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밥헬퍼 > 얼음과 물의 경계에서 만난 나희덕과 기형도 시인

                               얼음과 물의 경계

                                                                 나 희 덕


  메멘트모리. 죽음을 기억하십시오. 어느 수도원에선가는 이 말로 인사말을 대신한다고 한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안녕을 기원하는 세간의 풍속과는 달리 부재의 확인을 통해 존재를 성찰하는 그들이 부럽기도 했다. 그러나 세간의 인사에 길들어 살아가는 나에게도 누군가 그런 인사를 건네는 날이 이따금 있기는 하다. 매년 삼월 첫째 주말, 기형도 시인의 묘소에 갈 때마다 내 안에 살아있는 그가 이렇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메멘트모리.

  나는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지는 못했다. 나는 2학년 때 연세문학회에 들어갔는데, 그는 이미 졸업을 한 뒤라 술자리에서 몇 번 마주쳤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신춘문예에 당선된 1989년에 그는 중앙일보 편집부 기자였지만, 그 후 석 달 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때 중앙일보 복도에서 자판기 커피를 뽑아주며 창밖의 희부연 풍경을 바라보던 모습이 내가 가장 가까이 본 모습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조금씩 엇갈린 인연이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십년 동안 그의 주기 때마다 묘소에 가는 것을 한번도 거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스럽기도 하다. 나는 그에 대해 추억할 무엇도 가지고 있지 못하며 그렇다고 내가 유별난 의리의 소유자인 것도 아니기에 말이다. 그것은 마치 신년을 맞이하며 해돋이를 보러 가는 것과 비슷하게, 봄이 오기 직전 어떤 죽음 하나를 만나러 가는 습관화된 의식 같은 것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나는 왠지 그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그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죽음은 결국 살아 잇는 자에 의해 유추되고 해석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의 죽음은 해마다 조금씩 다른 표정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의 묘소에 가려면 늘 지나치는 저수지가 하나 있는데, 그 무렵이 되면 얼었던 물도 다 풀리고 나무마다 새싹이 돋아나곤 한다. 그런데 막상 그가 묻힌 산언덕에 이르면 왜 그리도 춥고 음산하던지 그의 죽음에 온통 살얼음이 박혀 있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의 시를 읽으면서도 시린 느낌은 마찬가지인데, 그것은 아마 그의 시에 유난히 많이 나오는 얼음과 눈(雪) 이미지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에게는 안개나 구름조차도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이나 “희고 딱딱한 액체”(「안개」)와 다름없었다.

  “밤에 깨어 있음, 방안에 물이 얼어 있음. 손(手)은 영하 1도”(「새벽이 오는 방법」)라고 했을 때, 나는 그가 살았던 방의 윗목, 아니 늘 윗목인 삶을 떠올린다. 거기서 그는 시린 손으로 ‘겨울 판화’를 새기듯 시를 써나갔으리라. “내 몸은 얼음으로 꽉 찬 모양이다”(「聖誕木」)중얼거리며 성냥을 그어대기도 하고, 눈길 위에 떨어진 서류봉투를 주우며 “나는 불행하다/이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일생 몫의 경험을 다 했다. 진눈깨비”(「진눈깨비」)라고 탄식하기도 한다.

  그때 그의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는 얼음과 진눈깨비는 실은 그의 눈물이 응결된 것이다. 세상을 너무 축복하였기에 거꾸로 매달려 외로운 천형을 견디고 있는 고드름처럼, 부단히 “오르기 위하여 떨어지는”정신으로 말미암아 그는 오래도록 고통 받아야 했다. “나 또한 얼마만큼 오래 냉각된 꿈속을 뒤척여야 진실로 즐거운 액체가 되어 내 생을 적실 것인가”(「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노래하면서. 그는 녹아 흐르고 싶어 했으며, 그러기 위해 자신의 삶 속에 얼음처럼 박인 죽음의 그림자를 향해 힘겹게 불꽃을 피워 올렸다. 그러나 그가 지핀 불은 대체로 작은 성냥개비나 창백한 초 또는 램프에 붙여진 불이어서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의 촛불은 이미 없어지고/하얗고 딱딱한 옷을 입은 빈 병만 우두커니 나를 쳐다”(「10월」)보는 것이었다.

