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의 이해 - 오해의 이유를 찾아서

 

 

  어떤 글을 읽고 나서 내내 맺히는 경우가 있다. 그 글의 여운이나 강한 전율을 받을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더러는 무언가 다 게워내지 못한 찝찝함 같은 것을 느낀 경우에도 그렇다. 테드 창의 이해같은 경우가 그랬다. 어떤 의미인지, 무슨 이야기인지 대충 다 알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 맥락 하에서 토론도 해보았지만, 그래도 무언가 아직도 다 못한 이야기가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왜 그랬던 걸까? 먼저는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하나는 테드 창의 이야기 전개 방식이 내게 낯설면서도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테드 창의 소설은 SF이다. 그런데 동시에 SF가 아니다. 언어와 구성 소재는 모두 SF의 세계관을 차용하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매우 철학적이고, 심지어 신학적이기까지 하다. 둘째는 테드 창의 이해속에 나온 미학과 윤리학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정리해보고 싶었다. 아마 이것은 소설 그 자체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내 자신을 위한 정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내 아렸던 마지막 장면을 다시 재구성해봄으로써 무언가 얻을 수 있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해본다.

 

  소설의 초반부는 주인공의 치료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 빙판 사이 얼음물에 빠져 거의 1시간 가까이 있으면서 주인공은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깨어나면 그것은 악몽이고, 병원 침상에 누워있고, 또 다시 얼음물 속에 잠긴 악몽을 꾸고, 다시 깨고. 그 과정 속에서 그는 그가 호르몬 K에 의해 손상된 뉴런이 복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동시에 전과 비교할 수 없는 천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 지점부터 발생하게 된다. 이 호르몬 K의 성공적 실험에 의해 피실험자들은 정부의 관리 하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뇌의 손상이 심했던 사람일수록 뇌의 활용도의 수치는 올라갔다. 바로 주인공 그 자신의 경우처럼. 그러니 정부는 피실험자들을 이용하여 정부의 요원으로써 활용할 방안을 고심 중이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더 어떤 강제성을 띠게 된다. , 주인공은 이제 정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정부가 생각했던 이상으로 천재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손쉽게 그 모든 것을 예상하고 도망자의 삶을 선택하게 된다. 어차피 그가 관심이 있는 것은 그런 대의적인 정부의 문제들이 아니다. 그리고 자유를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래서 그는 정부의 시선을 따돌린 채 주식 시장과 경매를 통해 소소한 벌이를 하면서 살아가기 시작한다. 물론, 그렇다고 정부가 포기할리는 결코 없다. 실제로 정부는 그를 유인하기 위해 그의 전 여자 친구를 범죄 방조죄로 체포했다. 하지만 그는 정부의 정보망에서 CIA 국장과 미국 상원의원의 스캔들 문제를 알아내 협박함으로써, 그의 전 여자 친구를 무죄 방면시켰다. 사실, 그에겐 그런 것들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천재가 되어버린 지금, 그에게 당면한 문제는 그가 가장 추구할 수 있는 천재다움, 다른 말로 표현해서 아름다움이다. 왜냐하면 자기 이외의 그 누구도 자신과 같은 경지에 이른 적도 없고, 이를 수도 없기에, 가장 자신다운 것, 그 때문에 오직 자신만이 추구할 수 있는 어떤 경지만이 그의 관심의 대상인 까닭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이 책에선 게슈탈트라고 표현되어 있다. 부분으로써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의식의 흐름, 음표를 보고 음률과 가락을 떠올리고, 하나의 단어를 봄으로써 문장과 나아가 글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의식, 아마 자기완성의 극의를 저자는 이렇게 파악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글속의 주인공은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고, 뇌의 혁명적 변화를 통해 신체의 변화와 운동 과정을 이끌어내기까지 한다. 하지만 여기에 제동이 걸린다. 누군가 자신과 같은 존재가 있다. 그가 그에게 암시를 보낸다. 만나야 한다고. 그렇지만 아쉽게도 그는 그의 친구가 아니다. 그의 적이다. 그것도 절대적인 적. 그런데 여기서 아이러니한 것은 그 절대적인 적이 윤리학적 관점에서 전 인류를 구원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혼자서 미학을 추구하는 주인공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이 책에선 보편 인류에서 벗어난 뛰어난 천재성, 그 자체가 바로 잠재적 위험으로 대두될 수 있다는 것을 주인공의 적은 가정하고 있다. 어차피 살아있는 한 두 인물의 조우는 필수불가결하다. 윤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주인공이 그의 재능을 썩히고 인류에 이바지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윤리학적으로 보편을 추구하는 자에게 미학적 존재란 늘 걸림돌이 될 확률이 존재한다. 때문에 둘은 각자 익혀온 방식으로 서로 대화 후, 공존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한번 씩 공격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여기서 안타까운 현상이 발생한다. 외부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주인공의 공격 패턴이란 독특하고 독창적이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해, 윤리학이라는 보편적 관점을 기반에 둔 주인공의 적은 수용력이 폭넓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주인공은 그의 적이 걸어놓은 암시를 해독하지 못하고 그대로 정신의 나락으로 향하는 자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적이 걸어놓은 암시는 이해이며, 주인공은 이해하고, 이해가 작용하는 수단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고로 그는 붕괴한다.

