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이 지금 습관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이민정 지음 / 투트리즈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아이가 스스로 현명한 판단을 내리고 세상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것, 모든 부모의 공통된 바람일 것입니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아이가 잘못할 때마다 그때그때 뜯어고치고 바꾸는 정비사 같은 부모가 아니라 씨앗이 잘 자라도록 물을 주고 조심스럽게 가지를 쳐주는 성실한 정원사 같은 부모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 믿을 수 없을 만큼 현명하게 잘 자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말로 직접 들어보시죠.

초등학교 4학년 연진이는 평범한 우리 집 4남매의 큰딸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아주 특별한 아이가 된 것 같습니다. 연진이에게는 학기 초부터 자기를 좋아하는 동민이라는 남자 친구가 있었습니다. 2학기부터는 편지도 주고 사탕도 주고, 또 연진이의 부탁도 잘 들어 주었습니다. 그 덕에 연진이는 3기 반장도 쉽게 할 수 있었습니다. 동민이도 연진이와 친구가 되면서 생활 태도가 많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과 함께 동민이네 집으로 초대받아 간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연진이의 3기 반장이 끝나고 연진이와 가장 친한 은영이가 4기 반장이 된 날, 동민이가 "3기 반장보다 4기 반장이 훨~씬 낫다."라며 반 아이들이 모두 있는 데서 큰 소리로 말하고 다녔답니다. 순간 연진이는 당황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눈물이 핑 돌 만큼 화가 났다고 합니다.
'아니, 그동안 이것저것 선물도 주면서 좋다고 하더니 어떻게 이럴 수가. 동민이가 그런 말을 하다니, 행동과 마음은 다르구나. 그것도 은영이가 반장이 된 첫날에…….' 하고 생각하니 배신감도 들더랍니다. 연진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엄마, 그 순간 엄마 얼굴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엄마 말씀이 생각났어요. '그렇지. 잠깐, 일단 멈추자. 그리고 생각하자, 그리고 여러 가지 생각 중에서 선택하자.'하고 저는 생각해 보았어요. 혹시 나도 동민이처럼 불쑥 하고 싶은 말을 함부로 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니 우선 저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한 마디 말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동민이가 왜 은영이가 반장이 된 첫날, 그런 말을 했을까. 어쩌면 동민이가 반장이 된 은영이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주려고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자 동민이를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어요.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까 화가 나는 마음이 사라지더라고요. 그리고 또 생각했어요"

"내가 만일 동민이라면 그렇게 말하지 말아야지. '4기 반장도 3기 반장이랑 똑같이 잘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해. 4기 반장 파이팅!'이라고 해야지. 그러면 3기 반장도 4기 반장도 서로 기분 나쁘지 않을 것이고 다른 아이들도 동민이가 연진이를 좋아하다가 반장이 바뀌니까 은영이를 좋아하는구나 하는 의심도 받지 않을 테니까요. 엄마, 이렇게 하는 것이 주도적인가요? 그리고 '승-승'을 생각하는 습관인가요?"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이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인가 아니면 작은 어른인가 하고요. 저는 '성공하는 부모들의 7가지 습관'에서 배운 것을 네 아이들에게 대충 얘기해 주었습니다. 물론 그 중에서도 주도적인 습관과 아이들이 다툴 때를 상상하면서 '승-승'을 생각하라는 네 번째 습관을 더 많이 얘기해 주었지만 이렇게 깊이 이해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제   목 : 우리 아이 지금 습관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지은이 : 이민정
   펴낸곳 : 투트리즈 / 2006.5.10 초판 발행, 2007.4.26 발행한 2쇄를 읽음  ₩9,800

《우리 아이 지금 습관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에 나오는 연진이 어머니의 말씀입니다. 아이가 있는 부모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아이 지금 습관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에는 <성공하는 부모들의 7가지 습관> 교육을 받고 실천하는 부모들의 이야기와 <성공하는 교사들의 7가지 습관> 교육을 받고 실천하는 교사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글쓴이는 이민정, 《이 시대를 사는 따뜻한 부모들의 이야기》를 쓰신 분입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퍼실러테이터(도움을 주는 사람)이기도 했던 이민정님은 2006년부터 한국리더십센터 산하 한국교육자리더십센터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가 지도했던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부모와 교사, 때로는 아이들이 현실에서 어떻게 변하고 또 현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실제 사례를 담은 것입니다.

7가지 습관은 이렇습니다.

