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노래

                                   김재진  



지나간 노래를 들으며
지나간 시절을 생각한다.
뜨거웠던 자들이 식어가는 계절에
지나간 노래에 묻어 있는
안개빛을 만나는 것은 아프다.
너무 빨리 늙어가고 싶어하는
친구들을 만나는 것 보다
아프다.
누군가 나를 만나며 아파야 할
그 사람을 생각하면
지나간 노래를 들으며
지나간 시절을 생각하는 것은 아프다 .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발~* 2004-04-27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안부 

                                    김시천  

때로는 안부를 묻고 산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안부를 물어오는 사람이 어딘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그럴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사람 속에 묻혀 살면서
사람이 목마른 이 팍팍한 세상에
누군가 나의 안부를 물어준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가슴 떨리는 일인지
사람에게는 사람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걸
깨우치며 산다는 건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오늘 내가 아는 사람들의 안부를
일일이 묻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감산자전](감산 지음. 대성 옮김, 여시아문, 2003) 중에서

===========================

내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죽고 사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많이 걱정하셨지요?"

어머니가 말했다. "죽고 사는 것이야 정해져 있지. 나 자신도 걱정하지 않는데 자네를 왜 걱정하겠나..."..."자네는 도로써 몸을 잘 가누시고, 내 걱정은 하지 마시게. 이번에도 자네와 오래 헤어지게 되었네. 기쁜 마음으로 가시고, 뒤를 돌아보지 마시게."

나는 천하의 어머니들이 이와 같은 사람이라면, 어찌 단박에 '죽고 사는 마음'을 다하지 못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어머니를 위해 이러한 명(銘)을 지었다.

어머니와 자식의 정은 자석이 바늘을 끌어당기듯 하지만

타고난 묘한 성품은 본래 그대로 원만히 이루어져 있네.

내가 우리 어머니를 보니, 나무에서 불이 나온 것 같아서

나무는 이미 타 버렸지만 불에는 본래 '나'가 없다네.

살아서도 그리워하지 않고, 죽어서도 모르는 척하시니

이제야 내 몸뚱이야말로 석녀가 낳은 것임을 알겠네.                  (p.115)

===========================

분별은 마음이고 분별 없는 것이 지혜이다. 마음에 의지하면 물들게 되고, 지혜에 의지하면 깨끗해진다. 물들면 생사에 윤회하고, 깨끗하면 여러 부처님조차 없다.  (p.77)

===========================

여러분은 나고 죽는 일이 크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죽음은 금방 닥쳐옵니다. (p.181)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발~* 2004-04-24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산 스님 저작 벌써 저도 찾아놓았는데, 이렇게 리스트도 만들어주시다니! 찜합니다~

이누아 2004-04-24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고 리스트를 만들었다면 더 알찼을텐데...이런 생각도 들지만 다 읽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리스트부터 먼저 만들었습니다.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면 더할나위없이 기쁩니다.
 
감산자전
감산 지음, 대성 옮김 / 여시아문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감산 스님이 해설하신 중용을 읽고는 이 스님이 쓰신 책 중 번역된 책들을 죄다 찾아서 사 두었다. 하나씩 읽을 생각이었는데 그중 가장 먼저 든 것이 이 책이다. 어느 제자가 스님의 자서전을 청하였더니 금방 써서 주셨다고 한다.

주로 사건 중심으로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곳곳에 스님의 체험 등이 엿보인다. 참선을 해도 금방 깨치시고, 글을 배우실 때는 책을 완전히 외우시는 데 별로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아, 그러니 이 사람은 천재로구나 하고 나와 관계 없는 사람인양 쳐다볼 뻔 하였다. 그런데 그 어머니를 보니 생각이 좀 달라진다. 그의 어머니는 관세음보살을 일념으로 염하는 분으로 아들의 출가를 막지 않으셨고, 출가한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아들이 귀양을 갔을 때에도 '나도 생사에 집착하지 않는데 너의 생사를 걱정하랴'고 위로하신다. 참으로 그 어머니가 생사의 큰 일을 해결한 분이 아닌가 싶다. 그런 어머니 아래 태어나 어려서 출가하여 대중을 교화함에 위로는 왕실과 아래로는 불교를 모르는 바닷가 사람에 이르기까지 미치지 않는 바가 없고, 홀로 수행함에 그 경계가 범인이 이를 수가 없었다. 출생부터 그런 어머니를 만난 인연을 보건대 전생의 수행함이 이미 이 경지에 이르러 사람몸을 받았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니 이 사람이 천재니 나와 다르다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밥 먹듯이 물 마시듯이 묵묵히 수행하다 보면 아 그 사람의 경계가 그러했구나 할 날이 있으리라는 희망이 오히려 생긴다.

깨달아도 세상이 변하는 것은 아니라, 업은 업대로 가고 깨달음은 깨달음대로 간다. 깨친 후에도 귀양을 다니고 무고를 당함을 보니 그러하다. 깨달음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것은 진리를 알고자 하는 것이요, 자신이 누구인지 보고자 하는 것이요, 바른 견해를 갖고자 하는 것이리라.

누가 내게 자서전을 써보라 한다면 오늘 내게 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오늘 수행한 이야기가 내일의 글이 될 수 있을 뿐이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발심자경문은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쓰신 "계초심학인문"(戒初心學人文)과 원효스님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원효 스님의 제자인 야운 비구의 "자경문"(自警文)이라는 세 글을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다.

주로 계를 받기 전 행자나 사미나 사미니 스님들이 이 글을 배운다. 이 글을 다 배워 익혀야만 강원에 갈 수도 있다. 출가자 위주의 서적이라 해도 무방하지만 출가자나 재가자나 진리를 구하는 한 마음이 일어나는 그때가 "초심"이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글이다.

초발심자경문을 한 글자 한 글자 익히고자 한다면 혜국 스님의 강의는 적절하지 않다. 스님의 강의는 매월 초하루 법문이 이어진 것이고, 대중을 위한 것이라 시주자에게 보시물을 받을 때의 스님들의 자세 등 출가자에게만 해당하는 부분은 건너 뛰고 주로 재가자들이 실천할 수 있는 부분을 강조해서 강의를 하신다. 더구나 자경문 강의는 이루어져 있지 않다. 초발심자경문이 대강 어떤 글인가 가볍게 알고 싶다면 그냥 들어도 좋고, 아니면 스스로 서적을 통해 온전히 익힌 다음 강의를 들어도 좋을 듯 싶다.

강의의 첫부분...처음 마음의 사람(初心之人)은 반드시 이제 막 불문에 들어온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진리를 구해야 겠다는 마음이 이는 그 순간은 출가자이든 재가자이든, 불교인이든 아니든 모두가 처음 마음을 일으키는 그 사람인 것이다. 악한 벗을 멀리하고 어질고 선한 벗을 가까이 하라는 것은  외부의 사람이나 대상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악한 생각이 곧 악한 벗이라고...

스님도 나처럼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을 가장 좋아하신다고. 원효 스님이 파계하고 아무렇게나 지내셨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 글에서 그분이 고행을 통해 구도했음을 알 수 있다.

"메아리 울리는 바위동굴로 염불법당 도량삼고 슬피우는 기러기 울음으로 마음 기쁜 벗을 삼아 예불 참선에 무릎이 얼더라도 불기운 그리지 않고 주린 배 창자가 끊어지는듯 해도 먹거리 찾을 생각 내지 말지니 눈 깜짝새에 백년세월 가는 데 어찌 배우지 않을 것이며 일생이 얼마나 되기에 닦지 않고 방일하겠는가"

 읽어도 읽어도 좋은 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