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詩作)

 

 

아직도 못 다 새긴 자화상이 있어서

잦아가는 육신에 기름을 붓고

밤마다 나를 태워서

더듬더듬 너를 그린다.

 

 

 

팽이

 

쳐라, 가혹한 매여 무지개가 보일 때까지

꼿꼿이 서서 너를 증언하리라

무수한 고통을 건너

피어나는 접시꽃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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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에 빌려서 오늘이 가기 전에 다 읽었다. 이런 게 소설의 속도인가. 나는 오늘 읽었는데 영화도 나오고, 속편도 나와 있다. 괜찮다. 내가 읽은 책은 해변의 모래 몇 알도 안 되니까.

 

비가 오고 나는 커피가게에 앉아 있었다. 아이들을 블럭방에 보내고 혼자 앉아 책 읽는 여유. 행복하다, 고 말할 뻔 했다. 그리운 사람이 또렷하게 그리워지는 건 행복한 일일지도. 트집을 잡는다면...이 여유를 온전히 돈을 지불해서 얻고 있고 있다는 정도...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것을 꼽으라면 죽음과 사랑이다. 잊을 수 없는 고통과 환희...삶을 더 강렬한 무언가로 만드는 죽음이라는 배경이 전면에 나선 상태에서의 사랑이라면 더 말해서 뭐할까.

 

윌의 고통을 생각한다. 사람과 세상과 가장 단절을 느낄 때가 고통스러울 때다. 문병을 오는 사람은 꽃을 들고 오지만 아픈 이는 향기를 맡을 기력이 없다. 힘내라, 하는 말이 힘낼 수 없을 것 같은 내게 공허하기도 하고, 무겁기도 했다. 사실, 그럴 때 연애 같은 건 사치처럼 느껴진다. 나눌 수 없고, 나누기도 싫은 고통. 시간이 지나서 낫는다면 모르지만 언제 또 그 고통이 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고통에 두려움이 더해진다. 윌은 그 고통을 끝내고 싶다. 클라크를 사랑한다니까. 그렇지만 고통 속에서는 싫다니까. 사랑하면 모든 게 나아질 거라는 순진한 아가씨, 아무리 사랑해도 그 고통이 내 안에 있다고, 어떨 땐 내 존재가 고통이라고, 이 휠체어가 내 존재를 규정한다고. 그런 나로 살고 싶지 않다고.

 

클라크는 생각한다. 사랑하는데 어떻게 내게 기회 한번 주지 않을 수 있지? 날 떠나는 걸 선택할 수 있지? 클라크를 이해한다. 죽고 싶다고 했을 때 그 아이가 그랬다. 어떻게 내가 있는데 그런 생각을 하지? 사랑이 삶을 얼마나 빛나게 할 수 있는지 윌도 나도 느꼈다. 나는 윌처럼 고통이 내 존재가 되지 않아서 그 빛 속에 머무르고 있다. 윌과 클라크도 그랬더라면 좋았을까. 아무 것도 되돌릴 수 없는 죽음 앞에서 가정이나 정답은 없다. 그러나 사랑은 타인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결국 자기 자신이 변하는 것이다. 윌도 변했을 것이다. 변했다. 그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죽음을 맞았으리라 생각한다. 클라크가 새로운 삶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처럼.

 

장마는 장마인가 보다. 오늘은 비가 내리고, 비가 내린다.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기에 적당한 날씨다. 바람이 서늘하니 좋다.

 

 

 

여기서는 내 마음속의 생각들이 들렸다. 심장박동 소리마저 들리는 것 같았다. 그게 너무 좋아서 내심 깜짝 놀랐다. -p. 112

침 반듯한 신사야, 엄마 아빠는 그가 떠나고 나서도 족히 한 시간 동안 계속 감탄하셨다. 진짜 점잖은 신사구만,-p. 260

버밍엄에 사는 그레이스31은 이렇게 썼다. "애인이요. 사랑이 있다면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될지도 몰라요. 사랑이 없었다면 아마 저는 이미 수백 번도 넘게 절망에 빠졌을 겁니다."-p. 299