습관1. 자신의 삶을 주도한다.
습관2. 끝을 생각하며 시작한다.
습관3. 소중한 것을 먼저 한다.
습관4. 승-승(win-win)을 생각한다.
습관5. 먼저 이해한 다음에 이해시킨다.
습관6. 시너지를 낸다.
습관7. 끊이없이 쇄신한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책을 읽어보셨거나, 아니면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교육을 받아보신 분들에게는 익숙하겠지만, 처음 보시는 분들께는 별 느낌이 없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야말로 현존하는 최고의 자기개발서라고 생각합니다.

이 습관 중 중요한 것은 단연 1번입니다. 모두가 중요한 습관이지만 습관1이 없이는 아무 것도 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삶을 주도하라는 말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실천하기는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위에서 초등 4학년 연진이는 이 습관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머릿속에 '멈춤' 버튼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반응을 할 때 우선 '멈춤' 버튼을 눌러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하려는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를 생각하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행동들을 생각해 봅니다. 그 중에서 스스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주도적인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되는 방식이 '반사적인 삶'입니다. 대개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반사적으로 화를 낼 때가 많은데, 바로 이러한 충동적인 행동이 곧 반사적인 행동입니다. 자신의 삶을 주도하지 못하고 자극에 그대로 반응하여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고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바꾸기 쉽지 않으니 '습관'이라고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습관이란 우리가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 즉 한 번 두 번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익숙해져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행동입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습관을 만들어 가지만, 나중에는 습관이 사람을 만듭니다. 그래서 습관이란 참 무서운 것입니다. 습관에 따라서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으며, 성공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나 뿐만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중요한 습관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고 정리 정돈을 잘하는 습관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정말 중요한 습관은 자신이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주저앉거나 피하지 않고 직접 문제를 긍정적으로 풀어 가는, 문제 해결 능력의 습관인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그러한 습관을 물려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가장 현명한 판단을 내리고 선택할 수 있도록 시간과 여유를 주고, 아이들이 결정할 때까지 기다리는 부모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기다림의 지혜를 배우고 익히는 부모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우리 아이 지금 습관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지금 읽어 보세요.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리뷰 보기)
- 이 시대를 사는 따뜻한 부모들의 이야기 1 (리뷰 보기)
- 이 시대를 사는 따뜻한 부모들의 이야기 2 (리뷰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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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나라 신하의 나라 인물로 읽는 한국사 (김영사) 1
이이화 지음 / 김영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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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사기》가 오늘날까지 즐겨 읽히는 까닭은 열전(列傳)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기》는 곧 <사기열전>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2,100년 전에 지어진 책이지만 열전에는 생동생동한 삶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열전이 없었다면, 물론 그래도 사료적 가치가 충분히 있어 역사학자들에게 참고서는 될 수 있었을지언정 이렇듯 비전공자들에게까지 널리 읽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역사는 곧 '사람'의 역사입니다. 역사에서 사람이 빠지면 건조하여 목이 마릅니다. 이이화 선생이 작년에 써낸 《역사》는 그 충분한 가치에도 불구하고 무미건조하여 읽기 어려웠다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전 역사를 한 권에 담았으니, 비록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의 기록을 위한 방편일 뿐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모든 책이 그러하지만, 역사책은 모든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길면 지루하다 하고, 짧으면 내용이 없다 할 것이고, 사건 중심으로 쓰면 사람 향기가 나지 않는다하고, 사람을 중심에 두면 계통이 없다고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여러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지식은 종횡으로 엮어야 제대로 서는 것 같습니다. 역사를 예로 들면, 상고사에서 현대사까지 그 흐름도 알아야 하고, 각 시대의 미시사도 깊이 있게 봐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를 어느 정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책을 재미있게 보고는 있지만, 저는 아직 이론이나 틀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아 볼 때마다 새롭습니다.

