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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물리학의 앞선 흐름을 알린다

최성일|도서평론가 robli@freechal.com

지난 6월 4일 오후, 2007 서울국제도서전을 보러 코엑스를 찾았다. 예년에 비해 도서전에 참가한 단행본 출판사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공짜로 얻은 특별기획전 <한국현대사와 함께 한 우리 책 1945-2007>의 안내책자 몇 군데가 눈에 거슬린다. 양성우 시인의 시집 『겨울공화국』이 실천문학사에서 1977년에 나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실천문학사는 1980년대 설립된 출판사다. 나는 화다에서 펴낸 『겨울공화국』을 갖고 있는데, 이 시집은 그 전에도 출간된 것으로 안다. 그러니까 안내책자에 소개된 실천문학사 판 『겨울공화국』은 세 번째로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창작과비평> 복간호(1988년 봄호)가 창간호 표지를 대신한 것은 성의 부족에다 작지 않은 편집실수다. "문우출판사/복간호(제16권 제1호)"는 번지수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

내심 아는 출판계 인사 서넛은 만나겠지 생각했는데, 두 시간 남짓 전시장에 머무는 동안 10명이나 마주쳤다. 도서출판 승산의 황승기(61) 대표와는 구면이다. 2000년 봄 복직한 <출판저널>의 첫 특집 '수학을 읽는다'의 한 꼭지로 그와 인터뷰를 했다. 이제 막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수학전문 신생출판사 대표와의 만남이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승산은 과학전문 출판사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출판사 설립 초기, 학원가의 유능한 수학강사였다는 황 대표의 이력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안 망했습니다"
최성일(이하 최) 지금까지 펴낸 책은 모두 몇 종인가요?
황승기(이하 황) 정확히 헤아려 보진 않았지만, 거의 팔구십 종 될 걸요.

최  "안 망하겠다"라는 다짐을 지키셨습니다.
황  내가 그 얘길 다른 사람한테도 했어요. 과학책 붐을 일으키겠다는 뜻입니다.

최  '파인만의 빨간 책'이라 불리는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 1,2권을 번역 출간하셨는데요. 1권 '역자후기'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이 책은 설명 방식이 너무 독창적이어서 다른 참고 서적을 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황  2권의 번역자는 1권을 혼자 번역한 박병철 선생까지 8명입니다. 이 가운데 7명은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을 번역하자고 '물리사랑'이라는 사이트에서 의기투합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번역 판권이 누군가에게 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꿩 대신 닭이라고 브라이언 그린의 『엘러건트 유니버스』를 번역하자고 했어요. 그 책의 판권 역시 나갔다는 거예요. 우리가 다 갖고 있었거든요.
그 중 한 친구가 어느 출판사에 판권이 있는지 물어봐도 에이전시가 알려주지 않는 거예요.
더구나 『엘러건트 유니버스』는 국내 에이전시가 아니었거든요. 이 친구가 승산이 갖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내게 전화로 문의를 해왔어요.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를 번역하겠다고 제안하기에 1권은 번역이 진행 중인 상태여서 2권을 맡겼지요. 책이 워낙 대작이라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번역에 참여했으면 싶었지요.
2000년 무렵만 해도 물리학 교양서의 입지가 지금보다 훨씬 좁았어요. 혹독한 겨울이나 다름없었지요. 그 당시 내가 이 사람들한테 물리학에 관한 책을 한 스무 권 펴내 물리학책의 붐을 일으키겠다, 그것도 양자역학 쪽을 하겠다고 했더니 아무래도 못 미더워하는 눈치예요.
내가 누굽니까? 돈키호테잖아요. 나는 자신했습니다. "좋은 책만 만들어선 소용없다. 팔리고 읽혀야지. 좋은 책을 만들어도 못 팔면 기여한 게 없는 거다."뭘 믿고 그렇게 큰소리를 쳤느냐? 출판사로선 대중적이고 쉬운 책을 선호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야 책이 많이 팔린다고 믿고 있거든요. 하지만 학문을 탐구하는 학자에서부터 초등학생까지 어떤 내용에 깊이 빠져들 때만이 연구와 학습이 제대로 되거든요. 나는 그전까지 출판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교육이 정말 잘못된 점은 교육당국과 학부모, 그리고 출판이 아이들을 만물박사로 만드는 데 골몰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상태를 바꾸는 것을 출판의 목표로 정했지요. 그러려면 내용이 어느 정도는 어려운 데까지 들어가야 한다고 본 거죠.
책이 진정으로 독자를 움직이려면 어느 정도의 수준은 돼야 한다는 거죠. 물론 번역과 편집의 완성도가 높아야 합니다.
이 책 저 책, 이런 분야 저런 분야를 다 하긴 어렵습니다. 처음엔 수학 쪽에 관심을 가졌다가 물리 쪽으로 폭을 넓혔습니다. 수학은 추상적입니다. 물리는 자연현상을 다룹니다. 양자역학의 세계가 눈에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응시할 수 있는 자연현상이어서 이해하기가 더 낫다고 본 거지요. 요즘 다시 수학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대학 다닐 때도 느낀 거지만 물리학과 출신들이 양자역학에 대해 잘 몰라요. 뿐만 아니라 이공계 출신과 지식인층에서도 양자역학은 아킬레스건이에요. 이런 걸 해소하기 위해 관련서를 와장창 내자는 거지요. 그래서 『조지 가모브, 물리열차를 타다』(2001)를 낸 거예요. 이 책은 60년 전에 나온 겁니다. 그리고 1970년대 초반 전파과학사의 '전파과학신서'로 번역된 적이 있습니다.

승산에서 펴낸 수학·물리 교양서
도서출판 승산은 출판등록을 하고 1년 6개월 만에 첫 책을 냈다. 폴 호프만이 지은 수학자 폴 에어디쉬 전기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1999)가 승산의 첫 책이다. "이 책은 순수 수학의 흥분, 열광, 통찰, 그리고 수학에 미친 한 인간의 아름다운 몰두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에어디쉬는 우리에게 낯선 인물이었다. 수학교사 중에도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이 책은 예술가와 전문직 사이에서 널리 읽혔다.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수학의 해' 즈음하여 출판한 실비아 네이사의 『아름다운 정신』(2000)은 실제로 정신분열증에 시달린 수학자 존 내쉬의 생애를 다룬다. 책을 두 권으로 나눈데다 촌스런 표지 탓인지 몰라도 별 재미를 못 봤다. 러셀 크로우가 내쉬를 연기한 영화의 국내개봉에 맞춰 재출간했을 때 비로소 독자의 주목을 받았다. 『뷰티풀 마인드』(2002)는 두 권을 한 권으로 묶어 양장 제본하고 원제목과 영화제목으로 제목을 바꾼 것이다.

『일반인을 위한 파인만의 QED강의』(2001)는 다른 출판사를 통해 '숨은 질서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나왔던 것을 재출간하면서 본문 편집과 표지디자인에 공을 들여 독자의 호응을 얻었다. 다음은 황승기 대표가 전하는 독자 반응이다. "병원에 입원한 여자 친구 간병하면서 다 읽었다는 독자가 있는가 하면, 정작 물리학과 출신들은 불만이 있더라고. 양자역학을 이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일반인을 위한 강의가 어떻게 가능하냐며."

브라이언 그린의 『엘러건트 유니버스』(2002)와 『우주의 구조』(2005)는 시각이 서로 맞선다. '초끈이론은 절대적이다'와 그렇지 않다로. 데이비드 린들리의 『볼츠만의 원자』(2003), 조지 존슨의 『스트레인지 뷰티』(2004), 갈릴레이의 천문노트 『시데레우스 눈치우스』(2004) 등도 눈여겨봐야 할 책이다. 작년 말에서 올해 초 사이에는 묵직한 책들을 내놨다.

황승기 대표는 "안톤 차일링거의 『아인슈타인의 베일』은 제목에 아인슈타인이 들어있지만 양자물리학의 세계를 다룹니다. 독일어로 나온 원서를 번역했는데 영어판은 아직 안 나왔어요"라고 말한다. 한스 크리스천 폰 베이어의 『과학의 새로운 언어, 정보』는 "정보 개념이 어떻게 물리학의 열역학에서부터 생물학의 유전까지 다양한 원리들에 빛을 비추는지 보여준다."

존 더비셔의 『리만 가설― 베른하르트 리만과 소수의 비밀』과 마르쿠스 듀 소토이의 『소수의 음악― 수학 최고의 신비를 찾아』는 짝을 이룬다. 더비셔의 책은 번갈아가며 읽는 형식이다. 홀수 장은 수학적인 내용을 주로 다루면서 독자가 리만 가설을 수학적으로 이해하고 그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게 돕는다. 짝수 장은 리만 가설의 역사적 배경과 관련한 수학자들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이 책에는 리만 가설을 이해하기 위해 요구되는 최소량의 수학만이 실려 있다. 이보다 더 간단한 수학으로 리만 가설을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책을 덮는 순간까지 리만 가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서문'에서) 『소수의 음악』은 수학의 성배 뒤에 숨겨진 놀라운 역사와 이를 파악하려는 노력을 흥미롭게 펼쳐보인다.

