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의 규방철학 바리에테 4
D.A.F. 사드 지음, 이충훈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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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 마디로 진정으로 또라이같은 책. 사드 후작의 명성은 괜히 드높은 것이 아니었다.

집단 섹스에, 변태적 성행위에, 온갖 종류의 근친상간에, 비역질까지…, 인간의 상상의 끝은 어디인가 싶을 정도의 범주에서의 온갖 음탕한 행위가 다 나온다(글쎄, 포르노 자주 보시는 분들은 보셨을 지도 모르겠네, 피식). 아, 짐승이랑 교접하는 수간(獸姦)만 빼고.

특히 충격적인 결말 부분, 책장을 넘기는 손이 부들부들 떨려올 정도였다. 다섯 명의 주요 등장인물이 서로를 물리적으로 학대하며 변태적 성행위를 벌이는 동시에, 끝 부분에 등장하는 한 가련한 여인을 인간의 잔인성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보여주려는 듯 물리적으로 그리고 성(性)적으로 온갖가지의 방법으로 학대하는데, …그녀는 여주인공 급 소녀의 어머니였다…. 게다가 그녀의 딸이 가장 앞장서서 자신의 어머니를 학대하는데, 이 부분에서 구역질과 심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인간은 없었을 것이다. 아니, 느끼지 않았다면 인간이 아니지.

그럼 왜 읽었냐? 라고 묻겠지들. 우습게도 내가 사드에 접근한 이유는 지적 호기심이었다. 인간 내면의 본성, 쾌락에 대한 열정과 잔혹성을 최초로 끄집어낸 천재라고, 굳이 '사디즘'이나 '사디스트'를 들지 않더라도, 수많은 문학가와 철학가, 사회학자, 심리학자들이 사드를 언급하니깐, 도대체 어떤 작품을 쓴 사람일까, 하고 매우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사드 자신을 투영한 듯한 작중 주요 인물인 돌망세 씨는 자신의 쾌락주의와 무신론관을 제법 조리있게 설명하면서 자신의 제자(?) 으제니 양을 교육시키는데, 15세의 소녀 으제니는 별 비판도 없이 "당신의말이 옳아요"라고 하면서 감탄하며 그의 충실한 제자가 되어간다. 기독교에 대한 강렬한 비판과 여성의 성적(性的) 해방을 주창하는 부분은 상당히 설득력있어,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부분도 있다. 물론 살인의 정당화를 주장하는 충격적인 부분은 당연히 동의할 수 없었고, 여성의 성적 해방을 주장할 것이면 여성 주체적으로 그렇게 되라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여성의 아름다운 몸은 남성들에게 사랑을 받으라고 있는 것이다'라는 주장으로 성적 해방의 근거를 드는 것에서는 한계가 느껴지기도 했다ㅡ그가 남자였으니 당연한 거지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것인가?-ㅁ-;ㅋ

아무튼 논할 것도 많고 상당히 충격적이고 민감한 내용들도 많아 격렬한 토론의 장으로 흘러갔으면 훨씬 흥미진진하고 완성도가 높았을 텐데, 별 비판없이 돌망세의 충실한 사도가 되어가는 으제니의 모습을 보면서 작품에 많이 실망했다. 그나마 생땅유 부인의친동생인 미르벨 기사가, 주인공들의 항문 성교 예찬이나 마지막에 생모를 온 세상의 호로자식 저리가라 할 정도로 학대하는 으제니의 모습에 조금은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돌망세가 빈민 구제는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부분에서 "그러는 당신은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의 수고로 따뜻한 이불에서 잠들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지내지 않느냐"고 조금은 설득력 있게 반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서 논의가 발전되는 것이 아니라 워낙 강렬한 돌망세의 카리스마에 묻혀버려 정상적인 인간의 주장일 미르벨의 주장이 완전히 조롱당하는 느낌이고, 미르벨은 조심스럽게 (그것도 아주 가끔) 반대를 하거나 조금 불평을 할 뿐, 등장인물이 벌이는 온갖 엽기 행각에 자신도 동참을 하기 때문에 그러한 기사의 의견이 더욱 우습게 여겨진다. 음, 처음에는 이런 논의의 부실함에 매우 실망스러웠지만, 사드는 이런 구조를 통해 오히려 기성 사회를 더욱 조롱하고비꼬는 효과를 극대한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그의 생애 자체가 엽기적인 변태적 성행위를 추구한 삶이었기 때문에 '새디스트'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고 하지만, 나는 조금은 다른 측면에서 그는 진정한 사디스트였다는 생각이 든다. 불편하다. 괴롭다. 그의 작품을 읽을 때 말이다. 나같은 독자들을 상상하며 그는 쾌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는 진정한 문학적 새디스트인 것이다!!!

