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점은 매우 만족
물건을 사거나 고장난 전기 제품을 수리하고 나면 얼마나 만족했는지 생각할 기회가 생겨. 거기에는 어김없이 별 다섯 개가 있고, 나는 그중에 몇 개의 별에 빛을 줄지 결정해. 이런 질문이 생긴 아주 초기에는 매우 만족한다고 하긴 뭐하지만 만족은 하지, 하면서 별 넷을 선택하곤 했어. 그런데 한 서비스 기사가 “웬만하면 매우 만족해 주세요! 만족할 수 없는 부분이 있으면 얘기해 주시고요” 하는 거야. 그 이후로 내가 흡족한가보다는 불만이 없으면 별 다섯을 줘.
아이들 1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교원평가 학부모 만족도 조사’에 꼭 참여하라고 하시면서 별 다섯 개는 100점일 때 주는 게 아니라 80점에서 100점 사이에 주는 거라고 하셨어. 별 넷은 60점에서 80점, 별 셋은 40점에서 60점이라면서 후하게 점수를 달라고 하셨지. 숫자로 바꿔 놓으니까 저절로 후해져. 별 다섯을 100점이라고 생각하니까 주기가 어려웠던 거였어.
너무 많은 선택지 때문에 별의 개수가 필요할 때가 있어. 입어 보지 않고, 사용해 보지 않고, 읽지 않은 것을 사는 일이 늘어나. 그런 필요가 아니라도 별풍선, 좋아요, 조회 수, 구독자 수... 거의 모든 활동에 별표를 하게 돼. 대개 개수가 많기를 바라지. 없으면 실망하게 되고, 글이나 영상에 대한 평가를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이게 되고. 별표가 주어진 환경에 있다면 별표를 무시하기는 쉽지 않아. 작년에 우리 큰애 반은 승점과 벌점 제도를 운영했는데 아이가 승점을 받기 위해 얼마나 긴장했는지 딱할 정도였어.
맥스 루케이도의 『너는 특별하단다1』(고슴도치, 2002)에서 나무 사람인 웸믹들은 금빛 별표와 잿빛 점표가 든 상자를 들고 다니며 서로에게 붙여 줘. 주인공인 펀치넬로는 늘 잿빛 점표를 받았어. 점표를 받을까 봐 나가는 게 두려웠지. 어느 날 루시아라는 아이를 만나는데, 그 애 몸에는 점표도 별표도 붙어 있지 않아. 루시아를 통해 엘리 아저씨를 알게 돼. 아저씨는 별표나 점표는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할 때만 붙는 거라고 말해 줘.
이 책에선 누구나 아주 특별하고, 엘리(조물주)의 사랑을 깊게 신뢰하라고 해. 나는 내가 특별하다고 여기지 않고, 누군가의 사랑을 깊이 신뢰해야 표들이 내게서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사랑과 인정은 생존의 필수 요소라고 생각해. 그래서 사랑과 인정의 대상을 달리 선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 이 동화를 바꿔 읽어.
내게는 누가, 무엇이 중요할까. 나는 가족과 이웃에게 얼마나 완벽하길 바라는 걸까. 중요하지 않은 점표에 얼마나 자주 휘청대는 걸까. 자세히 보면 별표가 점표고, 점표가 별표일지도 모르는데, 어쩌면 오늘 받은 별표가 내일은 점표가 될 수도 있을 텐데 말이야. 불만족이 발전의 바탕이라지만 요즘은 “이만하면 됐다”는 엄마의 말버릇을 내 것으로 하고 싶어. 80점도 매우 만족이라니 좋아. 알고 보면 오늘도 매우 만족이지. 별 개수를 잊을 만큼 내 삶에서 평가를 내려놓을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점표도 별표도 후두두 떨어뜨리면 더 더 좋겠지만, 그렇게 못하더라도 오늘은 매우 만족.
꽃밭
_윤석중
아기가 꽃밭에서
넘어졌습니다.
정강이에 정강이에
새빨간 피.
아기는
으아 울었습니다.
한참 울다
자세히 보니
그건 그건 피가
아니고
새빨간 새빨간
꽃잎이었습니다.
-윤석중, 『꽃밭』(파랑새,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