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
조이엘 지음 / 섬타임즈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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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정보 과잉과 확증 편향이 교차하는 지식의 정글 속에서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교묘하게 가공된 가짜인지 분별하기가 날이 갈수록 난해해지고 있습니다. 삶의 표준과 가치관이 흔들리는 위태로운 이 시대에 읽을만한 책이 눈길을 끕니다.


전작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을 통해 일상적 소재를 비틀어 보는 비범한 시선으로 저를 매료시켰던 조이엘 작가는 후속작 『더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에서도 특유의 맛깔나는 말솜씨와 기발한 관점을 펼쳐 보입니다.


저자 조이엘은 서울대학교에서 철학과 종교학을 전공한 인문학 연구자입니다. 그의 진가는 가장 치열하고 날 선 욕망이 들끓는 대치동과 목동의 교육 현장에서 발휘되었습니다. 학습 심폐소생술 전문가라는 부캐가 붙을 정도로요.


2025년까지 제주 학생들과의 동행을 마친 뒤 다시 서울로 복귀한 그는 여전히 학생들 곁에 밀착하여 국어·영어·수학이라는 외피를 빌려 궁극적으로는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전수하고 있습니다.





『더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은 인간의 착각과 사회의 반복되는 오류를 들여다봅니다. 이 책의 진짜 매력은 팩트 나열이 아니라 팩트 뒤집기에 있습니다. 영아돌연사증후군, 로또 명당, 이민자와 범죄율까지 우리가 뉴스에서 스치듯 접한 통계들이 실은 얼마나 허술한 인과의 그물로 엮여 있는지를 짚어내는 시선이 예리합니다.


역사, 철학, 종교, 문학, 과학, 정치, 심리학을 넘나드는 100편의 짧은 글이 독립적으로도, 하나의 지적 지도로도 읽히는 구성이라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어도 무리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이 가진 숨은 매력이자 신의 한 수 같은 디테일이 있습니다. 인문학 책은 엄숙한 표정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경건하게 읽으라고 강요하는 듯한 느낌을 주곤 하지요. 하지만 『더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은 페이지 하단에 언제든 맘에 드는 페이지를 툭, 접어둘 수 있도록 점선을 그려놓았습니다.


이 작은 선 하나가 주는 심리적 효과는 생각보다 엄청납니다. 이 책은 내 책이니까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유쾌한 허락을 받는 기분이 들게 합니다. 100편의 짧고 강렬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보니, 읽다가 "와, 이 통찰은 나중에 꼭 다시 꺼내보고 싶다"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자연스럽게 점선에 시선이 머물면 자석에 이끌리듯 무심코 접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저자는 "사소한 것들이 있다. 작아서 눈에 띄지 않는 것, 시간에 풍화되어 사라진 것,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 슬그머니 인과관계가 뒤집힌 것. 그것들이 진실을 낯설게 만들고 현실을 왜곡해서 악이 더 악해지도록 밑밥을 깐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갔던 일상의 작은 파편들 속에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꿰뚫는 마스터키가 숨겨져 있다는 겁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가장 큰 취약점 중 하나는 언론과 미디어가 쏟아내는 수많은 데이터와 통계치를 아무런 비판적 필터링 없이 그대로 믿어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조이엘 작가는 인간이 얼마나 쉽게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착각하고, 생존자 편향 오류에 빠져드는지 짚어줍니다.


인간의 뇌는 본능적으로 복잡한 분석 과정을 생략하고 직관적이며 편리한 연결 고리를 만들고 싶어 합니다. 이런 뇌의 게으름이 사회적 통념으로 굳어질 때, 공동체가 얼마나 쉽게 선동당하고 엉뚱한 대상을 맹신하게 되는지 경고합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극우 정치인들은 이민자 때문에 미국 범죄율이 치솟는다며 대중의 공포심을 자극하고 이를 정치적 자양분으로 삼아왔습니다. 젊은 남성 비율이 높고 저학력층이 많다는 지표만 보면 얼핏 그들의 주장이 타당해 보이지만, 실제 경찰청과 공인된 기관의 데이터를 교차 검증해 보면 이민자들의 범죄율은 자국민 범죄율보다 훨씬 낮게 나타납니다.


