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물리학의 앞선 흐름을 알린다

최성일|도서평론가 robli@freechal.com

지난 6월 4일 오후, 2007 서울국제도서전을 보러 코엑스를 찾았다. 예년에 비해 도서전에 참가한 단행본 출판사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공짜로 얻은 특별기획전 <한국현대사와 함께 한 우리 책 1945-2007>의 안내책자 몇 군데가 눈에 거슬린다. 양성우 시인의 시집 『겨울공화국』이 실천문학사에서 1977년에 나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실천문학사는 1980년대 설립된 출판사다. 나는 화다에서 펴낸 『겨울공화국』을 갖고 있는데, 이 시집은 그 전에도 출간된 것으로 안다. 그러니까 안내책자에 소개된 실천문학사 판 『겨울공화국』은 세 번째로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창작과비평> 복간호(1988년 봄호)가 창간호 표지를 대신한 것은 성의 부족에다 작지 않은 편집실수다. "문우출판사/복간호(제16권 제1호)"는 번지수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

내심 아는 출판계 인사 서넛은 만나겠지 생각했는데, 두 시간 남짓 전시장에 머무는 동안 10명이나 마주쳤다. 도서출판 승산의 황승기(61) 대표와는 구면이다. 2000년 봄 복직한 <출판저널>의 첫 특집 '수학을 읽는다'의 한 꼭지로 그와 인터뷰를 했다. 이제 막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수학전문 신생출판사 대표와의 만남이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승산은 과학전문 출판사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출판사 설립 초기, 학원가의 유능한 수학강사였다는 황 대표의 이력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안 망했습니다"
최성일(이하 최) 지금까지 펴낸 책은 모두 몇 종인가요?
황승기(이하 황) 정확히 헤아려 보진 않았지만, 거의 팔구십 종 될 걸요.

최  "안 망하겠다"라는 다짐을 지키셨습니다.
황  내가 그 얘길 다른 사람한테도 했어요. 과학책 붐을 일으키겠다는 뜻입니다.

최  '파인만의 빨간 책'이라 불리는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 1,2권을 번역 출간하셨는데요. 1권 '역자후기'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이 책은 설명 방식이 너무 독창적이어서 다른 참고 서적을 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황  2권의 번역자는 1권을 혼자 번역한 박병철 선생까지 8명입니다. 이 가운데 7명은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을 번역하자고 '물리사랑'이라는 사이트에서 의기투합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번역 판권이 누군가에게 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꿩 대신 닭이라고 브라이언 그린의 『엘러건트 유니버스』를 번역하자고 했어요. 그 책의 판권 역시 나갔다는 거예요. 우리가 다 갖고 있었거든요.
그 중 한 친구가 어느 출판사에 판권이 있는지 물어봐도 에이전시가 알려주지 않는 거예요.
더구나 『엘러건트 유니버스』는 국내 에이전시가 아니었거든요. 이 친구가 승산이 갖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내게 전화로 문의를 해왔어요.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를 번역하겠다고 제안하기에 1권은 번역이 진행 중인 상태여서 2권을 맡겼지요. 책이 워낙 대작이라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번역에 참여했으면 싶었지요.
2000년 무렵만 해도 물리학 교양서의 입지가 지금보다 훨씬 좁았어요. 혹독한 겨울이나 다름없었지요. 그 당시 내가 이 사람들한테 물리학에 관한 책을 한 스무 권 펴내 물리학책의 붐을 일으키겠다, 그것도 양자역학 쪽을 하겠다고 했더니 아무래도 못 미더워하는 눈치예요.
내가 누굽니까? 돈키호테잖아요. 나는 자신했습니다. "좋은 책만 만들어선 소용없다. 팔리고 읽혀야지. 좋은 책을 만들어도 못 팔면 기여한 게 없는 거다."뭘 믿고 그렇게 큰소리를 쳤느냐? 출판사로선 대중적이고 쉬운 책을 선호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야 책이 많이 팔린다고 믿고 있거든요. 하지만 학문을 탐구하는 학자에서부터 초등학생까지 어떤 내용에 깊이 빠져들 때만이 연구와 학습이 제대로 되거든요. 나는 그전까지 출판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교육이 정말 잘못된 점은 교육당국과 학부모, 그리고 출판이 아이들을 만물박사로 만드는 데 골몰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상태를 바꾸는 것을 출판의 목표로 정했지요. 그러려면 내용이 어느 정도는 어려운 데까지 들어가야 한다고 본 거죠.
책이 진정으로 독자를 움직이려면 어느 정도의 수준은 돼야 한다는 거죠. 물론 번역과 편집의 완성도가 높아야 합니다.
이 책 저 책, 이런 분야 저런 분야를 다 하긴 어렵습니다. 처음엔 수학 쪽에 관심을 가졌다가 물리 쪽으로 폭을 넓혔습니다. 수학은 추상적입니다. 물리는 자연현상을 다룹니다. 양자역학의 세계가 눈에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응시할 수 있는 자연현상이어서 이해하기가 더 낫다고 본 거지요. 요즘 다시 수학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대학 다닐 때도 느낀 거지만 물리학과 출신들이 양자역학에 대해 잘 몰라요. 뿐만 아니라 이공계 출신과 지식인층에서도 양자역학은 아킬레스건이에요. 이런 걸 해소하기 위해 관련서를 와장창 내자는 거지요. 그래서 『조지 가모브, 물리열차를 타다』(2001)를 낸 거예요. 이 책은 60년 전에 나온 겁니다. 그리고 1970년대 초반 전파과학사의 '전파과학신서'로 번역된 적이 있습니다.

