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이런 아이의 열성에 우리가 잠시 분별력을 잃었던 것은 아닐까? 아이가 고작 단어 몇 개에 흥미를 보인다고 해서 마치 당장 온갖 책을 섭렵할 수 있게 된 듯 착각에 빠졌던 것은 아닐까? 걸음마를 익히고 말을 배우듯, 책 읽는 습관도 때가 되면 저절로 익히리라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요컨대 독서도 직립 보행이나 언어 구사 못지않게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일 텐데 말이다. 어찌 되었든 바로 그즈음에 우리는 저녁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걸 그만두기로 했다. - P54

우리는 ‘교육자‘를 자처하지만, 실은 아이에게 성마르게 빚 독촉을 해대는 고리대금업자‘와 다를 바가 없다. 말하자면 얄팍한 ‘지식‘을 밑천 삼아, 서푼어치의 ‘지식‘을 꿔주고 이자를 요구하는 격이다. 우리가 받은 지식을 돌려주어야 한다. 아무런 조건 없이, 될수록 빨리! 그렇지 않으면, 무엇보다 바로 우리 자신부터 의심을 해봐야 할 것이다. - P59

아이들에게 자연스레 책 읽는 습관을 들이려면 단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마치 무슨 성벽이라도 두르듯 책에 대한 사전 지식을 동원하지 말아야 한다. 그 어떤 질문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읽는 것에 대해 조금도 부담을 주지 말고, 읽고 난 책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보태려들지 말아야 한다. 섣부른 가치 판단도, 어휘 설명도, 문장 분석도, 작가에 대한 언급도 집어두어라. 요컨대 책에 관한 그 어떤 말도 삼가라.
책을 읽어주는 것은 선물과도 같다.
읽어주고 그저 기다리는 것이다. - P164

책이란 우리의 아들딸이나 청소년들이 읽은 뒤 설명하라고 쓰인 게 아니라, 마음에 들면 읽으라고 쓰인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 독서를 하면서 가장 먼저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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