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는 커다란 소리가 아련하게 들렸어. 순간적으로 눈을 떴는데 어둠이 더 어두워졌다는 느낌이 들었어. 공기청정기 전원 불빛이 꺼져 있었어. 휴대폰을 찾아 시간을 보니 3시 반이 좀 넘었어. 와이파이도 끊겼고. 전기가 나갔구나, 싶어 가족이 깨지 않게 화장실로 가서 불을 켰어. 역시 안 켜졌어. 건너편 건물에는 불빛이 보이는데 우리 아파트는 캄캄했어.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봤어. 숫자판이 꺼져 있더군. 이 상황을 관리실은 알고 있을까? 전화를 했더니 통화 중, 통화 중.

 

일요일 새벽의 일이야. 전기가 끊기자 보일러가 멈추고, 냉장고가 조용해지고, 인터넷에 연결된 전화기도 꺼졌어. 충전된 휴대폰만 불빛이 되고, 전화가 되었어. 배터리가 다 닳으면 춥고 캄캄한 곳에 갇히겠구나, 싶었어. 전기가 오래 끊기면 어떻게 될까? 네모난 칸 안에서 옹기종기 모여 사는 우리가 양계장 닭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언젠가 양계장에 전기가 끊겨 닭이 폐사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어. 원래 닭이 전기 없다고 죽는 동물은 아닌데 양계장이라는 조건이 닭을 죽게 만든 거지.

 

결혼 전에 두어 달 단학선원에 다닌 적이 있어. 그곳 사범이 전기가 없는 때가 올 거라고, 전기 없이 살아가는 생활을 직접 훈련하는 과정이 있다고 했어. 전문 수련생만 훈련하는 건지 일반 수련생도 하는지는 모르겠어. 어쨌든 그땐 흘려들었는데 막상 전기가 끊기고 보니 전기 없이 살려면 정말 훈련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지 않으면 양계장 닭들처럼 무기력해질 것 같아. 근데 어떻게 훈련해야 할까?

 

다행히 방은 아침까지 따뜻할 것 같고, 아파트 단지 어디에서 울리는 사람의 목소리가 이 사태를 수습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줬어. 6시에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고, 8시에 전기가 들어왔어. 아이들에게 새벽부터 누군가 애쓴 덕에 지금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거라고,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건 없다는 이야기를 하다 예전에 오빠가 했던 말이 생각났어. 우리가 누리는 문명을 전 인류가 다 누리면 지구가 멸망할 거라고. 녹아가는 빙산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북극곰이 우리의 자화상일까?

 

전기 한 번 나갔는데 생각이 너무 멀리까지 갔나? 내가 너무 작아졌나? 하루하루가 다행스럽고,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해. 보일러가 돌아가고, 엘리베이터가 작동하고, 아이들이 탈 없이 일어나고, 네게 말할 시간이 있고. 조금 더 작아지면 보일러가 안 돌아가도 가족들이 무사하고, 내가 친구를 찾을 수 있는 데 감사하게 될까? 그게 전기 없이 사는 훈련이 될까? 너무 소극적인가? 양계장 안에서 너무 익숙해진 걸까? 먼지처럼 작아져 떠들고 있는 나를 햇살이 두드리네. 이제 전기선에서 떨어지라고, 그만 일어나 나가라고.

 

 

선인장은 사막이 좋아서 사막에 사는 것이 아니라 사막이 선인장을 아직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사는 것이다.-호프 자런, 랩걸(알마출판사, 2017),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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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8 13: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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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8 19: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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