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c2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민희 옮김, 한창우 감수 / 생각의나무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머리말에서 저자는 카메론 디아즈가 인터뷰에서 궁금한 것을 물어보라는 기자에게 “그런데 E=mc2이 무슨 뜻이죠?”라고 물었다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카메론 디아즈와 같이 무수히 들어는 봤지만 무슨 의미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이 공식에 궁금증을 품어왔을 것이다. 데이비드 보더니스는 친절하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이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공식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에너지와 질량은 궁극적으로 같은 것이며 빛의 속도의 제곱(c2)이라는 어마어마한 상수의 곱을 통해 질량이 에너지로 변환된다는 것이다. 보더니스는 =를 길게 늘려 ===============로 묘사하고 싶다고 말한다. 우변의 작은 (실로 미세한 수준의) 질량이 이 긴 = 기호의 터널을 지나면서 어마어마하게 큰 (지구와 인간 문명을 낳은 생산력과 그것을 모조리 없애버릴 파괴력을 지닌) 에너지로 변환된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명쾌하게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이 책은 과학책이라기보다는 과학사 내지는 E=mc2이라는 공식을 둘러싼 미시사처럼 읽힌다. 책에 등장하는 각 이론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개요 정도를 묘사할 수 있지만 사실 수많은 가능성 중에 왜 그 답에 이르게 되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수학적 증명과 계산 없이 와 닿기는 어렵다. (그것이 고전물리학과 현대물리학 사이의 간극이 아닐까 한다.) 과학자들이 마술모자에서 토끼를 꺼내는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지만 거기에 어떤 트릭이 있는지는 끝내 알 수 없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E=mc2을 비롯해서 관련된 어렵고 복잡한 이론과 원리들을 보더니스는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최선의 형태로 그 실루엣이나마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맨 처음 이 공식의 각 요소인 E(에너지)와 m(질량)과 c(속도, 빛의 속도) 각각에 얽힌, 궁극적으로 이 공식을 이끌어내는데 기여한 이론들과 그것을 발견한 중요한 과학자들, 패러데이(전자기력), 라부와지에(질량보존), 맥스웰(파동), 뢰머(빛 속도 측정), 에밀리 뒤 샤틀레(에너지가 속도의 제곱과 비례) 등의 재미난 일화를 소개한다. 아인슈타인은 물론 줄곧 이야기의 흐름 곳곳에 큰 비중으로 등장한다.

그 다음 원자의 세계-양전자, 중성자, 원자 모형등- 그리고 방사성 원소에 관련된 발견들을 다루면서 러더퍼드, 가이거(방사능 계수기), 채드윅(중성자 발견), 페르미(중성자 속도 늦추어 핵에 들여보내기), 퀴리부인(방사성원소)이 소개된다. 그리고 우라늄 핵의 분열(nuclear fission)이 일어나는 과정을 계산으로 입증해낸 리제 마이트너의 이야기는 한 장에 걸쳐 자세히 소개된다.

그 후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연합군의 원자폭탄 만들기 경주가 4개 장에 걸쳐 드라마처럼 묘사된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지휘하는 독일의 연구팀,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와 오펜하이머가 지휘하는 로스앨러모스 팀의 진척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전개된다. 이 부분은 정말이지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데, 특히 독일 연구팀에 중수를 공급하는 노르웨이의 베모르크 공장에 대한 연합군 특공대(노르웨이 레지스탕스로 구성된)의 활약은 너무너무 재미난다. 깊은 산속 호수로 가로막혀 지리적으로 고립된 중세의 성과 같은 공장에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타고 몇 주에 걸쳐 잠입해서 폭탄을 설치하고 유유히 도망치는 크누트 하우켈리트와 노르웨이 특공대원들! 그뿐이 아니라 하우켈리트는 그 다음 복구된 공장에서 생산한 중수 탱크를 호수 건너 운반할 때 운반선을 다시 한 번 폭파시키는 것도 성공을 거둔다. 이 때 배에 탄 무고한 사람의 희생을 놓고 갈등하고 슬퍼하는 그들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빼앗긴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목숨을 건 안중근 의사 비롯한 우리나라의 항일 투사들이 떠올라 울컥 하기도 했다.

이렇듯, E=mc2 공식과 그것의 발견이 낳은 가장 극적인 사건인 원자폭탄 이야기에 상당한 장을 할애한 후, 보더니스는 그 공식이 단순히 인간의 손으로 기술에 적용되는 도구가 아니라 이 우주의 탄생 및 작동 원리임을 보여준다.

