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여자 두 분이서 집을 보러 오셨다. 들어오시자마자 짐이 많다고 한다. 요즘 우리집에 오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다. 생활도구여야 하는데 짐처럼 보이나 보다. 좁은 집에 점점 물건들이 늘어간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에 자전거를 타는 할아버지가 나온 적이 있다. 그 할아버지는 생활보호대상자이어서 나라에서 약간의 돈을 받아 생활하신다. 할아버지의 방은- 집은 모르겠다. 방만 기억난다 - 좁고 깨끗하다. 다른 물건이 보이질 않는다. 방 위 어디 공간에 가방이 있다. 짐가방. 언제든지 떠나실 수 있게 가방을 싸 두셨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자전거를 타신다. 하루종일 자전거를 타신다. 저기 멀리까지 자전거를 타신다. 비슷한 처지의 다른 분들은 박스라도 주어서 생계에 보탬이 되게 하거나 적은 돈이라도 모아서 힘든 사람을 위해 쓰기도 하신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자전거만 타신다. 취재진이 하루종일 따라 다닌다. 정말로 자전거만 내내 타신다. 말도 별로 없으시다. 취재진이 헤어질 때 새 자전거를 사 주었다. 고맙다고 환하게 웃으셨다.

그 할아버지를 잊을 수가 없다. 짐이 없는 집. 짐이 없는 달림. 조금도 더 욕심내지 않음. 단순한 생활. 그 할아버지가 좋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하루종일 자전거만 탄다고 손가락질해도 난 그 할아버지가 좋다. 마음으로 그 할아버지를 스승으로 삼았다. 어디 계신지 알면 찾아가 뵙고 싶다. 찾아가 뵈면 실망하게 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도 내게 스승이시다. 그런데도 스승과 달리 짐만 늘어나고 있으니...

저렇게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혼자 살아서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고, 사는 게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다. 에고는 변명하고, 에고는 행위하고, 에고는 자신을 내세우려 한다. 어떻게 하면 인정받을까 골똘히 연구한다. 그러나 저 할아버지, 그런 게 없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것이 자랑이든 자책이든 삶에 누추한 변명이 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자전거 타는 할아버지, 자전거만 타신다. 

짐이 많은 집을 보며, 짐이 없던 그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할아버지. 가방 하나만 들고 나오면 아무 것도 없을 할아버지의 방. 단순한 생활. 만족한 미소. 사랑하는 자전거 타기. 누구의 간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도 달리고 계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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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3-10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짐이 많으면 집이 커야 하고 집이 크면 큰 집을 장만하느라 수고를 힘써야 하므로
고단한 삶이 되지요. 갖고 싶은 물건이 많으면 가슴속에 그것이 가득차서 정작 써야 할 가슴쪽은 공간이 없어지죠. 전 그래서 제 작은 오두막이 좋답니다. 천상의 낙원!

하지만 마음은 왜 이리 맨날 밴뎅이래요?

로드무비 2006-03-11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전거 타는 할아버지가 보고 싶군요.
그 프로에 보면 가끔 그런 분들이 나와요.
언젠가는 아무 말 없이 동네 쓰레기를 전부 치우고 다니던 아주머니.
그 아주머니의 방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누아 2006-03-11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전남 고창 개펄에서 밴댕이를 봤어요. 그놈 정말 웃기더군요. 바다에서 나오기만 하면 죽어버려요. 그래서 어부들이 밴댕이 속이라고 하나봐요. 자기가 있던 곳이 아니면 바로 죽어 버려서 어부들에게 아무 유익도 안 주기. 근데도 우린 그 자리에서 밴댕이회를 해 먹었지요. 그러나 파란여우님의 마음이 밴댕이시라니 그 밴댕이는 고래만한 큰 밴댕이인가 봐요. 천상의 낙원에서 떼굴거리는 밴댕이를 상상합니다.^^ 내가 왜 이러나? =3=3

로드무비님, 그분들의 방 모습이 바로 마음의 모습인 듯 느껴집니다. 제 방은 어떻나 돌아보게 됩니다. 두리번두리번...괜히 둘러봤군요 --;;

니르바나 2006-03-11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  자전거를 타는 할아버지 한번 만나고 싶어요.
저도 책속에서 만난 분이 한 분 계십니다.
아래 책에 나오는 무위도인 이야기인데 이상하게 잊혀지지 않아요.


이누아 2006-03-11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넣어 두었다 마음 움직이는 날, 읽어 볼께요. 금방 절판되진 않겠죠? 품절과 절판이 무서워요.

비로그인 2006-03-13 0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할아버지도 잔차족이시군요! 방가, 방가! 에이구, 근데 말이죠. 요즘처럼 소비를 자극하는 사회에서 깰랑 짐보따리 항 개에 자신의 삶을 챙겨넣기도 힘들어요. 글고보믄 대단한 할아버지시네요. 크아..이누아님, 저 지금 날 꼬빡 새고 있습니다. 좀 전에 레미제라블을 읽고 있었는데, 을매나 재밌는지..크하하하..

이누아 2006-03-13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님, 약속하신 물건이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약속인지 기억하시는지? 제가 꿈! 이라고 하면 아! 하실는지? ^^

2006-03-13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big_tree73 2006-04-16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누아,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어둠속에서 춤을(Dance in the dark)'
나한테 또 다른 밀레의 '만종'이 될 듯해. 신석기 태양 문양 만큼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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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할 수 있을것 같아. 너한테 제일 먼저 얘기하고 싶었어.
잠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러 간다.
안녕.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