최  이런 책들의 주된 독자층은 누굽니까? 어떤 사람들이 승산에서 만든 책을 읽고 있나요?
황  독자서평 외에는 독자의 반응을 알 수 있는 피드백이 없기 때문에 정확히는 잘 모릅니다. 똑똑한 중학생 정도면 읽을 수 있다고 봅니다.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교수, 연구원 들과 열독력 있는 문과출신까지가 주 대상이 됩니다. 특히 소설에 식상한 사람들이 우리 책을 좋아합니다. 독자들의 저변과 독서 풍토가 그리 삭막하지만은 않습니다.

파인만 책은 다 내겠다
최  출간목록에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비중이 높은데요.
황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이야기』(2003)는 처음부터 예감이 좋았어요. 이건 된다 싶었지요. 그런데 걸림돌이 없지 않았어요. 판권은 살아있지만 다른 출판사에 우선권이 있었어요. 다행히 그 출판사는 이 책에 관심이 없었어요. 한숨 돌리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저작권을 가진 미국 출판사에서 실적을 요구하는 거예요. 아직 책을 한권도 안 낸 상태였는데 말예요. 판권 계약만 진행 중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잘 할 수 있다" 했더니 "안 된다" 하진 않고 "지켜보겠다"는 응답이 왔어요.
에이전시를 통해 아무리 사정을 말해도 막무가내예요. 그러면 좋다, 너희에게 판권이 있는 파인만 책을 다 하겠다고 했어요. 거기서 펴낸 파인만 책을 다 계약하자 해도 말을 듣지 않아요. 그러니 누가 판권을 가져가면 어쩌나 얼마나 불안해요. 책이 나오는 대로 책을 보내줘도 함흥차사인 거예요. 그로부터 정확히 3년 뒤 오케이 사인을 받았어요.
의욕이 생겨서 파인만에 만족하지 않고 파인만의 라이벌인 겔만의 전기 『스트레인지 뷰티』를 낸 거예요. 이 책은 손해를 많이 봤어요. 겔만은 우리나라에도 한번 다녀갔는데, 흥미로운 것은 겔만의 전기에 나오는 물리학자와 파인만의 전기 『천재』(2005)에 등장하는 물리학자가 얼마 겹치지 않아요.
내가 봐서 좋은 책은 독자도 좋다고 인정하더라고요. 독자의 수준이 아주 낮은 건 아닙니다.
의외로 '어려운' 책을 이해할만한 독자가 꽤 있습니다. 우리가 콘텐츠를 잘 선택해서 책을 만들면 되겠더라고요. 비유하자면, 찐빵의 팥소 같은 책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 책을 스무 권 정도 확보하면 어떤 중요한 흐름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최  번역할 책을 어떻게 고르시나요?
황  대부분 아마존www.amazon.com을 통해서 한다고 보면 됩니다. 에이전시를 거치는 경우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요즘은 아마존이 출판하는 사람을 살려줘요. 나도 한때는 아마존을 끼고 살았어요. 판매 예측이 가능하거든요. 원서가 잘 팔린다면, 번역을 잘못하지 않는 한 번역서도 십중팔구는 꽤 나간다고 봅니다. 문과 학문은 어떤지 몰라도 이공계 학문은 세계 공통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아마존은 누구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역할을 하고 있는 겁니다. 잘 활용해야죠.

최  10년 가까이 출판을 해보니 어떠세요. "출판사는 절대로 하지 말라"던 주변의 만류가 옳았습니까?
황  해보니까 그 사람들은 나를 위해 좋은 이야기를 해준 거더라고요. 그것이 내게 어떤 도움이 됐나 하면, 그 사람들은 선의로 만류한 거잖아요. 내가 돈키호테 기질이 있는데 심사숙고하게 해줬지요. 결과론적으로는 출판을 잘 했다고 생각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반대와 충고가 보탬이 된 듯해요.
아무튼 이 길에 정말 잘 들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의 중등교육을 살리고 싶어서 출판을 시작했거든요. 우리가 안고 있는 교육문제는 현행 교육체제 아래선 해결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보다시피 아주 엉망이잖아요. 다른 분야는 발전해도 교육 분야는 늘 뒤처져 있지요. 개인적으론 학원 강사로 일하고 학원을 경영한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잘 되던 학원을 왜 접었나, 학원과 출판을 겸업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최  승산은 어린이책도 펴냅니다. 역시 분야는 과학이고요. 그런데 최근 출간된 '논술 쑥쑥 어린이 인권여행' 시리즈는 분야가 다르네요.
황  우리가 '문과'를 안 한다는 게 아닙니다. 콘텐츠만 좋으면 합니다. 여러 가지 사정상 과학의 비중이 높고 그것에 전력을 다하는 겁니다. 어린이책을 이왕 시작했으니 내지 않을 순 없는 거지요. 또 출판사가 한 달에 한 권은 펴내야 하는데 지난해엔 책을 몇 권 못 냈어요. 출판사 웹 사이트 만드느라 편집 진행 중인 책에 신경 쓰느라. 상대적으로 제작기간이 덜 드는 어린이책을 내야겠다 싶었지요.
시행착오를 겪고 난 지금은 어린이책이 꽤 선전을 하고 있어요. 우리의 경우, 계절적으로 성인책의 판매가 부진한 오뉴월에는 어린이책이 커버를 해줍니다. 어린이책에서 빠져나오려 생각했지만 안 빠져나온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출근해서 보면요. 매출도 매출이지만 책이 몇 권 나갔느냐가 굉장히 기분을 좌우합니다. 어린이책은 권수라도 많이 나가요. 그런 날에는 일할 활력이 솟구치지요. 그런 의미에선 어린이책 내기를 아주 잘 한 것 같아요.

수학공부, 하려면 제대로 하자
최  새 교육과정에서 수학교과의 비중이 낮아진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황  수학교양서를 내는 출판사로서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점은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과목이 많다는 거예요. 나는 모든 사람이 수학을 다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예체능을 하는 사람은 수학의 비중을 줄여줘도 되요. 그 대신, 줄인 비중이나마 제대로 된 수학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일주일에 두 시간 수업을 받아도 제대로만 한다면, 그 수학교육이 음악을 하거나 미술을 하거나 또 다른 예술 활동을 하는 데 반드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엔 음악, 미술 하는 애들까지도 문과와 같았어요. 요즘은 안 그렇지만. 그런데 얘들은 날마다 대여섯 시간 음악, 미술 실기를 해야 합니다. 언제 영어공부하고, 언제 수학문제 풉니까? 그들이 하는 영어와 수학은 정상적인 방식이라고 말할 수 없지요. 나는 모든 사람이 영어, 더구나 수학을 다 해야 한다는 데에는 찬동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해도 좋고, 한 해도 좋아요. 하지만 수학을 해야 할 사람은 수학을 줄여선 안 되지요. 단, 이 경우에도 많이 하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그러면 수학공부를 왜 해야 하느냐? 당장 써먹을 수도 없는데 말이에요. 수학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고력 형성입니다. 사고력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차원 높은 사고력을 유발하고, 고차원의 사고력이 결과적으로 고도의 판단능력을 제공해주며, 창의력에까지 연결됩니다. 우리 수학교육은 이런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수학교육이 교육을 망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본연의 길에서 벗어난 수학교육은, 다시 말해 수학을 잘못 가르치면 창의력과 사고력을 배양하기는커녕 다 짓밟게 됩니다. 차라리 수학교육을 안 받은 사람이 나아요. 수학의 진정한 길을 가면 수학하는 것이 다른 문과에까지, 소설 쓰는 데까지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지금처럼 하는 수학교육은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는 겁니다.

최  그럼, 수학을 어떻게 가르치는 것이 바람직한가요?
황  수학의 기본 개념과 원리에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수학교육의 현실은 수학을 잘 하는 학생들도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 풀이과정 자체를 외우는 형편입니다. 어려운 문제를 두세 시간이나 하루 이틀, 심지어 일주일 넘게 붙잡고 끙끙거리며 푸는 게 아니라 풀이과정을 외우는 데 급급한 것은 큰 문제입니다. 그렇게 해도 문제를 풀 수 있으니까요. 아시아 지역에선 풀이과정을 노출하지만, 미국 쪽은 그렇지 않습니다. 교사가 수학을 잘 가르치느냐, 못 가르치느냐의 여부를 떠나 교육시스템부터가 다릅니다.

