫째, 이런 재미없는 작품들, 형식적인 작품들을, 굳이 써야 하는가에 관한 생각이다. 점점 세상과 등진, 혹은 세상에 따라가는 듯 흘러가면서도 전혀 대응하지 못하는, 문학이 내가 원하는 문학인지 잘 모르겠다. 둘째, 거의 처음으로 제대로 여러 신문의 심사평을 보았다. 도대체 기준을 잘 모르겠다. 정말 신인을 뽑고 싶다는 마음은 알겠는데, 그 기준점이 너무 애매해서 실망스러웠다. 그저 한참 어린 후학 중 아 요게 그래도 괜찮네, 하고 주는 그런 기준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렇다 해서 내가 이보다 더 좋은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쓸 자신도 없다. 하지만 내 스스로 문학의 방향성을 정하는데 여러 다른 생각이 들었다. 분명, 이런 기준점이 되는 공모전에 참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편승해 자신의 문학의 방향성을 바꾼다는 것은, 글쎄, 물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패배한 개가 짖는 소리에 불과하지만, 아닌 것 같다. 자신이 원하는, 자신이 재밌을 수 있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문학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보며, 평을 해보려 한다.
먼저, 가장 눈에 들어온 작품은 조선일보의 ‘무료나눔 대화법’이었다. 전체적으로 글도 안정적이었고, 최근 유행인 당근 마켓에서 힌트를 얻어 쓴 듯한 소소한 접근도 좋았다. 그리고 거기서 서로 전혀 다른 이질적인 나눔과 교류가 이루어진다는 발상과 의미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전체적으로 조금 밋밋했다. 처음부터 너무 소소한 재미를 추구했기 때문에, 거기에 머물렀다는 아쉬움이 있다.
한국일보의 ‘바둑 두는 여자’는 재미 면에서는 괜찮았다. 정보적 측면이라고 해야 할지, 바둑에 관한 많은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조금 시작부터 끝까지 미스터리한 측면이 있었다. 퇴직한 교장 선생이 자서전을 쓰고 싶다고 하면서, 주인공에게 바둑 수업을 유도한 교장의 의도가 여러모로 불분명했다. 마지막에 그저 외로워서, 누군가에게 자신의 곤란을 털어놓고 싶었다는 이야기가 조금은 허무맹랑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재미는 있었다.
문화일보의 ‘퍼레이드를 기다리는 시간’ 역시 여러모로 볼거리는 있었다. 한국에 실재하지 않는 ‘한국 디즈니랜드’의 설정부터 해서, 존재하지 않는 ‘조안’이란 인물의 디지털 재현? 이런 화려한 볼거리 속에서 삼촌의 꿈에 관한 이야기를 드러내는 이야기 전개 방식이 나름 신선했다. 하지만 이 화려한 볼거리 속에 다소 맥락을 찾기 힘든 점도 있었다. 내용이 너무 많은 갈래로 공작처럼 날개를 펼친다고 해야 할까? 삼촌의 꿈이 드러나기까지, 아니 삼촌의 꿈이 그 속에 삼켜진 느낌이 조금 들었다.
서울일보의 ‘되돌아오는 곰’은 재미적인 측면에서 제일 괜찮았다. 녹원이라는 인물을 통해 투영된 ‘도돌이’의 마음이라고 해야 할까? 조금은 동화 같으면서도, 순박함이 살아있는 작품 같았다. 다만, 너무 곰한테 투영된 그 마음에 대해 뭐라 말해야 할지, 동화로 쓰였다면, 훨씬 더 괜찮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동아일보의 ‘무겁고 높은’은 제목이 너무 거짓말을 했다. 아니, 너무 정직했다. 여하튼 부담을 갖고 봤는데, 너무 만화 같아서 재밌었다. 역도 소녀에 관한 짧은 만화이거나 영화 같은 이야기였다. 그 점이 재밌었고, 그 점이 아쉬웠다.
경향신문의 ‘현관은 수국 뒤에 있다.’에 관해선 뭐라 이야기를 못 하겠다. 왜 이런 작품에 굳이 상을 주는지 이해가 잘 안 간다. 물론, 실험적인 작품도 필요하다. 하지만 굳이 왜 이렇게 초보적인 읊조림과 동선을 따르는 작품에 상을 주는 건지 잘 모르겠다. 조금 더 파격적이고, 훨씬 기존의 틀을 깨는 작품들이 존재했을 텐데, 이런 히피적인 작품에 점수를 주었는지, 나로선 잘 이해가 가질 않는다.
세계일보의 ‘살아있는 당신의 밤’이 내 개인적으로는 가장 문학적인 순수성과 상징을 잘 구현하려 노력했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 시절 좋아했던 선배를 한 마리 영혼이 깃든 꿩 같은 존재로 체화, 체득하여 독자에게 구체적으로 보여주려고 하는 시선과 노력이 좋았다. 가장 신춘문예답고, 가장 문학적인 느낌은, 이런 느낌이 아닐까? 물론, 그 누군가 정형성에 대해 논할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늘 그런 것, 똑같은 것 아니냐고, 하지만 그 정형성에서도 가장 문학적 순수성을 구현하려 노력하는 것과 그냥 끄적이는 것은 다르다. 결국, 문학이 리얼이라는 현실을 떠안고서, 동시에 그 끝에 새로운 상징을 구축해가려는 노력이라면, 나는 이 작품이 이번 신춘 작품 중 가장 그 근처에 갔다는 생각이 든다.
전체적인 평을 해보자면, 대부분 너무 현실적인 느낌이 강했다. 그냥 소소한 재미를 추구하려 하고, 거기에 만족한 느낌이었다. 이런 작품이라면 솔직히 사람들은 굳이 문학보다는 화려한 영상매체를 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한 가지는, 그 이전 신춘에서 보았던 강렬한 작품들, 최소 한두 작품은 있었는데, 이번에는 솔직히 볼 수 없었다. 그런 느낌이라고 경향에서 ‘현관은’이란 작품에 준 것 같은데, 개인적으론 썩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 자신에게 투영해보면, 조금 더 자신의 길을 가면서, 도전을 해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