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미러 - 욕망에 관한 오마주

 

 

  일단, 전체적으로 재밌게 보았다. 여기서 전체적이다 함은 내가 본 시즌4의 딱 세 편 ‘USS Callister', 'Hang the DJ', 'Black Museum'을 말하는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재밌었던 편은 ‘Hang the DJ' 그리고 ‘Black Museum'에서 첫 번째 에피소드이다. 하지만 아는 지인의 추천작이 ‘USS Callister'이기에, 일단 이 작품 위주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사실, 첫 장면에서 나는 꽤 실망했다. 아예 대놓고 스타트랙오마주를 했는데, 느낌이 무슨 70년대 화면 같기도 하고, 대사와 상황은 어찌나 유치한지, 그래서 속으로 이런 걸 왜 추천했지?’ 하면서 봤다. 그런데 알고 보니, 반전이 있는 영화였다. ‘스타트랙의 오마주는 게임 속 가상현실이었다. 그것도 주인공이 DNA 염색체 복사를 통해 Infinity(불멸과 무한)를 구축해놓은 가상현실! 그렇다면 이 얼마나 대단한 세상이란 말인가? 누군가가 무한의 공간 속에서 불멸의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로 행복한 것 아닐까?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주인공 혼자만을 위한 세계이다. 때문에 그 게임 속 캐릭터로 복제된 클론들은 그 상황이 끔찍하기만 하다. 일단, 크게 두드러지게 나오진 않지만, 클론들에게 생식기가 존재하지 않는 설정이 있다. , 성욕이 제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여기서 어떤 창조가 나오겠는가? 욕망이 없는데 어떤 즐거움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절대자인 주인공의 말에 거역이라도 할 의도라도 비추면, 괴물이 되어 우주의 어떤 황무지별에 버려지기까지 한다. 한 마디로, 영원한 절망만 존재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여기에 여주인공이 어느 날 나타나 상황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던 클론들에게 독재자인 주인공으로부터의 탈출을 격려하고, 나아가 방향까지 제시해준다. 크리스마스이브 때 업데이트 패치 기간에 게임 내 웜홀이 발생하는데, 그 속으로 들어가면 불멸이었던 자신들의 존재가 사라질 희망이 생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모든 클론들은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주인공이 이미 자신들의 모든 DNA 염색체를 보관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까닭이다. 때문에 그들은 죽어도 언제든지 다시 복제되어 게임 속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여주인공은 자신의 치부인 지우지 못한 누드 사진들을 이용하여 현실의 자신을 통해 주인공 집에 몰래 들어가 클론들의 모든 DNA 염색체들을 훔치도록 한다. 그리고 게임 내에서 적당하게 시간을 끌어, 주인공을 따돌리고 웜홀 진입에 성공한다. 드디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줄 알았는데... 아니, 이 게 웬 걸? 그들은 죽지 않고 되살아나, 게임 속 진짜 USS Callister가 된다. 게다가 생식기까지 복원된 진짜 존재가 되어, 진짜 Infinity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마지막 장면의 다소 많은 의아함은 있지만, 영화이기에 일단 쿨하게 넘기고, 그냥 느낀 바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보고서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장자의 이야기 중 하나였다. 어느 노부부 하인과 욕심 많은 주인의 이야기인데, 이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꿈속에선 노부부가 주인이 되고, 욕심 많은 주인은 노부부의 하인이 되었다. 그래서 노부부는 늘 꿈속을 생각하며 살아서 현실 속에서도 행복했고, 반대로 욕심 많은 주인은 늘 꿈속에 대한 공포로 불안에 떨며 살아서 평생을 불행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장자는 과연 누가 행복한 것인지 우리에게 되묻는다. 이십대 초반에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느꼈던 건 당연히 늘 꿈속이라면 현실도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다는 경구에 대한 일종의 떨림이었다. 어쩌면 이런 이유로 지금 내 필명이 몽원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내가 몰랐던 것이 하나 있었다. 왜 같은 꿈을 꾸었는데 같이 행복하지 않고, 한 사람은 불행했단 말인가? 물론, 이것은 장자가 가리키는 달의 손가락을 보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장자의 이야기 속에도 분명 힌트가 있기는 하다. ‘욕심 많은이라는 형용사가 아마 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단서라면 좋은 단서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굳이, 프로이드나 융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는 우리의 꿈이 얼마나 개인적 욕망으로 가득한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꿈은 다의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희망에 관한 말이기도 하고, 진짜 현실이 아닌 꿈에 관한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어떤 꿈이라도 욕망과 떨어져 별개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이 때문에 아마 이 영화에서도 생식기에 관한 부분이 등장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주인공의 극대화된 욕망에 관해선 별도로 차치하고, 클론인 존재들의 죽음에 대한 욕망을 생각해본다면 왜 이 영화에서 생식기가 중요한지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내 개인적으로는 죽음의 경험 이후 욕망을 다룬 ‘Black Museum'의 첫 번째 에피소드도 꽤나 흥미로웠다. 물론, 여기에 너무나도 과장된 고통이라는 설정이 들어가서, 많은 반론의 소지가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이 또한 죽음에 대한 극대화된 욕망으로 해석한다면 이야기의 구색이 대충 맞추어지지 않을까? 또 그래야만 ‘USS Callister’의 클론들이 부활하는 다소 억지스러운 마지막 장면이 조금은 상쇄되리라 생각해본다. 왜냐하면 진짜 Infinity는 아무 욕망도 존재하지 않는 죽음 그자체이거나, 혹은 죽음에 대한 욕망의 다른 이름이라고 내 개인적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이 영화는 그렇게 마무리되었어야 진짜 나름의 의미와 맥락 있는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설프게 불멸의 희망이란 이름으로 Infinity를 해석하면서 마무리해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P.S

 

  세 작품 모두 무언가의 오마주이네요. 'Hang the DJ'도 다큐멘터리 영화가 실제 존재하고, 'Black Museum'도 실제로 존재하는 범죄 박물관이라고 하네요. 자세한 건 Wikipedia를 검색해보면 나올 겁니다. 하지만 아쉬운 건 읽어도 큰 연관성은 찾을 수 없다는 사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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