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vs 남자 - 정혜신의 심리평전 1
정혜신 지음 / 개마고원 / 200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달포 전에 《사람 vs 사람》을 읽고 이 책 - 《남자 vs 남자》을 꼭 봐야겠다고 생각하여 바로 샀었습니다. 여러 이유로 책읽기를 미루다가 이제서야 읽었습니다.

《사람 vs 사람》을 읽으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책 내용보다도 '이러한' 책을 쓴 저자에 대한 호기심이 더 크게 일었습니다. '이러하다'는 것은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 그리고 문장력이 어우러져 힘을 발휘하는,이라는 뜻입니다. 예전에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권오길 교수의 《인체기행》을 읽을 때도 이와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글을 제 글쓰기의 전범典範으로 삼고 싶습니다만 언제 이러한 글을 흉내나 낼 수 있을지 요원할 뿐입니다.

일전에 읽은 《젊은 날의 깨달음》에 정혜신이 쓴 <정신과, 내 인식의 베이스캠프>라는 글이 있습니다. 정말로 어렵게 정신과 전공의가 된 그녀는 전공의 생활 1년 만에 스스로 타인을 통해 정신분석 치료를 받기로 결정합니다. 일주일에 2회, 1회에 50분씩, 그 과정을 2년 동안 계속합니다. 그녀는 "내가 정신과 의사로서 혹시라도 약간의 유능한 구석이 있었다면 그것은 '내가 바닥까지 환자가 되어보았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정신과 의사가 또 다른 정신과 의사 앞에서 적개심과 질투의 감정을 느끼고, 이유없이 넋놓고 울며 격렬한 감정의 홍역을 치뤄야했던 그 기간을 거치며 정신과 의사로 거듭났다는 것입니다. 그 글을 모두 읽고 정신과에 대한 그녀의 병적인 몰입과 직업 철학에 대한 진실성에 감복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글에 더욱 신뢰가 갑니다.

이 책에는 11쌍 21명의 남자가 등장합니다. 11쌍 22인이 아니라 21인 것은, 이회창 1인을 '칼'의 이회창과 '저울'의 이회창으로 대비하여 실었기 때문입니다. 김영삼 對 김어준, 이건희 對 조영남, 장세동 對 전유성, 이수성 對 강준만, 박종웅 對 유시민, 김윤환 對 김윤식, 봉두완 對 이외수, 정형근 對 마광수, 김우중 對 정동영, 김종필 對 앙드레김, 그리고 이회창 對 이회창.

한 마디로 흥미진진합니다. 순전히 느낌만 거칠게 말하자면 '뒷담화'할 때의 그 쾌감과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뒷담화'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특정 인물에 대한 평전을 쓸 때 적어도 그가 쓴 책이나 논문, 관련자료 등은 다 섭렵하고서야 작업을 하는 저자의 글쓰기 스타일은 굳이 저자의 입을 빌리지 않고서도 책 내용만으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저자가 분석한 내용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능력은 제게 없습니다. 저자의 글에서 은연중에 드러나는 호불호好不好의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저자의 말마따나 어떤 방식이든 사람을 평가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느꼈는지 모르겠으나, 저는 단순한 재미를 넘어 그들에 대한 분석의 틀을 나에게 적용시켜가며, 그들을 통해 나의 모습을 조금씩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어느 순간 저자가 분석한 그 사람의 모습에서 띄엄띄엄 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정말 나의 모습인지, 아니면 나의 콤플렉스인지, 나의 바람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참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녀의 분석이 옳은지 그른지, 편파적인지 공평무사한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해 보입니다. 이미 말했듯이 사람을 평가한다는 건 너무나 어렵고 거기에 정답은 없으니까요. 오히려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성공한 남자들의 삶을 현미경을 통해 살펴보면서 그들의 삶이 평범한 이 시대의 많은 남자들, 바로 당신의 삶과 질적인 차이가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나가는 과정으로써 이 책을 읽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을 읽으며 저 자신을 투영했던 몇 부분을 옮겨보겠습니다.

(이건희는) 자신을 기리켜 '삼성 안에서 국회의원에 나와도 떨어질' 정도로 사람 이름을 못 외는 데 천재적이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그의 정신적인 에너지가 자기의 안으로만 집중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사변적이고 강박적이며 상상이나 공상의 세상을 즐기는 사람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다.(p.50)
→ 사변思辨적이고 강박적이라는 말에 공감하고 반성하며 읽었습니다.

