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런 경험이 처음이었다. 몸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저기 있는 것. 쉬운 일이 아니었다. 쉽긴커녕 미칠듯한 기시감이 자꾸만 나를 10시간 전으로 15시간 전으로 20시간 전으로 24시간 전으로 돌려 나를 서울역에 세웠다가 드골공항에 세웠다가 부산역에 세웠다가 인천공항 리무진의 어느 좌석에 세웠다가 그랬다. 메멘토도 아니고 아이덴티티도 아닌데, 나는, 수없이 많은 내가 됐다. 나는 하늘에도 있었고, 땅에도 있었고, 빨간색 공중전화 박스 안에도, 파리의 길바닥에도 있었다. 제일 괴로운 건 거기에 그가 있고 여기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만 그를 생각하고, 나만 시간을 되돌리고 싶고, 나만 아쉬워하고 있고, 나만 그 말을 꼭 해야 했었다고 생각한다는 거였다.
견뎌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가 가자고 할 때 선뜻 따라나서지 못했던 것, 그게 어디든. 그의 손을 끝내 뿌리쳤던 것, 예쁘게 안녕이란 인사를 못했던 것, 마지막이 산뜻하지도 못했던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붙잡지도 못했던 것 같은 것들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그때 나는 앞으로 괜찮아질 거란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염없이 초라해졌다. 괜찮지가 않으니까, 후회가 많으니까, 딱 그만큼이 나라는 걸 그 누구도 아닌 내가 가장 잘 아니까, 그래서 내가 싫었다. 혼자 메멘토도 찍고 아이덴티티도 찍었다. 단독 주연. 그건 꽤 오랫동안 계속되었고, 추억으로 남겨진 시간의 세 배는 앓았다. 괜찮지가 않았다. 왜, 그때, 그 사람은 내게 그랬을까. 그걸 알 수가 없어서 시.분.초.침이 모두 벅찼다. 태어나 처음으로 시간이 가장 빨리 흘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 세상의 시간은 가장 느리게 움직이며 기어서 갔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올 때까지 나는 매일, 가을과 겨울에는 문득 그렇게 떠올렸다. 나와 낯선 도시와 그 도시에서 듣던 음악과 걸었던 거리와 머리를 채우던 생각과 말로는 표현못할 어떤 정취를.
난 이제 여기, 있다. 그는 어딨는지 모른다. 이 순간에 그가 무얼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밤이 아니라, 무언가에 쫓기듯 추억을 짜내면서가 아니라, 맑은 정신으로 이른 아침에 듣는 에피톤은 추억에 젖게 하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 나는 이성적이다. 박효신의 '추억은 사랑은 닮아'를 흥얼거리던 시절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추억은 정말로 사랑을 닮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랑의 종류가 수십만 가지란 걸 몰랐던 건 아니지만 추억의 종류가 여러가지라는 건, 그게 사랑을 닮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비록 사랑이든 추억이든, 둘 중 어느 쪽이어도, 둘 다여도 전혀 상관없게 된 다음에야 잊혀지지 않음으로서 잊혀져갔다.
잊혀지는 건 바래지는 것과는 다르다. 가을방학이 나왔다. 시간을 건너든 세월을 건너든 그런 걸 허락하지 않는 가을방학이 말했다. 지금 당장이 더 소중하지 않냐고. 끄덕이며 노트를 펼쳐 적었다. Long Story Short. 그렇지만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그리고 덮었다. 앞의 글자는 파란색, 뒤의 글자는 빨간색이었다. 눈에 띄는 밑줄도 그었다. 간혹이면 족하다. 매일이면 달아나게 된다. 마음은 움직여야 한다. 언제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마음이 시차를 극복하고, 국경을 넘는 기차를 타고, 터미널과 플랫폼에서 그리워하는 건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가끔 아무나 꽉 껴안고 싶은 충동과 같은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어느 날 밤에는.
그리움은 혼자일 때 오지만, 그가 나를 그리워하고 내가 그를 그리워한다 해서 그리움이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리움은 어떠한 경우에도 늘 혼자다. 친구는 아프다는 말을 하지 못한 채 갔다. 스무살 나는 그애의 입술이 내 귓가를 스치는 그 짜릿한 전율을 여전히 기억한다. 한여름밤 여행지에서의 축축한 키스나 아주 추운 날 입술에 닿던 따뜻한 입김보다 더 시끄러운 곳에서 귓속말할 때 전해져오는 그 뜨거운 숨결이 오래 남았다. 그와 나는 친구일 뿐, 그 무엇도 아니었는데도.
그애는 해병대에 갔고 두세번쯤 편지가 오갔고 나중에 학교에 그애 학번과 이름으로 혈액샘플을 구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그게 그애일까. 믿기에는 오래 뜸했고 확인하기에는 가슴 뛰게 벅차서 차라리 외면했다. 모든 것이 낯설지만 모든 것에 꿈과 희망이 가득했던 한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는 내가 현실을 부정하거나 알아보지 않으려 하던 그 짧은 순간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사람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다. 나중에는 알면서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가족을 찾아갈 수도, 그때 함께 만난 다른 친구를 찾아갈 수도, 오열할 수도, 화를 낼 수도, 미안해할 수도 없었다. 이 앨범을 이영현의 목소리로 들으면서는 왜 그애가 생각났을까. 지독하게 짧은 순간을 공유한 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와 약간의 어색함과 침묵으로 다가올 미래를 기다리던 우리의 '우정'이 예고도 없이, 만남도 없이 갑작스레, 그렇게 어이없이 끝나버렸던 그 순간 느낀 자책이, 떠오르게 했다.
이건 음반리뷰가 아니다. 음악에 대한 얘기도 아니고 뮤지션에 대한 얘기도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한없이 소소한 살아온 날, 살아갈 날에 대한 이야기다. 아주 가끔은 시공간을 초월해 존재하고 싶은, Good Bye이란 말로 끝내지 못한, 이유없이 작별한, 여전히 그 시간에 매달려 거꾸로 걷고 있는 듯한 내 이야기다.
그래서 궁금하다. 당신은 지금 어느 도시를 그리도 하염없이 걷고 있는지. 우리 다시 만날 수나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을, 자책과 공허를, 미칠 것 같은 전율을 어떻게 견디며 살아야 하는지를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 누가 알려줄 수 있는지.
이렇게 날 지나쳐가거나 나와 함께 걸었던 이들이 있는데, 이제는 그들을 진짜 만나기나 했었는지 의심스럽다. 지나간 추억의 시간들에 웃음과 눈물과 꽃을 뿌려준 건 그들인데, 이렇게 나만 남아서 시간을 곱씹고, 내게만 환상처럼 남아서 나만 다른 세상을 사는 것 같다. 우린 함께인 적이 있었을까. 지금은 함께가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디있고, 당신은 어디 있을까. 내 옆에는 아무도 없다.
모든 음악은 내게, 매 순간순간 항상, 이토록 벅차다.
한 번씩 불쑥 고개를 치켜들고 솟아오르면 난 뭐 어떻게 할 재간이 없다.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사랑과 그리움과 죽음과 이별에 대해 말하려니 늘 서툴고 낯설다.
오늘도 아침부터 딸기 아이스크림을 간절히 부르는 계절이다.
피서가 아니라 추운 나라로 도피하고 싶다. 그리고 도피는 오랫동안 아니 영원히 끝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