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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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 조금 시적이고 조금 몽상적이지만



 로맹 가리의 책을 오랫동안 읽고 싶었다. 불문과를 조금 다닌 탓에, 들어본 이름이기도 하고, 그의 대표 단편작들을 수록한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라는 제목이 멋있게 보였다. 일단, 전체적인 느낌은 생각보다 사회적 성격이 강한 작가였다. 아무래도 세계 2차 대전의 일선에서 전쟁을 겪었던 사람이다 보니, 나치에 대한 혐오가 보였고, 곳곳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세태 풍자도 볼 수 있었다. 물론, 프랑스 작가들의 대체적 경향인 좌파적 성향도 곳곳에서 드러났다. 하지만 만약에 첫 두 작품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와 ‘류트’만 본다면, 전형적인 프랑스 작가의 시적이고 몽환적인 경향이 두드러져 보인다. 내 개인적으론, 부부 내의 치열한 심리를 다룬 ‘류트’보다는 조금 더 선이 부드럽고 몽상적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가 더 좋았다.


 왜 수많은 새들이 페루의 해변에 와서 죽는지는 알 수 없다. 해변은 그렇게 새들의 성지 바라나시가 되어, 죽기 전 그들이 수없이 뿌려놓은 똥들이 굳어져, 조분석을 이룬 바위와 파도뿐인 고독한 공간이다. 이곳에 카페를 차려놓은 주인공은 그동안 스페인 내전과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쿠바에서 전투를 치른 다음, 모든 곳이 종말을 고하는 이 페루의 해변에 카페를 차려놓고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중이다. 한낱, 피에로 분장을 한 서커스 단원 같은 떠돌이들이나 우연히 마주하는 이 바닷가에 한 여인이 자신의 나머지 생을 맞이하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씩, 바다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 주인공이 왜 그녀를 살렸는지는 잘 모르겠다. 살아야겠다는 생의 본능처럼, 누군가를 살려야겠다는 생의 본능이 작용했으리라고 추측해볼 뿐. 


 “날 내버려뒀어야 했어요.”


 여자는 그렇게 말하지만, 남자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곳에 머물게 해주세요.’라고 부탁까지 한다. 주인공의 마지막 생에 어떤 빛이 머무는 걸까? 잠깐, 간절했던 바람은 잠시 뒤 여자의 지인들 방문으로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린다. 부부관계로 보이는 영국인 남자와 여자는 대화를 한다. 남자는 여자에게 집착하고 있다. 여자는 무언가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 보인다. 분명한 건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은 분명히 알고 있다. 이 카페를 떠나, 이 바다를 떠나, 다시 자신들이 사는 세계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새들이 이 해변에서 죽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테니까. 돌아가는 길, 여자는 아쉬움에 뒤돌아본다. 카페는 비어있고, 그곳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단편, 중간중간엔 ‘조금 시적이고 조금 몽상적이지만’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실제로 이 이야기는 그렇게 ‘조금 시적이고 조금 몽상적인’ 이야기이다. 새들은 왜 이 해변에 와서 죽는 걸까? 왜 카페는 비어있고, 누구도 남아있지 않는 것일까? ‘조금 시적이고 조금 몽상적이지만’ 아직도 우리는 이 글 속에 남자와 여자처럼 서툴게 살아갈 길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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