  그러한 빈 병 또는 빈 방은 결국 그의 육체를 가두고 말았지만, 그의 시만은 오히려 결빙된 절망으로 빛나는 날을 가지게 되었고 수많은 영혼에게 깊은 흔적을 남겼다. 특히 그의 범상치 않은 죽음의 에피소드를 둘러싸고 진행되어온 신비화가 없지 않았다. 그로 인해 그의 시는 일정한 부가가치를 얻은 대신 문학으로서는 갇힌 부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 그의 죽음 자체가 던진 충격에서 벗어나기에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란 모든 대상을 빛바래게 하는 대신 적절한 거리를 베풀어줌으로써 오히려 새로운 발견을 가능케 한다.

  십년 만에 전집으로 새롭게 묶인 그의 시들을 다시 읽으면서 나는 얼음과 물의 경계에 대해 내내 생각했다. 이십대의 나에게 그의 시는 결코 녹을 것 같지 않은 단단한 얼음이었다면, 지금의 나에게는 간절히 녹고자 한 영혼, 이미 녹기 시작한 영혼의 일렁임 같은 게 만져진다. 이것이 세월을 거슬러 흘러갈 수 있는 시의 고유한 힘인지, 젊음의 팽팽한 긴장에서 어느 정도 놓여난 내 마음의 반영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삶과 죽음의 경계란 물과 얼음의 경계처럼 단호한 듯하지만 끊임없이 삼투하면서 새롭게 생겨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죽음을 기억하십시오. 이 인사가 마침내 일상이 될 때까지 우리는 언 물과 얼지 않은 물 사이에서 오래 출렁거려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를 기억하는 일이 더 이상 죽음의 성채를 쌓는 일이 아니라 삶으로 죽음을 녹여내는 일이 될 때, 그와 그의 시는 무연한 강물처럼 자유스러워 질 것이다. 그 역시 「잎․눈(雪)․ 바람 속에서」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나는 살아 있다. 해빙의 강과 얼음산 속을 오가며 살아 있다.”<나희덕, 반통의 물, 창작과 비평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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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잎. 눈[雪]. 바람 속에서

                                                              기 형 도


나무가 서 있다. 자라는 나무가 서 있다. 나무가 혼자 서 있다. 조용한 나무가 혼자 서 있다. 아니다. 잎을 달고 서 있다. 나무가 바람을 기다린다. 자유롭게 춤추기를 기다린다. 나무가 우수수 웃을 채비를 한다. 천천히 피부를 닦는다. 노래를 부른다.


나는 살아 있다. 解氷의 江과 얼음山 속을 오가며 살아 있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은빛 바늘 꼽으며 분다. 기쁨에 겨워 나무는 목이 메인다. 갈증으로 병든 잎을 떨군다. 기쁨에 겨워 와그르르 웃는다. 나무가 웃는다. 자유에 겨워 혼자 춤춘다. 폭포처럼 웃는다. 이파리들이 물고기처럼 꼬리치며 떨어진다. 흰 배를 뒤집으며 헤엄친다. 바람이 빛깔 고운 웃음을 쓸어간다. 淸潔한 겨울이 서 있다.


겨울 숲 깊숙이 첫눈 뿌리며 하늘이 조용히 安心한다.

 

 

 

 

 

 

 


 

 

 

 

 

 

 

 

 

제임스 콜만, Country Roa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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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밥헬퍼 > [퍼온글] Andrew Kiss의 그림

 

"Devil's Club" 14 x 18 - oil

 

 

 

 

 

 

 

 

 

 

 

 

"Forest Glade" 20 x 30 - oil

 

 

 

 

 

 

 

 

 

 

"Rust in Peace" 16 x 20 - oil


 

 

 

 

 

 

 

 

 

 

 

"Misty Swamp" 18 x 24 - oil

 

 

 

 

 

 

 

 

 

 

 

 

 

"Sunflower" 10 x 12 - oil

 

 

 

 

 

 

 

 

 

 

 

 

"Sunset at the Beach, Vancouver Island" 24 x 30 - o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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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드무비 > [퍼온글] Bill Coleman이 보여주는 아미쉬공동체의 가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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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플라시보 > 아디다스 CF - impossible is nothing

린 그녀에게 체조봉은 너무나 높은곳에 있다.

