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는 신()이 되고 싶어요.

-신이 뭔지 알아?

-. 뭐든지 다 알고 죽지 않는 게 신이에요.

-누가 얘기해줬어?

-아뇨. 안 가르쳐줘도 알아요. 신은 바로 산타클로스잖아요.

 

언젠가 작은애와 나눈 대화야. 작은애는 산타클로스를 신이라고 생각했어. 실제로 갖고 싶은 선물을 베란다에서 혼자 조용히 말해서 곤란한 적도 있었어. 그런데 작년 크리스마스 때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걸 알게 됐어. 그 배신감이 얼마나 컸는지 기도에 대해 전혀 믿지 않게 됐어.

 

어제는 아이들 음력 생일이었어. 엄마가 매년 삼신상을 차려 기도를 해주셔. 이제 그만 해도 될 것 같다고 하니까 만 10살 때까지 해야 한다고 하시네.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아침에 상을 차려놓고 비는데 작은애는 나와 보지도 않는 거야. 큰애가 절을 하고, 작은애를 불렀더니 소원 말해도 안 이뤄진다면서 겨우 나와 고개만 까딱.

 

기도는 정말 이루어지지 않는 걸까? 우리 엄마가 저렇게 간절히 기도하는데. 남들이 우리 식구 볼 때 꽃처럼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셔. 어디 가서 미움 받지 말고 지냈으면 하는 바람일 텐데 참 예쁘게 기도하신다 싶어.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위해 무언가 하고 싶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하고, 기도하게 되는 거 아닐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무언가 하고 싶다는 몸부림 같은 거. 그래서 그런 것들이 생존에 불필요해 보이는 데도 많은 사람이 갈구하고, 거기서 위로받는 거 아닐까.

 

엄마의 기도가 다른 사람들이 우리 가족을 꽃처럼 보게 하지는 못할지라도 내가 엄마의 사랑을 느끼게 하는 데는 충분했어. 엄마의 사랑을 받아 내 표정도 펴지고,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꽃처럼 보게 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 나랑 꽃은 너무 안 어울린다고? 그래, 그건 그래. 우리 엄마 눈에만 내가 꽃일지도. 그래도 좋아. 산타클로스가 없어도 기도하고 싶어. 엄마처럼.

 

 

모든 존재가 적의와 위험으로부터 자유롭기를!

마음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기를!

몸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자신들을 편안하게 돌볼 수 있기를!

-자애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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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에 있고, 그는 여기에 없어. 여기에 없는 그가 내 귓가에 노래를 불러. 달콤해. 여기에 없는 그는 나를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데려가. 그곳은 그가 있는 장소이기도 하고, 저 멀리 햇살의 언덕이기도 하고, 가끔은 어두운 유년의 숲 같기도 해. 연애를 할 땐 물리적인 거리와 상관없이 가장 긴 시간 동안 가장 가까운 통화를 하게 돼. 비록 만나지 못할 때도 서로의 세계에 친밀히 가 닿는 거지.

 

영화 매트릭스봤어? 공중전화 박스에 여자가 있고, 어떤 차가 그 박스를 들이박는데 전화기를 들고 있던 그 여자는 이미 그곳에 없어. 그 여자는 진짜 현실세계로 이동한 거야. 그 영화를 보며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연결하는 끈으로 전화기를 설정한 것에 깊이 공감했어.

 

요즘은 거의 모두 휴대폰을 가지고 있잖아. 그래서 공중전화 박스가 사라지고 있어. 예전엔 아파트 단지 안에도 공중전화가 있었거든. 재작년인가? 구청에서 공중전화를 철거했어. 도서관 앞 공중전화도 아파트 안 공중전화도 다 없어졌어. 공중전화 박스는 우주와 교신하는 장소 같이 느껴져서 괜스레 박스에 들어가 낯익은 거리를 낯설게 바라보기도 했었는데.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술을 마시면 동전을 가득 바꿔서 전화기를 찾았어. 그리운 사람들은 죄다 전화기 속에 있었거든. 즐겁게 통화하는 날이 대부분이었지만 하루는 너무 취해서 평소 연락하지 않던 이에게 전화를 걸었지. ,,. 여보세요. 뭐라고 말해야 할까. 몇 마디 나누지 않았는데 전화가 끊겨. 나는 아직 할 말이 남았는데, 할 말이 가득 찼는데...다시 번호를 누르지만...우주의 미아가 된 듯이 박스 안에 서 있으면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이 문을 두드려. , 나는 그제야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아차리지. 미안해. 그런 일이 있고나선 취해서 전화하지 않으려고 해. 창피했거든.

