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머리에 눈이 왔어요, 벌써 벌써 하얗게 눈이 왔어요~
아이들의 눈은 정확하다. 거울을 보면, 특히나 엘레베이트 안에서 거울을 보면 내 머리에 눈이 온 것 같다. 몇 주 전에 만난 아는 언니는 보자마자 "너 머리가 왜 그렇냐? 몇 달 전에는 안 이랬잖아"한다. 그 몇 달 전에는 광명 사는 친구가 와서 뽑아주고 갔었다. 내 나이면 새치가 아니겠냐고 하겠지만 흰머리다. 뿌리부터 끝까지 새하얗다. 흰머리는 좀더 강하고, 반짝거린다. 뽑아도 덜 아프다.
부모님이 모두 40대에 백발이었던 유전 탓에 큰언니는 염색을 시작했고, 연년생인 오빠는 반백이다. 나도 내년에 저렇게 될까? 미리 알고 있었던 터라 마흔이 되면 염색을 해야지 했는데 벌써 눈이 내렸다.
첨 시집간 다음날, 시골에 가서 시외삼촌께 인사를 드렸다. 내 까만 머리가 마음에 드셨는지 염색하는 되바라진 젊은 처자들 이야기에 흥이 나셨다. 그리고 헌 봉투에 5만 원을 넣어 주셨다. 본관과 본관에 해당되는 족보상의 큰 인물에 대해 넙죽 대답하자 더욱 기분이 좋아지신 게다. 아쉽게도 얼마 안 있다 돌아가셨지만 염색 안 한 내 까만 머리를 아마 가장 기뻐하신 분이 아니신가 싶다.
한번 염색을 하면 쭉 해야 할텐데 벌써부터 염색을 해야 하나? 멋으로 염색하는 사람들이야 나 같은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난 화장하기 싫고, 염색하기 싫다. 게을러서 그렇다지만 귀찮은 게 아니고 그런 게 싫다. 그러나 혼자 사는 세상도 아니고...좀 더 개겨 볼까? 머리가 전부 하애지면 하얗게 해서 지내야지.
할머니도 아닌데.....너무 빨리 눈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