승산에서 펴낸 수학·물리 교양서
도서출판 승산은 출판등록을 하고 1년 6개월 만에 첫 책을 냈다. 폴 호프만이 지은 수학자 폴 에어디쉬 전기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1999)가 승산의 첫 책이다. "이 책은 순수 수학의 흥분, 열광, 통찰, 그리고 수학에 미친 한 인간의 아름다운 몰두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에어디쉬는 우리에게 낯선 인물이었다. 수학교사 중에도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이 책은 예술가와 전문직 사이에서 널리 읽혔다.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수학의 해' 즈음하여 출판한 실비아 네이사의 『아름다운 정신』(2000)은 실제로 정신분열증에 시달린 수학자 존 내쉬의 생애를 다룬다. 책을 두 권으로 나눈데다 촌스런 표지 탓인지 몰라도 별 재미를 못 봤다. 러셀 크로우가 내쉬를 연기한 영화의 국내개봉에 맞춰 재출간했을 때 비로소 독자의 주목을 받았다. 『뷰티풀 마인드』(2002)는 두 권을 한 권으로 묶어 양장 제본하고 원제목과 영화제목으로 제목을 바꾼 것이다.

『일반인을 위한 파인만의 QED강의』(2001)는 다른 출판사를 통해 '숨은 질서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나왔던 것을 재출간하면서 본문 편집과 표지디자인에 공을 들여 독자의 호응을 얻었다. 다음은 황승기 대표가 전하는 독자 반응이다. "병원에 입원한 여자 친구 간병하면서 다 읽었다는 독자가 있는가 하면, 정작 물리학과 출신들은 불만이 있더라고. 양자역학을 이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일반인을 위한 강의가 어떻게 가능하냐며."

브라이언 그린의 『엘러건트 유니버스』(2002)와 『우주의 구조』(2005)는 시각이 서로 맞선다. '초끈이론은 절대적이다'와 그렇지 않다로. 데이비드 린들리의 『볼츠만의 원자』(2003), 조지 존슨의 『스트레인지 뷰티』(2004), 갈릴레이의 천문노트 『시데레우스 눈치우스』(2004) 등도 눈여겨봐야 할 책이다. 작년 말에서 올해 초 사이에는 묵직한 책들을 내놨다.

황승기 대표는 "안톤 차일링거의 『아인슈타인의 베일』은 제목에 아인슈타인이 들어있지만 양자물리학의 세계를 다룹니다. 독일어로 나온 원서를 번역했는데 영어판은 아직 안 나왔어요"라고 말한다. 한스 크리스천 폰 베이어의 『과학의 새로운 언어, 정보』는 "정보 개념이 어떻게 물리학의 열역학에서부터 생물학의 유전까지 다양한 원리들에 빛을 비추는지 보여준다."