논술대비는 독서가 최선
최  저는 대학입학 논술시험은 변별력에 문제가 있을뿐더러 대학에서 공부할 능력을 판단하는 잣대로도 부적합하다고 봅니다. 앞서 말씀하셨듯이 논리적 사고력을 키우고, 여기에 더하여 대학입학 응시자의 수학修學 능력을 가늠하고자 한다면, 정규교과와 대입에서 수학의 비중을 높이는 게 더 옳아 보입니다.
황  미국의 고등학교에선 학생에게 에세이를 많이 쓰게 하잖아요. 그걸 본뜬 겁니다. 미국은 초등학교 때부터 작문 연습을 철저히 합니다. 영어시간, 곧 미국의 국어시간뿐만 아니라 다른 과목에서도 에세이를 써내라 하지요. 대학입시에서도 에세이를 써서 제출해야 하잖아요. 한국에서 지원하는 학생들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만, 자기가 써내라는 거 아닙니까. 또 우리는 논술과 독서의 순서가 뒤바뀌었습니다. 책을 먼저 읽어야 마땅하지만 논술을 막 때려버리니까 수험생으로선 요점을 정리한 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수학교육의 문제점을 이야기하자면,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수학책이 어려워야 신뢰를 합니다. 어려운 문제를 풀 줄 아는 선생을 존경합니다. 대입 본고사 시절에는 일본 도쿄대학 입시문제를 풀어줘야 했어요. 이런 심리가 우리에게는 잠재해 있습니다. 학원, 과외, 개인지도 등이 모두 공부 잘하는 학생의 수준에 맞춰져 있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끌고 가다보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됩니까? 어려운 문제만 풀어서 수학적 사고력이 길러지고 수학문제를 잘 푼다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허우적거리게 만듭니다. 그렇게 해서는 전체적인 체계를 잡아서 자기 힘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은 절대 안 생깁니다. 그러기에는 고등학교 3년이라는 세월이 너무 짧습니다.

저번 인터뷰에서 황승기 대표는 수학 잘하는 방법을 귀띔해 줬다. 첫째, 문제의 답과 풀이과정을 보는 것은 금물이다. 단, 교과서에 예시된 비슷한 유형의 풀이과정은 참고해도 된다. 둘째, 교과서를 차근차근 15번 이상 읽는다. 또 그는 "학생들이 문제를 스스로 풀어보는 것으로도 수학교육은 혁명이 이뤄지며, 학생들이 『엔트로피』(제레미 리프킨) 같은 책을 한 권만이라도 제대로 소화하면 논술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실전을 통해 터득했다"고 한다.

도서출판 승산은 향후 2-3년간의 출간 일정이 잡혀있다. 대체로 현대물리학의 앞선 흐름을 다룬 책들이다. 그 가운데 세 권을 황승기 대표의 설명을 토대로 살펴보면, 『The Road to Reality-A complete Guide to the Laws of the Universe』는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의 역저다. '우주의 법칙'이 부제인 이 책은 수학에 높은 비중을 둬서 학문의 근본부터 트위스트이론까지 다룬다. 누프양자이론의 창시자인 리 스몰린Lee Smolin은 입자이론의 '세 갈래 길'로 초끈이론, 누프양자이론, 트위스트이론을 든다. Peter Woit의 『Not Even Wrong』은 초끈이론을 비판하는 책이다. 프리먼 다이슨Freeman Dyson이 서문을 쓴 줄리언 하빌Julian Havil의 『Gamma: Exploring Euler? Constant』는 오일러의 상수, '감마'를 본격적으로 다뤘다.

기사게재 : <기획회의> 203호 기획회의가 만난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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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번역가의 괴로움

한겨레의 기사들을 훑어보다가 '번역가의 괴로움'이란 칼럼을 읽게 되었다. 제목 자체가 최근에 문제된 '대리번역' 파문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건 칼럼을 읽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특이할 만한 사항은 가브리엘 마르케스 전문 번역가로 유명하다는(아마도 마르케스의 노벨상 수상에도 일조했을 듯싶다) 그레고리 라바사를 소개하고 있는 대목이다.

 

 

 

 

<백년의 고독> 혹은 <백년 동안의 고독> 영역본의 그의 작품이라는데(국내에도 여러 번역본이 출간돼 있다), 마시멜로보다는 라바사에 흥미를 느껴서 몇 가지 검색을 해보았다. 한겨레의 칼럼과 함께 재작년 뉴욕타임즈 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06. 10. 24) 번역가의 괴로움

<마시멜로 이야기>라는 책의 대리번역 또는 이중번역 논란으로 모처럼 번역가들한테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덕분에 번역가들의 어려운 처지도 약간 드러났으나, 아무래도 나쁜 인상이 더 클 것 같다. 굳이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번역가들이 주목받는 건 흔히 부정적인 사건이나 경험을 통해서다. 독자들은 번역이 너무 엉망이라고 느낄 때나 ‘도대체 누가 번역했어’ 하며 이름을 확인하는 게 보통이다. 번역의 어려움을 알 만한 학자나 전문가들 사이에도 원전을 강조하고 번역서와 번역가를 낮춰보는 경향이 꽤 있다.

하지만 훌륭한 번역가가 문화에 이바지하는 바는 셈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이 점은 미국의 유명 번역가 그레고리 라바사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1922년 쿠바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60년대 초부터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를 쓰는 작가 약 30명의 작품 60권 정도를 영어로 번역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남미 문학이 이렇게 세계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가 70년에 번역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의 고독>은 또하나의 훌륭한 창작품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이 말엔 긍정과 부정의 의미가 함께 담겨 있다.

라바사에게도 번역은 쉽지 않은 작업인 듯하다. 책 전체를 미리 읽지 않고 읽어가면서 번역하기로 유명한 그는 지난해 쓴 회고록 <이것이 반역이라면>에서 번역을 모순적으로 규정한다. 어떤 대목에서는 그저 ‘단어들을 따라가기’로 묘사하다가, 다른 대목에서는 ‘개인적인 선택에 근거한’ 아주 주관적인 작업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만큼 번역은 미묘하고 까다로운 일이다. 독자들이 이런 어려움까지 알 필요는 없겠지만, 책을 잡을 때 ‘이름 없는 봉사자’인 그들을 한번 생각해주는 정도의 관심은 필요할 것이다.(신기섭 논설위원)

A Translator's Long Journey, Page by Page

By ANDREW BAST

Published: May 25, 2004

On Gregory Rabassa's crowded bookshelves is a first edition of "Rayuela," the experimental 1963 novel by the Argentine novelist Julio Cortázar. Mr. Rabassa had just finished his Ph.D. in Portuguese in the mid-1960's when an editor at Pantheon — who had noticed his work editing a failed literary magazine at Columbia University — asked him to translate Mr. Cortázar's book from Spanish into English. Without having read what has been called a "fiendishly esoteric" novel, Mr. Rabassa sat down and typed a draft in English, word by word. In 1967 Mr. Rabassa's work, titled "Hopscotch" in English, won the first National Book Award for translation.

"I've got 50 of them behind me," Mr. Rabassa said, reflecting in the Upper East Side apartment he shares with his wife, Clementine. He has a slight build and white hair that he wears like a crown. He is surrounded by novels written by literary giants like Jorge Amado, Mario Vargas Llosa, José Lezama Lima and Gabriel García Márquez, the original Spanish or Portuguese edition beside his published English translation.

Now, at 82, Mr. Rabassa is finally going to publish his own first full-length book, "If This Be Treason: Translation and Its Dyscontents," a playful reflection on his life's work that New Directions is planning to bring out next spring.

"My thesis in the book is that translation is impossible," Mr. Rabassa said. "People expect reproduction, but you can't turn a baby chick into a duckling. The best you can do is get close to it."

If that is true, then Mr. Rabassa has gotten about as close as one can. He is widely considered one of the greatest practitioners of his craft. "Rabassa's great gift is to find the music in English that is true to the language of a wide range of writers in Spanish," said Dan Simon, the founder of Seven Stories Press, which has published some of Mr. Rabassa's translations. "Had Rabassa become a diplomat or brain surgeon, we could easily imagine not having readable translations of Cortázar and García Márquez."

Yet for all the accolades, translation is still a difficult and poorly understood art. Often the translator's name will not even appear on the cover of the book, Mr. Simon said, yet "a poor translation of a text kills it in the market."

Walter Benjamin, the German literary critic, once wrote, "No translation would be possible if in its ultimate essence it strove for likeness to the original."

Mr. García Márquez has said that Mr. Rabassa read "One Hundred Years of Solitude," sat down and then rewrote it in English. (He also said that Mr. Rabassa's translation improved on the original.)

But Mr. Rabassa contends that rewriting is not at all what he does: "I'm reading the Spanish, but mostly I'm reading it in English, and it comes out that way.

"When I talk about it, I say the English is hiding behind his Spanish. That's what a good translation is: you have to think if García Márquez had been born speaking English, that's how a translation should sound."

In the case of Cortázar, Mr. Rabassa developed a relationship with him, and they became good friends, spending days and nights listening to 78's of Count Basie and Lester Young. Mr. Rabassa translated Luis Rafael Sánchez and lounged with him on the beaches of Puerto Rico. And after translating "Seven Serpents and Seven Moons" by Demetrio Aguilera-Malta, a former Ecuadorian ambassador to Mexico, he ended up with one of the author's paintings hanging on his apartment wall.

Yet Mr. Rabassa has also produced brilliant translations without developing any relationship with the author. Jorge Armado and Mr. García Márquez wanted nothing to do with their books in English.

Mr. Rabassa said he typed his translation of Mr. García Márquez's "One Hundred Years of Solitude" page by page, just as he did with Cortázar's novel. Yet unlike his blind excursion with "Hopscotch," Mr. Rabassa had already read Mr. García Márquez's magical epic about the Buendía family, before he tried the translation. "I knew it was a damn good book, but it wasn't as much fun knowing all about it," he said.