그럼에도 대중은 사소한 착각과 선입견에 눈이 멀어 시스템의 진짜 문제점을 보지 못합니다. 저자는 이처럼 확증 편향에 갇혀 진실을 왜곡하는 현대 사회의 단면을 고발하며, 인문학의 진짜 역할은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거짓을 분별해 내는 거름망을 만드는 일임을 역설합니다.





정답이 없고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를 살아갈 때 우리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악의 세력이나 비밀스러운 조직이 세상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내곤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음모론이 탄생하는 심리적 배경입니다.


우리가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 이야기를 통해 음모론이 얼마나 치밀하고 정교한 인과관계의 그물망을 짜놓는지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대중은 여전히 유튜브와 커뮤니티 공간에서 음모론에 열광할까요?


세상에서 벌어지는 복잡다단하고 비극적인 사건들이 단순한 우연이나 시스템의 오작동 때문에 일어났다고 인정하는 것보다, 차라리 악랄하지만 치밀한 천재적인 흑막이 계획적으로 저지른 일이라고 믿는 것이 인간의 뇌에게는 심리적으로 훨씬 덜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깨알 같은 주석과 역사적 맥락을 바탕으로 음모론의 허구성을 파헤치며 가짜 뉴스에 흔들리지 않는 지적 면역력을 심어줍니다.


전쟁과 비극이라는 거대한 참사 앞에서 권력자들이 보여주는 공감 능력의 상실을 싸가지라는 속된 단어를 통해 해부하기도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을 쥔 자들이 피지배층의 생명을 얼마나 도구적으로 대했는지 그 추악한 민낯을 폭로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수많은 참사와 사회적 비극(세월호, 이태원 등) 앞에서 국가와 공동체가 최소한 지켜야 할 양심과 도덕적 임계점이 어디인지를 엄숙하게 묻고 있습니다.


후반부에서는 이슬람과 유대교의 돼지고기 금기 문화, 그리고 제주도의 흑돼지 생태학으로 이어지는 서사가 흥미진진합니다. 유대교의 야훼와 이슬람의 알라가 왜 그토록 완강하게 돼지고기 섭취를 금지했는지 생태학적으로 분석하고, 제주의 돗통시(돼지 화장실)에 대한 현대사적 반전까지 위트 있게 덧붙입니다.


우리는 커다란 사건에는 쉽게 반응하지만, 그 사건을 만들었던 작은 균열은 바라보지 않습니다. 혐오가 언어에서 시작되고, 편견이 농담의 형태로 퍼지며, 잘못된 믿음이 반복을 통해 상식처럼 자리 잡는 과정은 언제나 조용합니다.


사소하고 작은 현상 뒤에 숨겨진 거대한 역사적 맥락과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영리한 혜안, 그리고 나를 지키고 타인을 위로할 수 있는 단단한 인간미야말로 우리가 갖춰야 할 진짜 무기임을 일깨워 주는 『더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 맛깔나는 강연을 듣듯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지적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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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의 세계 - 보이지 않는 숨, 질병, 그리고 생명의 역사
칼 짐머 지음, 이상훈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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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매일 아침 지하철에 몸을 싣고, 밀폐된 사무실에서 모니터를 마주하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문을 닫아걸 때까지, 우리는 단 한순간도 공기라는 존재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를 뒤흔든 팬데믹을 지나오며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공유하는 그 투명한 공간이 실은 거대한 연결망이자, 누군가의 숨과 바이러스가 교차하는 가장 치열한 전장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심층 보도로 퓰리처상까지 거머쥔 미국을 대표하는 과학 저술가이자 예일대학교 분자 생물 물리학 및 생화학 겸임 교수인 칼 짐머(Carl Zimmer)는 『공기의 세계』(원제 Air-Borne)를 통해 이 무감각한 일상에 짜릿한 균열을 냅니다.