존 더비셔의 『리만 가설― 베른하르트 리만과 소수의 비밀』과 마르쿠스 듀 소토이의 『소수의 음악― 수학 최고의 신비를 찾아』는 짝을 이룬다. 더비셔의 책은 번갈아가며 읽는 형식이다. 홀수 장은 수학적인 내용을 주로 다루면서 독자가 리만 가설을 수학적으로 이해하고 그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게 돕는다. 짝수 장은 리만 가설의 역사적 배경과 관련한 수학자들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이 책에는 리만 가설을 이해하기 위해 요구되는 최소량의 수학만이 실려 있다. 이보다 더 간단한 수학으로 리만 가설을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책을 덮는 순간까지 리만 가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서문'에서) 『소수의 음악』은 수학의 성배 뒤에 숨겨진 놀라운 역사와 이를 파악하려는 노력을 흥미롭게 펼쳐보인다.

최  이런 책들의 주된 독자층은 누굽니까? 어떤 사람들이 승산에서 만든 책을 읽고 있나요?
황  독자서평 외에는 독자의 반응을 알 수 있는 피드백이 없기 때문에 정확히는 잘 모릅니다. 똑똑한 중학생 정도면 읽을 수 있다고 봅니다.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교수, 연구원 들과 열독력 있는 문과출신까지가 주 대상이 됩니다. 특히 소설에 식상한 사람들이 우리 책을 좋아합니다. 독자들의 저변과 독서 풍토가 그리 삭막하지만은 않습니다.

파인만 책은 다 내겠다
최  출간목록에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비중이 높은데요.
황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이야기』(2003)는 처음부터 예감이 좋았어요. 이건 된다 싶었지요. 그런데 걸림돌이 없지 않았어요. 판권은 살아있지만 다른 출판사에 우선권이 있었어요. 다행히 그 출판사는 이 책에 관심이 없었어요. 한숨 돌리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저작권을 가진 미국 출판사에서 실적을 요구하는 거예요. 아직 책을 한권도 안 낸 상태였는데 말예요. 판권 계약만 진행 중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잘 할 수 있다" 했더니 "안 된다" 하진 않고 "지켜보겠다"는 응답이 왔어요.
에이전시를 통해 아무리 사정을 말해도 막무가내예요. 그러면 좋다, 너희에게 판권이 있는 파인만 책을 다 하겠다고 했어요. 거기서 펴낸 파인만 책을 다 계약하자 해도 말을 듣지 않아요. 그러니 누가 판권을 가져가면 어쩌나 얼마나 불안해요. 책이 나오는 대로 책을 보내줘도 함흥차사인 거예요. 그로부터 정확히 3년 뒤 오케이 사인을 받았어요.
의욕이 생겨서 파인만에 만족하지 않고 파인만의 라이벌인 겔만의 전기 『스트레인지 뷰티』를 낸 거예요. 이 책은 손해를 많이 봤어요. 겔만은 우리나라에도 한번 다녀갔는데, 흥미로운 것은 겔만의 전기에 나오는 물리학자와 파인만의 전기 『천재』(2005)에 등장하는 물리학자가 얼마 겹치지 않아요.
내가 봐서 좋은 책은 독자도 좋다고 인정하더라고요. 독자의 수준이 아주 낮은 건 아닙니다.
의외로 '어려운' 책을 이해할만한 독자가 꽤 있습니다. 우리가 콘텐츠를 잘 선택해서 책을 만들면 되겠더라고요. 비유하자면, 찐빵의 팥소 같은 책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 책을 스무 권 정도 확보하면 어떤 중요한 흐름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최  번역할 책을 어떻게 고르시나요?
황  대부분 아마존www.amazon.com을 통해서 한다고 보면 됩니다. 에이전시를 거치는 경우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요즘은 아마존이 출판하는 사람을 살려줘요. 나도 한때는 아마존을 끼고 살았어요. 판매 예측이 가능하거든요. 원서가 잘 팔린다면, 번역을 잘못하지 않는 한 번역서도 십중팔구는 꽤 나간다고 봅니다. 문과 학문은 어떤지 몰라도 이공계 학문은 세계 공통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아마존은 누구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역할을 하고 있는 겁니다. 잘 활용해야죠.

