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vs 남자 - 정혜신의 심리평전 1
정혜신 지음 / 개마고원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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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달포 전에 《사람 vs 사람》을 읽고 이 책 - 《남자 vs 남자》을 꼭 봐야겠다고 생각하여 바로 샀었습니다. 여러 이유로 책읽기를 미루다가 이제서야 읽었습니다.

《사람 vs 사람》을 읽으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책 내용보다도 '이러한' 책을 쓴 저자에 대한 호기심이 더 크게 일었습니다. '이러하다'는 것은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 그리고 문장력이 어우러져 힘을 발휘하는,이라는 뜻입니다. 예전에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권오길 교수의 《인체기행》을 읽을 때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글을 제 글쓰기의 전범典範으로 삼고 싶습니다만 언제 이러한 글을 흉내나 낼 수 있을지 요원할 뿐입니다.

일전에 읽은 《젊은 날의 깨달음》에 정혜신이 쓴 <정신과, 내 인식의 베이스캠프>라는 글이 있습니다. 정말로 어렵게 정신과 전공의가 된 그녀는 전공의 생활 1년 만에 스스로 타인을 통해 정신분석 치료를 받기로 결정합니다. 일주일에 2회, 1회에 50분씩, 그 과정을 2년 동안 계속합니다. 그녀는 "내가 정신과 의사로서 혹시라도 약간의 유능한 구석이 있었다면 그것은 '내가 바닥까지 환자가 되어보았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정신과 의사가 또 다른 정신과 의사 앞에서 적개심과 질투의 감정을 느끼고, 이유없이 넋놓고 울며 격렬한 감정의 홍역을 치뤄야했던 그 기간을 거치며 정신과 의사로 거듭났다는 것입니다. 그 글을 모두 읽고 정신과에 대한 그녀의 병적인 몰입과 직업 철학에 대한 진실성에 감복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글에 더욱 신뢰가 갑니다.

이 책에는 11쌍 21명의 남자가 등장합니다. 11쌍 22인이 아니라 21인 것은, 이회창 1인을 '칼'의 이회창과 '저울'의 이회창으로 대비하여 실었기 때문입니다. 김영삼 對 김어준, 이건희 對 조영남, 장세동 對 전유성, 이수성 對 강준만, 박종웅 對 유시민, 김윤환 對 김윤식, 봉두완 對 이외수, 정형근 對 마광수, 김우중 對 정동영, 김종필 對 앙드레김, 그리고 이회창 對 이회창.

한 마디로 흥미진진합니다. 순전히 느낌만 거칠게 말하자면 '뒷담화'할 때의 그 쾌감과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뒷담화'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특정 인물에 대한 평전을 쓸 때 적어도 그가 쓴 책이나 논문, 관련자료 등은 다 섭렵하고서야 작업을 하는 저자의 글쓰기 스타일은 굳이 저자의 입을 빌리지 않고서도 책 내용만으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저자가 분석한 내용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능력은 제게 없습니다. 저자의 글에서 은연중에 드러나는 호불호好不好의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저자의 말마따나 어떤 방식이든 사람을 평가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느꼈는지 모르겠으나, 저는 단순한 재미를 넘어 그들에 대한 분석의 틀을 나에게 적용시켜가며, 그들을 통해 나의 모습을 조금씩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어느 순간 저자가 분석한 그 사람의 모습에서 띄엄띄엄 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정말 나의 모습인지, 아니면 나의 콤플렉스인지, 나의 바람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참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녀의 분석이 옳은지 그른지, 편파적인지 공평무사한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해 보입니다. 이미 말했듯이 사람을 평가한다는 건 너무나 어렵고 거기에 정답은 없으니까요. 오히려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성공한 남자들의 삶을 현미경을 통해 살펴보면서 그들의 삶이 평범한 이 시대의 많은 남자들, 바로 당신의 삶과 질적인 차이가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나가는 과정으로써 이 책을 읽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을 읽으며 저 자신을 투영했던 몇 부분을 옮겨보겠습니다.