Sitting in his armchair, nibbling on a greek pastry, Mr. Rabassa explained that titles pose their own challenge. He translated the 19th-century Portuguese classic "Memórias póstumas de Bráz Cubas" by Joaquim Maria Machado de Assis, which literally means "The Posthumous Memoirs of Brás Cubas." When Noonday Press issued the novel with the title "Epitaph of a Small Winner," Mr. Rabassa complained.

"You don't mess around with a classic," he said. "That's like calling `Madame Bovary' the story of a middle-class adulteress." (Oxford University Press published the book with Mr. Rabassa's translated title in 1997.)

Half of Mr. Rabassa's book will consist of reflections on each of the many authors he has translated, and half will be a memoir of how he ended up as a translator. The epilogue, he said, will be printed unfinished, as "translation is never finished."

Mr. Rabassa was born in Yonkers in 1922. His father was a Cuban sugar broker, but, he said, "the old man didn't speak much Spanish around the house." The young Mr. Rabassa studied French and Latin in high school; then at Dartmouth, he said, he "began collecting languages." There he studied Portuguese, Russian and German. In conversation, his voice wanders seamlessly among the five he still speaks.

"I'd dabbled in Italian," Mr. Rabassa said. "But then I bought a beautiful edition of Dante. I used Spanish and Portuguese — they're so similar to Italian — as I went along, substituting the real Italian words, and finally I was talking Italian."

In 1942 Mr. Rabassa volunteered for the Army and, because of his language skills, ended up in the Office of Strategic Services. Mr. Rabassa translated encryptions, or what he called English into English, and he also conducted interrogations.

When he returned to the United States after spending time in Italy and Northern Africa, Mr. Rabassa lived on Morton Street, watched Charlie Parker play in Greenwich Village and wrote poetry. He studied for his master's in Spanish at Columbia, then, tired of the language, kept on with his studies but finished his doctorate in Portuguese. At a cocktail party Mr. Rabassa met an administrator at Queens College and he ended up being hired as a professor there. He still teaches the freshman lecture course Hispanic Literature in Translation.

"When I began teaching," he said, "I was the same age as my students, and I still labor in the delusion. So it's a good, youthful operation."

Mr. Rabassa says that although he is translating a new generation of Hispanic writers, little has changed since he translated the giants. Despite the differences in writing styles, the way he approaches the text is essentially the same.

"They're all so different, the ones I did," he said. "I think it works because I don't think I have a translation style. It's a positive feeling I have about them. I find a lot of instinct in what I do. You have to just hit it right. I'm never sure whether something is right, but I know damn well when something is wrong."

06.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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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문제의 본질은 번역자다

필요 때문에 번역 문제에 관한 자료들을 검색하다가 작년 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발행하는 <기획회의> 18호(2005년 4월) 특집이 '번역출판의 오늘을 말한다'였다는 걸 알게 됐다. 특집기사들 중에서 한기호 소장의 글 '문제의 본질은 번역자다: 번역출판의 제도적 측면'을 옮겨온다.

 

 

 

 

-이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내내 나는 <아나 트롤>(창비, 1991)의 경험을 순간적으로 떠올렸다. 뛰어난 서정시인이자 정치풍자시의 대가 하인리히  하이네의 대표적 장편풍자시 <아나 트롤>과 12편의 시사시를 번역 수록한 이  책은 1991년에 시인 김남주의 번역으로  창비에서 출간됐다(*이 책은 현재 절판중이다). 당시 그 회사 영업책임자이던 나는 교정지에서 접한  번역문의 유려한 문장에 반해 <아나 트롤>에 대해 더 상세하게 알고 싶었다. 그래서 <아나 트롤>을 다룬 석사논문을 찾아 읽어보았는데 논문 속의 인용문은 교정지의 번역문과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석사논문 속의 인용문은 그냥 뜻이나 통하게 옮겨놓았다고나 할까? 내가 만약 그 인용문 수준의 글부터 읽었다면 과연 <아나 트롤>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게 되었을지, 책이 만약 그런 수준이었다면 책을 구해 읽었을지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늘날 표면적으로는 번역출판의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전체 발행종수 가운데 번역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5년 15%에서 2003년 29.1%로 2배 가까이 늘었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만화와 아동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 두 분야를 제외하고는 역사 분야가 평균 성장률과 비슷하고 나머지는 모두 밑돌고  있다. 결국 출판시장의 성장에 비추어보면 질적으로 상당한 퇴보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동안 번역출판을 놓고 단순한 통계수치만으로 ‘상당한 양적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이 없지 않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속빈 강정’임을 알 수 있다.  

-이런 흐름은 2004년에도 어느 정도 유지됐다. 2004년에  번역서는 전체 발행종수 35만394종의 28.5%인 10만88종으로 2003년과 비슷하다. 만화(3108종)와 아동(2245종)을 합하면 여전히 번역서의 절반을 넘는다. 단지 아동은 늘어나고 만화가 줄어들었을 뿐이다.

 

 

 


-번역서의 번역 수준은 우리 출판의 아킬레스건이다. 한 마디로  앞에서 예를 든 석사학위논문 인용문 수준의 번역문을 그대로 담은 책들이 줄줄이  출간되고 있다. 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이 영미 문학 대표작 가운데 ‘친숙하게 읽혀온’ 작품의 변역 수준을  평가한 결과에 따르면 “영미문학의 번역은 양적인 풍요와 질적인 빈곤으로  요약될 수 있다. 대상 작품들의 번역서로 최종 검토 대상이 된 완역본은 총 573종인데 이중 추천할 만한 번역본은 모두 61종(11%)에 불과하다.

-대략 10권  중 한 권 정도가 믿고  읽을만한 번역본인 셈이다. 추천본이 없는 작품도 전체 작품의 3분의 1이 넘는다. 소설의 경우에는 추천본이 전체 번역본의 6%에 불과”했다. “비소설의  경우는 추천본 비율이  높으며(29%), 추천본의 종수가 가장 많은 것도 ‘햄릿’(10종)”이었지만 “검토본 가운데 반수 이상(54%ㅎ310종)이  표절본으로 그대로 베낀 것부터 짜집기, 윤문潤文까지 다양한 형태를 확인” (1) 할 수 있었다.

-여기서 표절의 책임은 대부분 출판사에 있다. 특히 잘 팔리는 책, 독자에게 친숙하게 읽혀온 문학서적의 경우에는 출판사가 기존에 출간된 책을 적당히 윤문해 중복 출판하는 경우가 성행했기 때문이다. 번역출판으로 꽤 명성을  날린 출판사들도 실제로 이런  행태를 자행하고 있음을 수없이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영미문학연구회의 평가결과는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일까? 책임은 먼저 번역가가 질 수밖에 없다. 미디어 평론가 변정수는 그 자신을 비롯해 수많은 편집자들이 “번역 텍스트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거의 ‘공역자’ 수준의 역할을 떠맡고 있다”고  지적한다. “명목상의 역자는 결과적으로 고작해야 초벌 번역의 수고를 해 주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게 되고 편집자가 “사실상의 번역자 노릇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국내 저작물에  빗대자면 거의 ‘섀도 라이터’에 해당될 정도의 역할”(2)을 하고 있는 셈이다.

-꼼꼼하게 공들인 번역으로 소문난 유명 역자들은 편집자가 거의 손을 볼 필요가 없는 완벽에 가까운 텍스트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더 이상 이야기할 것도 없겠지만 대부분은 편집자가 ‘공역자’에 준하는 역할을 하거나 심지어 거의 ‘재번역’을 해야 하는 수준의  번역문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편집자가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사실상 대다수의 편집자는 원문대조도 하지 않고 오탈자나 잡아내는 수준의 교열에  머무른다. 그래서 전문편집자의 필요성이 절실하지만 그런  편집자들이라도 ‘교수’의 직함을 달고 있는 학자 번역자의 경우에는 십중팔구 재번역해야 하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교수들과 일하는 것을 매우 꺼린다.  

-학자들이 번역에서 그들만이 이해하는 용어로  그들만의 ‘언어게임’을 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앞에서 언급한 <아나 트롤>
수준의 번역보다 못한 번역 원고가 그대로 출판사로 들어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럴 경우  편집자들은 ‘교수’가  직접 번역한  것이 아니라 ‘조교’나 다른 대행자들이 번역을 대신한 것으로 간주해버리는 것이 다반사다.  