칼 짐머는 대기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세계를 미스터리 추리 소설처럼 추적해 나갑니다. 마음껏 숨 쉬어도 정말 안전한가? 이 질문은 단순히 질병에 대한 공포를 자극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환경과 사회적 책임을 다시 돌아보게 만듭니다.





2023년 5월 6일 밤, 한 공연장의 무대 위로 연주자들이 걸어 나옵니다. 바이올린과 첼로, 그랜드피아노 앞에 앉은 연주자들 뒤로 턱시도와 검은 드레스를 입은 합창단 단원 수십 명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무대 위에 있는 90명 중 마스크를 쓴 사람은 단 4명뿐이었고,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은 170명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지난 몇 년간 수없이 마주했던 혹은 팬데믹 이전에는 너무나 당연했던 평범한 공연의 한 장면입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음악의 공간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전장으로 돌변합니다. 칼 짐머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스캐짓 밸리 합창단에서 벌어진 집단 감염 사건을 들려줍니다.


당시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한 방역 당국은 코로나19는 공기로 전파되지 않는다며, 1미터 이상의 거리두기와 손 씻기만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 역시 기침이나 재채기로 배출되는 비말은 중력의 법칙에 따라 금방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라 믿었고, 열심히 손을 씻고 장바구니를 소독용 물티슈로 닦아내기에 바빴습니다.


하지만 노래를 부르고 숨을 나누는 그 밀폐된 공간에서 바이러스는 보란 듯이 공기를 타고 번져나갔습니다. 저자는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현대 의학이 오랫동안 마주하기를 외면했던 치명적인 맹점, 공기 전파의 진실을 환기합니다.


공기는 정말로 깨끗하고 비어 있는 공간일까요? 칼 짐머는 19세기 과학의 최전선으로 안내하며 공기 속 미생물을 밝혀내기 위한 거대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 중심에는 루이 파스퇴르가 있었습니다.


파스퇴르는 공기 속 세균을 눈으로 보여주려 했고, 이후 수많은 연구자들이 공기 전파의 증거를 찾아 나섰습니다. 하지만 과학은 언제나 증거가 많다고 해서 곧바로 방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기존 이론과 제도, 사회적 분위기가 함께 움직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현대 과학이 마주한 대기의 진실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2000년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의 실험은 공기가 가진 생태계로서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현대식 에어로스코프를 이용해 공기 140만 리터를 통과시켰고, 에어로스코프에 갇힌 세포에서 DNA를 추출하자, 300개 이상의 서로 다른 유전자 서열이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들이마시는 한 모금의 공기가 실은 수백 종의 세균과 바이러스가 춤추는 거대한 동물원이라는 비유가 와닿았습니다. 대기는 생명체가 단절된 진공이 아니라, 끊임없이 순환하고 소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 즉 에어로바이옴(Aerobiome)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토록 명백한 공기 속 생태계와 감염의 가능성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의학사에서 지워지고 외면당했을까요? 『공기의 세계』는 과학이 언제나 합리적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을 폭로합니다. 세균설이 확립된 이후 의학계는 철저하게 물, 음식, 손 접촉, 그리고 눈에 보이는 굵은 비말에만 집중했습니다.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는 미세한 비말핵을 통한 전파 가능성은 주류 학계의 권위 아래 묵살되었습니다.


공기 전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평생을 바쳤으나 외면당했던 윌리엄 파스 웰스 같은 선구자들의 잔혹사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주류 전염병학자들이 구축한 견고한 상식의 성벽은 새로운 증거들을 주변부로 밀어냈습니다. 게다가 공중생물학의 순수한 연구 성과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생물무기 연구 재료로 전락하기도 했습니다.


인류를 살릴 수도 있었던 공기 전파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주류 의학계에서는 철저히 지워진 반면, 군사 기지 내부에서는 가장 치명적인 무기를 만들기 위해 비밀리에 축적되고 있었으니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향한 집요한 추적을 멈추지 않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리처드 라일리 같은 학자들은 학계의 냉대 속에서도 공기 전파의 감염 경로를 입증하기 위해 실험을 이어갔습니다. 스스로 방독면을 쓰고 밀폐된 방에 결핵균을 채우는 이 눈물겨운 실험은 공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병원체를 품고 있을 수 있는지를 증명해 냈습니다.