 

전화번호가 바뀌면 그 번호를 따라 나오던 세계와도 끊어져 버려. 그 반대의 경우도 있고. 직장생활을 끝내고 대구에 와서 한참 되었을 때, 마종기 시인의 시집을 읽다가 거기에서 편지를 발견했어. 직장 다닐 때 옆 사무실에서 일하던 아이가 내게 준 거였어. 내게 시집을 주면서 쓴 편지인데 그대로 꽂아둔 거였지. 거기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어. 아주 오래된 번호. 바뀌지 않았을까? 전화를 하고, 또각또각 걸어가는 그 아이의 발걸음 소리를 들었어. 그 발걸음은 대구에까지 와 닿았어. 주말에 나를 만나러 왔거든. 너무 오래되고 멀어서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세계가 전화번호를 타고 온 거지.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은 내 기분이나 상황에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어. 그래서 답답할 땐 다른 지역에 있거나 소식이 뜸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하곤 해. 미국에 있든 베트남에 있든 서울에 있든,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있는 이들은 내 고민과 거리가 있고, 그 거리가 여유를 줘. 그렇게 나는 매트릭스의 주인공처럼 전화기 너머, 그들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거지. 너는 지금 누구에게 전화를 걸고 있니?

 

    

 

전화

_마종기

 

 

당신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당신 방의 책장을 지금 잘게 흔들고 있을 전화 종소리, 수화기를 오래 귀에 대고 많은 전화 소리가 당신 방을 완전히 채울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래서 당신이 외출에서 돌아와 문을 열 때, 내가 이 구석에서 보낸 모든 전화 소리가 당신에게 쏟아져서 그 입술 근처나 가슴 근처를 비벼대고 은근한 소리의 눈으로 당신을 밤새 지켜볼 수 있도록.

 

다시 전화를 겁니다.

신호가 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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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유튜브로 문장의 소리’(554)를 들었어. 육호수 시인이 침묵과 고요를 이야기 했어. 침묵을 고요로 가져가는 일이 힘들다고, 침묵 속에서는 카오스 세계를 만나야 한다는. 그걸 들으니까 오래전 가을이 생각났어.

 

호스피스 병동이었어. 거기 둘째 아주버님이 계셨어. 나에게 화두 참선을 알려주신 분이야. 눈빛이 또렷하고, 목소리가 힘찼던 그분이 마른 나뭇가지처럼 앉아 있었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아주버님을 할아버지라고 불렀어. 아이들이 못 알아볼 정도로 많이 변한 거지. 고통 때문이었을까? 진통제 때문이었을까? 각종 선으로 묶인 채 멍한 눈으로 이따금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을 하셨지.

 

나는 이틀에 한 번꼴로 병원에 갔어. 슬픔 때문인지, 병원 밥이 입에 맞지 않아서인지 병간호하시는 형님이 식사를 제대로 못 해서 점심에 맞춰 반찬 몇 가지를 싸서 가곤 했어. 어느 날은 돌아누워서 신음만 내던 옆 침대의 할아버지가 안 보였어. 그분이 집으로 간 것이 아니라 결국 돌아가야 할 어떤 곳으로 가셨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었지. 아무도 그분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어.

 

윙윙거리는 텔레비전 화면을 향해 시선을 꽂았다 간호사가 오면 이런저런 호소를 해. 그리고 다시 조용해지는 병실. 무언가 말할 것이 가득 찼는데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 이따금 나오는 말들은 제멋대로 허공을 떠돌다 사라지고. 무거운 침묵이 병실에 깔려 있었어.

 

병실 밖에는 가을이 와 있었어. 가을날 잎 지는 걸 본 적 있어? 잎은 바람 때문이 아니라, 때가 돼서 떨어져. 가을엔 바람 한 점 없어도 떨어지지만, 여름엔 태풍이 불어 나무가 뿌리까지 뽑혀도 푸른 잎들이 그대로 나무에 붙어 있거든. 잎 지는 일도 아무렇게나 되는 게 아니야. 때가 되어 떨어지는 잎에서는 고요를 느낄 수 있어. 어떻게 하면 저렇게 고요하게 생을 마칠 수 있을까? 나무를 보며, 나뭇잎을 보며 아주버님이 고통과 혼란에서 벗어나시길 기도했어.