이번에 나온 이이화 선생의 <인물로 읽는 한국사> 시리즈는 저의 역사 지식을 종횡으로 엮기 위한 소중한 책이 될 것 같습니다. <사기열전>을 읽고 동아시아 고대 역사에 대해 관심이 일어 나름의 지식을 조금 가질 수 있었듯이, 이 책으로 인해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이 더 크게 일어 지식의 폭이 더 넓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목 : 왕의 나라 신하의 나라
   지은이 : 이이화
   펴낸곳 : 김영사 / 2008.1.18 초판 발행, 초판 1쇄를 읽음 (12,000원)

<인물로 읽는 한국사> 시리즈의 첫권이 《왕의 나라 신하의 나라》입니다. 머리말을 보면, 선생이 지금까지 역사서를 쓰면서 모은 약전(略傳) 형식의 역사인물 전기가 260여 명에 달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32명의 약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약전은 소전(小傳)이라고도 하는데, 줄여서 간단하게 쓴 전기를 일컫습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32명의 인물에 대해 비교적 짧게 다루고 있습니다. 곶감 빼먹듯이 가볍게 읽을 수 있습니다.

짧은 분량이다 보니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인물들의 이야기는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아는 바가 적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매우 신선합니다. 제게는 철종, 김방경, 이목, 유운룡, 강홍립, 이덕형, 김육, 양득중, 원경하 등의 이야기가 그러했습니다.

헌종이 젊은 나이에 후사 없이 죽자 세도를 부리던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는 난리가 났습니다. 이때 안동 김씨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입지를 만들기 위해 강화도에서 땔나무를 하며 푸성귀로 연명하던 원범을 철종에 앉힙니다. 철종은 헌종의 7촌 아저씨뻘 됩니다. 그러니 종묘에서 조카뻘 되는 헌종에게 절을 하는 이상한 꼴이 연출된 것입니다. 왕가의 법도도 세도를 위해 깡그리 무시한 것입니다. 무식꾼인 철종이 궁중에서 온갖 법도를 배웠으나 그가 정사를 제대로 알 턱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14년 간이나 재위했으니. 결국 그는 왕비조차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모든 정사에 싫증을 느끼고 여색에만 깊이 빠져 요절하게 됩니다. 허수아비로 14년을 재위한 셈입니다. 철종의 등장은 곧 조선왕조를 비추는 해가 석양으로 기울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몽골에 맞서 처절한 투쟁을 벌였던 고난의 시대의 주역 김방경. 대몽항쟁의 상징인 삼별초를 토벌하였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언제나 고려 왕조를 지키고자하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무신이면서도 절대 무신정권에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항몽(抗蒙)과 부몽(附蒙) 사이에서 번민과 눈물을 가슴속에 묻어두고 고려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썼던 그를, 이이화 선생은 새롭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했던 한재 이목. 당시 김일손은 곧은 붓끝으로 권력을 쥐고 횡포를 부리던 이극돈의 비행을 사서에 낱낱이 기록하자, 이극돈이 연산군을 꼬드겨 무오사화를 일으켰습니다. 변방의 한직을 맡고 있던 이목은 김일손 등과 한 패거리라는 이유만으로 죽음을 당했씁니다. 겨우 스물여덟의 나이에.

유운룡은 명재상 유성룡의 형입니다. 당시에 이미 부기장부를 만든 행정의 달인이며 명리를 떠나 민중을 위해 봉공하였습니다. 강홍립은 광해군 시절 명과 청 사이에서 실리외교로 전쟁을 조율하며, 청에서 8년간 억류생활을 하다가 고국에 돌아왔으나, 인조반정 이후 3개월만에 죽고 맙니다.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한음 이덕형은 원만한 성품으로 임진왜란을 지휘했으며, 김육은 공물의 폐단을 바로잡는 등 민중의 고통을 풀어주기 위해 생애를 바쳤던 인물입니다. 이러한 인물을 역사속에서 찾기가 흔치 않다고 이이화 선생은 평합니다. 양득중은 송시열 등 노론이 주장하는 북벌론의 허구성을 정면 비판하였고, 원경하는 노론이면서도 노론의 일방적인 독주를 반대하여 대탕평을 주창하였습니다. 양득중과 원경하는 영조의 든든한 조력자였습니다.

새벽에 이 글을 쓰다보니 출근 시간에 쫓기어 늘 마무리가 엉성합니다. 널리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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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 - 백과사전을 통째로 집어삼킨 남자의 가공할만한 지식탐험
A.J.제이콥스 지음, 표정훈,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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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니홍조(雪泥鴻爪)라는 말이 있습니다. 눈이나 진흙 위의 기러기 발자국이 시간이 지나면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눈이 녹으면 그 위의 발자국은 흔적이 없지요. 옛 지식이 이러하지 않나 싶습니다.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에 의하면 우리의 기억은 48시간만 지나도 처음의 반의 반도 남지 않습니다. 하물며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책과 담을 쌓으며 시시껄렁한 지식만 주워 듣는다면 우리의 머리는 심한 소갈(消渴) 증상을 보일 것입니다.