 

  사실, 처음 읽었을 때는 이 글이 왜 SF이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초반의 설정 빼고는 거의 철학적 내용에 가까웠고, 마지막 장면은 그 미학과 윤리학이라는 그 대척점을 표현해냈으니, 도저히 SF 소설로 읽히지 않았다. 물론, 설정에 관해 치열하게 파고들어서 허점을 찾아낸다면, 그런 게 SF라면 나는 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실제로 얼마 전 하반신 불구의 환자를 전기 치료를 통해 중추신경에 자극을 줌으로써, 보행기구에 의지해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 더 이상 뉴런의 신경 중추돌기의 복구가 환상만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물론, 이 소설에서 나오는 또 하나의 가정, 뇌의 99%의 가까운 능력을 끌어내는 이야기는 별개이다. 그러나 이는 SF이니 얼마든지 너그럽게 가정으로 봐줄 수 있다고 내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여하튼 중요한 건, 그 소재가 어떻게 차용되었든, 이 소설은 과학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미학과 윤리학에 관한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다. 그것도 나름 잘 짜인 논리로 무장되어 있다. 미학이 가진 특징 중 하나인 창조성은 보편성과 대치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왜냐하면 보편은 모든 개성을 아울러 하나로 엮는 힘과 권력이지만, 창조는 그에 반하여 또 다른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개성인 까닭이다. , 한 마디로 이 글에서 말한 것처럼 전에 없던 게슈탈트이다. 그런데 반대로 윤리는 보편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왜 창조를 억누르는 힘과 권력이 되어야 하는지 이 글에 명약관화하게 보여주었다고 나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창조의 관점에서 언제까지 보편을 배제할 수 없다는 상황을 보여주었다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세상과 소통하지 않은 채 창조 그 자체만을 할 수는 없는 까닭이다. 있다면, 그는 신일 것이다. , 미학을 추구하는 창조자는 필연적으로 보편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반대로 보편을 추구하는 입장에선 굳이 미학적 관점의 창조를 이해할 이유가 없다. 도리어 그것은 보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공산이 큰 까닭이다. 그러하기에 결국 가장 좋은 방법은 윤리를 추구하는 보편의 입장에선 늘 이해와 소통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다수의 개성을 하나로 엮어내고자 한다. 하지만 그 순간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심지어 보편이 추구했던 이해와 소통마저 사라진 채, 하나의 권력만이, 오직 힘만이 남게 된다. 왜 늘 이렇게 되어버리는 것일까? 창조와 이해가 함께할 수 있는 자리는 없는 것일까? 오해할 수 있는 여지는 없는 것일까?

    

 

P.S 이십대 때 썼던 오해의 이유라는 자작시를 덧붙인다.

 

이해했다고 말했던 나의 모든 기억들을 부셔버린다

너를 처음 보았던 그 순간부터 차곡차곡 쌓여진 간격으로

마음껏 나래를 펴서 너를 자르고 붙이고 꿰매어 이제

너는 새롭게 태어난 의미들-너에게 결코 고백할 수 없어

오직 너는 나만의 부풀려진 모호한 꿈 덩어리처럼 내 것

영원히 살아서 지울 수 없는 어느 순간에 사라진 형이상학적

이미지, 아우라, 신비, 경이로운 상심

헝클어진 토사물처럼 난잡하여도 아름다웠던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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