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56~57
일부 권력자들의 심각한 오용(誤用) 때문에 대한민국에서는 ‘법치주의‘라는 말이 큰 오해를 받고 있다. 법치주의는 법률과 형벌로 국민을 다스리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법률과 형벌로 국민을 다스리는 것은 권력 그 자체의 속성이기 때문에 어떤 주의(主意)도 필요하지 않다. 법치주의는 권력이 이러한 속성을 제멋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권력자가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려고 만든 원칙이다.
법치주의는 통치받는 자가 아니라 통치하는 자를 구속한다. 권력자가 주관적으로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헌법과 법률이 그에게 위임한 권한의 범위를 넘어서,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방법의 한계를 넘어서 그 의도를 실현하기 위한 권력행사를 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법치주의에서 일탈하면 권력은 정당성을 상실하며, 정당성이 없는 국가권력에 대해서는 복종할 의무가 없다.
p. 122~3
지식인과 언론인들은 광장에 한 점의 쓰레기도 남기지 않았던 촛불시민의 수준 높은 의식과 행동을 다투어 예찬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의 어리석음을 내놓고 지적한 이는 별로 없었다. 물론 국민은 주권자이니 선거에서 누구든 선택해도 되고, 또 뽑아놓은 대통령에게 사임을 요구해도 된다. 그게 주권재민의 원리를 천명한 우리 헌법의 원리다. 그러나 다수의 유권자가 현명하지 않은 선택을 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주권자의 선택이 언제나 훌륭하고 합리적인 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