 

보태기. 역주는 당시 프랑스의 사상적, 역사적 배경에 대해 연관지어 더욱 심층으로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게 돕긴 하지만, 많은 내용들이 각주로 붙어있어 독서의 흐름을 끊는다. 미주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리고 하나만 더 보태자면, 이 작품 별점 주는데 무지 애먹었다;;;;) 지금 준 점수도 잘 준 건지 못 준건지 조차 잘 모르겠다. (실은 잘 몰라서 중도의 점수를;;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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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서설 박영신서 9
R.데카르트 지음 / 박영사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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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씨... 주제넘은 제 생각이오만은 당신의 사상들은 매력적이고 훌륭하지만 뭔가 어설프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5장 심장 생리학에 관한 내용이야 17세기 내용이니 지금보다 밝혀진 바가 적어서 그렇다는 것까지야 뭐라고는 안하겠지만, 신존재를 증명하는 부분이 상당히 뭔가 그렇습니다. 논리적으로 딴지 걸 수준도 안되고 저야 뭐 데카르트씨 발꼽의 때만큼도 못한 지적수준을 가진 자이지만, 우리가 완전하지 못한 존재임을 아는데 우리보다 완전한 그 무엇인가를 체득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우리에게서 인한 것이 아니므로 그 완전한 것은 신이라는 증명... 제 머리가 딸려서 납득이 안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어설픈 듯한 느낌이 드네요;;; 뭐 반론할 수준까지 되지 않으니 더 이상 뭐라고는 않겠지만은...암튼 그렇습니다.

그리고, 2장에서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의심하겠다고 말씀하신 당신이 3장에서 그래도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따를 도덕률이라는 것은 필요한 것이니 그것을 당신이 섬기고 있는 ‘위대한’ 국가와 교회가 정한 바에 따르겠다고 예외를 두신 것도 조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거기의 도덕기준을 빌려와서 준칙으로 삼았다는 근거가 없고 모호하기 때문이었지요. 그렇게 치열하게 진리를 찾으려는 당신의 의도와는 오히려 모순된 내용이 아닙니까?

딴지걸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하;; 다만 제가 당신의 저서를 읽어나가면서 마음 속에 생길 수 밖에 없었던 의문을 좀 이야기해본 것에 불과하니까요. 저야 뭐 아직 당신의 저서를 수박 겉핥기 정도로 밖에 읽어보지 못했으니까요.

그래도 1, 2장에서 대수학에서 좌표평면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여러 다방면에 뛰어난 학자였던 당신이 그것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절대 진리를 찾기 위해서 눈물겹도록 그것을 갈구하고 노력하는 학자의 정신을 보여주고, 탐구해 나가는 모습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습니다. 다만 저는 절대진리라는 것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편이기 때문에 저와는 맞지는 않았지만 진정한 학자의 자세를 당신에게서 발견했다고 느낀 것일까요? 아무튼 당신의 저서는 어설픈 감도 없잖아 있었지만 매력적이네요.

아직 한번도 다 못 읽어본 주제에 조심스레 제 생각을 써 보았습니다. 이제 마저 남은 장을 다 읽고 한 번 더 정독해봐야겠군요. 한 번 읽었다고 해서 진정으로 그 책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2004.11.21.


나에겐 상당히 나쁜 독서 습관이 있다. 한 권의 책을 진드감치 읽지 못한다는 점이다. 하나의 책을 읽다가도 다른 책이 재미있게 보이면 그 책을 읽었다가 이 책을 손댔다가 저 책을 손댔다가 하는 아주 좋지 않은 습관이다. 그래서 반 정도 읽었거나 심한 경우는 80%이상 읽었음에도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현재도 매우 많다.놀랍게도 데카르트의《방법서설》을 읽는 데는 정확히 1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방금 발견했다;; 구입시 서점에서 찍어준 도장에 2004.09.07이라 적혀있었으니 말이다.