최  10년 가까이 출판을 해보니 어떠세요. "출판사는 절대로 하지 말라"던 주변의 만류가 옳았습니까?
황  해보니까 그 사람들은 나를 위해 좋은 이야기를 해준 거더라고요. 그것이 내게 어떤 도움이 됐나 하면, 그 사람들은 선의로 만류한 거잖아요. 내가 돈키호테 기질이 있는데 심사숙고하게 해줬지요. 결과론적으로는 출판을 잘 했다고 생각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반대와 충고가 보탬이 된 듯해요.
아무튼 이 길에 정말 잘 들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의 중등교육을 살리고 싶어서 출판을 시작했거든요. 우리가 안고 있는 교육문제는 현행 교육체제 아래선 해결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보다시피 아주 엉망이잖아요. 다른 분야는 발전해도 교육 분야는 늘 뒤처져 있지요. 개인적으론 학원 강사로 일하고 학원을 경영한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잘 되던 학원을 왜 접었나, 학원과 출판을 겸업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최  승산은 어린이책도 펴냅니다. 역시 분야는 과학이고요. 그런데 최근 출간된 '논술 쑥쑥 어린이 인권여행' 시리즈는 분야가 다르네요.
황  우리가 '문과'를 안 한다는 게 아닙니다. 콘텐츠만 좋으면 합니다. 여러 가지 사정상 과학의 비중이 높고 그것에 전력을 다하는 겁니다. 어린이책을 이왕 시작했으니 내지 않을 순 없는 거지요. 또 출판사가 한 달에 한 권은 펴내야 하는데 지난해엔 책을 몇 권 못 냈어요. 출판사 웹 사이트 만드느라 편집 진행 중인 책에 신경 쓰느라. 상대적으로 제작기간이 덜 드는 어린이책을 내야겠다 싶었지요.
시행착오를 겪고 난 지금은 어린이책이 꽤 선전을 하고 있어요. 우리의 경우, 계절적으로 성인책의 판매가 부진한 오뉴월에는 어린이책이 커버를 해줍니다. 어린이책에서 빠져나오려 생각했지만 안 빠져나온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출근해서 보면요. 매출도 매출이지만 책이 몇 권 나갔느냐가 굉장히 기분을 좌우합니다. 어린이책은 권수라도 많이 나가요. 그런 날에는 일할 활력이 솟구치지요. 그런 의미에선 어린이책 내기를 아주 잘 한 것 같아요.

수학공부, 하려면 제대로 하자
최  새 교육과정에서 수학교과의 비중이 낮아진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황  수학교양서를 내는 출판사로서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점은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과목이 많다는 거예요. 나는 모든 사람이 수학을 다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예체능을 하는 사람은 수학의 비중을 줄여줘도 되요. 그 대신, 줄인 비중이나마 제대로 된 수학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일주일에 두 시간 수업을 받아도 제대로만 한다면, 그 수학교육이 음악을 하거나 미술을 하거나 또 다른 예술 활동을 하는 데 반드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엔 음악, 미술 하는 애들까지도 문과와 같았어요. 요즘은 안 그렇지만. 그런데 얘들은 날마다 대여섯 시간 음악, 미술 실기를 해야 합니다. 언제 영어공부하고, 언제 수학문제 풉니까? 그들이 하는 영어와 수학은 정상적인 방식이라고 말할 수 없지요. 나는 모든 사람이 영어, 더구나 수학을 다 해야 한다는 데에는 찬동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해도 좋고, 한 해도 좋아요. 하지만 수학을 해야 할 사람은 수학을 줄여선 안 되지요. 단, 이 경우에도 많이 하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그러면 수학공부를 왜 해야 하느냐? 당장 써먹을 수도 없는데 말이에요. 수학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고력 형성입니다. 사고력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차원 높은 사고력을 유발하고, 고차원의 사고력이 결과적으로 고도의 판단능력을 제공해주며, 창의력에까지 연결됩니다. 우리 수학교육은 이런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수학교육이 교육을 망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본연의 길에서 벗어난 수학교육은, 다시 말해 수학을 잘못 가르치면 창의력과 사고력을 배양하기는커녕 다 짓밟게 됩니다. 차라리 수학교육을 안 받은 사람이 나아요. 수학의 진정한 길을 가면 수학하는 것이 다른 문과에까지, 소설 쓰는 데까지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지금처럼 하는 수학교육은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는 겁니다.