그러나 제도적 권위와 관성은 무서웠습니다. 명확한 증거들이 축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 뒤 찾아온 새로운 팬데믹 국면에서조차 인류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습니다.


칼 짐머는 공기 속 미생물 생태계가 우리의 생존과 면역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진실을 꺼내놓습니다. 공기로 전파되는 병원체가 아무리 치명적이라고 해도, 이들 병원체는 전체 에어로바이옴의 다양성을 구성하는 아주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수천 킬로미터 밖의 밀밭에서 날아온 포자와 성층권을 돌고 온 세균이 나의 기도를 숨 가쁘게 드나든다는 칼 짐머의 묘사는 과학적 팩트입니다. 우리는 숨을 쉴 때마다 지구 반대편의 바다와 하늘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셈입니다.


이 에어로바이옴과의 공존은 우리의 면역 시스템을 훈련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과도하게 밀폐되고 소독된 실내 환경에서 자란 현대의 아이들이 오히려 알레르기와 천식에 시달리는 이유 역시 이 대기 생태계와의 단절에서 생깁니다.


공기를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가 지구상의 모든 존재와 얼마나 끈끈하게 얽혀 있는지를 깨닫는 일입니다. 우리가 내뱉은 숨은 거대한 투명한 바다가 되어 다시 타인의 숨으로 스며듭니다.





『공기의 세계』가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종착지는 정치 사회적 연대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다음 팬데믹을 막고 더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공기를 개인의 위생 문제가 아닌 공공의 인프라로 취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감염을 막기 위해 손을 씻고 손소독제를 바르며 모든 책임을 개인의 조심성에 전가해 왔습니다. 그러나 공기 전파 질병 앞에서 개인의 노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매일 머무는 학교, 지하철, 사무실의 공기 흐름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건물의 환기 시스템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그리고 국가가 실내 공기질을 어떤 사회적 기준으로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을 『공기의 세계』에서 짚어줍니다.


깨끗한 물을 마시기 위해 상하수도 인프라를 구축했듯이, 이제는 안전하게 숨 쉴 권리를 위해 공공정책과 사회적 투자가 움직여야 할 때라고 합니다.


우리는 공기 없이 살 수 없지만, 정작 우리가 어떤 거대한 숨의 바다에 잠겨 있는지는 까맣게 잊고 살고 있습니다. 감염병을 다룬 책이면서 과학사, 환경서, 공공정책을 이야기하는 책 『공기의 세계』. 우리가 매 순간 들이마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세계의 무게를 실감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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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질문에 답하는 짧은 철학책 - 인간관계부터 커리어까지, 생각이 많은 나를 위한 철학 수업
크리스토프 크바르히 지음,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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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부터 한나 아렌트까지, 32인의 철학자가 말하는 잘 사는 법 『일상의 질문에 답하는 짧은 철학책』. 철학은 일상의 평범한 순간마다 번득이는 독창성과 상상력을 불어넣는 지극히 역동적인 무기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실천 철학자 크리스토프 크바르히 저자는 32명의 철학자를 현대인의 질문과 연결하며 철학을 오늘의 언어로 번역해 냅니다. 세네카, 헤겔, 쇼펜하우어, 한나 아렌트, 레비나스 등이 지금 우리 옆에서 말을 거는 사람처럼 소환됩니다.


우리가 매일 마주치지만 슬쩍 외면해온 질문들, "이유 없이 사람을 미워해도 될까?" "내가 하는 일을 꼭 사랑해야 할까?" "소원을 들어주면 아이가 행복해할까?" 등을 붙잡고, 각 장의 첫머리에 '예' 혹은 '아니오'로 먼저 답합니다. 그런 다음 왜 그런 답이 나왔는지를 철학자들의 언어로 풀어냅니다.