 

그때 침묵과 고요는 다른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막연하게 들었어. 침묵 속에는 말이 있는 것 같아. 말하지 않은 말이, 혹은 말 이전의 말이, 어쨌든 말이 있어서 침묵은 언어와 짝이라고 생각해. 고요는 언어와 무관하게 느껴져. 햇살과 구름과 나무와 흙은 고요하지, 침묵하지는 않잖아.

 

에크하르트 톨레는 고요함의 지혜(김영사, 2004)에서 존재의 심연에 있는 우리의 자아는 고요함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고 했어. 그 고요함이 깊은 차원에 존재하는 우리의 실체라고 했는데 일리가 있어. 우리도 나무처럼 자연의 일부니까 자연이 가지고 있는 고요함을 지니고 있는 건 당연하잖아. 그런데 무언가 두렵고 불안한 우리가 사랑하는 이를, 우리 자신을 링거와 기계 선들로 묶어둔 건 아닌지, 살아갈 수 없는데 살아있으라고 강요한 건 아닌지...... 죽음 앞에서라도 고요를 느낄 수 있도록 내버려 둬야 하는 건 아닌지......

 

 

 

호스피스 병동에서

_변선희

 

고개를 떨구고 힘없이 여위어가는

파리한 잎 위로 가는 비 떨어져도

메마른 그물맥 속에 맺히지 않는 말

 

떨며 지샌 아침에도 짙은 안개 감싸고

거대한 나무에 잎 하나 지는 일

얼마나 침묵하여야 고요가 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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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는 커다란 소리가 아련하게 들렸어. 순간적으로 눈을 떴는데 어둠이 더 어두워졌다는 느낌이 들었어. 공기청정기 전원 불빛이 꺼져 있었어. 휴대폰을 찾아 시간을 보니 3시 반이 좀 넘었어. 와이파이도 끊겼고. 전기가 나갔구나, 싶어 가족이 깨지 않게 화장실로 가서 불을 켰어. 역시 안 켜졌어. 건너편 건물에는 불빛이 보이는데 우리 아파트는 캄캄했어.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봤어. 숫자판이 꺼져 있더군. 이 상황을 관리실은 알고 있을까? 전화를 했더니 통화 중, 통화 중.

 

일요일 새벽의 일이야. 전기가 끊기자 보일러가 멈추고, 냉장고가 조용해지고, 인터넷에 연결된 전화기도 꺼졌어. 충전된 휴대폰만 불빛이 되고, 전화가 되었어. 배터리가 다 닳으면 춥고 캄캄한 곳에 갇히겠구나, 싶었어. 전기가 오래 끊기면 어떻게 될까? 네모난 칸 안에서 옹기종기 모여 사는 우리가 양계장 닭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언젠가 양계장에 전기가 끊겨 닭이 폐사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어. 원래 닭이 전기 없다고 죽는 동물은 아닌데 양계장이라는 조건이 닭을 죽게 만든 거지.

 

결혼 전에 두어 달 단학선원에 다닌 적이 있어. 그곳 사범이 전기가 없는 때가 올 거라고, 전기 없이 살아가는 생활을 직접 훈련하는 과정이 있다고 했어. 전문 수련생만 훈련하는 건지 일반 수련생도 하는지는 모르겠어. 어쨌든 그땐 흘려들었는데 막상 전기가 끊기고 보니 전기 없이 살려면 정말 훈련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지 않으면 양계장 닭들처럼 무기력해질 것 같아. 근데 어떻게 훈련해야 할까?

 

다행히 방은 아침까지 따뜻할 것 같고, 아파트 단지 어디에서 울리는 사람의 목소리가 이 사태를 수습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줬어. 6시에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고, 8시에 전기가 들어왔어. 아이들에게 새벽부터 누군가 애쓴 덕에 지금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거라고,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건 없다는 이야기를 하다 예전에 오빠가 했던 말이 생각났어. 우리가 누리는 문명을 전 인류가 다 누리면 지구가 멸망할 거라고. 녹아가는 빙산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북극곰이 우리의 자화상일까?