(이건희는) 자신을 기리켜 '삼성 안에서 국회의원에 나와도 떨어질' 정도로 사람 이름을 못 외는 데 천재적이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그의 정신적인 에너지가 자기의 안으로만 집중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사변적이고 강박적이며 상상이나 공상의 세상을 즐기는 사람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다.(p.50)
→ 사변思辨적이고 강박적이라는 말에 공감하고 반성하며 읽었습니다.

장세동에 열광하고 호감을 가지는 건 그가 남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배신에 대한 잠재적 불안감을 해소시켜주는 인물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p.86)
→ 그냥 공감이 가서 옮겨봤습니다.

(전유성이 아이디어를 지인들에게 알려주는 것을 예로 들며) 그의 '결과 나눠주기'는 그가 자신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자신은 주연보다는 조연에 더 어울리고 기타로 쳐도 퍼스트 기타가 아닌 베이스 기타이므로, 주연하려 들다가는 조연도 못하고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자신의 운명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전유성이 지금까지 연예계의 막후 실세로, 대부로 의도하지 않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유는 순전히 자기를 아는 힘 때문일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p.96)
→ '나'는 어떤 유형인가를 고민하며 읽었습니다.

이수성은 불안에 대한 수용력이 취약하여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긴장 상태나 갈등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인다.(p.114)
→ 물론 상황이 좀 다르기는 하지만, 극적인 드라마 한 편 제대로 보지 못하고 아슬아슬한 순간을 건너 뛰고 봐야하는 나의 모습을 표현한 것 같았습니다.

(유시민의 말을 인용하며) "한 점의 오류도 없는 사상이나 단 한 톨의 진실도 담지 않은 사상은 없다. 사상의 자유가 필요한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새로운 사상 치고 처음에 '불온'하지 않았던 것은 없다. 세상을 보는 눈 가운데 어느 것이 옳은지는 상이한 여러 사상 사이의 대립과 경쟁을 거쳐야 알 수 있다. 어떤 사상이 잘못된 것인지 아닌지를 선험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p.159)
→ 너무나 지당한 말이라 옮겨봤습니다.

그는 마치 강물처럼 흐른다. 날마다 읽고 쓰는, 얼핏 변함없는 삶인 듯 보여도, 내면에선 아주 미약한 물결조차 제 출렁임을 잃는 법이 없고, 변화의 흐름 위로 노를 저어가진 않지만, 스스로 조금씩 흘러, 바지런 떨던 변화의 헐떡임이 오히려 낯을 붉힌다. 그는 마치 흘러도 흐르지 않는 강물이다.(p.188)
→ 문학평론가인 김윤식 서울대 교수에 대한 평입니다. 하루에 적어도 10시간 이상 공부하고, 1년에 평균 3.7권씩 책을 내며, 30여 년 동안 1백권이 넘는 책을 쓴, 한국문학 100여 년 역사 초유의 기록을 가진 노교수에 대한 예찬성 분석입니다.
이 글을 옮긴 건, 제 현재의 모습이 이러해서가 아니라, '흘러도 흐르지 않는 강물'처럼, 변화의 헐떡임이 오히려 낯을 붉힐만큼 꾸준히 나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매진하며 살고 싶은 '바람'때문입니다.

'한 소리'를 얻기 위해 용맹 정진하는 구도자의 모습을 보며 제3자의 입장에서 재능이 있네 없네를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이외수를 향해서 들이대는 재능이란 잣대는 그런 것이다. 그에게 '타고난 작가'란 칭송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뼈를 깎는 구도자'의 모습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p.227)
→ 어떤 책을 읽더라도, 그 주제와는 무관하게 놀라운 집중력과 지칠줄 모르는 성실함을 묘사한 곳이 있으면 일단 그 페이지를 접어둡니다. 아마 그 모습이 제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라 여기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통해 접한 이외수의 모습에서 가히 경외敬畏를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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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연못 2006-10-13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경하는 선생님, 선생님의 독서 블로그에서 항상 배우는 사람입니다. 제 리뷰가 그나마 무언가 담게 된 이유도 선생님 블로그 때문이라고 생각하구요. 선생님의 온화한 스타일을 잘 알지만 이건 너무나 피상적이고 수동적인 리뷰같습니다. 선생님같은 분이 조금 더 깊고 넓게 써주셔야 저희들도 배웁니다. 참고로 저도 같은 책에 리뷰를 썼습니다. 물론 이런 온화한 글쓰기는 태생 상 못하구 아주 편협하게 썼습니다.코멘트 부탁드립니다.
 