-상황이 이런데도 편집자들이 ‘사실상의 번역자’ 노릇을 감수하면서 십중팔구 믿지 못하는 교수에게 매달리는 것은 ‘손을 볼 필요가 없는’ 번역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유능한  몇몇 번역가들은 밀린 일이 많아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차선으로 선택하는 것이 전문번역회사다. 한 출판번역전문회사의  대표는 “국내 산업번역 규모가  1조원 대에 달하고 그리고 영상미디어 번역이 5천억 원, 출판번역시장이 5천억 원에 달한다”고 전망했는데 시장은 이렇게 크지만 양질의 번역을 빠르게  해줄 수 있는 번역가가 많지 않아 이런 업체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번역전문회사는 대부분  번역지망생과 출판사를 연결시켜주고  커미션을 챙기는 중간업자에 불과하다. 이 회사들은  보통 번역료의 30% 가까이를 챙긴다.  출판사가 지급번역을 요청할 경우에는 원고를 여러 사람에게  쪼개서 번역한 것을 모아 한두  사람이 죽 읽어가면서 획일성만 기하기 마련인데 이런  원고의 수준은 ‘눈 뜨고 봐주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전문번역회사들은 출판사와 번역자들이 만나는  것을 철저하게 차단해 번역자들이 편집자와 만나 번역의 질을 상승시키는 길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해 버리고 번역자가 교열을 볼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하는 병폐가 있다. 하지만 속도를 요하는 분야에서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출판사들까지 이런 전문번역회사를 애용하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더 많은 전문번역자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히 번역료가 낮기 때문이다. 상위 출판사의 경우 영어는 3500-4000원, 일본어는 2500-3500원, 프랑스어나 독일어는 3500-4000원 수준이다. 물론 수준이 보장되는 전문번역가는 이보다  높은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는 낮은 경우가 더 많다.  일본의 법인 또는 단체가 일본책의  한국어 번역료를 통상 10,000-15,000원 수준에서 지원하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 번역료가 어느 수준인가를 절실하게 깨달을 수 있다.

-더구나 지금의 번역료는 몇 년  전의 수준에 머문 것이어서 물가상승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갈수록 뒤쳐지고 있어 번역에 ‘목숨’을 거는 번역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최근 학술진흥재단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고전 번역 지원사업에서는 번역 원고료를 10,000원 안팎으로 책정하고 있다. 나도 신청중인 과제가 있긴 하지만 이 정도의 대우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번역에 나서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더구나 인세일 경우 한달 평균 100여 만원 정도의 보상을 기대하면서 번역에 '목숨' 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특히 전문영역에 속하는 책들을 맡아주어야 할 학자들은 번역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사명감에 충만하거나 특별한 인간관계가 아니면 일부러 나서려  들지 않는 것이다. 우선 번역료가 너무 싸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번역을 학문적  업적으로 여겨주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출판사는 고육책으로  번역료와 인세를 병행하는 정책을 쓰기도  한다. 기본 번역료는 보장하되 번역료 이상으로 책이 팔리는 경우에는 인세를 추가로 지급하는 방식인데 실제로는 추가 인세가 지급되는 경우가 흔치 않아 확실한 ‘유인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셜록 홈즈’ 시리즈의 사례처럼 인세로 계약한  대중서가 1백만 부나 팔려 평생의 고생을 보상할 수준의 인세가  나오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런  경우가 매우 드물기는 해도 이런 제도가 도입되면 번역자가 어느 정도 번역에 책임을 지려 들 것이다. 하지만 출판사는 기본 번역료를 감당하기도 어렵다.

-인문학, 철학, 과학 분야의 전문분야 출판사인 이제이북스는 지난 3년 동안 60권의 책을 펴냈지만 2쇄를 발행한 책이 단 2종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다.(3)  이 출판사가  나름대로 번역에 매우  많은 공을  들여왔고 초판을 1000부 밖에 발행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출판사의 출혈투자가 없이는 도저히 책 출간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제이북스의 경우는 며칠 전에 다룬 바 있다). 15,000원  정가의 책인 경우 1000부가 다 팔린다  해도 매출액은 1천만 원 내외다. 이 금액 모두가 번역료로  지급되어도 시원치 않을 텐데 여기에 제작비, 인건비, 일반관리비 등을 부담해야 하므로 출간 즉시 적자가 발생하는 일이  다반사니 대다수 출판인은 출판을 기피한다.

-번역료가 낮은 근본적인 원인을 출판사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책을 읽지 않는 독자를 탓해야 할까? 물론 탓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독자들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독자들은 철학을 쉽게 풀어주고 독해가 가능한 책을  만들어주지 못하고 부실한 번역이 독자들을 떠나가게 만들었다는 이제이북스 전응주 사장의 뼈아픈 지적을 더 수용하려 들 것이다.


-결국 이 땅의 번역출판 부실은 어느 일방의 책임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내수시장이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시스템을  극복할 수 있는 사회제도적 후원시스템을 ‘억지로’라도 만들어야 한다. 그 점에 대해서는 선험적인 연구자들이 결론내린 바  있다.

-김선남(원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한 연구논문(4)에서 “전문 번역가의 부족, 낮은 번역료, 오역 및 중복 출판, 출판사의 과도한 저작권 확보 경쟁 등과 같은 출판사 내·외적인 문제”를 극복하고 번역출판이 활성화되기 위한 방안으로  전문번역인 양성 프로그램 개발, 번역활동 지원 단체의 확충, 번역 출판물 기획의 다양성 확보 등을 제시했다.

-이런 결론은 지난 수십 년간 내려졌고 물론 간헐적인 대응책은 있어왔지만 근원적인 대책은 세워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전문 번역인은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 지원자만 모아놓고 교육만 시키면 해결이 될 것인가? 그보다는 전문적인 번역자가 전문편집자와 함께 일을 해가면서 번역의 질적 수준을 높여가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그래서 ‘연구공간 수유+너머’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주요 인문출판사와 공동작업을 하면서 번역학교를 따로 꾸리고 있는  것은 모범적인 사례가 된다. 이 단체는 이미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책을 여럿 내고 있으며 고전을 재해석한 ‘리라이팅’ 시리즈처럼 저작의 단계로도 올라서서 인문출판의 성공적인  모델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앞으로 이런 모임이 더욱 많아져야 할 것이다(*한데, 이 리라이팅 시리즈도 작년부터는 한 권의 책도 내지 못하고 있다).

 

 

 


-다음으로 출판시장이 갈수록 자본의 논리에 지배되는 상황에서 상업성이 부족하지만 꼭  필요한 번역출판이 이뤄지려면 공공적인  지원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어야  한다. 국가나 기업에서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이 근원적으로 가동되어야  할 것이다. 비단 이것은 번역서뿐만이 아니라 출판 전반에 적용되는 것이지만 도서관의 기본적인 존립목적인 정보 접근 평등성을 위해 도서관 스스로가 양서를 다양하게 구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공공도서관은 너무 ‘빈약’하다.

-따라서 소기의 성과를 빨리 이루려면 각급 학교도서관의 활성화가 시대적 소명이다. 학교도서관을 활성화하고 이를 지역 주민도 이용하는 기초생활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한 다음  공신력 있는 기구가 선정한 우수도서를 학교도서관이 의무적으로 구비할 수 있는  정책적·사회적 시스템을 갖추어 양서의 경우 5000-10,000부 정도가 소비될 수 있다면, 출판사들은 구태여 시류에 영합하는 책을 만들지  않고도 안정된 경영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출판뿐만 아니라 기초학문과 교육이 사는 길이고 결국 국가가  경쟁력을 갖는 일이다. 우수한 번역서를 여기에서 제외시킬 이유가 없기에 번역출판도 자연스럽게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정책당국자들은 예산타령만을 일삼지만 이런 일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예산이 없어서가 아니라 의지가 없어서일 뿐이다.

-다양성은 무척 중요하다. 그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전문성도 중요하다. 지금 구조에서는 번역출판을 통해 한 분야의 전문성을 갖기가 쉽지 않다. “어떤 약삭빠른 출판사가 입도선매식으로 저자권계약을 맺어놓은 다음”에 “자격 없는 역자들을 동원하여 오역·졸역본의 출판을 남발하는 경우”에는 “저작권을 보호함으로써  마구잡이 번역을 막겠다는 원래의 정신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역설적 결과”(5)가 수시로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모든 물건이나 언어에는 반드시 그 배경에 주류와 계통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계통도에서 상위에 올라있는 책을 먼저 계약해놓고 책을 출간하지 않으면 하위에  해당하는 책을 펴낸 출판사는 고통만 겪을 확률이 높다. 이것은 원저작은 보지 못하고 비평서만 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상호 협조와 양해를 통해  바람직한 조정이 이뤄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상황이 매우 열악하지만 우리에게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  앞의 ‘연구공간 수유+너머’도 희망적인 사례지만 영미문학연구회가 분석한 책들이 출간된 같은 시기에도 “고전  번역에 가담한 새로운 세대 전문연구자들의 활약은 고무적이다. 또  초기에 나온 번역본이 이후 어떤 번역본보다 더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 경우도 적지 않아 우수한 번역진의 층이 얇다고 만은 할 수 없다. 더 좋은 번역환경이 마련되고, 다수의 독자들이 좋은 번역을 선별해  읽을 수 있다면 번역 풍토의 획기적인 개선도 기대”(6)할 수 있다는 지적도 우리에게 기대를 갖게 만든다. 따라서 바람직한 비평을 통해 좋은 책을 선별해주는  사회적 시스템이 다양하게 정착되는 일 또한 바람직한 번역출판이 이뤄지기 위한 필요조건이라 할 것이다.

(1)「번역 평가 왜 필요한가」<한국일보> 2004.2.16
(2)변정수,「번역 출판의 원숭이들」<기획회의> 8호 2004.11.5
(3)김현미,「우리말로, 철학하기, 출판으로 철학하기 - 이제이북스 전응주 사장」
   <기획회의>10호 2004.12.5
(4)김선남,「국내 번역 출판물의 현황과 화성화 방안 연구」<한국출판학연구> 제43호 2001
(5)한정숙,「학술서적 번역 이것이 문제다」<국민일보> 1996.8.12
(6)김영희, 같은 글

06. 0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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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2 0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네파벨 2006-08-22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렇답니다...늘 고맙습니다!

