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심각하게 대하지 말라. 심각하면 삶을 놓친다. 진지하되 심각하지는 말아라. 심각함과 진지함은 전혀 다른 것이다. 심각할 때 그대는 목적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한다................심각함은 머리에 속한다. 그러므로 심각한 사람, 생각이 많은 사람은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는 웃지 못한다. 그는 놀이를 즐기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언제나 "이 놀이를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가?' 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삶을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그러나 삶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진지한 사람은 전혀 다르다. 진지함은 가슴에 속한다. 그는 진실하지만 심각하지 않다. 그는 추구하지만 목적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의 추구는 어린아이의 놀이와 같다. 발견해도 그만, 발견하지 못해도 그만이다. 어린아이를 보라. 그는 강아지를 쫓아 달리다가 중간에 나비를 발견한다. 그러면 즉시 방향을 바꾸어 나비를 쫓기 시작한다. 그 다음에 옆에 있는 꽃을 발견한다. 이제 그는 나비를 잊고 꽃에 전적인 관심을 기울인다. 그는 심각하지 않다. 그러나 매우 진지하다. 그는 강아지와 나비를 잊었다. 이제는 꽃이 전부다. 어떤 것에 전적인 관심을 쏟을 때, 그것이 진지함이다. 어떤 것을 수단으로 보고 관심을 기울일 때 그대는 교활하다. 그대가 진실로 원하는 것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대가 관심을 갖는 것은 수단에 불과하다. 그대는 착취한다.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 길을 이용한다. 그러나 어린아이에게는 길이 곧 목적지다. 종교적인 사람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디에 있건 그곳이 목적지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건 이 사람이 목적이다.
지금 이 순간에 나의 삶 전체가 내게 집중되어 있다. 달리 갈 곳이 없다. 이 순간을 전체적으로 즐기고 누려야 한다.
이런 사람이 종교적인 사람이다. 그는 어디로 갈지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아침 산책을 즐길 뿐이다. 이것은 전혀 다른 현상이다..................종교적인 사람은 아침산책을 하듯이 살아간다. 그리고 비종교적인 사람은 직장에 나가는 것처럼 살아간다. 그는 목적지를 염두에 두고 있다. 세속적인 사람은 목적을 지향한다. 그 목적이 무엇이건 상관없다. 세속적인 것이든 신이든 그는 목적을 지향한다.
-오쇼, [서양의 붓다], pp.174-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