젊은 날의 깨달음
조정래.홍세화.정혜신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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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다닐 때는 모든 것이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일년 내내 술을 마셔도 즐겁고, 아니 술을 마실 수 있어 즐거웠고, 전공에 구애됨이 없이 아무 책이나 읽을 수 있어 즐거웠고, 제도 교육을 통해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사실과 가치에 눈을 뜰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가치있는 변곡점變曲點은 대학생활을 통해서 찍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즐거웠던 시절로부터 유래된 습관 중에서 일부를 혁신해야할 때가 됐습니다.
술에 대한 나의 태도와 습관이 그것입니다.
술은 나와 남의 '관계'를 맺어주는 데 일등공신이었습니다. 무미무취했던 중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이 갈수록 0에 수렴하는 데 반해, 대학에서의 기억이 가치와 재미 모든 면에서 가장 많이 남는 건 아마도 술로 맺어진 인간관계 영향이 매우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술의 즐거움이 '아는 것'의 즐거움만 못함을 느낍니다. 술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갈수록 줄어듭니다. 술이 주는 이미지의 핵심은 '인간적'이라는 것인데, '인간적'이라는 말에는 대단히 감성적인 요소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술이 주는 감성의 특징은 과장誇張입니다. 과장은 종종 현실과의 괴리乖離를 낳습니다. 그 괴리를 타인이 자주 느낄 정도가 되면, 괴리가 불신의 관계를 만듭니다. 약이 지나쳐 병을 키우는 꼴입니다. 자연 치유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습관적인 약은 의존성만 키우게 됩니다. 의존성은 나약함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여기 술에 담을 쌓고 오로지 자신이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20여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달려온 사람이 있습니다.
겨우 세끼 밥 먹을 밑천을 장만하기 위해 젊은날을 보내야했던 소설가 조정래는, 나이 마흔에 미친듯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유형의 땅>을 썼고, <불놀이>를 썼고, <태백산맥>을 시작했습니다. 흔적 없이 사라진 상처투성이 젊은 세월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글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인생이란 연습도 재공연도 할 수 없는 단 1회의 연극"이라고 규정한 조정래는, 그로 부터 20여년 동안 대하소설만 연달에 세 편을 써냈습니다. 20년을 술을 멀리하고 자신을 글감옥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내가 대하소설을 연달에 세 편씩 써낼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마음먹음의 실천 뿐이다. 그런 미련스러운 노력 말고 무엇이 우리 인생을 책임질 수 있고, 우리 인생에 빛을 줄 수 있겠는가. 나는 내가 타고난 재능보다는 미련스러운 노력을 믿고자 했다."
인물과 사상사에서 펴낸 <젊은날의 깨달음>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 외에도 정혜신, 박노자, 고종석, 손석춘, 장회익, 박홍규, 김진애, 홍세화 - 이름만 들어도 익히 알만한 이들이 젊은 날을 돌아보며, 인생을 새롭게 발견한 순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 방면에서 홀로 일가를 이룬 이런 분들의 글을 읽으면 숙연해집니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 복판에서 조용히 열정이 끓어오릅니다. 쉽게 확 타버리는 어린날의 열정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이 돈오頓悟의 느낌인지 점오漸悟의 결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평생을 두고 매진해야할 가치를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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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민 쇼크
한스 울리히 그림 외 지음, 도현정 옮김, 유태우 감수 / 21세기북스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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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동제약의 비타500이 월 매출액에서 사상 처음으로 박카스를 앞질렀습니다. 식품류에 가까운 비타500과 의약품류에 가까운 박카스를 단순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어쨋든 일반인들은 둘 다 약품이라기 보다는 건강 보조 음료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에 꽤 의미있는 수치라고 생각합니다.