각설하고, 작년에 읽다가 쓴 위의 감상문에도 나타나듯이, 어쩌면 이 책은 300여 년 전의 낡은 주장을 담고 있는 저서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이 21세기의 시대에 왜 뜬금없이 데카르트를 읽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아! 떠올랐다. 재수학원에 다니던 시절, 내가 정말로 존경하던 나이 지긋하신 국어 선생님께서 권장하셨었지. 그래, "여러분 대학에 입학하시면 다른 책은 몰라도 이 책은 꼭 읽어봐야 할 것이다."라면서 적어주신 예닐곱 권의 고전 목록 중에 방법서설이 속해 있었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하면 꼭 읽어보리라 생각만 하다가 작년에 서점에서 구입했더랬지. 유명한 저서이니만큼 여러 출판사에서 나왔지만 박영사에서 출간된 이 책을 선택한 데에는 책 후반부에 뽈 발레리의 논평이 실려 있었다는 것이 큰 이유이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나는 존경하던 선생님께서 이 책을 꼭 읽으라고 권해 주셨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오늘날, 상대론이 온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시대에 이 책이 주장하는 것들은 귀엽기까지 할 정도로 낡은 주장들이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하랴. 최초로 '자아'의 '존재'라는 것에 대한 확실한 인식과 인간의 이성으로 절대 진리를 탐구하여 추구하겠다는 학자의 자세. 뼈를 깎는 철두철미한 진리추구를 위한 고결한 자세, 그리고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과 한계를 인식하는 자세, 비판을 받아들이려는 자세와 후세인들이 자신의 주장을 이해하고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를 원하는 소망. 이것이 진정한 학자의 자세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또한 마지막 6장에서 데카르트 본인이 밝혀서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학술에 관한 저서는 모두 라틴어로 발표되곤 했었는데, 데카르트는 프랑스어로 이 책을 발표했다고 한다.

[그 다음 내가 이것을 우리 스승들의 언어인 라틴어로 쓰지 않고 나의 모국어인 프랑스말로 쓰는 이유는, 아주 순수한 천부의 이성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고서만을 믿는 인사들보다 더 잘 내 의견을 판단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나는 연구와 양식을 겸전한 분들만을 나의 판관으로 삼고 싶다. 그러한 분들은 내가 속어로 설명한다고 해서 나의 논증을 듣기를 거부할 만큼 라틴어를 편중하지는 않을 줄로 믿는 바이다.   (p129.) ]

이러한 사실에서도, 이 저서에서 자신이 연구한 내용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더욱 발전되어 나가며, 혹시 있을 비판까지도 받아들이고픈 저자의 진정한 학문 도야의 자세가 여실히 잘 드러나고 있다. 철학서라기 보다는 자신이 학문을 닦아온 나날들을 커다란 자부심으로 성찰한 회고록같은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그래서 명성에 비해 몇 장 안 되어(190쪽의 이 저서의 2/5가 발레리의 비평이다;;) 독자를 놀라게 하는 이 17세기의 저서가 300년도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자연스런 수긍이 들게 되었다.

 

아, 그리고, 자신은 철학자가 아니므로 내용보다는 르네 데카르트라는 인간상에 대해 더 관심을 두고 논평을 했다는 뽈 발레리의 촌철살인적인 글도 매우 인상적이다ㅡ그의 비평을 읽으면서 나는 폭소를 터뜨리기도 해고, 많은 부분에서 가슴깊이 공감하기도 하였다. 내용이랑은 꼭 상관은 없이 정말 재미있었던 구절을 한 부분만 올린다면...

[대중이 요행 어떤 사색인과 그의 작품을 알게 되었을 때, 그 대중을 가장 감동시키고 가장 자극을 주는 것은 항상 따로 떼어진 어떤 관용구나 혹은 단언(斷言) 따위다. 그리고 그것은 역설이 가지는 충격적 힘 또는 부조리에 의한 단순화의 코믹한 힘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다윈의 온 노작도 전세기 후엽 30년 동안 그의 이름을 알고 있던 대중의 정신 속에는 결국 다음 몇 마디의 무게로 귀착되는 것이다ㅡ"인간은 원숭이의 후예이다"라고. 마찬가지로 17세기에는 데카르트라는 이름이 허다한 사람들에게 '동물=기계'라는 말을 생각케 했던 것이다.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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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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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소설의 재미를 더 느끼고 싶은, 아직 안 읽으신 분은 이 리뷰를 읽지 말아주세요^^

최근 읽은 현대 한국 소설가들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작품이다.