한때는 똑똑했으나 학교를 졸업하고 천천히 바보의 길을 밟아가다 나이 서른다섯에 이르러 황당할 정도로 멍청해진 사내가 있었습니다. 한때는 마르크스주의의 원리에 대해 열정적으로 토론을 하고, 여행짐을 꾸릴 때도 D.H. 로렌스의 소설을 챙겼었는데, 대중연예 잡지 기자가 되고부터 시시껄렁한 지식으로 두개골을 채웠습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그룹의 멤버 이름, 어느 스타가 부분 가발을 썼는지, 누가 가슴 수술을 했는지 따위의 한심한 지식만, 그것도 조각조각 널려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심합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다 읽어버리자! 세상의 모든 지식을 집중 학습하여, 비록 극심한 전문화의 시대이기는 하지만, 종합적인 지식을 완벽하게 갖춘 아메리카 대륙 최후의 제너럴리스트가 되어보자!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남자가 되어보자!


   제   목 : 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
   지은이 : A.J. 제이콥스 / 표정훈, 김명남 옮김
   펴낸곳 : 김영사 / 2007.12.21 초판 발행, 초판 1쇄를 읽음 (25,000원)

이 황당한 목표를 세우고, 마침내 1년 만에 그 목표를 달성한 희한한 사나이가 《브래태니커 백과사전》을 완독한 기념으로 책을 냈습니다. 9,500명의 저자가 쓴, 33,000쪽, 65,000개의 항목, 24,000개의 그림과 자그마치 44,000,000개의 단어로 가득찬 《브래태니커 백과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고 합니다.

설명만 들으면 황당합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에선 슬그머니 호기심도 일어납니다. 백과사전을 통째로 집어삼킨 것도 모자라 그것을 책으로 쓰다니, 도대체 어떤 내용일까, 감이 잡히지 않을 겁니다. 이 책의 성격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이렇게 설명하면 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이 책은 A.J.제이콥스가 쓴 '브리태니커 독서유감'입니다.

저의 <독서유감>이 책 읽은 것을 빙자하여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하듯이, 《한 권으로 읽는 브리태니커》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각 항목을 핑계삼아 일기 쓰듯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백과사전의 65,000개 항목을 모두 쓰기는 감당이 안 되었던지, 이 책에는 고작(?) 397개만 담겨 있습니다(제가 직접 세어 본 거라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점이 이 책을 결정적으로 재미있게 만듭니다. 백과사전을 통째로 요약해놓았다면 도대체 무슨 재미로 이 책을 읽겠습니까?

저자는 익살끼가 넘쳐납니다. 660쪽이나 되는,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의 글인데도 시종일관 재미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올리는 인기 블로거의 1년치 블로그를 한번에 읽는 느낌입니다. 그래서인지 백과사전의 각 항목을 따라가며 읽었지만 책을 덮고 나서 남은 지식은 별로 없고, 오히려 저자 부부의 가정사만 기억에 남습니다. 저자 못지 않게 만만찮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꽤 많이 나옵니다. 실은 저자가 고1이었을 때 아버지가 먼저 백과사전을 모두 읽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못다한 꿈을 이루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선언하는 모양이 우습니다. 저자 부부가 사력을 다해(!) 임신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는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자그마치 17개 항목(이것도 제가 직접 세어본 거라 틀릴 수 있음)에서 그들의 임신을 위한 노력과 실망, 그리고 마침네 임신에 이르기까지의 소회를 담고 있습니다.

  • 아기를 갖기 위해 노력 중인 우리 부부는 가벼운 사태라도 임신에 방해가 되는 것이라면 피해야 한다. 사실 우리는 필사적이 되어가고 있다. 줄리의 친구들은 15만 개의 알을 낳는 암컷 낙지처럼 아이를 쑴풍쑴풍 잘도 낳고 있다. 그 놀라운 생산력이라니! 현관에서 남편과 스치기만 해도 임신이 되는 것 같다. (중략) 우리는 줄리의 배란 주기를 나스닥 단타 투자자들처럼 치밀하게 체크하며 따른다. (중략) 나는 아빠가 되고 싶어 죽겠다. (산아제한 birth control 설명 중)
  • 하지만 내 기분이 진짜 처진 이유는 얼마 전에 또 줄리가 임신 음성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감정 emotion 설명 중)
  • 줄리의 친구 하나가 임신했다. 그 친구의 생식 세포는 이제 배수 염색체들을 갖춘 접합자가 된 것이다. 줄리의 친구들은 왜 하나같이 생식력이 놀랍도록 뛰어나지? 줄리와 나는 서글픈 기분에 휩싸였다. (배우자 gamete 설명 중)
  • 줄리는 임신하지 않았다. 나의 시애틀 여행은 실패였다. (중략) 죽고 싶다. (노새 mule 설명 중)
  • 줄리와 나는 아직 생기지 않은 우리 아이의 이름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이름 names 설명 중)
그러다가 드디어 하늘도 감동하여 임신을 하게 됩니다.