바야흐로 비타민의 시대입니다. 쏘시지나 햄, 과자에 천연 식품보다 더 많은 비타민이 들어 있습니다. 주스에도 비타민이 강화되어 있습니다. 천연 주스에 합성 비타민을 첨가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비타민 하루 권장량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비타민 C 하루 권장량은 70mg인데 비타500 작은 병(100g) 하나에만 700mg의 비타민 C가 들어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 일일 권장량의 10배입니다. 레몬 20개, 사과 25개, 귤 15개에 해당되는 양이라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TV 프로그램 중에는 '비타민'이라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건강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입니다.

과하면 항상 부작용이 따르는 법입니다. 비타민 열풍의 시대에 <비타민 쇼크>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하루 한 알! 당신이 먹고 있는 비타민을 의심하라!"고 말합니다.
독일인이 쓰고 우리나라 유태우 박사가 감수한 이 책은, 비타민이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보조제라는 것과 비타민 결핍을 강조하는 문구는 비타민 제조 회사의 판매 전술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식품 첨가물로 사용되는 비타민으로 인해 과자 몇 봉지만 먹어도 비타민 A, B, C의 하루 필요량이 충족되는 이상 시대에, 비타민 과다 복용의 폐해를 말하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식품에도, 화장품에도 합성 비타민이 첨가되고 있는 현실, 비타민은 결핍보다 과잉 사용이 오히려 문제라고 말합니다. 합성 비타민은 식품을 통해 섭취되는 천연 비타민과는 달리 특정 성분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자연 상태의 음식에 포함된 영양소의 상호 작용이 충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 영양소만 선별하여 섭취하는 것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예로 비타민 과다 복용으로 인한 피해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지용성 비타민인 A,D,E 그리고 베타카로틴 과다 복용의 부작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미 상식이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수용성인 비타민 C를 과다복용한 임산부에게서 오히려 비타민 C가 결핍된 아기가 태어나는 사례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이런 사례를 통해 '과유불급'의 폐해를 처음부터 끝까지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합성 비타민의 제조 과정을 보면 신선한 과일이나 야채에서 추출하는 것이 아니라, 대량 생산을 위해 박테아균, 곰팡이, 개구리, 그 밖의 썩은 동물 시체가 원료료 사용되거나 유전 공학(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고 있다고 고발합니다.
따라서 비타민은 신선한 야채나 과일을 통해 - 유기농이면 더욱 좋고 - 자연스럽게 섭취해야 하며,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저도 비타민을 즐겨 먹는 편입니다. 사무실 책상에 종합 비타민제와 고함량 비타민 C가 있습니다. 물론 '저렴한' 합성 비타민제입니다. 잦은 외식으로는, 제가 좋아하는 채식 식단을 거의 접하기 힘들어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이왕재 박사의 비타민 C 예찬론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요즘은 먹는 횟수가 뜸한데, 게을러서 자꾸 잊어버려서 그런 것이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런 와중에 우연히 <비타민 쇼크>라는 책을 발견했습니다. 이미 위에서 언급했듯이 제약사의 상술에 필요 이상의 비타민을 섭취하고 있으며, 건강 트렌드에 편승하여 과도하게 합성 비타민이 식품 첨가제로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책입니다. 나름대로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여 책을 구해 읽었습니다.

결론은, '쇼크'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지용성 비타민의 과다 복용은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것은 원래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 정도는 알아서, 또는 몰라도 종합 비타민제를 두 세 종류 먹는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너도 나도 먹는 비타민 C일텐데요, 그래서 제 관심사는 수용성 비타민, 특히 비타민 C를 많이 복용했을 때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는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비타민 C 예찬론자인 이왕재 박사는 하루 7~10g, 즉 7,000~10,000mg의 비타민 C를 벌써 십 수년 째 복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제약회사에서도 마케팅 차원에서 이 분의 말을 자주 인용하고, 저 역시 이 박사의 사이트(http://doctorvitamin-c.co.kr/)를 보고 1,000mg 백색 비타민 C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에서는 비타민 C를 과다복용한 임산부 2명이 비타민 C 의존성 유아를 출산했다는 보고를 인용합니다. 산모가 비타민 C를 많이 복용하여 흡수되지 못한 비타민 C가 체외로 계속 방출됐는데, 이로 인해 뱃속의 아이는 선천적으로 비타민 C를 무조건 배출하는 괴혈병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책이 나오기 전에도 비타민 C 복용에 따른 비타민 C 의존성 유아 출산에 대해 어떤 사람이 이왕재 박사에게 질문한 것이 있는데, 이 박사는 다음과 같이 답변을 했습니다.