소설의 첫 부분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놀라운 흡인력. 여성 작가임에도 남자 주인공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한 능력. 서안 조씨 가문과 효계당을 둘러싼 조손과의 갈등과 소산 할매의 서간의 번갈아간 제시가 퍼즐처럼 맞물려 소설의 주제를 더욱 심도있게 드러내며 전개되는 설정. 철저한 사전조사를 한 듯한, 전통 제례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옛 서간체 문투를 능수능란하게 다룬 표현력. 어느 하나 감탄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해월당 어머니, 달시룻댁과 정실 등 한많은 삶을 살아간 여성들과, (여러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는) 소설의 말미에서 충격적으로 밝혀지는 소산할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놀랍게도 열쇠구멍과 열쇠의 이가 맞물리듯이 맞아 떨어지고 있다. 현대의 '할아버지'와 옛 판서 벼슬을 지낸 조원찬 대감 등의 가문의 후계자들은 종가의 뿌리를 지키기 위해 많은 여성들의 삶을 짓밟고 유린한다. 끝내는 계집 아이를 출산하고 자진하게 되는 소산할매의 조모는 가슴아프게도 "애고애고 내 아가야 자진하지 말거라"고 설득하지만 가문의 후계를 지키고자 하는 지독한 관습 아래에선 무력할 뿐이다.

한편, 삶의 평생을 바쳐온, 자기 존재를 규정지어 온 '신념을 지키려는 의지'라는 것이 고결한 한편 허무하다는 양면성을 작가는 주인공의 할아버지를 통해 탁월하게 드러내었다. 그렇기에 왜곡된 진실이 드러나도 믿지 않으려고 하며 추악한 가문사가 드러난 서간을 불태우려는 할아버지의 완고함, 그로 인해 그가 평생을 바쳐 지켜오려 한 효계당이 불타버린 마지막 장면은 많은 것을 느끼게끔 한다.

또한, 주인공 상룡의 희극적인 연인 정실과의 사랑은 충격적이었지만 '병신'이었던 정실이 상룡의 사랑으로 인해 그 일그러진 태내에 새 생명을 잉태하게 되었다는 설정은 가슴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정실이 임신하여 자기 태내의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상룡에게 호소하는 장면은, 그녀가 희극적이고 매우 모자란 캐릭터였던 까닭에 더욱 설득력있고 감동을 주는 효과를 나타내게 되는 아이러니가 감탄스럽다.

이렇게 많은 인물들의 갈등과 수난의 역사가 제시되지만ㅡ특히 가문을 잇는다는 명목하의 남아선호사상에 희생된 여성들의 수난ㅡ작가는 따끔하게 꾸짖는 것도 아니고, 한편으로는 전통을 지킨다는 것과 현대적으로 어떻게 그것을 계승해나가는지에 대한 제시도 조심스레 하면서 양편의 입장을 모두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제목은 왜 《달의 제단》일까? 원형상징으로서 여성을 드러내는 '달'의 제단이라는 제목은, 몇 백년을 내려온 가문의 '제단'ㅡ뿌리ㅡ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희생된 여성들의 우여곡절 많은 역사를 상징하는 것일까, 하고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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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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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제목부터가 뭔가 구미를 당기게 하고, 요리 문학이라는 카피가 이 책에 동하게 만든 것은 역시나 인간의 욕구 중 2위는 식욕이라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게 만드는 것일까?^^ (참고로 1위는 수면욕, 3위는 성욕이라고…) 각 장의 제목이『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차벨라 웨딩 케이크』,『호두 소스를 끼얹은 칠레 고추 요리』등 이국적이고 진기한 요리 이름으로 되어 있다는 것도 신선했고.

주인공 티타의 삶과 부엌이라는 공간, 요리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고, 요리를 그녀의 힘겨운 삶의 위안이자 그녀의 욕망과 슬픔, 절망, 기쁨, 사랑 등의 감정을 드러내는 수단으로써 나타나는 설정이 매우 참신하면서도 기발했다. 부엌은 티타가 숙명적으로 매이게 된 공간이지만, 또한 그녀의 삶의 안식처이자 위안이며 자기 표현의 공간인 것이다. 또한, 티타의 삶을 불행하게 만든 장본인이며 완고한 마마 엘레나에게도 티타와 같은 질곡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스토리도 (비록마마 엘레나가 죽은 후이긴 하지만) 아주 약간은 부모 세대와의 화해의 실마리를 드러내는 듯 해서 좋았고.