톡톡캔디 2006-08-28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로 편집자 입장에서 썼네요 ㅎㅎ
 
 전출처 : 딸기 > [퍼온글] 어린이책예술센터를 찾아서

어린이책예술센터를 찾아서

 



 

이번주 소개하는 곳은 그동안 출판사를 소개했던 것 과는 다르게 '어린이책예술센터' 라는 곳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어린이책예술센터'는 파주출판도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2층에 자리잡고 있고, 지난 5월에 <파주어린이책잔치>를 진행하면서 일시적인 이벤트적인 전시가 아닌 상설 전시와 도서 열람과 자료에 대한 체계적인 운영이 절실히 필요해서 만들어진 상설전시관입니다.

국내외 희귀본을 1000여 점이 넘게 전시되어 있고 계속적인 자료수집과 이벤트를 계획중이며 분기별 세미나를 통해 보다 효과적이면서 대중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중이라고 합니다. 전시관 이용 대상은 동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거나 그림동화에 관심있어하는 작가이며 일반인들도 최소 이틀전에 사전 예약을 통해 날짜와 시간을 미리 정해야만 도서열람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물론 이용료는 무료이고 이용가능시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10시에서 오후 4시까지 입니다.

올해는 11월 '작가의 만남'을 통해 그림책은 작은 미술관의 나카가와 모토코와 신명호 선생님과의 작가 초청을 계획중이고 내년 상반기는 2월에서 5월중으로 전시관과는 별도로 '어린이전문서점'도 운영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국내 주요 행사로 자리잡은 어린이책잔치를 내년 5월 4일부터 13일까지 정해 운영 계획중입니다.

 



어린이책예술센터로 가는 길은 두갈래의 길이 있다. 이런 계단길이 있고,
 



편안히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어느쪽을 이용하시겠습니까? ^^:
 



출판도시 정보도서관 입구
 



어린이책예술센터 외관

 





정병규 위원장님과 황인선 연구위원님
 사전 예약은 전화 031-955-0088이고 담당자는 황인선 위원을 찾으시면 됩니다. *^^*

 





 열도서정보관 열람실

 



어린이책예술센터 자료실

 



국내외 어린이책이 전시되어 있는 자료실 입구
 



원형 형태의 전시실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

 



외국 어린이도서 전시공간
 



원화 전시와 오픈되어 있는 전시실
 



 



자료 열람실

 



KNIHY 라고 써있는 일반적인 크기의 책과 가장 커다란 책의 대비

(혼자 들지도 못하는 무게의 압박 ^^:)
 



자료실 안쪽의 쉼터
 



많은 장서들이 열람을 기다리는 듯 빼곡이 들어차있다.
 



곳곳에 빈공간이 없을 정도로 그림책을 전시하고 있어 이동하는 내내 시선을 끈다.
 



황인선 연구위원이 상주하고 있어 이분을 찾으면 친절히 안내해준다.
 



 



 



보기 힘든 원화와 각종 희귀본들이 전시되어 있다. 
 


 



얼마전에 내한 했던 존버닝햄의 초판본

 



 



입체감이 살아 있는 라푼젤 그림책과 쥬만지의 원서

 



 

어린이책예술센터 소장도서

<해외도서>

*영국 19세기 빅토리아시대 어린이그림책(오즈본 컬렉션) 복각본

*프랑스의 현대그림책

-프랑스 어린이 도서관 사서들이 만든 인디출판사<곰 세 마리Les Trois Ourses>도서

-종이공작 그래픽의 마술사라고 불리우는 가쯔미 고마가타 (Katsumi Komagata)의 도서

-아이의 눈높이에서 찍은 사진그림책작가 타나 호방 (Tana Hoban)의 도서

*그림책 작가들의 초판본

 John Burningham,Edward Ardizzone,Edward Bawden,Reg Cartwright,

 Gerald Rose, Eric Ravilious, Eric Ravilious, Jan Le Witt, George Him ,Charles Keeping ,Raymond Briggs, Brian Wildsmith, Quentin Blake,Evaline Ness,Jan Pienkowski  ,Seymour Chwast


<국내 그림책>

*국내 수상작

*해외수상 국내그림책

    - BIB 선정도서

    - 볼로냐 선정도서

    -노마 콩쿠르 선전도서

*IBBY (국제 어린이도서협의회) 선정도서

*2005, 2006 신간도서

 







전시실을 모두 관람한 후에 주변을 둘러보아도 좋을 듯 싶다.

 

출처 : http://paper.cyworld.com/dam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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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2005년의 번역 트렌드(자연/사회과학)

2005년의 번역 트렌드(인문학)에 이어지는 글이다. 역시나 12월 02일자 교수신문에 게재된 이은혜 기자의 기사를 옮겨놓고 몇 마디 보태도록 하겠다.  

 

 

 

 

-자연과학은 각 분과뿐 아니라 과학철학도 포함하는 매우 방대한 영역이지만, 몇몇 이론들로 편중돼 트렌드를 이루고 있다. 우선 국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이는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다. 올해에만 <조상 이야기>(이한음 옮김, 까치글방), <에덴의 강>(이용철 옮김, 사이언스북스), <악마의 사도>(이한음 옮김, 바다) 등 세 권이 출간됐다. <이기적 유전자> 이후 계속되는 ‘도킨스 붐’이라 할 수 있다. 같은 계열로 <인간본성에 대하여>의 저자 에드워드 윌슨과 <빈 서판>의 저자 스티븐 핀커가 있다. 윌슨 역시 올해 <우리는 지금도 야생을 산다>(최재천 외 옮김, 바다)와 <통섭>(최재천 외 옮김, 사이언스북스)이 번역됐는데, 이들 모두는 ‘인간의 사고나 행동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론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분야 역시 전공자들이 부지런히 발벗고 나선 탓에 널리 읽히고 있었다.

도킨스나 윌슨의 책들은 나 자신도 즐겨 읽으니 그들의 책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게 전혀 유감일 리는 없다. 하지만, 도킨스나 윌슨이 '유전자 결정론자'로 지목되는 것은 유감이다(왓슨이라면 모를까). 기자의 관심분야의 인문학(특히 종교학) 쪽이어서 다소 편향된 의견을 제시한 게 아닌가 싶다(그러니 우리는 좀더 계몽될 필요가 있다!) 이전에 언급한 바 있지만, <에덴의 강>은 이전에 출간된 것이 재출간된 것이니까 올해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번역자는 이한음, 최재천 등이다. 특히 최재천 교수는 도정일 교수와 <대화>(휴머니스트)도 책으로 펴냈으니 그 부지런함이 더욱 돋보인다(이 책은 연말에 내가 꼽꼬자 하는 '올해의 책'의 가장 유력한 후보이다).

 

 

 

 

지난 주말에 <대화>를 좀 읽으며 떠올린 책은 존 브로크맨이 기획한 <제3의 문화>(대영사, 1996)이다. 23명의 저명한 과학자 글쟁이들이 참여하여 C. P. 스노우의 <두 문화>(민음사, 1996; 사이언스북스, 2001)에 (게으론 인문학자들과는 달리) 자연과학자 23명이 적극적으로 화답하고 있는 모양새를 과시하고 있는 책이다(내용은 아주 훌륭하지만 만듦새는 미적 감각을 결여하고 있는 좀 부실한 책이다. 재출간되었으면 싶다. 편자의 말대로 임의적이긴 하나 23명의 책들과 함께).  "<두 문화>는 1959년에 5월 7일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전통적인 연례 리드 강연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으로 사이언스북스판은 "당시 강연 제목은 <두 문화와 과학 혁명>이었다. 이 강연의 내용을 1부로 싣고, 2부는 4년 뒤인 1963년의 시점에서 앞의 강연과 관련하여 그때까지 제출된 논평과 반응, 비판들을 지은이가 직접 정리하고 해명하고 추가한 글을 실었다. 또 마지막 3부에는 90년대의 시점에서 스노우의 강연을 바라본 스테판 콜리니의 해제가 실려 있다."

 

 

 

 

<두 문화>를 나는 오래전에 박영문고판으로 읽었었는데, 줄기세포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시점과 맞물려 한번쯤 다시 들춰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지적 사기>(민음사, 2000)니 '과학의 사기'니 하는 논란의 틈새에서 문제를 원론적으로 재고해보는 일인 듯싶어서이다. <악마의 사도>에서의 도킨스처럼 인문학의 '지적 사기'에 대한 비판에 통쾌해 하는 만큼, 한편으론 <기술, 의학, 윤리>(솔출판사)에서 한스 요나스가 의학/기술의 윤리에 대해 윤리적 반성을 요청하는 만큼, 아니 그보다 오히려 더 필요한 것이 서로에 대한 이해이고 교양인 듯싶다. 해서, 우리의 뇌는 '원론적으로' 다시 단련될 필요가 있다. 다윈을 읽지 않는 문학도를 나는 신뢰하지 않으며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지 않는 과학도를 나는 (비록 좋아할 수는 있지만) 존경하지 않는다. 전공이 있지 않느냐고? '밥벌이의 지겨움'은 '교양'과 구별되어야 한다('교양'이란 밥먹을 때 서로 대화 정도는 나눌 수 있는 깜냥을 뜻한다. 먹는 건 도그나 카우도 한다).   