태양이 수소를 연료로 하는 거대한 용광로이며 수소가 헬륨으로 융합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지구상의 만물을 빚어냈다는 사실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태양의 구성성분의 2/3가 철로 이루어졌다고 믿고 있던 20세기 초, 태양광 스펙트럼을 다시 해석해 90% 이상이 수소임을 밝혀낸 여성 과학자 세실리아 페인이 주류 과학계로부터 핍박받고 거부당하고 무시되고 그 공마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을 것이다.

그 후 프레드 호일이 페인의 발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별의 일생과 우주 생성에 대한 이론을 내놓는다. 원자폭탄 제조 과정에서 플루토늄의 폭발성을 조절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내파’원리를 별에 적용했던 것이다.

호일이 예언한 별(항성)의 일생주기를 마치고 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발견한 사람은 인도의 과학자 수브라마냔 찬드라세카르로 그는 블랙홀에 대한 개념을 정립했다. 그의 가설은 페인과 마찬가지로 배척받았으나 차후 관찰에 의해 입증되었다.

보더니스가 설명하는 우주의 역사는 맨 처음 엄청나게 조밀하고 압축된 지점, 그러니까 모든 에너지(방사선)가 E=mc2 공식의 우변에 몰려 있는 상태로 시작되어 그것이 차츰차츰 에너지로 변환되어 궁극적으로 모두 좌변으로 이동하는 길고 긴 여행이다.

여기에서 E=mc2의 이야기는 마감하고,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다시 아인슈타인에 대한 에피소드, 그의 상대성 이론의 실험관측 이야기가 나온다. 이 부분 역시 보더니스는 아인슈타인의 불운한 제자 에르빈 프로인틀리히의 희비극적 에피소드로 재미있게 장식하고 있다.

유명한 보더니스의 책을 이제야 집어들게 되었는데, 과연 명성답게 과학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재주가 있고 탁월한 이야기꾼임에 틀림없다. 그는 뛰어난 과학해설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인간에 대한 통찰과 서술 능력은 일류 소설가 수준이 아닌가 싶다. E=mc2의 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을, 마치 커리커쳐와 같이, 가장 인상적인 특징만을 잡아서 간결하게,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가난한 제본공의 신분으로 험프리 데이비 경의 눈에 들어 과학자의 길을 걷게 되면서 그를 평생의 스승으로 모시지만 결국은 시샘과 배반으로 상처받은 마이클 패러데이. 유복한 환경, 매력, 뛰어난 머리를 모두 타고 나서 당대의 지성인 볼테르와 평생 사랑하고 교류하며 짧은 생애를 마칠때 까지 과학을 후원하고 과학연구에 몰두했던 에밀리 뒤 샤틀레. 로댕과 까미유, 바렌보임과 뒤프레 커플을 연상시키는 오토 한과 리제 마이트너의 관계. 비범한 천재로 로스 앨러모스의 원폭 개발에 결정적 기여를 했지만 자신의 연구 커리어와 일생을 망쳐버린 로버트 오펜하이머. 자유로운 영혼과 권위에 대한 도전이 천재의 필수요건이라고 말해주는 듯 한 아인슈타인, 프레드 호일의 어린시절. 여성이기에, 인도인이기에 굉장한 업적을 내놓고도 배척받고 무시당했던 세실리아 페인과 수브라마냔 찬드라세카르. 그 외에 많은 사람들의 삶이 이 책에 펼쳐지고 있다.

책의 1/4 가량을 인물에 대핸 개요/미주/김제완 교수의 강연록 등의 부록이 차지하고 있는데 부록도 꼼꼼히 읽어보기를 권한다. 본문 중에 미주 번호가 달려있지 않아서 쭈르르 읽고 나니 뒤에 미주(notes)가 들어있어서 나중에 따로 읽었는데 따로 읽어도 괜찮을 만큼 내용이 풍부하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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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란 2009-12-10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외국에 나가셨다고 들었는데 들어오셨나 봅니다. 저의 독서 이력에 많은 도움을 주신 님의 귀환을 환영합니다. 가끔씩 이네파벨님의 번역한 책들은 관심있게 보고 있습니다.

이네파벨 2009-12-10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자란님, 쓸쓸한^^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미국 1년 다녀오고 또 들어와서 몇달 바로 일하느라...서재는 폐가가 되었죠. 이제 모처럼 일 마감하고 시간이 생겨서...그동안 못 읽은 책, 읽다 만 책, 읽었지만 까먹은 책들....좀 읽어보려고 한답니다.

알라딘에서 자주 뵈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