하지만 많은 아쉬움을 남기는 작품이다. 티타의 요리는 그녀의 심리와 내면 세계를 드러내지만, 그 참신함에 비해 정황이나 심리 묘사 등이 부족해서 뭔가 설득력이 떨어졌다고나 할까. 그녀의 언니 로사우라와 연인 페드로의 결혼 축하를 위해 만든 케이크에 그녀의 절절한 슬픔과 절망이 담겨 있기 때문에 결혼식날 케이크를 먹은 하객들이 모두 토하게 된다든지, 페드로가 선물한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에 그를 향한 그녀의 사랑의 감정이 가득 담겨서 그것을 먹은 언니 헤르트루디스가 격렬한 성욕의 발산으로 연인 호세와 함께 마을을 떠나게 된다든지 하는 설정이 감탄스럽기는 했지만 내게는 공감이 가기보다는 조금 황당했다는 기분이 들었다고나 할까. 이 소설에는 앞서 말한 예들이나, 외로운 밤새 티타가 짠 이불이 농장을 덮을 정도로 커졌다든지, 로사우라와 페드로 사이의 아들 로베르토에게 먹일 젖이 로사우라가 아닌 티타에게서 나왔다든지 하는 사실들과 같이 '마술적 리얼리즘'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과 같은 작품이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에서 나타난 것 같은 비리얼리즘적 기법에 대한 공감대가 이 작품과는 형성이 되지 않았다. 참신한 설정이지만 조금 부족한 느낌이랄까.

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잡설 한마디만 하자면, 나는 페드로보다는 존 브라운과 같은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더 좋던데;;;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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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산 -하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8
토마스 만 지음, 홍경호 옮김 / 범우사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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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이 없는 깊은 침묵에 싸인 이 세계는 냉혹했다. 방문자를 맞아들이기는 했지만, 위험에 대해 아무런 책임감도 없다는 듯 담담했다. 그렇다, 그것은 환영이 아니었다. 그의 체류나 침입을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는 냉혹한 방법으로 감수하는 이 세계에서 나오는 것은, 말없이 위협하는 원시적인 것, 적의는 품지 않으면서 완전한 무관심으로 생명을 빼앗는 감정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원시적 자연과는 거리가 먼 문명의 아이는, 자연을 의지하고 함께 생활해 온 순박한 자연의 아이보다 자연의 위대함에 훨씬 민감하다. 문명의 아이가 눈썹을 치키고 자연 앞으로 다가서는 종교적 경외심을 자연의 아이는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종교적 경외심은 문명의 아이로 하여금 자연에 대한 감정의 근간을 이루게 하여, 그의 혼에 사라지지 않는 경건한 감동과 흥분을 지니게 하는 것이다.
-186쪽

사랑 문제에 대해 '정확하게' 구분짓는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애매모호하다든지 석연치 않다는 것은 또 무슨 뜻인가? 이런 구분을 짓는다는 것 자체를 일축해버리기로 하자. 어떤 종류의 사랑도 단 하나의 언어로 모든 것을 포함할 수 있다는 것, 지극히 경건한 사랑에서부터 지극히 관능적이며 정열적인 사랑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 단어, 사랑이라는 하나의 말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지고 훌륭한 일인가! 왜냐하면 사랑이란 불확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확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아무리 경건하더라도 육체와 결부되지 않는 것이 없으며, 아무리 육욕적이며 관능적인 사랑이라 하더라도 경건함이 결여되는 일은 없다. 삶에 대한 교활한 호의라는 형태를 취하든, 맹목적으로 격렬한 정열의 형태를 취하든, 사랑은 언제나 사랑 그 자체다. 부패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니고 태어난 유기체에 대한 공감이며, 감동적이고 방종한 포옹이다ㅡ아무리 경이로운 정열일지라도, 또 아무리 미친 듯 날뛰는 정열일지라도, 그 속에는 기독교적인 사랑이 깃들여 잇음에 틀림없다. 만약 지금까지 말한 의미가 애매하다 해도, 사랑의 의미는 애매한 대로 그냥 두었으면 싶다! 애매모호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사랑은 생명이 있고 인간적이다. 그 의미가 애매하다고 해서 고민한다는 것은 교활하고 비정하며 '깊이'없는 단순함을 드러내는 것이다.-363쪽

되풀이해서 말씀드립니다만,우리는 감정을 연소시켜야 할 의무, 종교적 의무를 갖고 있어요. 우리의 감정이라는 것은, 생명을 눈뜨게 하는 신비스런 남성적인 힘을 갖고 있지요. 졸고 있던 생명이 눈을 떠서 신성한 감정과 황홀한 결혼을 하게 되지요. 감정이란 정말 신성한 것입니다. 인간이 그런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신성한 것이지요. 인간은 신의 감정을 대행하는 기관입니다. 신은, 인간을 통하여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 인간을 창조한 것입니다. 인간은 신이 눈을 뜨고 도취된 결혼을 하기 위한 기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만약 인간이 감정적으로 무력하다면 신의 굴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3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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