최  그럼, 수학을 어떻게 가르치는 것이 바람직한가요?
황  수학의 기본 개념과 원리에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수학교육의 현실은 수학을 잘 하는 학생들도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 풀이과정 자체를 외우는 형편입니다. 어려운 문제를 두세 시간이나 하루 이틀, 심지어 일주일 넘게 붙잡고 끙끙거리며 푸는 게 아니라 풀이과정을 외우는 데 급급한 것은 큰 문제입니다. 그렇게 해도 문제를 풀 수 있으니까요. 아시아 지역에선 풀이과정을 노출하지만, 미국 쪽은 그렇지 않습니다. 교사가 수학을 잘 가르치느냐, 못 가르치느냐의 여부를 떠나 교육시스템부터가 다릅니다.

논술대비는 독서가 최선
최  저는 대학입학 논술시험은 변별력에 문제가 있을뿐더러 대학에서 공부할 능력을 판단하는 잣대로도 부적합하다고 봅니다. 앞서 말씀하셨듯이 논리적 사고력을 키우고, 여기에 더하여 대학입학 응시자의 수학修學 능력을 가늠하고자 한다면, 정규교과와 대입에서 수학의 비중을 높이는 게 더 옳아 보입니다.
황  미국의 고등학교에선 학생에게 에세이를 많이 쓰게 하잖아요. 그걸 본뜬 겁니다. 미국은 초등학교 때부터 작문 연습을 철저히 합니다. 영어시간, 곧 미국의 국어시간뿐만 아니라 다른 과목에서도 에세이를 써내라 하지요. 대학입시에서도 에세이를 써서 제출해야 하잖아요. 한국에서 지원하는 학생들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만, 자기가 써내라는 거 아닙니까. 또 우리는 논술과 독서의 순서가 뒤바뀌었습니다. 책을 먼저 읽어야 마땅하지만 논술을 막 때려버리니까 수험생으로선 요점을 정리한 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수학교육의 문제점을 이야기하자면,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수학책이 어려워야 신뢰를 합니다. 어려운 문제를 풀 줄 아는 선생을 존경합니다. 대입 본고사 시절에는 일본 도쿄대학 입시문제를 풀어줘야 했어요. 이런 심리가 우리에게는 잠재해 있습니다. 학원, 과외, 개인지도 등이 모두 공부 잘하는 학생의 수준에 맞춰져 있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끌고 가다보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됩니까? 어려운 문제만 풀어서 수학적 사고력이 길러지고 수학문제를 잘 푼다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허우적거리게 만듭니다. 그렇게 해서는 전체적인 체계를 잡아서 자기 힘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은 절대 안 생깁니다. 그러기에는 고등학교 3년이라는 세월이 너무 짧습니다.

저번 인터뷰에서 황승기 대표는 수학 잘하는 방법을 귀띔해 줬다. 첫째, 문제의 답과 풀이과정을 보는 것은 금물이다. 단, 교과서에 예시된 비슷한 유형의 풀이과정은 참고해도 된다. 둘째, 교과서를 차근차근 15번 이상 읽는다. 또 그는 "학생들이 문제를 스스로 풀어보는 것으로도 수학교육은 혁명이 이뤄지며, 학생들이 『엔트로피』(제레미 리프킨) 같은 책을 한 권만이라도 제대로 소화하면 논술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실전을 통해 터득했다"고 한다.

도서출판 승산은 향후 2-3년간의 출간 일정이 잡혀있다. 대체로 현대물리학의 앞선 흐름을 다룬 책들이다. 그 가운데 세 권을 황승기 대표의 설명을 토대로 살펴보면, 『The Road to Reality-A complete Guide to the Laws of the Universe』는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의 역저다. '우주의 법칙'이 부제인 이 책은 수학에 높은 비중을 둬서 학문의 근본부터 트위스트이론까지 다룬다. 누프양자이론의 창시자인 리 스몰린Lee Smolin은 입자이론의 '세 갈래 길'로 초끈이론, 누프양자이론, 트위스트이론을 든다. Peter Woit의 『Not Even Wrong』은 초끈이론을 비판하는 책이다. 프리먼 다이슨Freeman Dyson이 서문을 쓴 줄리언 하빌Julian Havil의 『Gamma: Exploring Euler? Constant』는 오일러의 상수, '감마'를 본격적으로 다뤘다.

기사게재 : <기획회의> 203호 기획회의가 만난사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