  • 통화를 하던 줄리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임신이다! 나의 씨앗이 드디어 제자리를 잡고 세포 분열을 시작한 것이다. 줄리가 만일 햄스터라면 지금 당장 출산했을 것이다. 세포 분열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말이다. 정말 위대한 날이다. 만세! (퀴들리벳 quodlibet 설명 중)
Q 항목 507쪽입니다. 처음 임신에 대한 시도가 나오는 곳이 B 항목 61쪽이었습니다다. 책을 읽고 있는 저도 한심합니다. 백과사전을 읽으면서 기껏 이런 남의 가정사만 줄기차게 들여다 본 꼴이 되었습니다. 이 외에는 별로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아, 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이름을 올리는 방법! 혹시 아시나요?

1. 참수당한다. (브리태니커는 목이 뎅겅 날아간 사람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다.)
2. 북극을 탐험한다. (불운으로 끝나는 원정이라면 더욱 좋다.)
3. 노벨상을 탄다. (분야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타기만 하면 된다.)
4. 거세를 한다. (남자 전용)
5. 군주의 애인이 된다. (여자 전용. 남자보다 고통이 없다.)

쩝, 이렇게 써놓고 보니 역시 또 한심합니다. 660쪽이나 되는 책을 읽고서 이런 것밖에 기억나지 않다니...

그러나 사실 얻은 게 많습니다. 지식보다 더 값진 것을 얻었습니다. 지식을 얻겠다고 백과사전을 통째로 읽겠다는 발상이 다소 억지스럽고, 또 백과사전을 읽어봐야 지식쪼가리나 늘 뿐이지 지혜가 생기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부정적으로 보던 생각은 초반에 사라졌습니다. 지식을 종횡으로 엮어 아메리카 대륙 최후의 제너럴리스트가 되겠다는 황당한 목표, 그것을 이루기 위해 1년 넘게 쉼없이 노력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중간중간 격려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마침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마지막 항목 '지비에츠 Zywiec'에 이르렀을 때 진심으로 맘 속에서 우러나는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는 지식 여행 과정을 시종일관 유쾌하게 엮어 보는 이로 하여금 즐거운 경험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學而時習之 不亦悅乎! 지식이 아니라 유쾌한 그의 삶에 어느덧 감화되었습니다.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솟아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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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바다 2008-01-30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십니다. ^^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
틱낫한 지음, 류시화 옮김 / 김영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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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금 이 순간 한없이 평화롭습니다. 기뻐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이 상태를 평화롭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제 출근길 버스 안에서 책을 읽다가 책 뒷장에 메모해 둔 내용입니다. 틱낫한 스님의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라는 책입니다.

요즘 유독 읽다가 만 책이 많았습니다. 오며 가며 읽으려고 가방 안에 책 두 세 권 넣어 다니는데, 요즘처럼 어느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기 힘든 적도 드뭅니다. 그렇다고 굳이 어느 한 책을 끝까지 억지로라도 읽으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럴수록 내키는 대로 읽습니다. 심지어 딸이 보는 만화책도 가끔 봅니다.