장세동에 열광하고 호감을 가지는 건 그가 남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배신에 대한 잠재적 불안감을 해소시켜주는 인물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p.86)
→ 그냥 공감이 가서 옮겨봤습니다.

(전유성이 아이디어를 지인들에게 알려주는 것을 예로 들며) 그의 '결과 나눠주기'는 그가 자신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자신은 주연보다는 조연에 더 어울리고 기타로 쳐도 퍼스트 기타가 아닌 베이스 기타이므로, 주연하려 들다가는 조연도 못하고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자신의 운명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이다. 전유성이 지금까지 연예계의 막후 실세로, 대부로 의도하지 않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유는 순전히 자기를 아는 힘 때문일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p.96)
→ '나'는 어떤 유형인가를 고민하며 읽었습니다.

이수성은 불안에 대한 수용력이 취약하여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긴장 상태나 갈등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인다.(p.114)
→ 물론 상황이 좀 다르기는 하지만, 극적인 드라마 한 편 제대로 보지 못하고 아슬아슬한 순간을 건너 뛰고 봐야하는 나의 모습을 표현한 것 같았습니다.

(유시민의 말을 인용하며) "한 점의 오류도 없는 사상이나 단 한 톨의 진실도 담지 않은 사상은 없다. 사상의 자유가 필요한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새로운 사상 치고 처음에 '불온'하지 않았던 것은 없다. 세상을 보는 눈 가운데 어느 것이 옳은지는 상이한 여러 사상 사이의 대립과 경쟁을 거쳐야 알 수 있다. 어떤 사상이 잘못된 것인지 아닌지를 선험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p.159)
→ 너무나 지당한 말이라 옮겨봤습니다.

그는 마치 강물처럼 흐른다. 날마다 읽고 쓰는, 얼핏 변함없는 삶인 듯 보여도, 내면에선 아주 미약한 물결조차 제 출렁임을 잃는 법이 없고, 변화의 흐름 위로 노를 저어가진 않지만, 스스로 조금씩 흘러, 바지런 떨던 변화의 헐떡임이 오히려 낯을 붉힌다. 그는 마치 흘러도 흐르지 않는 강물이다.(p.188)
→ 문학평론가인 김윤식 서울대 교수에 대한 평입니다. 하루에 적어도 10시간 이상 공부하고, 1년에 평균 3.7권씩 책을 내며, 30여 년 동안 1백권이 넘는 책을 쓴, 한국문학 100여 년 역사 초유의 기록을 가진 노교수에 대한 예찬성 분석입니다.
이 글을 옮긴 건, 제 현재의 모습이 이러해서가 아니라, '흘러도 흐르지 않는 강물'처럼, 변화의 헐떡임이 오히려 낯을 붉힐만큼 꾸준히 나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매진하며 살고 싶은 '바람'때문입니다.

'한 소리'를 얻기 위해 용맹 정진하는 구도자의 모습을 보며 제3자의 입장에서 재능이 있네 없네를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이외수를 향해서 들이대는 재능이란 잣대는 그런 것이다. 그에게 '타고난 작가'란 칭송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뼈를 깎는 구도자'의 모습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p.227)
→ 어떤 책을 읽더라도, 그 주제와는 무관하게 놀라운 집중력과 지칠줄 모르는 성실함을 묘사한 곳이 있으면 일단 그 페이지를 접어둡니다. 아마 그 모습이 제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라 여기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통해 접한 이외수의 모습에서 가히 경외敬畏를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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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연못 2006-10-13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경하는 선생님, 선생님의 독서 블로그에서 항상 배우는 사람입니다. 제 리뷰가 그나마 무언가 담게 된 이유도 선생님 블로그 때문이라고 생각하구요. 선생님의 온화한 스타일을 잘 알지만 이건 너무나 피상적이고 수동적인 리뷰같습니다. 선생님같은 분이 조금 더 깊고 넓게 써주셔야 저희들도 배웁니다. 참고로 저도 같은 책에 리뷰를 썼습니다. 물론 이런 온화한 글쓰기는 태생 상 못하구 아주 편협하게 썼습니다.코멘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