비타민 C는 외부에서 주기적으로 복용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간단한 영양제 정도로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그렇게 쉽사리 의존성이 생기는 물질이 아닙니다. 예컨대 밥을 늘 먹으면 밥에 의존성이 생깁니까 ? 밥을 안 먹으면 죽기 때문에 계속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의존성이라는 이야기는 언젠가부터 안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신다는 증거인데 비타민 C를 복용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시는 순간부터 죽음이 눈앞에 오게됨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미 임산부의 비타민 C 복용에 대해 많은 글이 올라가 있고 아울러 이미 많은 임산부들이 비타민 C를 복용하시며 태아와 산모의 건강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물론 비타민 C를 복용하지 않으면 그 순간부터 죽음이 눈앞에 오게된다는, 좀 과하다 싶은 말을 하긴 하지만, 위 답변을 토대로 생각하면, 책에서 인용한 두 건의 사례는 무언가 다른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물론 이 박사 - 이 분의 비타민 C 예찬은 거의 종교적 믿음에 가깝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 박사의 글에서 자주 인용하는 라이너스 폴링 박사(노벨상 2회 수상)도 하루 12g의 비타민 C를 꾸준히 복용했음에도 결국은 암으로 죽었습니다.)

의학 전공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문적으로 따로 연구한 것도 아니고 해서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는 힘들지만, 제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사 놓은 비타민 C는 계속 복용한다. 가능하면 꾸준히 복용할 것이다. 다행히 가격도 무척 싸다. 그것이 설사 위약 효과라 해도 부작용이 거의 없으니 상관 없다.
사 놓은 종합 비타민제도 먹는다. 그걸 다 먹고 나서 '여유가 있으면' 사고 그렇지 않으면 굳이 안 사도 상관 없다.
대신 매일 아침 야채를 충분히 먹는다. 주말농장에 더 신경을 써서 무공해 야채를 최대한 자급자족한다.

건강한 한 주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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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부터의 반란 - 김진경 교육 에세이
김진경 지음 / 푸른숲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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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이면 중간고사를 마친 학교가 꽤 있을 것입니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다음 주 정도면 거의 끝날 것입니다.
오는 2008학년도 대학입시제도의 첫 대상인 현재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는 내신 상대평가제가 적용됩니다. 시험을 내는 입장에서는 동점자가 많이 생기지 않도록 변별력을 강화하기 위해 문제를 훨씬 어렵게 낼 수밖에 없을테고, 학생 입장에서는 반드시 좋은 성적을 얻어 상위 몇 퍼센트 안에는 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이 '내신전쟁'이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이번 주 주요 신문들은 새로운 내신상대평가제도에 대해 현장의 소리를 근거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공교육 내실화를 위한 2008학년도 대학입시제도가 오히려 사교육을 더 부추긴다고까지 합니다. 하기야 우리나라 교육제도 또는 입시 평가 제도에 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으니 딱히 놀랄 것도 없습니다. 올해만 하더라도 '고교 등급제', '대학별 본고사', '기여 입학제' 등 이른바 교육부의 3불 정책과 관련된 문제는 끊임없이 논쟁을 낳았습니다. 도무지 해결의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입장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우리나라의 교육이 '흔들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정권이나 장관이 바뀔 때마다 '개선'과 '개혁'의 이름으로 교육과정과 입시제도를 바꾸려고 머리를 싸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학교는 흔들리고 있고, 이를 바라보는 세대 간의 시각차만 커지고 있습니다.

