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 박은옥 - 저 들에 불을 놓아

저 들에 불을 놓아 그 연기 들판 가득히
낮은 논둑길 따라 번져가누나

노을도 없이 해는 서편 먼산 너머로 기울고
흩어진 지푸라기 작은 불꽃들이
매운 연기 속에 가물가물

눈물 자꾸 흘러 내리는 저 늙은 농부의 얼굴에
떨며 흔들리는 불꽃들이 춤을 추누나

초겨울 가랑비에 젖은 볏짚 낫으로 그러모아
마른 짚단에 성냥 그어 여기 저기 불 붙인다

연기만큼이나 안개가 들판 가득히 피어오르고
그 중 낮은 논배미 불꽃 당긴 짚더미
낫으로 이리저리 헤집으며

뜨거운 짚단 불로 마지막 담배 붙여 물고
젖은 논바닥 깊이 그 뜨거운 낫을 꽂는다

어두워가는 안개 들판 너머
자욱한 연기 깔리는 그 너머

열나흘 둥근 달이 불끈 떠오르고
그 달빛이 고향 마을 비출 때

집으로 돌아가는 늙은 농부의 소작 논배미엔
짚 더미마다 훨 훨 불꽃 높이 솟아오른다
희뿌연 달빛 들판에 불기둥이 되어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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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5-11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노래 들을때마다 울컥울컥해요.

hnine 2006-05-11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듣고 추천하고 갑니다.

잉크냄새 2006-05-11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래가 가슴 깊이 울림이 있네요.

이누아 2006-05-11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바람님 서재에서 만난 노랜데, 이상하게 제 컴퓨터에서 그 노래를 들을 수가 없어서 찾아 듣습니다.

2006-05-13 1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6-05-13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그렇군요. 전 정반대였어요. 그분들이 학교에 오셨는데 노래보다 말이 훨씬 길었어요. 전 노래를 들으러 갔거든요. 그래서 그분을 싫어했어요. 노래는 안 하고, 말 많은 분이라고. 지금보니 정말 할 말이 많아서 어쩔수가 없었군요. 말해야 해서 말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