저는 여러 질문에서 책과 다른 답을 떠올렸습니다. 이 책은 내 생각을 바꾸기 위해 정답을 들이미는 책이 아니라, 자신이 왜 그런 답을 내렸는지 다시 질문하게 만드는 책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처음의 '예'와 '아니오'는 결론이 아니라 사고를 흔드는 장치였습니다. 철학이란 결국 상대를 설득하는 기술이 아니라, 익숙한 확신을 잠시 내려놓고 다른 가능성을 끝까지 따라가 보는 힘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오늘날 자기계발은 거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이 배우고, 더 경쟁해야 한다는 압박은 이제 너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가장 먼저 "정말 그래야 하는가?"를 묻습니다.


키르케고르는 '자신이 되기'를 통해 타인의 기준을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완성하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하이데거 역시 유행과 대중 속에 섞여 사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을 책임지는 '본래적 삶'을 강조합니다.


공감에 대한 이야기도 남다릅니다. 에디트 슈타인은 공감이 상대의 몸을 바라보고 자신의 몸을 통해 상대를 느끼는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렇기에 공감은 타인을 큰 관심으로 대하는 동시에 자기 몸에 섬세한 감각을 지닐 때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관계의 핵심을 정보가 아니라 감각에서 찾습니다.


쇼펜하우어의 미움에 대한 해석도 와닿습니다. 쇼펜하우어는 '미움은 마음의 일이요, 멸시는 머리의 일이다'라는 말로 멸시가 미움보다 훨씬 나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멸시는 의지의 행위로, 항상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합리적인 반면, 미움은 온몸을 뒤흔들지만 우리 자신도 그 이유를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미움을 받는 사람은 감정의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릴 수 있지만, 멸시를 받는 사람은 그것으로 끝장이라고 말이죠.


보통 미움을 더 위험한 감정으로 생각하지만, 철학은 오히려 계산된 멸시가 인간을 더 깊이 파괴한다고 말합니다. SNS 댓글 문화와 온라인 혐오를 떠올려 보면 그 심각성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쉬는 시간에도 생산성을 고민합니다. 취미조차 자기계발이 되고, 여행도 콘텐츠가 되어야 합니다. 실러의 '놀이 충동'은 이런 생각을 뒤집습니다. 놀이가 의미 있고 아름다운 이유는 기능적인 일상 세계의 기준으로 보면 완전히 쓸모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기능성과 유용성의 세상과 명확히 구분되는 다른 세상이 열릴 때 놀이는 비로소 아름다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놀이는 항상 경계가 있고 끝이 있다고 합니다. 끝없는 온라인 게임처럼 경계가 불분명해지면 놀이는 아름다움을 잃고, 의존을 불러온다고 합니다. 끝이 없는 콘텐츠 소비는 놀이가 아니라 피로가 됩니다. 반대로 끝이 있는 놀이는 삶을 회복시키는 시간이 됩니다.





그 외에도 플라톤이 말하는 사랑과 우정의 철학, 마르틴 부버를 통해 들려주는 부모 자식 관계 등 기존의 생각을 전복시키는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생태 철학에서는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생명 외경 개념이 등장하는데 이 역시 뜻밖의 이야기였습니다. 반려동물 치료비 문제를 다루는 질문에서 생명 외경은 우리가 행동하고 결정을 내릴 때 생명 그 자체를 기준 삼으라고 요구합니다. 때론 이기적인 우리 감정을 기준으로 삼아선 안 된다고 말합니다.


동물을 사랑하기 때문에 치료하는 것과, 생명 그 자체를 기준으로 행동하는 것. 이 두 태도가 결과는 같아도 출발점이 다르고, 그 출발점이 결국 더 넓은 윤리적 일관성을 만든다는 것을 들려줍니다.