하지만 나디아 코마네치는 세계 최초로 10점 만점을 받았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일곱번 씩이나

그녀의 눈빛이 말해준다.

할 수 있다고 믿으면 할 수 있어.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얼마전 부터 이 광고가 눈에 띄였다. 두 명의 소녀가 동시에 평행봉 연기를 펼치는 이 광고는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의 새 광고이다.

언뜻 보기에 두 소녀는 동시대 사람 같지만. 한명은 (평행봉에 먼저 매달리고 먼저 착지하여 고개를 끄덕이는 소녀) 1976년. 루마니아 출신의 체조요정이라 불리웠던 나디아 코마네치이고 다른 한명은 2004년 미국의 체조 선수 나스티아 리우킨이다. 두 소녀는 시대는 다르지만 모두 13살이다. 배경은 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 이단 평행봉 경기의 실제 장면이다.

이단 평행봉에서 나디아 코마네치는 기록 경기가 아닌 인간의 몸으로 행하고 인간의 눈으로 판독하는 체조에서 10점 만점은 있을 수 없다는(최고점수 9.99) 불문율을 깨고 세계 최초로 10점 만점을 받았다. 그리고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나디아 코마네치는 7차례나 10점 만점을 받았다고 한다. 한가지 재밌는 것은 전광판에는 9.99까지만 표기가 되기 때문에 그녀가 경기를 펼치고 나서 전광판은 1.00을 기록했다.

언제인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 TV에서 나디아 라는 이름의 영화를 해 준적이 있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봤지만 대충 내용은 어떤 체조선수가 승승장구하다가 코치가 바뀌고 나태한 생활을 하다가 살이 찌고 슬럼프에 빠진다. 급기야 그녀는 자살을 시도하는데 (액상으로 된 세탁 세제를 마신다.) 다시 그녀를 가르쳤던 코치가 나타나고 그녀는 팔목 부상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체조계의 요정으로 멋진 재기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상당히 재밌게 봤었는데 요즘 아디다스 광고로 인해 이 영화를 찾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비디오가계에는 없을 확률이 높다. 오래된 영화이며 개봉당시 쫄딱 망했다고 하니까 말이다. 다만 인터넷을 뒤져보면 어딘가 영화를 다운받을 수 있는 곳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광고를 보고 사람들은 10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하는 감동을 주는 작품이라고 한다. 1976년의 나디아 코마네치와 2004년의 나스티아 리우킨을 합성하기 위해 무려 CG작업을 3개월이나 했다고 한다. 오랫만에 멋진 광고를 본것 같다.

 Impossible is nothing.

나에게도 해 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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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tarsta > 서재칠우쟁론기(書齋七友爭論記)

이른바 서재칠우(書齋七友)는 인터내(人攄乃) 방 가온데 일곱 벗이니 게임(偈任)하는 선배(士)는 구봉(球棒;조이스틱)과 화음(畵音;모니터와 스피커)으로 서재 삼우(畵面三友)를 삼았나니 규중 녀잰들 홀로 어찌 벗이 없으리오.

  이러므로 서재(書齋) 돕는 유(衆)를 각각 명호를 정하여 벗을 삼을새, 자판으로 달각할미라 하고, 마우스를 미(尾) 마마라 하고, 모니터로 화면여인이라 하여 도구삼품이라 삼았고, 리부는 정경부인이라 하고 패이버로 다정첩실이라 하고, 댓글을 천진소녀라 하여 마음을 드러내는 글발삼위로 삼았으며, 종(終)으로 적립금오천랑을 매혹랑자에 봉해 칠우를 삼아 규중 부인내 아츰 소세를 마치매 칠위 일제히 모혀 종시하기를 한가지로 의논하여 각각 소임을 일워 내는지라.

  일년이 지난 일일(一日)은 칠위 모혀 글발의 공을 의논하더니 자판 달각할미 긴 허리를 자히며 이르되,

  "제우(諸友)는 들으라, 나는 리부와 패이버, 댓글과 방명기록에 이르기까지 픽선 논픽선 시서화악를 다 내여 펼처놓고 글발을 세울 새, 파안대소이며 감탄기원을 나 곧 아니면 어찌 일으리오. 이러므로 서지공(書之功)이 내 으뜸되리라."