<미래로부터의 반란>에서 저자는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을 '점수에 따라 한 줄로 세우는 제도'는 손 대지 않고 유지하며 경쟁에서의 공정성만을 부분적으로 모색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과거 산업사회에서 지식사회로 넘어가면서 '인재'에 대한 개념이 바뀜에 따라 '우수 학생'의 개념도 변화되었고, 입시 제도는 이러한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대입 개선안조차 '사교육비 경감 대책' 차원에서 기능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 개혁적 요소는 사라지고 왜 수능의 변별력을 낮추어야 하는지, 왜 고교 내신의 비중을 높여야 하는지를 근본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껏해야 과다한 사교육비를 낮추고 지나친 점수 경쟁을 완화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이건 아이들을 전부 하향 평준화시켜서 나라의 장래를 망치자는 거냐고 따지고 들면 할 말이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우수 인재에 대한 개념이 변하였으니 이를 평가하기 위해서 수능을 자격고사화하여 등급제로 바꾸고 전형 요소를 다양화해야한다는 근본 논리는 사라진 채, 고교 내신의 객관적 변별력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로만 문제가 집중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지금 고1 교실은 '내신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학생들의 불만은 높아만 가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수능 등급제, 고교 등급제, 본고사 등 현재 교육의 주요 쟁점에 대해서 피해가지 않습니다. 고교 등급제와 관련해서는 저자의 말보다 오히려 "선배의 학력에 의해 후배들의 능력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제도"라는 학생의 말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있을 수 있는 학교 사이의 학력 차이를 개인의 차이로 고착시키는 것은 차별을 제도화한다는 점에서 반인륜적이기까지 하다"는 어느 신문의 사설을 보면서 교육부와 대학이 과연 할 말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기와 적성, 전공에 대한 관심도와 준비 정도, 인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뽑으라는 교육부의 요구는 수십 년간 국가 시험이나 대학별 본고사를 통해 학생들을 쉽게 뽑아 온 대학으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겠지요. 교육부 또한 보다 확실한 방안을 마련하지는 않은 채 모호한 기준만 제시하는 무능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으로 '진로 교육 개념'을 교육의 원리로서 학교 교육에 전면화하자고 제안합니다. 이 때 진로 교육은 과거의 직업 교육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진로 교육은 어떤 하나의 직업을 준비시키는 교육이 아니라 그 아이의 직업과 관련된 인생 행로 전체를 준비시키는 교육입니다. 이는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가 이미 행했던 교육 개혁 모델을 참고한 것입니다. (저자는 미국을 모델로 이야기하는 것을 몹시 싫어하지만 클린턴 행정부의 교육 개혁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저자가 지향하는 학교와 교육의 상을 제시하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의 학생들의 생활을 교과 활동, 학급 활동, 진로 활동으로 나누고 각 활동의 지도를 책임지는 세 담임을 두자고 합니다. 현재의 기본 - 보충 - 심화 과정은 결국 우열반 제도이니, 이를 개선하여 기본(보충포함) - 심화로만 나누고 이 때 심화는 진로 희망에 따라 관련 교과의 심화 과정을 두자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참고로 저자 김진경은 1985년 서울 양정고등학교 재직시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구속돼 수감 생활을 하고 교육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시집과 소설, 어른을 위한 동화 등을 썼으며, 2000년에 다시 복직하여 4년 정도 다시 교단에 섰습니다.
이 책은 그가 다시 교단에 서서 학생들과 생활하면서 느낀 점을 쓴 '교육 에세이'인데, 처음에는 가벼운 에세이인 듯 하다가 뒤로 갈수록 현재 입시제도에 대해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무거운 얘기로 흘러갑니다. 학부모 입장에서 쓴 앞 부분의 이야기는 재미와 지식을 동시에 줍니다. 뒷 부분에서는 흔들리는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면서 매우 비관적인 얘기로 흐릅니다. 그러나 시종일관 이 나라의 교육과 학생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에필로그의 제목은 '희망은 있다'입니다.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모든 분들, 그리고 학생이 외계인처럼 느껴지는 이 땅의 모든 학부모님들께 이 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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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 가꾸기 잘먹고 잘사는 법 23
서명훈 지음 / 김영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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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에 책을 세 권 정도 넣고 다닙니다. 지루하지 않게 많은 책을 읽고 싶어서입니다. 아침 출근길에 읽는 것과 밤에 퇴근할 때 읽고 싶은 책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가급적이면 한 권을 하루 또는 이틀에 걸쳐 집중적으로 읽는 것이 가장 좋으나 몸이 지친 퇴근 길이나 밤에는 아침에 잘 읽히던 책이 읽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책 읽는 것이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책 읽는 일마저 큰 스트레스가 되어서는 안 되겠죠. 아침, 저녁으로 기분에 따라 책 종류를 바꿔가며 읽는 것은 이런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어제는 경제경영 서적 한 권, 세계사 책 한 권, 그리고 점심 시간이나 자투리 시간에 보기 위해 《채소 가꾸기》를 가방에 넣어두고 있었습니다.

