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한 기분일 때
비가 와. 비가 와서 나는 좀 서늘한데 아이들은 속옷만 입거나 아예 웃통을 벗고 있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우리는 얼마나 다른 온도로 살아가고 있는 건지.
아이들이 종일 컴퓨터에 붙어 있는 것처럼 느껴져. 오전엔 학교 온라인 수업을 듣고, 오후엔 영어 학원 온라인 수업을 듣거든. 그 시간을 빼면 주로 다투는 데 힘을 써서 웬만하면 나가게 해. 마스크를 하고 자전거를 타. 어제는 작은애 자전거를 새로 샀어. 새로 산 자전거를 타고 싶은데 비가 온다고 아침부터 툴툴거리네.
큰애랑 장난을 치는 건지 싸우는 건지 뭔가 점점 격렬해지는 것 같아 그만두라고 말하는 찰나, 작은애가 다급하게 나를 불러. 손가락이 부러진 것 같다며. 얼음찜질해 주고 병원에 가자니까 조금만 더 있어 보자고 안 가려고 하네. 창밖에 비가 있든 해가 있든 아이들은 불타오르고 있어. 찬물을 끼얹어 봐도 다시 살아나고, 살아나는 불덩어리. 살아나서 힘들고, 살아나서 다행이고. 손가락도 얼른 살아나서 막 움직이면 좋겠다.
점심을 먹었는데도 배가 고파. 배가 고파서 이것저것 먹어도 체중은 조금씩 빠지고 있어. 집에 있어도 평소보다 열량을 더 많이 태워야 할 정도로 몸이 뭔가 열심히 하는 걸까. 아니면 몸은 서늘해도 마음에 불덩이가 있는 걸까. 밖에 나가서 식히고 와야 할까. 얘기하는 사이 큰애는 벌써 나가고 없네. 나도 잠시 나가고 싶어. 엄마라는 자리에서.
불참
_김경미
너무 허름한 기분일 때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가
미안하다 오후 여섯시여, 오늘 나는 참석지 못한다
-김경미 『고통을 달래는 순서』(창비,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