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서설 박영신서 9
R.데카르트 지음 / 박영사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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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씨... 주제넘은 제 생각이오만은 당신의 사상들은 매력적이고 훌륭하지만 뭔가 어설프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5장 심장 생리학에 관한 내용이야 17세기 내용이니 지금보다 밝혀진 바가 적어서 그렇다는 것까지야 뭐라고는 안하겠지만, 신존재를 증명하는 부분이 상당히 뭔가 그렇습니다. 논리적으로 딴지 걸 수준도 안되고 저야 뭐 데카르트씨 발꼽의 때만큼도 못한 지적수준을 가진 자이지만, 우리가 완전하지 못한 존재임을 아는데 우리보다 완전한 그 무엇인가를 체득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우리에게서 인한 것이 아니므로 그 완전한 것은 신이라는 증명... 제 머리가 딸려서 납득이 안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어설픈 듯한 느낌이 드네요;;; 뭐 반론할 수준까지 되지 않으니 더 이상 뭐라고는 않겠지만은...암튼 그렇습니다.

그리고, 2장에서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의심하겠다고 말씀하신 당신이 3장에서 그래도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따를 도덕률이라는 것은 필요한 것이니 그것을 당신이 섬기고 있는 ‘위대한’ 국가와 교회가 정한 바에 따르겠다고 예외를 두신 것도 조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거기의 도덕기준을 빌려와서 준칙으로 삼았다는 근거가 없고 모호하기 때문이었지요. 그렇게 치열하게 진리를 찾으려는 당신의 의도와는 오히려 모순된 내용이 아닙니까?

딴지걸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하;; 다만 제가 당신의 저서를 읽어나가면서 마음 속에 생길 수 밖에 없었던 의문을 좀 이야기해본 것에 불과하니까요. 저야 뭐 아직 당신의 저서를 수박 겉핥기 정도로 밖에 읽어보지 못했으니까요.

그래도 1, 2장에서 대수학에서 좌표평면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여러 다방면에 뛰어난 학자였던 당신이 그것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절대 진리를 찾기 위해서 눈물겹도록 그것을 갈구하고 노력하는 학자의 정신을 보여주고, 탐구해 나가는 모습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습니다. 다만 저는 절대진리라는 것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편이기 때문에 저와는 맞지는 않았지만 진정한 학자의 자세를 당신에게서 발견했다고 느낀 것일까요? 아무튼 당신의 저서는 어설픈 감도 없잖아 있었지만 매력적이네요.

아직 한번도 다 못 읽어본 주제에 조심스레 제 생각을 써 보았습니다. 이제 마저 남은 장을 다 읽고 한 번 더 정독해봐야겠군요. 한 번 읽었다고 해서 진정으로 그 책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2004.11.21.


나에겐 상당히 나쁜 독서 습관이 있다. 한 권의 책을 진드감치 읽지 못한다는 점이다. 하나의 책을 읽다가도 다른 책이 재미있게 보이면 그 책을 읽었다가 이 책을 손댔다가 저 책을 손댔다가 하는 아주 좋지 않은 습관이다. 그래서 반 정도 읽었거나 심한 경우는 80%이상 읽었음에도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현재도 매우 많다.놀랍게도 데카르트의《방법서설》을 읽는 데는 정확히 1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방금 발견했다;; 구입시 서점에서 찍어준 도장에 2004.09.07이라 적혀있었으니 말이다.

각설하고, 작년에 읽다가 쓴 위의 감상문에도 나타나듯이, 어쩌면 이 책은 300여 년 전의 낡은 주장을 담고 있는 저서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이 21세기의 시대에 왜 뜬금없이 데카르트를 읽게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아! 떠올랐다. 재수학원에 다니던 시절, 내가 정말로 존경하던 나이 지긋하신 국어 선생님께서 권장하셨었지. 그래, "여러분 대학에 입학하시면 다른 책은 몰라도 이 책은 꼭 읽어봐야 할 것이다."라면서 적어주신 예닐곱 권의 고전 목록 중에 방법서설이 속해 있었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하면 꼭 읽어보리라 생각만 하다가 작년에 서점에서 구입했더랬지. 유명한 저서이니만큼 여러 출판사에서 나왔지만 박영사에서 출간된 이 책을 선택한 데에는 책 후반부에 뽈 발레리의 논평이 실려 있었다는 것이 큰 이유이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나는 존경하던 선생님께서 이 책을 꼭 읽으라고 권해 주셨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오늘날, 상대론이 온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시대에 이 책이 주장하는 것들은 귀엽기까지 할 정도로 낡은 주장들이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하랴. 최초로 '자아'의 '존재'라는 것에 대한 확실한 인식과 인간의 이성으로 절대 진리를 탐구하여 추구하겠다는 학자의 자세. 뼈를 깎는 철두철미한 진리추구를 위한 고결한 자세, 그리고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과 한계를 인식하는 자세, 비판을 받아들이려는 자세와 후세인들이 자신의 주장을 이해하고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를 원하는 소망. 이것이 진정한 학자의 자세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또한 마지막 6장에서 데카르트 본인이 밝혀서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학술에 관한 저서는 모두 라틴어로 발표되곤 했었는데, 데카르트는 프랑스어로 이 책을 발표했다고 한다.

[그 다음 내가 이것을 우리 스승들의 언어인 라틴어로 쓰지 않고 나의 모국어인 프랑스말로 쓰는 이유는, 아주 순수한 천부의 이성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고서만을 믿는 인사들보다 더 잘 내 의견을 판단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나는 연구와 양식을 겸전한 분들만을 나의 판관으로 삼고 싶다. 그러한 분들은 내가 속어로 설명한다고 해서 나의 논증을 듣기를 거부할 만큼 라틴어를 편중하지는 않을 줄로 믿는 바이다.   (p129.) ]

이러한 사실에서도, 이 저서에서 자신이 연구한 내용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더욱 발전되어 나가며, 혹시 있을 비판까지도 받아들이고픈 저자의 진정한 학문 도야의 자세가 여실히 잘 드러나고 있다. 철학서라기 보다는 자신이 학문을 닦아온 나날들을 커다란 자부심으로 성찰한 회고록같은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그래서 명성에 비해 몇 장 안 되어(190쪽의 이 저서의 2/5가 발레리의 비평이다;;) 독자를 놀라게 하는 이 17세기의 저서가 300년도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자연스런 수긍이 들게 되었다.

 

아, 그리고, 자신은 철학자가 아니므로 내용보다는 르네 데카르트라는 인간상에 대해 더 관심을 두고 논평을 했다는 뽈 발레리의 촌철살인적인 글도 매우 인상적이다ㅡ그의 비평을 읽으면서 나는 폭소를 터뜨리기도 해고, 많은 부분에서 가슴깊이 공감하기도 하였다. 내용이랑은 꼭 상관은 없이 정말 재미있었던 구절을 한 부분만 올린다면...

[대중이 요행 어떤 사색인과 그의 작품을 알게 되었을 때, 그 대중을 가장 감동시키고 가장 자극을 주는 것은 항상 따로 떼어진 어떤 관용구나 혹은 단언(斷言) 따위다. 그리고 그것은 역설이 가지는 충격적 힘 또는 부조리에 의한 단순화의 코믹한 힘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다윈의 온 노작도 전세기 후엽 30년 동안 그의 이름을 알고 있던 대중의 정신 속에는 결국 다음 몇 마디의 무게로 귀착되는 것이다ㅡ"인간은 원숭이의 후예이다"라고. 마찬가지로 17세기에는 데카르트라는 이름이 허다한 사람들에게 '동물=기계'라는 말을 생각케 했던 것이다.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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