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민 구보 씨의 하루 - 일상용품의 비밀스러운 삶
존 라이언.앨런 테인 더닝 지음, 고문영 옮김 / 그물코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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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리뷰를 읽고 사다두고는 잊고 있었다. 책장 책들 위에 가로로 놓여 있는 구보 씨의 하루, 펼친다. 얇군. 읽다보니 앞에 있던 경고문구가 떠오른다.

이 책의 초고를 읽은 사람들은.......당황하거나 절망감에 빠졌다고 고백했다.......여러분들이 알게 모르게 소비하는 일용품들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기를 바라고, 그것을 반성적으로 성찰할 수 있기를 희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기쁘지 않을 것이고, 다만 끔찍한 경악만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p.14).

그랬다. 녹색시민들이 해야 할 일을 유심히 볼 뿐 본문은 되도록 빨리, 듬성듬성 읽었다. 처음에는 마음이 아주 무거웠고, 다음에는 해야 할 일을 찾아야 겠다고 생각했고, 그 다음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발적 가난이 가질 수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신문이나 책을 되도록이면 구입하지 말고, 돌려 보자고 한다. 우리의 신문들은 내가 읽지 않아도 부수 이상을 찍어낸다. 광고를 위해서. 어쨌든 그래서 돌려 보았다고 하자. 시민A가 다니는 출판사가 문을 닫을 처지에 놓이게 되고, 그는 직장을 잃을 것이다. 그랬다고 치자. 책을 찍어내지 않게 되자 인쇄업자와 제조업자들이 불황이라고 소리칠 것이다. 그랬다고 치자. 저 저임금에 헤매는 3세계 국가의 노동자들 역시 나무 베는 일이 없어져서 실업자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 모른다고 치자. 내수경기가 안 좋아서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내수경기가 좋아지려면 누군가 소비를 해야 한다. 그러니 소비를 미덕이라 부르는 것은 마땅하지 않는가.

자전거를 타자. 그런데 더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기 전까지 선구자적 자전거 타기 인간이 겪게 될 일들이 있다. 자동차 멀리하기 첫번째, 이 책에서 제시하듯 대중교통이 잘 발달된 곳에 산다...부자들이 외곽에 살고, 도시의 공동화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생각해 보라. 공기 좋은 곳에 살고 싶다. 두 번째, 아침에 자전거로 출근하라...유산소 운동을 하면서 온갖 매연을 다 맡게 된다. 지구를 살리기 위해 나를 죽여라. 세 번째, 그래도 자전거를 타려면 차에 자전거를 싣고 어디론가 가야 한다. 산악자전거처럼. 역시 차가 필요하다.

소비하지 않아도 불황을 겪지 않는, 혹은 불황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회에서, 우리가 일시에 자전거를 타기로 결심하는 일이 벌어질까?

언젠가 인도여행을 다녀온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인도사람들이 대변을 보고 모두 화장지를 쓰게 되거나 중국인들이 모두 신문을 읽게 되는 날, 지구엔 단 한 그루의 나무도 남지 못할 것이라는 대화였다. 한 트럭의 종이는 나무 일흔 두 그루라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나눈 대화가 실현되고 있다. 지구의 문명이란 애초부터 모두가 누릴 수 없다는 전제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닌지. 일부만이 누릴 수 있는 것. 이젠 물도 사먹는다. 물을 사먹는 걸 상상이나 했는가...신선한 공기도 부자들만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소비가 지구 전체의 환경에 끼치는 나쁜 영향에 대해 구보 씨와 같은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다. 드디어 나도 약간 알게 되었다. 나는 지나치게 부정적인 사람인 게다. 아니면 내 생활을 바꾸고 싶지 않아서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거나...그래도 책에 실천할 것들은 의외로 많다. 간단하게...음료수를 적게 마시라든지, 건조기 대신 빨래줄을 이용하라든지 인권단체나 환경단체를 지원하라든지...그러고보니 많네. 할 수 있는 것들 혹은 하고 싶은 것들은 하련다. 하기 싫은 거, 어려운 거, 안 하련다. 이러니 뭐가 되겠는가. 환경이나 소비의 문제가 지구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데, 지구가 우리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데 하고 싶으면 하고, 말고 싶다면 말겠다니. 이래 가지고야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정신차려라!!! 이누아.

당신이 무엇을 입고, 신을 것인가에 너무 신경쓰지 말아라. 자발적 가난을 서약하라(P.60).

