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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의 규방철학 ㅣ 바리에테 4
D.A.F. 사드 지음, 이충훈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한 마디로 진정으로 또라이같은 책. 사드 후작의 명성은 괜히 드높은 것이 아니었다.
집단 섹스에, 변태적 성행위에, 온갖 종류의 근친상간에, 비역질까지…, 인간의 상상의 끝은 어디인가 싶을 정도의 범주에서의 온갖 음탕한 행위가 다 나온다(글쎄, 포르노 자주 보시는 분들은 보셨을 지도 모르겠네, 피식). 아, 짐승이랑 교접하는 수간(獸姦)만 빼고.
특히 충격적인 결말 부분, 책장을 넘기는 손이 부들부들 떨려올 정도였다. 다섯 명의 주요 등장인물이 서로를 물리적으로 학대하며 변태적 성행위를 벌이는 동시에, 끝 부분에 등장하는 한 가련한 여인을 인간의 잔인성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보여주려는 듯 물리적으로 그리고 성(性)적으로 온갖가지의 방법으로 학대하는데, …그녀는 여주인공 급 소녀의 어머니였다…. 게다가 그녀의 딸이 가장 앞장서서 자신의 어머니를 학대하는데, 이 부분에서 구역질과 심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인간은 없었을 것이다. 아니, 느끼지 않았다면 인간이 아니지.
그럼 왜 읽었냐? 라고 묻겠지들. 우습게도 내가 사드에 접근한 이유는 지적 호기심이었다. 인간 내면의 본성, 쾌락에 대한 열정과 잔혹성을 최초로 끄집어낸 천재라고, 굳이 '사디즘'이나 '사디스트'를 들지 않더라도, 수많은 문학가와 철학가, 사회학자, 심리학자들이 사드를 언급하니깐, 도대체 어떤 작품을 쓴 사람일까, 하고 매우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사드 자신을 투영한 듯한 작중 주요 인물인 돌망세 씨는 자신의 쾌락주의와 무신론관을 제법 조리있게 설명하면서 자신의 제자(?) 으제니 양을 교육시키는데, 15세의 소녀 으제니는 별 비판도 없이 "당신의말이 옳아요"라고 하면서 감탄하며 그의 충실한 제자가 되어간다. 기독교에 대한 강렬한 비판과 여성의 성적(性的) 해방을 주창하는 부분은 상당히 설득력있어,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부분도 있다. 물론 살인의 정당화를 주장하는 충격적인 부분은 당연히 동의할 수 없었고, 여성의 성적 해방을 주장할 것이면 여성 주체적으로 그렇게 되라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여성의 아름다운 몸은 남성들에게 사랑을 받으라고 있는 것이다'라는 주장으로 성적 해방의 근거를 드는 것에서는 한계가 느껴지기도 했다ㅡ그가 남자였으니 당연한 거지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것인가?-ㅁ-;ㅋ
아무튼 논할 것도 많고 상당히 충격적이고 민감한 내용들도 많아 격렬한 토론의 장으로 흘러갔으면 훨씬 흥미진진하고 완성도가 높았을 텐데, 별 비판없이 돌망세의 충실한 사도가 되어가는 으제니의 모습을 보면서 작품에 많이 실망했다. 그나마 생땅유 부인의친동생인 미르벨 기사가, 주인공들의 항문 성교 예찬이나 마지막에 생모를 온 세상의 호로자식 저리가라 할 정도로 학대하는 으제니의 모습에 조금은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돌망세가 빈민 구제는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부분에서 "그러는 당신은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의 수고로 따뜻한 이불에서 잠들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지내지 않느냐"고 조금은 설득력 있게 반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서 논의가 발전되는 것이 아니라 워낙 강렬한 돌망세의 카리스마에 묻혀버려 정상적인 인간의 주장일 미르벨의 주장이 완전히 조롱당하는 느낌이고, 미르벨은 조심스럽게 (그것도 아주 가끔) 반대를 하거나 조금 불평을 할 뿐, 등장인물이 벌이는 온갖 엽기 행각에 자신도 동참을 하기 때문에 그러한 기사의 의견이 더욱 우습게 여겨진다. 음, 처음에는 이런 논의의 부실함에 매우 실망스러웠지만, 사드는 이런 구조를 통해 오히려 기성 사회를 더욱 조롱하고비꼬는 효과를 극대한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그의 생애 자체가 엽기적인 변태적 성행위를 추구한 삶이었기 때문에 '새디스트'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고 하지만, 나는 조금은 다른 측면에서 그는 진정한 사디스트였다는 생각이 든다. 불편하다. 괴롭다. 그의 작품을 읽을 때 말이다. 나같은 독자들을 상상하며 그는 쾌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는 진정한 문학적 새디스트인 것이다!!!
보태기. 역주는 당시 프랑스의 사상적, 역사적 배경에 대해 연관지어 더욱 심층으로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게 돕긴 하지만, 많은 내용들이 각주로 붙어있어 독서의 흐름을 끊는다. 미주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리고 하나만 더 보태자면, 이 작품 별점 주는데 무지 애먹었다;;;;) 지금 준 점수도 잘 준 건지 못 준건지 조차 잘 모르겠다. (실은 잘 몰라서 중도의 점수를;;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