책을 통해 지식을 얻기도 하지만 정신의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책을 읽어 때로는 열정이 솟구치기도 하기도 하고, 때론 한없이 마음이 평화로워지기도 합니다. 책마다 그 쓰임이 다릅니다. 그래서 어느 책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읽다보면 얻는 게 있습니다. 최근에는 머릿속이 복잡하여 또 다른 지식이 비집고 들어올 여유가 없었나 봅니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 틱낫한 스님의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를 발견했습니다. 읽는 동안 정말 제목처럼 되었습니다. 마음은 평화가 찾아온 것이 확실한데, 얼굴은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목 :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
   지은이 : 틱낫한 / 류시화 옮김
   펴낸곳 : 김영사 / 2002.5.30 초판 발행, 2005.7.20일刊 1판 50쇄를 읽음 (9,500원)

틱낫한 스님의 책을 읽어보신 분이라면 이 책이 그리 새로울 것은 없습니다. 저도 틱낫한 스님의 책을 많이 보지는 못했습니다. <화>와 <틱낫한 스님이 읽어주는 법화경> 정도 읽어본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도 이 책은 <화>에서 스님이 말씀하신 내용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걷기 명상과 숨쉬기,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밭'에 비유한 것 등. 그 근본 가르침은 다르지 않습니다. 이 책은 틱낫한 스님의 대표적인 책 20여 권 중에서 핵심적인 가르침을 골라 류시화 시인이 엮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느낌이 궁금하여 먼저 읽은 분들의 서평을 보니 저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지겨워 죽는 줄 알았다는 독자도 있었습니다. 그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 보기에 따라 이 책은 비슷한 이야기의 반복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깨달음은 단 한 줄의 글귀에서 얻어질 수 있겠지만, 그것은 그 깨달음의 마음을 열기까지의 보이지 않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불교에서 하는 모든 이야기가 매 한가지입니다. 그러나 이리도 이야기하고 저리도 이야기하는 것은 그 깨달음의 과정이 직선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책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읽힙니다. 혹시 지루하게 읽었던 독자라도 훗날 또 어떤 상황에서 짜릿한 감동과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주 많은 분들이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좋은 말씀들을 남겼습니다. 이미 수천 년 전부터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평화를 바랍니다. 갈구합니다. 그럼에도 마음의 평화를 찾아 누리고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쉽지가 않습니다. 그럴수록 이러한 책을 곁에 두고 있다가 가끔 펼쳐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 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이런 책이 곁에 있으면, 그 빈자리에 마음의 평화가 찾아올 수 있도록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아침, 혹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책에 나오는 몇 구절만 옮겨 적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마음의 평화를 얻게 할 것입니다. 또 어떤 이에게는 그저 그런 이야기로 들릴 수 있습니다만 읽어서 손해될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저 마음을 비우고 가볍게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것은 하나의 기적이다. 기적은 물 위를 걷는 것이 아니다. 기적은 지금 이 순간 푸른 대지 위를 걷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평화와 아름다움과 만나는 일이다.

    평화는 우리 주위 모든 곳에 있다. 그 평화와 만나는 순간 우리는 치유되고 탈바꿈된다. 그것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수행의 문제다.

    나는 택시를 탔었다. 그런데 그 택시 운전사는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 있지 않았다. 그에게는 마음의 평화와 미소가 없었다. 운전을 하는 동안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서둘러 무엇인가를 하지만, 우리가 하고 있는 일과 하나가 되어 있지 않다. 우리의 마음은 평화롭지 않다. 몸은 이곳에 있지만, 마음은 다른 어느 곳인가에 가 있다. 과거나 미래에 가 있고, 분노와 좌절감, 희망과 꿈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는 단지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일들만을 느낀다. 그래서 걱정과 분노로, 또는 먹고 마시는 것들로 심장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평화와 기쁨을 방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어느 곳에 도착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무덤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왜 서둘러 그곳으로 가려고 하는가? 왜 지금 이순간의 삶 속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는가?

    명상을 하는 것은 사물의 본래 모습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다.

    마음의 평정을 잃는다면, 그대는 말하지 말아야 한다. 단지 호흡을 하며 그 호흡을 주시하라.

    인도 철학자 나가르주나는 이미 존재하는 것은 태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태어난다는 것은 무에서 어떤 것이 생겨난다는 의미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에서는 어떤 것도 태어날 수 없다. 명상은 우리에게 모든 것은 태어나는 것이 아님을 일깨워 준다. 삶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하나의 연속이다.