 

 

 


 

-하지만 최근 유독 같은 계열의 이론만 과도하게 소개되는 것 아닌가하는 우려도 없지 않다. 이상원 포항공대 교수는 “진화생물학자들과 반대의 입장인 로우즈나 굴드, 르원틴 같은 이들을 함께 접해야만 균형적 입장을 취할 수 있다”라고 조언한다. 로우즈의 저서는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가, 굴드는 <인간에 대한 오해> 등이, 르원틴은  등이 번역돼 나왔다.(*로우즈, 굴드, 르원틴의 책들도 '우려'를 씻어줄 만큼은 출간됐다. 도킨스의 맞수인 스티븐 제이 굴드의 책만 하더라도 10여 권이 번역/출간돼 있다. 그러니 균형을 잡는 데 별 어려움은 없어 보인다.)

 
-과학철학 쪽에선 교과서나 다름없는데 올해에야 출간된 것이 이언 해킹의 <표상하기와 개입하기>(이상원 옮김, 한울)다. 언어철학쪽 저서가 소개된 바는 있지만, 그의 과학철학서가 이제야 빛보게 된 데엔 여러 이유가 있다. 번역을 감당할 이가 적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과학철학 분야가 철학에서 다뤄야 하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인문학과 자연학과의 거리감 때문에 전문번역가나 또는 한정된 과학철학자들이 소화해야만 한다”는 지적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 탓에 해킹의 주요 저서 중 하나인 ‘The Social Construction of What?’도 향후 과제로 남아 있다.(*해킹의 책에 대해서는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 나도 소개한 바가 있다. 그의 다른 책들도 물론 언제든 환영이다.) 

 

 

 

 

-해킹 뿐 아니라, 과학철학 쪽에 파이어아벤트나 라카토스 등의 번역도 학문적 중요성에 비해 번역성과는 썩 좋지 않은 편이다. 그래도 라카토스의 경우 지난 2002년 <수학적 발견의 논리>와 <과학적 연구 프로그램의 방법론>이 출간된 반면, 파이어아벤트는 1987년 <방법에의 도전>(Against Method)이 번역된 후 절판됐고 그 이래 역서가 단 한권도 나오고 있지 않는 현실이다. 

라카토스의 주저들은 번역된 듯한데, 더 번역되어야 하는 책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 헝가리 출신의 과학철학자에 대해서는 지난 8월에 이상욱 교수가 한겨레 지면에 소개한 바 있으니 참조하면 되겠다. 흔히 '포퍼와 쿤 사이'로 입장이 규정되는 라카토스(라카토슈)가 '현대과학철학 논쟁'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특별하다(이들의 포지션은 '파이어아벤트--쿤--라카토스--포퍼'로 정리하면 된다). 이상욱 교수에 따르면, "라카토슈는 파이어아벤트와 마찬가지로 철저한 포퍼주의자로 출발했지만 역시 파이어아벤트와 마찬가지로 점차 포퍼의 견해가 지닌 여러 문제점에 대해 인식하게 된다. 지적으로 훨씬 자유분방했던 파이어아벤트는 포퍼와 쿤 모두로부터 거리를 두길 원했지만, 라카토슈는 쿤을 따라 과학의 역사적인 실제 전개과정에 충실하면서도 포퍼를 따라 여전히 과학의 객관성과 합리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견해를 제시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여전히 포퍼식의 개인주의적 자유를 강조하면서 쿤보다 훨씬 급진적으로 상대주의 과학관을 밀고나간 파이어아벤트와 죽을 때까지 좋은 맞수이자 친구로 지냈다."

"라카토슈는 파이어아벤트가 런던정경대학에 잠시 머물며 강의할 때 강의실 바로 앞에 위치한 자신의 연구실에서 나와 파이어아벤트에게 난처한 질문을 던져대곤 했고, 두 숙적의 눈부신 토론을 지켜보는 것으로 수업을 대신할 수 있었던 당시 학생들은 너무나 즐거워했다고 한다. 파이어아벤트에 따르면 어느 날 라카토슈가 자신은 과학적 방법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쓰고 파이어아벤트는 왜 쓸모없는지를 써서 함께 묶어 책을 내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결국 두 사람은 <과학방법론을 위하여 그리고 반대하며(For and Against Scientific Method)>라는 책을 함께 내기로 했다. 그러나 라카토슈가 1974년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바람에 파이어아벤트는 결국 자신의 부분만 홀로 출판하게 되고 이 책이 파이어아벤트를 일약 유명하게 만든 <반 과학방법론>이다."

<방법에의 도전>(한겨레, 1987)은 그 <반과학방법론>의 우리말 번역본이다. 방법론적 '무정부주의자'로도 불리지만, 파이어아벤트(1924-1994)에게 보다 적합한 호칭은 누군가의 말대로 '다다이스트'이다. 말년에 쓴 자서전의 제목이 <킬링 타임>인 것도 그답다. 그의 책들이 좀더 소개되었으면 한다. 비록 학부때 사둔 <방법에의 도전>은 아직도 완독하지 않았지만 <킬링 타임>만큼은 단번에 읽어볼 용의가 있다(우리의 시간을 죽이는 데 혹 쓸모가 있을지 모른다).

 

 

 

 

-가장 유명한 과학철학자로 꼽히는 토머스 쿤 역시 이름값에 비례하는 저술들은 소개되지 않고 있다. 다행히 올해 쿤에 대한 연구서 <토머스 쿤>(웨슬리 샤록 외 지음, 김해진 옮김, 사이언스북스)이 소개됐지만, 저서는 <과학혁명의 구조> 외엔 없다. 최소한 ‘The Essential Tension’, ‘The Road since Structure’ 정도는 번역돼야 한다는 게 학계의 의견이다. 이 외에도 과학 쪽에선 우주에 관한 물리학 저서들이나 아인슈타인과 관련한 책들, 생명윤리에 관한 책들이 활발히 출간됐다.(*그러고 보니 기자가 언급하고 있는 책들이 대부분 과학철학쪽이다. 이건 유사-자연과학 아닌가?! 더불어, '학계의 의견'은 어느 학계의 의견인지? 번역을 담당해야 할 당사자들 같은데...) 이어지는 건 사회과학 분야이다.

-사회과학 쪽 번역상황은 시의성과 관련해 팔리는 책 중심으로 과도하게 시장이 형성된다거나, 이데올로기적 지형 내에서 이뤄지는 번역들, 나아가 몇몇 출판사들이 저항담론 위주로 출판을 집중하고 있는 까닭에 그리 풍부하지 않은 출판상황에서 번역구도는 단순하게 그려지는 편이다. 특히 공급이 수요를 결정짓는 게 아니라, 수요가 공급을 결정짓는 상황이라, “학문의 저변을 확대시키기 위한 필독서 수준의 번역보다는 일부 인기 사상가들의 번역이 과도하게 치중돼 번역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게 몇몇 전공자들의 지적이다.

 

 

 

 

-그중 최근에 가장 많이 빛을 봤던 게 촘스키의 저서들이다. 올해엔 <지식인의 책무>(강주헌 옮김, 황소걸음 )와 <중동의 평화에 중동은 없다>(송은경 옮김, 북폴리오) 등 두 권이 출간됐지만, 지난해 촘스키에 대한 번역서가 7권 나왔던 걸 보면 ‘촘스키 시대’였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이상돈 중앙대 교수는 한 신문칼럼에서 “촘스키는 병적인 반미주의자로 미국의 진보진영도 멀리하고 있는 인물”이라며 한국 출판계의 기이함(?)을 지적한 바 있다.(*'두 권'이 나왔다는 건 이달초까지의 얘기이고, 12월에도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3권이 한꺼번에 나왔기 때문에, '촘스키의 시대'는 여전하다고 해야겠다. 비록 '미국의 진보진영'도 멀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얼마전 네티즌들이 뽑은 '세계의 지성'에도 1위에 오른 걸 보면, 그의 '영향력'은 인정해줘야겠다. '촘스키의 시대'와 맞물려 있는 것이 국내에서는 '강준만의 시대'이다. 그는 올해도 6권 이상의 책을 펴냈다.

 

 

 

 

-물론 이 역시 동일선상의 이데올로기적 지형에서 나온 발언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국내 출판계에서 저항담론의 출판이 우세한 건 사실이다. 그중 몇몇을 살펴보면, 네그리의 <혁명의 만회>(영광 옮김, 갈무리), 하워드 진의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윤길순 옮김, 당대), 마이클 만의 <분별없는 제국>(이규성 옮김, 심산)이 출간됐다. 또 <새로운 제국의 도전>(레오 파닛치 지음, 진보저널읽기모임 옮김, 한울)이나 아룬다티 로이의 <보통 사람들을 위한 제국 가이드>(정병선 옮김, 시울) 등도 마찬가지 위치에 놓여질 것이다. 