자발적 가난에 대한 서약의 유무에 관계없이, 무엇을 입고 신을 것인가에 대해 엄청 신경쓰인다. 이 책 읽기 전보다 훨씬. 가격보다 가치가 소중한 입을 것과 신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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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바람 2006-03-07 0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어렵지요. 이거. 자발적 가난을 서약하라니. 제가 찾은 답은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거예요. 저희 동네에서 '음식물 쓰레기 안 버리기 서약 운동' 캠페인이 있었어요. 누가 할까 했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서약을 하시더군요. 동네 아줌마들을 꼬실까 했는데 너무 쉽게 서약서에 자기 이름을 쓰더라구요. 물어봤지요. 자기 진짜 음식물 쓰레기 안 버릴 자신 있어? 애 둘 딸린 아줌마 친구가 너그럽게 웃으며 말하더라구요. 설마~, 근데 먹을 만큼만 먹으면 되지 않겠어! 뽀뽀해주고 싶었어요.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싱겁지도 않은 말이었어요. 제가 아이들 유모차 안 태우기 운동하면 유모차 회사로부터 압력을 받겠지요. 근데 엄마들은 맘만 먹으면 유모차 안 태울 수 있거든요. 같이 걷는 거예요. 세상을 향해 발을 뗄 수 있게. 넘어지고 넘어지는데, 조금만 기다려주면 되거든요. 그러면 아이는 자발적으로 유모차를 거부하게 되어요. 대신 엄마랑 손을 잡게 되지요. 전요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자발적 가난을 서약하는 건 좀 어렵고 귀찮잖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전세계적으로 아이 안 낳기 운동을 하는 거예요. 말하자면 이 무서운 세상에 아이를 내보낼 수 없다. 무정자 무난자 캠페인이지요. 그러면 지도자들이 좀 겁을 먹지 않을까요. 환경도 좀 보호해보겠다고 약속도 좀 하고, 전쟁도 안 하겠다고 서약서에 도장도 찍고 그러지 않을까요. 내 자식이 없으면 남의 자식이 더 귀히 보이지는 않을까요. 굶어죽는 아이들도 좀 보살필 수 있지 않을까요. 내 자식에게 쏟을 정성으로 말이지요. 사실은 인류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해법이 우리의 2세대를 낳지 않는 것을 담보로 해야 할 만큼이라고 생각하면 서글퍼요. 좀 전에 읽은 책인데요. <자발적 복종>이라는 책이 있더라구요. 핵심은 왜 사람들은 자발적 복종을 스스로 선택하는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가인데 이게 1548년에 저자가 18살에 쓴 책이라고 하니 시사하는 바가 많았어요. 배가 고프면 배에서 소리가 나는데 영혼이 고프면 어디서 소리가 나지요? 왜 많은 문학작품에서 심장을 말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내 몸속의 물이다라고 말하고 싶은데. 한번은 꼭 한번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싶어요. 의도되지 않았고 습관화되지 않은... 앗 뜨거!

달팽이 2006-03-07 0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번은 꼭 한 번은 내 영혼의 눈물을 흘리고 싶어요.
자발적 가난에 대한 님의 답변에 공감합니다. 돌바람님

이누아 2006-03-07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바람님, 새벽에 쓰셨네요. 저거 쓰면서 실천은 없이 불평만 늘어놓고 있는 제가 보여서 흑색시민이라고 한 거예요. 아이 안 낳기 운동...제 친구가 아이를 낳고 제게 한 말이었어요. 한번도 지구를 염려해 본 적이 없는데 내 아들이 살 곳이라 생각하니 50년 후도 걱정된다고. 그나마 아이들이 있어서 이 정도인 건 아닐까요?^^

돌바람님, 달팽이님, 내용이랑 상관없는 이야기에요. 눈물요. 몸이 아프거나 하품을 하면 눈물이 물처럼 흘러요. 근데 마음이 아프거나 슬픔이 가득차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정말로 뜨근뜨근해요. 아, 이래서 뜨거운 눈물이라고 하는구나 싶을만큼. 전 그 눈물이 심장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거라 그렇게 뜨거운가 생각했는데...심장은 피 때문에 맨날 빨갛게 보이잖아요. 빨간 건 좀 뜨거울 것 같고.^^

니르바나 2006-03-07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 이 세상을 아끼는 모든 분들을 돌바람님 버젼으로 사랑한다 표현하고 싶군요. ㅎㅎ

돌바람 2006-03-08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 그래요. 맞아요. 아이가 있고 보니 드는 생각이 맞습니다. 그러니 '아이 안 낳기 운동'이란 얼마나 황당하고 씁쓸한 기쁨을 포기하는 일이겠나요. 달팽이님과 니르바나님, 이누아님 늘 제가 한 수 배웁니다. 넓고 깊게 보는 것과 굵고 세세하게 보는 것은 늘 밀고 당기네요. 좋은 날 되세요.^^

이누아 2006-03-10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쑥스러워하지 마시고 표현하시지요.^^
돌바람님, 뭘 한 수 배웠다는 말씀일까요? 님도 좋은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