    사물을 전체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더욱 지혜로워지고 한결 기분이 좋아진다. 그때 우리는 조그맣고 사소한 일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차 한 잔을 마실 때, 그대는 현재의 순간을 만나고 시간 전체와 만나게 된다.
    명상은 삶의 매 순간을 깊이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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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 아이들은 대학에만 가면 바보가 될까? - 두 아이 외고 보낸 조기숙교수가 참다 못해 제안하는 입시지옥탈출 솔루션
조기숙 지음 / 지식공작소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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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자춘추(晏子春秋)>에 남귤북지(南橘北枳)라는 말이 나옵니다. 회수의 남쪽에 있는 귤나무를 회수의 북쪽에 옮겨 심으면 탱자나무로 변한다는 뜻입니다. 귤화위지(橘化爲枳)도 같은 말입니다. 물론 생물학적으로 귤나무가 탱자나무가 될 수는 없습니다. 기후와 풍토가 다르면 똑같은 것이라도 그 성질이 달라지는 것처럼 인간도 주위의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생각과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이 말이 꼭 어울리는 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학 입시입니다. 미국의 SAT가 한국에 오면 과외를 동반한 수능이 되고,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나 독일의 아비투어도 역시 한국에 오면 과외를 동반한 논술고사가 됩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우리나라에만 들어오면 사교육비 상승을 부추기는 괴현상이 벌어집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제   목 : 왜 우리 아이들은 대학에만 가면 바보가 될까?
   지은이 : 조기숙
   펴낸곳 : 지식공작소 / 2007.11.30 초판 발행, 초판 1쇄를 읽음 (12,000원)

<왜 우리 아이들은 대학에만 가면 바보가 될까?>의 저자 조기숙 교수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바로 학벌주의 때문이라고. 학벌주의가 하루 아침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대학의 학벌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그 어떤 제도를 들여와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굳건히 지키려는 서울대를 포함한 소위 명문대들의 책임 방기, 책임 떠넘기기가 극에 달한 이 현실을 개탄합니다.

"10여 년 교육 평준화 정책 탓, 국가경쟁력 중·인도보다 낮아"

2007.8.28 <중앙일보> 1면 머릿기사 제목입니다. 뭐, 이뿐이 아닙니다. 다수의 언론에서 우리 교육문제의 원인을 평준화와 3불 정책에 두고 있습니다. 평준화가 하향 평준화를 가져왔으며, 수월성 교육을 가로막아 국가경쟁력이 하락했다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그 해결책은 평등주의의 폐지로 요약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평준화 폐지, 3불 정책 폐지, 자율(=입시 부활)과 경쟁의 촉구 등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제가 인터넷으로 검색해봤습니다.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07년 세계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2006년에 비해 12단계나 상승한 11위로 나타났습니다(링크). 유래 없이 급상승했습니다. 작년 12월 조선일보를 보면 WEF나 IMD(스위스국제경영개발원)에서 실시하는 국가경쟁력 평가가 어떠한 기준으로 평가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국가의 발전 단계에 따라 평가기준이 달라집니다. 국가의 발전 단계는 1인당 국민소득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1만7000달러를 초과하는 제3단계 국가로 승격되면서 올해 순위가 급등하게 되었습니다. 3단계에서는 기업혁신과 성숙도 순위가 큰 역할을 하는데 이 부분의 점수가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국가경쟁력은 중등교육과 별 연관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중고등 학생의 학력이 그렇게 형편 없을까요? 이것도 직접 인터넷으로 검색해봤습니다. 학업성취도를 나타내는 지표는 '국제학업성취도 평가(PISA)'가 가장 객관적일 것 같습니다. OECD 학업성취도 비교평가인 PISA 결과, 2006년 기준으로, 읽기 능력은 OECD 국가 중 1위, 수학은 1~2위, 과학은 5~9위로 나왔습니다(링크). OECD 회원국 중에서도 아주 높은 수치입니다. 단, 과학에서만큼은 2003년보다 하락한 수치가 나왔는데 여기에는 정밀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과학 수치만 가지고 우리나라 학업능력이 떨어진다고 분석한 신문이 있네요(링크). 좀 어이가 없습니다. SBS에서 2005년 9월 15일에 방영한 <미래한국 리포트> "한국의 마지막 선택, 교육" 편에서도 우리나라 학생의 학업능력은 상향 평준화되었다고 결론지었습니다(링크).

이것으로 평준화와 중등학업능력 저하와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통계 수치는 오히려 그 반대였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대학의 경쟁력입니다. 가끔 대학에서 말하는 것을 보면 우수한 학생을 확보하지 못해서 경쟁력에 뒤처진다고 합니다. 그 말이 근거가 없음은 위의 통계를 보셔셔 아셨을 것입니다. 사실 대학경쟁력과 가장 관계가 깊은 변수는 교수의 연구업적입니다. 그 중에서도 교수의 노벨상 혹은 주요 수상 경력이 가장 큰 변수입니다. 학교의 재정투자, 교수 대 학생 비율, 시설, 장학금 지급 등이 주요한 지표입니다. 학생과 관련된 유일한 지표라면 졸업생의 사회 진출과 노벨상 수상 경력 정도입니다. 입학 시 성적이 아니라 졸업생의 사회진출 현황만이 대학경쟁력에 반영됩니다. 그런데도 대학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 고등학교 때 제대로 못배웠기 때문이라고요?