어제 점심 시간, 그리고 밤에 퇴근하는 길 지하철에서 《채소 가꾸기》를 읽었습니다. 문고판이라 분량도 얼마 되지 않고 사진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읽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한 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을 분량입니다. 그러나 이 책을 사면서 원했던, 기대했던 내용은 모두 담겨 있습니다. 꽤나 알찬 책입니다.

지지난 주엔가 베란다에 플라워 박스(긴 직사각형 모양의 플라스틱 화분) 두 개에 동네 산에서 퍼 온 흙과 부숙토(퇴비)를 섞어 흙을 만들고 거기에 상추 씨를 뿌렸습니다. 지금 제법 많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상추 하나 키우는 데에도, 워낙 알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이 없어 상추가 제대로 크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막상 싹이 트고 자라고는 있는데 솎아내기는 어떻게 어느 정도 해야하는지, 물은 어느만큼 줘야 하는지 아는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산 것이 바로 이 《채소 가꾸기》입니다.

김영사에서 출간된 〈잘~먹고 잘사는법〉 시리즈 제23권입니다. 텃밭에서 채소 가꾸기를 집중적으로 다룬 책도 있었으나 텃밭 가꿀 생각은 생각도 못해봤습니다. 뭐, 한 평이라도 내 땅이 있어야 말이죠. 그래서 베란다에서 화분 몇 개 놔두고 상추나 미나리, 쑥갓 같은 것을 키워볼 작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채소 가꾸기 책 몇 권 중에서 실내에서 채소를 가꾸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는 것을 골랐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이미 말씀 드렸듯이 분량은 얼마 되지 않으나 꽤 내용이 충실한 책입니다. 아파트 베란다나 실내에서 혹은 작은 텃밭에서 채소 가꾸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안성맞춤인 책입니다. 분량이 적으니 오히려 더 꼼꼼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베란다에 심어놓은 상추를 빨리 솎아 내야겠습니다. 못잡아도 10배수 이상 많이자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9/10를 뽑아 내야한다는 말입니다. 이 책을 조금 더 늦게 봤더라면 상추들만 불쌍할 뻔 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솎아 내야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을 보다가 욕심이 생겼습니다. 작은 텃밭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주말농장을 찾아봤습니다.  주말에 산에도 가고 밭도 가꾸다가 보면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도 많아지고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았습니다. 1년에 연회비 80,000원이면 4평 땅을 임대할 수 있습니다. 사이트를 뒤져 몇 군데 전화를 걸어봤는데 이미 임대가 다 되어 남은 땅이 얼마 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하나 찾았습니다. 당장 회비를 입금하고 싶었지만, 이왕 시작하는 거 눈으로 직접 한 번 보고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주말로 미뤘습니다. 책을 보니 기본적으로 밭 관리를 잘 해주는 농장주가 있는가하면 땅만 임대해주고 모든 것을 사용자가 알아서 하는 그런 농장도 있었습니다. 농장주와 사용자가 하는 역할이 잘 나누어져 있고 좀 부지런하고 맘씨 좋은 농장주가 하는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말부터 좀 바쁠 것 같습니다^^
혹시 저와 같이 텃밭 가꿔보실 생각,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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