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만 낙조

 

그날 저녁은 유별나게 물이 붉다붉다 싶더니만

밀물 때나 썰물 때나 파도 위에 떠 살던

그 늙은 어부가 그만 다음날은 보이지 않네

 

 

아지랑이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

돌아봐야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

우습다

내 평생 헤매어 찾아온 곳이 절벽이라니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

우습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엉그름

 

우리 절 상머슴은

논두렁을 하다가는

 

시님요 시님요 사람들은

지 몸에서 도랑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카는데요

목마름은 끝없니더

 

삶이란 얼레미 논바닥

엉그름을 누가 다 막고 살겠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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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詩作)

 

 

아직도 못 다 새긴 자화상이 있어서

잦아가는 육신에 기름을 붓고

밤마다 나를 태워서

더듬더듬 너를 그린다.

 

 

 

팽이

 

쳐라, 가혹한 매여 무지개가 보일 때까지

꼿꼿이 서서 너를 증언하리라

무수한 고통을 건너

피어나는 접시꽃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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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에 빌려서 오늘이 가기 전에 다 읽었다. 이런 게 소설의 속도인가. 나는 오늘 읽었는데 영화도 나오고, 속편도 나와 있다. 괜찮다. 내가 읽은 책은 해변의 모래 몇 알도 안 되니까.

 

비가 오고 나는 커피가게에 앉아 있었다. 아이들을 블럭방에 보내고 혼자 앉아 책 읽는 여유. 행복하다, 고 말할 뻔 했다. 그리운 사람이 또렷하게 그리워지는 건 행복한 일일지도. 트집을 잡는다면...이 여유를 온전히 돈을 지불해서 얻고 있고 있다는 정도...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것을 꼽으라면 죽음과 사랑이다. 잊을 수 없는 고통과 환희...삶을 더 강렬한 무언가로 만드는 죽음이라는 배경이 전면에 나선 상태에서의 사랑이라면 더 말해서 뭐할까.

 

윌의 고통을 생각한다. 사람과 세상과 가장 단절을 느낄 때가 고통스러울 때다. 문병을 오는 사람은 꽃을 들고 오지만 아픈 이는 향기를 맡을 기력이 없다. 힘내라, 하는 말이 힘낼 수 없을 것 같은 내게 공허하기도 하고, 무겁기도 했다. 사실, 그럴 때 연애 같은 건 사치처럼 느껴진다. 나눌 수 없고, 나누기도 싫은 고통. 시간이 지나서 낫는다면 모르지만 언제 또 그 고통이 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고통에 두려움이 더해진다. 윌은 그 고통을 끝내고 싶다. 클라크를 사랑한다니까. 그렇지만 고통 속에서는 싫다니까. 사랑하면 모든 게 나아질 거라는 순진한 아가씨, 아무리 사랑해도 그 고통이 내 안에 있다고, 어떨 땐 내 존재가 고통이라고, 이 휠체어가 내 존재를 규정한다고. 그런 나로 살고 싶지 않다고.

 

클라크는 생각한다. 사랑하는데 어떻게 내게 기회 한번 주지 않을 수 있지? 날 떠나는 걸 선택할 수 있지? 클라크를 이해한다. 죽고 싶다고 했을 때 그 아이가 그랬다. 어떻게 내가 있는데 그런 생각을 하지? 사랑이 삶을 얼마나 빛나게 할 수 있는지 윌도 나도 느꼈다. 나는 윌처럼 고통이 내 존재가 되지 않아서 그 빛 속에 머무르고 있다. 윌과 클라크도 그랬더라면 좋았을까. 아무 것도 되돌릴 수 없는 죽음 앞에서 가정이나 정답은 없다. 그러나 사랑은 타인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결국 자기 자신이 변하는 것이다. 윌도 변했을 것이다. 변했다. 그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죽음을 맞았으리라 생각한다. 클라크가 새로운 삶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처럼.

 

장마는 장마인가 보다. 오늘은 비가 내리고, 비가 내린다.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기에 적당한 날씨다. 바람이 서늘하니 좋다.

 

 

 

여기서는 내 마음속의 생각들이 들렸다. 심장박동 소리마저 들리는 것 같았다. 그게 너무 좋아서 내심 깜짝 놀랐다. -p. 112

침 반듯한 신사야, 엄마 아빠는 그가 떠나고 나서도 족히 한 시간 동안 계속 감탄하셨다. 진짜 점잖은 신사구만,-p. 260

버밍엄에 사는 그레이스31은 이렇게 썼다. "애인이요. 사랑이 있다면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될지도 몰라요. 사랑이 없었다면 아마 저는 이미 수백 번도 넘게 절망에 빠졌을 겁니다."-p. 299

"어떤 실수들은...유달리 커다란 휴유증을 남기죠. 그렇지만 당신은 그날 밤 일이 당신이란 사람을 규정하도록 그냥 두고 보고만 있을 이유는 없어요."
내 쪽으로 더욱 기울어지는 그의 머리가 느껴졌다.
"그런 일이 못 일어나게 하는 게 클라크, 당신이 가진 선택권이니까."
그때 내게서 빠져나온 한숨은 길고, 온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록 깊었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거기 그렇게 앉아서, 그가 한 말이 온전히 의미를 갖도록 곱씹었다. 밤새도록이라도 그렇게 머물러 있을 수 있었다. 발치에 있는 나머지 세상을 내려다보며 윌의 따뜻한 손길을 내 손 안에 품었다. 내 최악의 모습이 천천히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걸 느끼며.-p. 361

"내가 무슨 생각인지 나도 몰라. 내가 아는 거라곤 그저 내가 아는 다른 누구보다 그와 함께 있고 싶다는 것뿐이야."-p. 413

언니는 할 수 있어. 언니가 자랑스러워서 내가 돌아버리겠어. XXX-p.452

이렇게 산다는 건 지치는 일이에요. 그 피로감은 AB가 결코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겁니다. 그의 결심이 확고하다면, 정말로 그가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도저히 볼 수 없다면, 그렇다면 내 생각에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거기 함께 있어주는 거예요. 그 사람이 옳은지 당신이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그곳에 꼭 함께 있어주어야 해요.(리치)-p.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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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eunwoo 2016-07-17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슬픈 결말. . . 흑. . ㅜㅜ
 
우리 문장 쓰기 오늘의 사상신서 155
이오덕 지음 / 한길사 / 199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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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과 남 모두에게 정직하게 글을 써야겠다. 익숙해서 아무렇게나 쓰는 한자어와 외래어를 살펴봐야겠다...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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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읽었다 - 설악 무산 조오현, 한글 선시
권성훈 엮음 / 반디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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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오현 시인은 시조시인이자 스님이다. 이 분의 시를 읽고 감상을 적은 문학가들의 글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가려뽑은 시들이라 그런가 시들이 담담하고 읽기 편안하다. 또 선풍이 배어나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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