"어떤 실수들은...유달리 커다란 휴유증을 남기죠. 그렇지만 당신은 그날 밤 일이 당신이란 사람을 규정하도록 그냥 두고 보고만 있을 이유는 없어요."
내 쪽으로 더욱 기울어지는 그의 머리가 느껴졌다.
"그런 일이 못 일어나게 하는 게 클라크, 당신이 가진 선택권이니까."
그때 내게서 빠져나온 한숨은 길고, 온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록 깊었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거기 그렇게 앉아서, 그가 한 말이 온전히 의미를 갖도록 곱씹었다. 밤새도록이라도 그렇게 머물러 있을 수 있었다. 발치에 있는 나머지 세상을 내려다보며 윌의 따뜻한 손길을 내 손 안에 품었다. 내 최악의 모습이 천천히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걸 느끼며.-p. 361

"내가 무슨 생각인지 나도 몰라. 내가 아는 거라곤 그저 내가 아는 다른 누구보다 그와 함께 있고 싶다는 것뿐이야."-p. 413

언니는 할 수 있어. 언니가 자랑스러워서 내가 돌아버리겠어. XXX-p.452

이렇게 산다는 건 지치는 일이에요. 그 피로감은 AB가 결코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겁니다. 그의 결심이 확고하다면, 정말로 그가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도저히 볼 수 없다면, 그렇다면 내 생각에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거기 함께 있어주는 거예요. 그 사람이 옳은지 당신이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그곳에 꼭 함께 있어주어야 해요.(리치)-p.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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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dy_to_you. 2016-07-17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슬픈 결말. . . 흑. . ㅜㅜ
 
우리 문장 쓰기 오늘의 사상신서 155
이오덕 지음 / 한길사 / 199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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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과 남 모두에게 정직하게 글을 써야겠다. 익숙해서 아무렇게나 쓰는 한자어와 외래어를 살펴봐야겠다...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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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읽었다 - 설악 무산 조오현, 한글 선시
권성훈 엮음 / 반디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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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오현 시인은 시조시인이자 스님이다. 이 분의 시를 읽고 감상을 적은 문학가들의 글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가려뽑은 시들이라 그런가 시들이 담담하고 읽기 편안하다. 또 선풍이 배어나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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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밑줄긋기를 하다보니 밑줄 그은 게 모두 세 번째 이야기다. 나머지 얘기를 배경으로 두고 나는 영혜의 언니를 보고 있다.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르는 말을 천천히 가라앉히며 책을 덮는다. 말할 수 없거나 말하기 싫은 것은 할 말이 있다는 말 같다. 나는 누구에게 할 말이 있는 걸까. 특히나 말이 없는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사이를 유령처럼 걸어본다.

p.161 당신은 나에게 과분해.
결혼 전에 그는 말한 적이 있었다.
당신의 선량함, 안정감, 침착함, 살아간다는 게 조금도 부자연스럽지 않아 보이는 태도......그런 게 감동을 줘.

p.166 막을 수는 없었을까. 두고두고 그녀는 의문했다. 그날 아버지의 손을 막을 수는 없었을까. 영혜의 칼을 막을 수는 없었을까. 그리고 남편이 영혜에게 저지른 일을, 이제는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값싼 추문이 되어버린 그 일을 돌이킬 수 없었을까. 그렇게 모든 것이-그녀를 둘러싼 모든 사람의 삶이 모래산처럼 허물어져버린 것을, 막을 수는 없었을까.

p.169 그녀는 계속해서 살아갔다. 등뒤에 끈질긴 추문을 매단 채 가게를 꾸려나갔다. 시간은 가혹할 만큼 공정한 물결이어서, 인내로만 단단히 뭉쳐진 그녀의 삶도 함께 떠밀고 하류로 나아갔다.

p.175 입술을 단단히 다문 채 그녀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약한 마음 먹지 마. 어차피 네가 지고 갈 수 없는 짐이야. 아무도 너를 비난하지 않아. 이만큼 버티는 것도 잘하고 있는 거야.

p.190 ...언니도 똑같구나.
그게 무슨 소리야. 난...
아무도 날 이해 못해...의사도, 간호사도, 다 똑같아...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으면서...약만 주고, 주사를 찌르는 거지.

p.191 ...왜, 죽으면 안되는 거야?

p.214 기껏 해칠 수 있는 건 네 몸이지. 네 뜻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게 그거지. 그런데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지.

p.221 ...이건 말이야.
그녀는 문득 입을 열어 영혜에게 속삭인다. 덜컹, 도로가 파인 자리를 지나며 차체가 흔들린다. 그녀는 두 손에 힘을 주어 영혜의 어깨를 붙든다.
...어쩌면 꿈인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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