이 중 하워드 진의 책은 모노드라마이다. 드라마를 써도 그의 책은 '사회과학'으로 분류되는 것! 촘스키와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반미 지식인으로 꼽히는 하워드 진 관한 글로 올해 내가 흥미롭게 읽은 건 그의 이 아니라 대담이다. 지난 11월 문화일보 지면에 실린 것인데, 대담자는 'Global Talk'란을 연재하고 있는 이미숙 워싱턴 특파원이다(이 연재 때문에 나는 다른 특파원들이 얼마나 게으른가를 알 수 있었다. 동료들에게 원망을 듣지는 않을는지).

 

 

 

 

국내에 자서전 <다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를 포함해 여러 권의 책들이 번역/소개돼 있는 이 걸출한 좌파 지식인의 대담에서 흥미로운 대목 몇 가지. 먼저 83세인 그의 건강 비결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나는 기본적으로 기분좋게 살아왔다. 많이 웃고, 인생을 즐겼다.”고 답한다. 조금 더 설명을 들어보자.

 ―당신이 그간 써온 글과 책은 하나같이 진지하고, 무거운 것들 인데, 인생을 즐겁게 살았다니 믿기지 않는다.

“내가 인생을 진지하게 살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인생은 원 래 진지한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즐겨야한다. 친구와 세계문제에 대해 대화하고, 많이 웃고, 젊은이들의 생각을 접하고 함께 생 활하는 것, 이것이 내가 말하는 인생의 즐거움이다.”

―건강유지를 위해 특별히 선호하는 음식이나 운동이 있는가.

“토마토와 바나나 등 과일을 많이 먹고, 굴, 새우, 조개, 그리고 파스타를 아주 좋아한다. 테니스를 오랫동안 해왔는데, 요즘엔 산책으로 바꿨다.” 그는 음식얘기를 하다가 빼먹은 게 있다는 듯이 ‘참’ 하면서 “정말 중요한 것은 좋은 파트너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라면서 부인 로즐린과 60년 이상 함께 살아왔기에 오늘의 자신이 있을 수 있었다고 은근히 부인자랑을 했다. 그는 22세가 되던 지난 19 44년 결혼했는데, 당시 로즐린은 21세였다. 두 사람은 남매를 낳 아 키우며 61년째 함께 살고있다.(*그러니까 오래 '운동'을 하려면 굴, 새우 등을 많이 먹고 배우자와 해로해야 한다는 것.)

―한국의 사회운동가들이나 지식인들은 지나치게 무겁게 삶을 접근하는데.

“물론 정의를 위한 싸움은 진지하게 해야하지만, 그런 와중에서 도 늘 인생을 즐겨야한다. 만약 삶의 즐거움을 도외시한채 사회 운동만 하려든다면 그런 인생은 너무 무미건조한 것이다. 또한 그렇게 할 경우 젊은이들을 새롭게 사회운동에 끌어들일 수 없다.”

 ―진지함과 즐거움을 어느정도로 조화시켜야하나?

“누구나 100% 진지하게 살수는 없다. 굳이 수량화하라면, 9대 1 정도로 진지함과 즐거움을 배합해야하지 않을까.”

조금 건너뛰어서 한국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는 그에게 기자는 한국에서의 반미정서에 관해 질문했다.

―미국의 진보주의 역사가로서, 한국의 반미정서를 어떻게 보는 가.

“한국 젊은세대의 반미감정에 대해 정서적으로 공감한다. 그런 데 알아둬야할 것은 미국정부에 대한 비판과 미국사람들 일반에 대한 비판을 혼동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많은 사람들이 미국정부를 변화시키기 위해 싸우고있다. 반미정서를 가진 한국 젊은이들은 이런 건강한 미국인들과 연대해 함께 싸웠으면 좋겠 다.”

―한국에서는 당신의 책들이 반미주의 교과서로 읽히는데.

“한국 젊은이들에게 내 책이 반미주의 도구로 쓰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렇다면 내 생각을 잘못 읽는 것이다. 나는 미국을 좀 더 살기좋은 나라로 바꾸기 위해 싸우는 사람이지 미국자체를 부 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반미주의와 친북적 사고의 친화력이 아주 강하다.

“한국의 반미정서는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북한을 우호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북한은 사회주의와 아무 상관이 없는 부패한 이념의 관료독재 국가일 뿐이다. 국민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여행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나라가 어떻게 사회주의국가인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주고 싶은 충고는?

“세계 역사의 흐름을 정확하게 보고 자신의 생각을 정립해야 한 다. 이게 내가 평생 젊은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쳐온 이유이고, 미 국의 부끄러운 과거사에 대해 책을 써온 이유다. 한국의 젊은이 들에게 정말 말하고 싶다. 반미시위를 하는 대신 북한 인권개선을 위해 싸우라고.”(*'북한의 인권개선'이란... 미국의 대표적인 좌파인 하워드 진도 한국식 기준에 따르면 '수구우파' 정도 되겠다. '북한인권' 문제만을 잣대로 한다면 말이다. 한국의 좌파는 세계 최강의 좌파인가?) 다시 번역 트렌드로 넘어간다.

 

 

 

 

-물론 보수주의 쪽 견해도 반짝 기운을 입었다. 잘 팔리는 사상가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강한 국가의 조건>(안진환 옮김, 황금가지)뿐만 아니라 <더 라이트 네이션>(존 미클레스웨이트 외 지음, 박진 옮김, 물푸레) 등과 같이 네오콘의 붐은 지난해에 이어 좀 남아 있다.(*네오콘 관련 역서로 <미국의 힘>을 추가해놓는다.)

 

 

 


-그래도 이론쪽에서도 역시 틈을 두지 않고 출간되는 건 사회주의나 노동계급에 관한 번역이다. 올해 이들 관련 번역서로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존 몰리뉴 지음, 최일붕 옮김, 책갈피), <소련의 역사와 계급이론>(스티븐 레스닉 외 지음, 신조영 옮김, 이후), <노동의 힘>(비버리 실버 지음, 백승욱 외 옮김, 그린비) 이 출간됐다.(*모처럼 소장하고 있는 책 두 권이 나와서 반갑다. <소련의 역사와 계급이론>에 대해선 나도 소개한 적이 있다.)

-보수건 진보건 사회과학계열은 시장논리와 이론적 입장이 상당한 작용을 하는 곳이다. 이에 대해 한 정치학과 교수는 “제3세계적 취향을 만족시켜준다는 차원에서 계속해서 저항담론 쪽만 번역이 되고 있는데, 일반 학생들은 이런 비주류적 사상들을 주류로 오해할 수 있다”라며 비판한다. 이기홍 강원대 교수도 “촘스키를 어떻게 해석하건 간에 그가 계속 번역되는 이유는 우리시장에서 팔리기 때문이다”라면서, “한국의 시장은 기묘하게 짜여져 있다. 제도적 장치가 없다면 사회과학의 기반을 다지는 게 아닌 아주 기형적인 형태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한다. 이충훈 뉴스쿨대 박사과정생의 의견도 귀담아들을만하다. 이 씨는 “사회과학에서 번역은 이슈 중심이어야 하지만, 이것은 시류 편승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라면서 “예전에 국가의 검열을 받았던 것처럼 지금은 시장의 검열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라고 꼬집는다.

-이씨는 ‘이슈중심의 번역’이란 “시장 상황에의 종속이 아니라 사회과학적 문제에 대한 공적 여론에 구성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라면서 이를테면 시장의 시선 때문에 번역되지 않는 예로서 젱하스의 ‘The Clash within Civilizations’나 식민지시대 과거청산에 실패했을 때 사회가 어떤 파국을 맞을 수 있는가를 르완다 학살을 통해 탁절하게 분석한 맘다니의 ‘When Victims become Killers’ 역시 그런 맥락에서 우리 사회에서 번역되지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깝다고 덧붙인다.


 

 

 

-이런 상황에서도 최근 방법론 쪽에서 로이 바스카의 <초월적 실재론과 과학>, <비판적 자연주의와 사회과학>(이기홍 옮김, 한울) 등이 나왔고, 정치사상 쪽에서 조지 세이빈 등 옛날의 정치사상 개론서와는 좀 달리 씌어진 <정치사상의 이해 I>(폴 슈마커 외 지음, 양길현 옮김, 오름) 등이 나왔다.

<초월적 실재론과 과학>의 저자는 (역시나 저명한 실재론자인) '로이 바스카'가 아니라 '마가렛 아처'이다(기자의 착오인 듯). 정치사상 관련서로는 스티븐 엔릭 브론너의 <현대 정치와 사상>(원제는 Ideas in action)도 올해 나온 책이다. 정치사상과 정치철학이 어떻게 구별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이상이 올 2005년의 번역 트렌드였다고 한다. 비교적 덜 관심을 갖고 있는 사회과학 분야의 책들을 일별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역시나 마음을 움직이는 책은 없군!).

05. 12. 12.

 

 

 

 

P.S. 날짜를 적어놓고 보니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난 지 26년째 되는 날이군. 무엇이 달라진 것인지? 세월 같지도 않은 한 세월을 살아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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