미 마마 길다란 꼬리를 흔들며 내다라 이르되,

  "달각할미야, 그대 아모리 글발을 세운 들 알아딘의 상품을 집어내지 아니하면 리부 제되 되겠느냐. 내 공과 내 덕이니 네 공만 자랑마라."

화면여인 방대평면을 구붓기며 날랜 부리 두루혀 이르되,

  "양우(兩友)의 말이 불가하다. 진주(眞珠) 열 그릇이나 껜 후에 구슬이라 할 것이니, 글발에 능소 능대(能小能大)하다 하나 나 곧 아니면 확인수정을 어찌 하리오. 문단정렬 띠어숙이 오타교정 특수문자 임오티곤을 이루미 나의 날내고 빠른 화면이 아니면 리부헤 글발세워 무엇하고 상품 집혀 무엇하랴.   달각부인의 고단이 하늘을 찌르고 미 마마의 꼬리에 때국이 전다 하나 내 아니면 공이 없으려든 두 벗이 무삼 공이라 자랑하나뇨. 도구삼품의 일등공신은 내 으뜸이라."

정경부인 리부의 얼골이 붉으락 프르락 하야 노왈,

  "도구삼품 들어라. 네 공이 내 공이라. 자랑마라. 네 아모리 착한 체하나 내와 내 언니 목록부인 없이 이주의 리부 수상금 오만랑을 구경이나 할수 있을소냐. 알아딘의 정수는 바로 우리 자매게 있음이라."

다정첩실 패이버가 웃고 이르되,

  "정경부인 마님, 위연만 자랑 마소. 이 첩실이 위상 적기로 서방님의 마음씀을 읽어내고 풀어냄이 나만한 이가 없으니, 나는 닭의 입이 될지언정 소 뒤는 되지 말라 하였음이라. 화면여인은 달각할미의 뒤를 따라 다니며 무삼 말 하시나뇨. 실로 십칠인치 거대얼골이 아까왜라. 마태서방 품속이 그립거든 사이주부터 줄여야 할줄 아노니, 내 화면여인의 상황을 배려하여 비법전수 내릴테니 고마운줄 알라."

천진소녀 댓글 이르되,

"리부나 패이퍼는 허울뿐이라. 나는 천만 가지 목록에 아니 참예하는 곳이 없고, 하로 분량도 무명씨 여인들은 열흘이나 되어야 살이 주역주역 오르는 것을 내의 천진으로 한번 쓰치면 거미줄 낱낱이 날리고 광택이 고하지고 더욱 하절을 만나면 소님이 다사하야 일일도 한가하지 못한지라. 글발이 나 곧 아니면 어찌 고오며, 홍보 수줍어 서재만 녈어 두고 고요히 마실만 다닐 제 나의 천진 아니면 어찌 괴이며, 세상 서재 어찌 활활한 기운이 넘쳐나리요. 이러므로 글발삼위 중 내 제일이 되나니라."

매혹랑자 적립금오천랑이 크나큰 입을 버리고 너털웃음으로 이르되,

"그대네는 다토지 말라. 이벤투가 활성하여 즐겨차기 백배신공을 이루며, 정경부인과 그의 언니 목록부인이 오만랑의 쌍을 이루며, 서재지수 탑 오십으로 상승할 재 내의 손바닥에 밀려나면 그 아픔 감당키 어려워함을 알고 있느니라. 미모로운 멍든삭와도 미모로 감당키 어려웠나니. 수고로운 칠일의 흔적이 감초여지기를 정녕 원하는가. 내의 손바닥 아닌 시야에서 벗어나 백위를 넘어서면 존재조차 의심받노라. "


규중 부인이 이르되,

  "칠우의 공으로 서재를 다스리나 그 공이 주인의 쓰기에 있나니 어찌 칠우의 공이라 하리오."

하고 언필에 칠우를 밀치고 베개를 돋오고 잠을 깊이 드니 달각할미 탄식고 이르되,

  "매야할사 사람이오 공 모르는 것은 녀재로다. 오매불망 원할 제는 몬저 찾고 일워내면 자기 공이라 하고, 뼈마디 달각소리도 알아듣지 못하니 어찌 야속하고 노흡지 아니리오."

