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12월
평점 :
절판




달에 울다 그 시적인 여운에 취해

 

 

 최근에 읽었던 그 어떤 소설보다 가슴속에 깊이 남는다. 진한 여운이 남아 지금 내가 사과꽃에 취한 건지, 빨갛게 물든 달에 취한 건지, 흐드러진 야에코의 젖무덤에 취한 건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아직 정리되지 않고 취한 상태에서 품평을 하는 게 맞는 건지, 틀린 건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그럼에도 무언가 주절거리고 싶은 이 기분은 분명, 이 취기 탓이라 여겨본다. 한동안 나는 글쓰기는 재미에 있다고 생각했다. 재밌지 않은 글이, 혹은 본인이 재밌게 쓰지 않는 글이, 무슨 글이겠냐는 간단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 본질이 거기에 없음은 내 스스로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재밌어도, 무언가 멈추는 지점에 대해 최근 생각했었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추는 지점, 그렇게 떨림을 가쁜 호흡을 잠깐 고르고, 진한 흥의 여운을 느낄 수 있는 지점에 대해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모든 말들이 달에 울다.’를 보고서 허튼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애초에 나의 글쓰기는 시적인 무언가에 대한 추구였다. 시에 대한 집착이 무언가 서사로써 길게 이어져, 깊은 여운을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관념이었다. 시로서 무언가 그것을 느껴보았지만, 소설에서 그걸 느낀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제야 그런 글쓰기가 무언가 목도하게 되었다. 사실, ‘달에 울다이전에 나는 마루야마 겐지의 다른 소설 밤의 기별을 읽었다. 거기서도 충격을 받았다. 이건 뭐지? 어떻게 이런 시적인 소설이 있지? 무언가 쉬 범접할 수 없는 그의 기법에 충격적인 여운이 컸다. 그리고 아쉬웠다. 만약 내가 일본어를 제대로 알았다면, 더 각별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뭐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시적인 기법을 소설 속에 녹여 놓은 것일까?

 

 첫째는, 반복되는 풍경의 묘사이다. 사실, 풍경 묘사만큼 소설에서 애매하고, 마음에 와닿지 않는 문장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마루야마 겐지는 같은 풍경에 대해 여러 번 묘사함으로써, 그 풍경에 대해 집중하게 만든다. 이 소설 속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계속되는 병풍 속 노사에 대한 묘사, 사과꽃에 대한 묘사, 달에 대한 묘사, 그런데 기묘한 건 그 풍경의 묘사가 조금씩 다르게 변모한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전이하는 것처럼, 풍경은 조금씩, 조금씩, 차츰차츰 봄에서 여름, 여름에서 가을, 가을에서 겨울로 변해간다. 그 풍경처럼 마을의 풍경도, 주인공의 심리도, 야에코도 변해간다. 비단, 이 소설에서뿐 아니라, ‘밤의 기별에서도 마루야마 겐지의 풍경 묘사는 비슷한 묘사를 택했다.

 

둘째로, 그가 각별한 점은 각 풍경을 묘사할 때마다 쓰는 암시와 상징에 있다. 소설의 병풍 속 노사는 자신의 할아버지이면서도, 아버지 같으면서도, 결국 주인공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보여주고 있다. 저 산기슭에 숨겨진 주인공만 아는 사과밭은 주인공의 이상향이다. 그곳에서 언젠가 그는 야에코와 함께하고 싶어 하지만, 그곳은 결코 다다를 수도 없고, 그렇기에 주인공 가슴 속에서만 깊이 간직된 이상향, 몽유도원도이다. 달은 계절과 함께 그 빛깔을 같이 품어내고 있다. 그래서 마치 사과꽃처럼 은은한 향을 품어내서, 야에코와의 관계와도 묘하게 연관을 가지면서, 결국엔 진다. 야에코처럼 혹은 주인공 자신처럼, 그 시대의 마지막 상징인 촌장처럼.

 

 마지막으로, 그의 시적인 특별한 기법은 이 모든 것이 조금은 막연하다는 점이다. 어떤 것 하나 분명한 선이 없다. 마지막까지 그의 소설은 기승전결이 확실한 것이 없다. 그렇다고 불안정한 것도 아니다. 시적인 소설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애초에 그 시적인 암시나 상징조차 확실하지 않다는 점이 그의 매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그 모든 불확실성이, 그리고 그 막연한 불안정함이 소설 전반의 분위기 속에 녹아들어, 사람을 홀리게 하고, 취하게 하는 것일까? 아직까진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나는 사과꽃 향을 단 한 번도 맡아보지 못했지만 사과꽃 향기에 취했고, 그 취한 달밤의 수많은 기억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알고 있다고 느끼면서 떨리는 이 기시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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