 

전기 한 번 나갔는데 생각이 너무 멀리까지 갔나? 내가 너무 작아졌나? 하루하루가 다행스럽고,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해. 보일러가 돌아가고, 엘리베이터가 작동하고, 아이들이 탈 없이 일어나고, 네게 말할 시간이 있고. 조금 더 작아지면 보일러가 안 돌아가도 가족들이 무사하고, 내가 친구를 찾을 수 있는 데 감사하게 될까? 그게 전기 없이 사는 훈련이 될까? 너무 소극적인가? 양계장 안에서 너무 익숙해진 걸까? 먼지처럼 작아져 떠들고 있는 나를 햇살이 두드리네. 이제 전기선에서 떨어지라고, 그만 일어나 나가라고.

 

 

선인장은 사막이 좋아서 사막에 사는 것이 아니라 사막이 선인장을 아직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사는 것이다.-호프 자런, 랩걸(알마출판사, 2017),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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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8 13: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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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8 1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침에 아이가 울면서 학교에 갔어. 둘이 아침 먹다 다퉈서 아빠한테 혼났어. 작은애는 눈치껏 나갔는데 큰애는 뭐가 억울한지 분해서 우는 거야. 집 나가고 싶다네. 내가 보기엔 우리 집처럼 편안한 집이 있을까, 싶은데 아이들은 그렇지 않나 봐. 심통이 나서 내뱉은 말이긴 하지만 우리 집이 제일 나빠, 라는 말을 얼마 전에도 들었거든.

 

나도 그럴 때가 있었어. 마을에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집은 양옥집에, 형제 수만큼 책상도 있고, 세탁기도 있고, 하교하면 언제나 집에 엄마가 계셨어. 부모님은 교양 있어 보이고, 그 집 아빠는 친구와도 친해 보였어. 우리 집은 그렇지 않았다는 뜻이지. 그러니까 난 그 애보다 좀 더 불행하다고 생각하면서 우리 집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 주로 그 집에서 놀았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연히 그 친구를 만나 학교 운동장에 갔어. 해가 뉘엿뉘엿 지는데 그 친구가 자기 집 이야기를 했어. 아빠가 오랫동안 두 집 살림을 하고, 엄마와는 매일 다투셨다고. 결국 이혼하셨다는 거야. 정말 놀랐어. 완벽해 보이던 가정에 그런 상처가 있었다는 것도, 내가 그 친구의 아픔을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도, 그 상처를 내게 담담하게 이야기 한다는 것도 모두 놀라웠어. 내 이야기도 나누고 싶었지만 내가 불행이라 여겼던 건 친구의 이야기에 비해 너무 사소해서 말할 수 없었어. 나는 아이 같고, 친구는 어른처럼 느껴졌어.

 

언젠가 드라마를 보면서, “저 집은 정말 깨끗하다.”고 했더니 언니가 저 집엔 사람이 안 살잖아. 세트니까.” 하더라. 완벽한 집은 없어.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그 사정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부모양육태도 심리검산가? 검사 제목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그 검사 결과 나는 일관성이 높은 반면 칭찬에 인색하다네. 상담 선생님 말로는 한마디로 리액션이 약하대. 그래서 목소리 톤을 높여서 아이들에게 반응해 주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사람마다 기질이 있어서 노력은 할 수 있어도 억지로 하면 지친다면서 일관성 있으면서 리액션이 큰 경우는 드물다는 거야. 반대의 경우도 그렇고. 그게 어머니의 특성이죠, 하는 거야.

 

좋은 양육태도를 다 갖고 있다면 그보다 좋을 순 없겠지만 나는 나라서 다른 사람처럼 되기가 쉽지 않아. 상담 선생님이 그 부분을 받아들이고 이야기를 진행하니까 한결 마음이 편했어. 나도 그 상담 선생님처럼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어. 아이들도 자라서 사람들의 속내를 듣고, 많은 경험을 하면 아침에 꾸중 듣는 일이 온 마을의 집들과 우리 집을 비교할 만한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되겠지. 우리 집은 우리 집만의 특성이 있다는 것도. 햇살이 거실 가운데까지 들어왔어. 이 햇살이 지금은 아이들 눈에 보이지 않겠지만 나중에라도 자기들이 햇살의 집에 살았다는 걸 알면 좋겠어.

 

 

식사를 끝낸 뒤 어머니와 난 생선이다’ ‘아니다, 오리고기다서로 우기며 사소한 언쟁을 벌였다. 그처럼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서 대체 무슨 짓이었던지. -최영미, 시대의 우울(창작과 비평사, 1997),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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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5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6 1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5 16: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6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7 0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8 1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