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이 없는 깊은 침묵에 싸인 이 세계는 냉혹했다. 방문자를 맞아들이기는 했지만, 위험에 대해 아무런 책임감도 없다는 듯 담담했다. 그렇다, 그것은 환영이 아니었다. 그의 체류나 침입을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는 냉혹한 방법으로 감수하는 이 세계에서 나오는 것은, 말없이 위협하는 원시적인 것, 적의는 품지 않으면서 완전한 무관심으로 생명을 빼앗는 감정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원시적 자연과는 거리가 먼 문명의 아이는, 자연을 의지하고 함께 생활해 온 순박한 자연의 아이보다 자연의 위대함에 훨씬 민감하다. 문명의 아이가 눈썹을 치키고 자연 앞으로 다가서는 종교적 경외심을 자연의 아이는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종교적 경외심은 문명의 아이로 하여금 자연에 대한 감정의 근간을 이루게 하여, 그의 혼에 사라지지 않는 경건한 감동과 흥분을 지니게 하는 것이다. -186쪽
사랑 문제에 대해 '정확하게' 구분짓는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애매모호하다든지 석연치 않다는 것은 또 무슨 뜻인가? 이런 구분을 짓는다는 것 자체를 일축해버리기로 하자. 어떤 종류의 사랑도 단 하나의 언어로 모든 것을 포함할 수 있다는 것, 지극히 경건한 사랑에서부터 지극히 관능적이며 정열적인 사랑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 단어, 사랑이라는 하나의 말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지고 훌륭한 일인가! 왜냐하면 사랑이란 불확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확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아무리 경건하더라도 육체와 결부되지 않는 것이 없으며, 아무리 육욕적이며 관능적인 사랑이라 하더라도 경건함이 결여되는 일은 없다. 삶에 대한 교활한 호의라는 형태를 취하든, 맹목적으로 격렬한 정열의 형태를 취하든, 사랑은 언제나 사랑 그 자체다. 부패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니고 태어난 유기체에 대한 공감이며, 감동적이고 방종한 포옹이다ㅡ아무리 경이로운 정열일지라도, 또 아무리 미친 듯 날뛰는 정열일지라도, 그 속에는 기독교적인 사랑이 깃들여 잇음에 틀림없다. 만약 지금까지 말한 의미가 애매하다 해도, 사랑의 의미는 애매한 대로 그냥 두었으면 싶다! 애매모호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사랑은 생명이 있고 인간적이다. 그 의미가 애매하다고 해서 고민한다는 것은 교활하고 비정하며 '깊이'없는 단순함을 드러내는 것이다.-363쪽
되풀이해서 말씀드립니다만,우리는 감정을 연소시켜야 할 의무, 종교적 의무를 갖고 있어요. 우리의 감정이라는 것은, 생명을 눈뜨게 하는 신비스런 남성적인 힘을 갖고 있지요. 졸고 있던 생명이 눈을 떠서 신성한 감정과 황홀한 결혼을 하게 되지요. 감정이란 정말 신성한 것입니다. 인간이 그런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신성한 것이지요. 인간은 신의 감정을 대행하는 기관입니다. 신은, 인간을 통하여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 인간을 창조한 것입니다. 인간은 신이 눈을 뜨고 도취된 결혼을 하기 위한 기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만약 인간이 감정적으로 무력하다면 신의 굴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3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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