미 마마 이어 가로대,

  "그대 말이 가하다. 새벽녘 점검시간 먹통되면 분통나니 하고 내어 던지며 꼬리로 날 잡아 흔들제는 토심적고 노흡기 어찌 측량하리오. 불아우저 설정 다시하라 경고하면 매양 내 탓만 너겨 날와 달각할미 두드리니 마치 내가 감촌 듯이 문고리에 거꾸로 달아놓고 좌우로 고면하며 전후로 수험하야 기절하기 몇 번인 동 알리오. 그 공을 모르니 어찌 애원하지 아니리오."

화면 여인 한숨 지고 이르되,

  "너는커니와 내 일즉 무삼 일 사람의 손에 보채이며 요악지성(妖惡之聲)을 듣는고. 각골 통한(刻骨痛恨)하며, 더욱 나의 방대 얼굴 휘드르며 날랜 부리 두루혀 힘껏 글발을 세우는 줄은 모르고 마음 맞지 아니면 나의 십칠자 얼골 방대한 곳곳을 찔러대니 어찌 통원하지 아니리요. 사람과는 극한 원수라. 갚을 길 없어 이따감 손톱 밑을 질러 피를 내어 설한(雪恨)하면 조곰 시원하나, 오타대왕 직이 믿고 설쳐대니 더욱 애닯고 못 견디리로다."

정경부인 눈물지어 이르되,

  "그대는 데아라 아야라 하는도다. 나는 무삼 죄로 현학지형(衒學之刑)를 입어 찾는 이도 없는 독수공박을 하느뇨. 댓글또한 나를 무시하니 혼자있는 설움 복받겨 올하 내 섧흠 괴롭기 칙량하지 못할레라."

다정 첩실 또한 분개하여 왈,

  "그대와 소임(所任)이 같고 욕되기 한가지라. 리뷰에 비해 패이버라는 일흠에 서재지수 차별받아 멱이 잡혀 들까지며, 퍼다 실려 매번 이사가 끊이지 아니하니 황천(皇天)이 덮치는 듯 심신이 아득하야 내의 몸이 따로 날 적이 몇 번이나 한 동 알리오."

적립금오천랑 분기탱천하여 이르되,

"달인순위를 점검하여 삼십줄이 넘으면 나를 못 가짐이 당연하거늘, 밀려나면 제 능력을 한탄하지 아니하며 날래 속물취급이 다반사, 허나 나를 취할제 제 흥에 겨워 비릿하게 껴안으니, 그 행태가 참으로 방정치 못하리라. 상종못할 알아딘어로세!"

칠우 이렇듯 담논하며 회포를 이르더니 자던 여재 믄득 깨쳐 칠우다려 왈,

  "칠우는 내 허믈을 그대도록 하느냐."

오타대왕 직이 고두사왈(叩頭謝曰),

  "젊은 것들이 망녕도이 헴이 없는지라 족가지 못하리로다. 저희들이 재죄있이나 공이 많음을 자랑하야 원언(怨言)을 지으니 마땅 결곤(決棍)하암즉 하되, 알아딘 서재 창립 일년이 되는 금일의 깊은 정과 저희 조고만 공을 생각하야 용서하심이 옳을가 하나이다."

여재 답왈,

  "오호라 서재일년.! 오타대왕 직이의 말을 좇아 물시(勿施)하리니, 내 손부리 날라다님이 대왕 공이라. 마음에 차고 다니며 은혜를 잊지 아니하리니 비단금침으로 삼복 덮위에 이불을 더퍼 오타가 해롭지 않게 하리라."

하니 대왕은 고두배사(叩頭拜謝)하고 제붕(諸朋)은 참안(慙顔)하야 물러나리라.


요점 정리

연대 : 미상
작자 : 어느 규중 부인
형식 : 고대 수필, 한글 수필
성격 : 교훈적, 논쟁적, 풍자적, 우화적
표현 : 의인법, 풍유법
문체 : 내간체
주제 : 서재를 운영함에 있어 알라디너의 자세를 망각하고 교만하거나 불평·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내용 : 자판.마우스.모니터.리뷰.페이퍼.댓글.적립금오천원 등을 의인화하여 세정(세정)을 풍자함
의의 : '조침문(조침문)'과 함께 의인화로 된 내간체 고대 수필의 쌍벽을 이룬다.
출전 : 알아딘서재
도움 : 내이버검색과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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