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머리에 눈이 왔어요, 벌써 벌써 하얗게 눈이 왔어요~

아이들의 눈은 정확하다. 거울을 보면, 특히나 엘레베이트 안에서 거울을 보면 내 머리에 눈이 온 것 같다. 몇 주 전에 만난 아는 언니는 보자마자 "너 머리가 왜 그렇냐? 몇 달 전에는 안 이랬잖아"한다. 그 몇 달 전에는 광명 사는 친구가 와서 뽑아주고 갔었다. 내 나이면 새치가 아니겠냐고 하겠지만 흰머리다. 뿌리부터 끝까지 새하얗다. 흰머리는 좀더 강하고, 반짝거린다. 뽑아도 덜 아프다.

부모님이 모두 40대에 백발이었던 유전 탓에 큰언니는 염색을 시작했고, 연년생인 오빠는 반백이다. 나도 내년에 저렇게 될까? 미리 알고 있었던 터라 마흔이 되면 염색을 해야지 했는데 벌써 눈이 내렸다.

첨 시집간 다음날, 시골에 가서 시외삼촌께 인사를 드렸다. 내 까만 머리가 마음에 드셨는지 염색하는 되바라진 젊은 처자들 이야기에 흥이 나셨다. 그리고 헌 봉투에 5만 원을 넣어 주셨다. 본관과 본관에 해당되는 족보상의 큰 인물에 대해 넙죽 대답하자 더욱 기분이 좋아지신 게다. 아쉽게도 얼마 안 있다 돌아가셨지만 염색 안 한 내 까만 머리를 아마 가장 기뻐하신 분이 아니신가 싶다.

한번 염색을 하면 쭉 해야 할텐데 벌써부터 염색을 해야 하나? 멋으로 염색하는 사람들이야 나 같은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난 화장하기 싫고, 염색하기 싫다. 게을러서 그렇다지만 귀찮은 게 아니고 그런 게 싫다. 그러나 혼자 사는 세상도 아니고...좀 더 개겨 볼까? 머리가 전부 하애지면 하얗게 해서 지내야지.

할머니도 아닌데.....너무 빨리 눈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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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6-02-21 0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눈이군요..
머리에 맞는 눈이 아니라
가슴으로 맞아들이는 눈입니다.ㅎㅎ

이누아 2006-02-21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은 까만 머리임에 틀림이 없군요. 그렇지 않고서야 웃으며 이 이야기를 들을 순 없을텐데..^^

혜덕화 2006-02-21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눈이 나빠서인지, 염색을 하니 눈이 따갑고 불편하더군요. 머리가 자라니 염색한 것이 탈색되어 자꾸 염색 하는 것도 귀찮아 이제는 염색하지 않기로 했어요. 하지만 아직 그냥 흰머리를 방치하기엔 너무 젊은 나인데, 염색을 한 번 해 보세요. 저는 다행히도 아직 흰머리가 많진 않지만, 자꾸만 새치가 올라오더군요. 세월이 주는 훈장이라, 그렇게 생각하려구 해요.^^

이누아 2006-02-21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를 방치하기엔 너무 젊은 나이라...언젠가 복돌님이 지금 50살 쯤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 말이 생각나네요. 그래도 요즘 50된 분들도 다 염색하고 다니시니 지금 제가 50이라고 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죠?

비로그인 2006-02-22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두 그냥 염색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흰머리..뭔가 묘한 매력이 있다구요. 묵직한 권위도 있어 보이구.. 전 숱이 적은 편인데, 유전인가 봐요. 미역물을 내서 머리를 감으라고 사람들이 조언하지만 관심도 없고 고민도 하지 않아요. 더 성글어지면 빡빡 밀고 다닐려구요. 우리 그냥 지내요!!

이누아 2006-02-22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님, 복돌님이 염색하지 말라고 한 최초의 사람입니다. 이 말쌈, 좀더 개길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과연 제가 할머니가 될 때까지 염색하지 않고 지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