3불 정책에 대해 저는 할 말이 참 많습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3불 정책이야말로 교육 선진국의 정책과 흡사합니다. 중국과 일본을 제외하고 대학의 본고사는 없습니다. PISA에서 늘상 1위를 차지하는 핀란드는 어떠한 언론에서도 극찬하여 본받고 싶어하는 나라입니다. 역시 본고사도 없고, 심지어 고등학생들의 경쟁도 규제합니다. 한 모둠에 속한 학생들은 전체가 진도를 이해해야 다음 진도로 나갑니다. 앞서 나가는 학생은 뒤처지는 학생을 가르치고 도움으로써 함께 나가도록 합니다. 우리 현실에서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 그림입니다. 과거 서울대의 국제경쟁력이 형편 없이 낮았던 이유는 서울대가 국립대라는 특수 지위를 이용해 우수한 학생들을 독점했기 때문입니다. 잘 가르치지 않아도 사회 최고의 엘리트 자리를 차지하니 우수한 졸업생 배출을 위해 경쟁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가장 치열한 경쟁은 경쟁자들의 초기 조건이 비슷할 때 생깁니다. 성적에 따라 대학을 한 줄로 세우면 경쟁은 해보나 마나입니다.

학생의 평가는 가르친 사람이 해야 합니다. 고등학생은 고등학교 교사가 평가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공교육의 부활을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고등학교 교사는 자칫 밥그릇 싸움이나 지나친 이기주의처럼 비치는 투쟁방식에서 벗어나 제일 먼저 학생 평가권을 대학에서 돌려받아야 합니다. 가르친 사람이 평가하고, 대학은 그 평가를 신뢰해야 합니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길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대학도 경쟁하고 제대로 가르쳐서, 입학성적순이 아니라 우수한 학생의 배출을 통해 평가받게 될 것입니다. 대학도 살리고 중고등 공교육을 살리고 사교육의 부담을 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미국의 제도에 대해 우리는 참 많이 모르고 있습니다. SAT를 모델로 하여 수능이라는 껍데기만 들여왔지 그 철학은 놔두고 왔습니다. 그러니 귤이 탱자가 될 수밖에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파인만은 15세에 혼자 미적분을 터득한 천재입니다만 컬럼비아 대학에 지원했다가 떨어졌습니다. 그가 사는 뉴욕은 유대인이 많이 사는 곳이었고, 유대인 중 우수한 학생이 많아 떨어졌습니다. 물론 성적순으로 했으면 붙었겠지만, 지역 할당, 소외 계층 할당 등의 할당제로 인해 그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습니다. 역차별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곳이 또한 미국입니다. 그러한 교육의 공공성 개념을 떼놓고 SAT의 껍데기만 우리나라에 가져왔으니, 그것이 우리의 학벌주의와 결합해 기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말을 하자니 끝이 없습니다. 교육에 관해 이 땅의 모든 학부모는 할 말이 많습니다. 너무 많아 속이 터질 것 같습니다. 저 역시 한 아이를 둔 학부모로서 현재의 대한민국 교육 체제에 아이를 맡기기가 참 고민됩니다. 지금까지 해결방법은 두 가지 뿐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살아남느냐, 아니면 외국으로 떠나느냐. 이것이 전부입니다. 우리 손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자는 생각은 참 무모해 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 3의 대안을 시도하는 조기숙 교수의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왜 우리 아이들은 대학에만 가면 바보가 될까?>에서 조기숙 교수는, 김영삼 정부 시절의 5.31 교육개혁안을 설명하고 이를 방해하는 장애물을 분석합니다. 수월성 교육으로 영재를 키우자, 평준화를 깨야 수월성 교육이 가능하다, 공교육이 무너져서 사교육에 의지한다는 등 일반적인 오해와 그 이면의 진실을 밝힙니다. 우리가 모델로 삼고 있는 미국 교육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제3의 대안을 찾기를 시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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