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전하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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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젊은 작가상 동성애 코드를 중심으로

 

 

 이번이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읽은 지 두 번째이다. 첫 번째, 2015년 작품집 때, 정지돈의 건축이냐, 혁명이냐를 볼 때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을 쳤다. 후장 사실주의라느니 하면서, 비평도 아닌 것이, 소설도 아니고, 그냥 독자 다 무시하고 혼자 잘난 척하는 게 요새 시대의 트렌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2021년 작품집은 그에 비하면 무난하기는 하지만, 확실히 어떤 색깔이 드러났다. 일단, 모든 작품 수상 작가들이 여자였다. 원래 문예창작과에 여자가 8할 이상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문학이 여성의 전유물로 편파성을 띤 적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두 번째는 이제 페미 코드를 벗어난 확연한 동성애 코드의 등장이었다. 원래 문학이라는 장르가 약자에 대해 더 민감하고, 사회의 기존 관념에 대해 저항 의식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그렇지만 다루는 방식에 대해선 조금 여러모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일단, 이 소설집에서 동성애 코드가 은연중이든, 대놓고든, 드러낸 글은 총 네 편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나뭇잎이 마르고는 은연중에 동성애 코드를 사용하였고, ‘사랑하는 일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은 전면에 드러내놓고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은연중에 사용한 두 작품의 경우, 주제 자체가 큰 테두리로 보았을 때 약자에 관한 이야기, 반짝거리는 사람 뒤편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동성애 코드는 말 그대로 동성애 코드로만 사용되었다. 이미 이 코드가 약자를 대변하는 경향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 여성들 특유의 우정에 관해 접할 때 백합이라는 동성애 코드를 우리는 오랫동안 봐왔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분위기였다. 물론, 백합이라는 동성애 코드가 요즘처럼 자연스럽게 사용된 건, 조금 더 문학의 주요 테마로 등장한 건, 그리 오래된 시기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차원 넘어서서 아예 동성애 그 자체를 다루는 소설이 이제는 등장하고 있다. 이 소설집에 사랑하는 일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그런데 또 특이한 게 다루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사랑하는 일은 가족 관계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다루었다면,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은 수동무라는 역사적 기록과 함께 일제 강점 시대로 인해 마치 우리의 자랑스러웠던 역사의 한 부분이었던 동성애라는 자유가 빼앗긴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동시에 이 시대로 그 이야기를 끌고 와 출구 없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끝을 맺고 있다.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일이 훨씬 와 닿았다. 비록, 숱한 고증의 노력과 스타일리쉬의 방법으로 온갖 정성을 들였을 것임이 분명한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이겠지만, 왜 내게 거부반응을 일으킨 것일까? 일단, 첫 번째는 너무 동성애자를 부각한 점이다. ‘사랑하는 일에서 주인공은 동성애자의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사랑에 관해서도 동시에 이야기를 하고 있다. , 공감의 폭을 넓히는 작업이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소원은...’은 제목부터 너무 절실해서 그런지, 동성애적 사랑의 가치를 부각시키기 위해 이성애자의 사랑은 마치 메조나 사드밖에 없는 것처럼 매도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조선 시대의 문헌을 통해 수동무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일제 강점 시대와 엇물리게 한 점은 신선했지만, 누구나 읽다 보면 아마 이 비약에 대해 조금 심한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솔직히, 수동무의 개념을 정확하게 내가 알지는 못하지만, 그리스 시대의 향연에서 나온 동성애 제자와 조금 비슷한 내용으로 이해해볼 때, 이 역시 일부 양반이라는 특권층만 누렸던 이익일 텐데, 이 글이 이 지점은 간과하고 그냥 갔다 쓴 건 아닌지 하는 우려도 있다. 이런 이유로 사실, 수동무는 자유로웠던 존재가 아니라, 억압받았던 존재였을 것이다. 그런데 일제 강점으로 빼앗긴 우리의 동성애적인 자유에 관해 말한다는 건 논리 기반 자체가 빈약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한다고 해야 할까? 게다가, 수미상관 방식의 시대 연결은 일반 독자가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다. 물론, 이 모든 장치들이 그 절실한 소원에서 나왔기 때문이라는 점은 이해한다. 보다 애절하고, 보다 특별하게 봐주기를 바라는 저자의 심리가 이러한 장치들과 구성에 노력을 기했으리라 예상한다. 하지만 그 애절함과 특별함에 대한 애착이 이 글을 난해하게 만들어버리고, 더 거부반응을 일으키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은 미처 계산하지 못한 듯하다. ‘동성애자도 똑같은 인간이다. 이런 방식으로 시작했다면, 조금 더 나와 같은 일반 독자들이 조금 더 편하게 다가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것도 평범한 이성애자이면서, 어느 정도 동성애에 대해 개념적으로는 동의해줄 수 있는 사람들에 관한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여기서도 공감받지 못한다면, 어디에서 공감을 받을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인상 깊게 본 작품은 동성애 코드와 별개인 박서련의 당신 엄마가...’라는 작품이었다. 시대에 관해서 잘 짚었고, 무엇보다 재미가 있었다. 게임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도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제 대충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왜 우리 시대의 문학 주제가 동성애 코드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내 개인적인 한계에서 바라는 동성애 코드는 코드 그 자체의 특별함보다 인간의 다양성에 관한 이야기로 흘러갔으면 한다. 새로운 종류의 인간이 아닌, 똑같은 인간이라는 동일선상에서 공감의 코드로 사용되기를 원한다. 더불어, 조금 더 이 시대를 솔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 당신 엄마가...’와 같은 작품들이 더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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