가치관의 기준을 세우고 싶은 이들에게 유용한 책입니다. 각 챕터가 독립적이어서 가장 흥미로운 질문부터 골라 읽기 좋습니다. 철학적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싶은지가 조금씩 선명해집니다. 생각하는 연습의 도구로 활용하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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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내 배당투자로 빚을 다 갚았다 - 지속 가능한 국내 배당투자의 법칙
배당의민족 지음 / 부자의서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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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유튜브 채널 배당의민족을 운영하며 국내 배당 투자 바이블을 정립해 온 저자의 『나는 국내 배당투자로 빚을 다 갚았다』. 저자는 창업의 실패로 수천만 원의 빚을 떠안았던 절망적인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매달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현금흐름을 만드는 배당 투자의 가치를 발견하였으며, 분석과 실행을 통해 자산 현황을 점진적으로 개선한 끝에 마침내 모든 부채를 청산하는 기적을 일구어냈습니다. 현재는 한층 더 거대해진 자산을 우직하게 굴리며, 흔들리지 않는 현금흐름의 중심축으로서 국내 배당 투자의 최전선에 서 있습니다.


『나는 국내 배당투자로 빚을 다 갚았다』는 국내 배당투자 전략서입니다. 매일 변하는 주가는 인간의 광기와 공포를 반영하느라 예측할 수 없지만, 기업이 비즈니스를 통해 벌어들인 이익을 주주에게 돌려주는 배당은 예측 가능성을 지닙니다. 주가가 폭락하는 위기 상황에서도 통장에 꼬박꼬박 꽂히는 현금은 투자자의 멘탈을 지켜주는 심리적 방어선이 됩니다.





배당 투자라고 하면 미국의 배당귀족주나 배당킹 종목을 떠올립니다. 미국은 수십 년간 주주환원을 이어온 탄탄한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기업들은 돈을 잘 벌어도 주주들에게 베풀지 않는다는 비판을 오랫동안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과거의 소극적인 주주환원에서 벗어나 자사주를 사서 불태워버리는(소각) 파격적인 조치와 배당 확대가 결합하면서, 이제 국내 배당주는 주가 상승 모멘텀을 품은 매력적인 자산으로 환골탈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국내 배당주들이 오랜 기간 극단적으로 저평가되어 있다는 사실, 즉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이면에 숨겨진 기회를 일찌감치 포착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세금과 환율이라는 실질 수익률의 함정을 간파했습니다.


미국 주식은 배당소득세 자체보다, 매도 시 발생하는 양도소득세가 부담으로 작용했지만, 국내 주식은 양도소득세가 없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는 한국 배당투자가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배당의 메커니즘은 비즈니스의 본질을 꿰뚫는 상식적인 원리에서 출발합니다. 상장된 기업은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여 이익을 내고, 이 이익 중 일부는 미래 투자를 위해 남겨두며, 일부는 부채를 상환하는 데 사용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남은 결실을 주주들에게 배당이라는 형태로 환원하는 겁니다.


매년 1주당 500원의 배당금을 지급하는 A 기업의 주식을 1,000주 투자했다면, 매년 50만 원의 현금을 얻는 방식입니다. 이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자산을 주식 수 단위로 늘려나가는 순간, 주가의 등락은 숫자의 장난에 불과해지며, 내가 소유한 기업의 지분과 거기서 나오는 현금흐름만이 유일한 진실로 남게 됩니다.


저자는 반드시 기업의 성적표인 재무제표를 확인하라고 조언합니다. 당기순이익이 매년 적자를 기록하거나 영업활동현금흐름이 메말라가는 기업이 무리하게 고배당을 지급한다면, 그것은 살을 깎아 먹는 폭탄에 불과합니다. 진짜 배당주는 이익잉여금이 곳간에 가득 쌓여 있고, 매출채권과 재고 자산이 건전하게 관리되며, 영업이익이 매년 안정적으로 우상향하는 정교한 재무 안정성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지속 가능한 투자를 위해 최근 5년 이상 배당금이 단 한 번의 단절도 없이 꾸준하게 지급되고 있는지를 최우선으로 검증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매년 배당금이 정체되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성장하는 배당성장의 매끄러운 궤적을 확인해야 합니다. 더불어 매출액과 순이익이 동반 성장하거나 최소한 견고하게 유지되는 기업만이 진정한 투자 후보군에 이름을 올릴 수 있습니다.





『나는 국내 배당투자로 빚을 다 갚았다』에서는 내 지갑을 채워줄 국가대표 배당 업종을 분석해줍니다. 대한민국 증시에서 주주환원의 선봉장 역할을 맡고 있는 거인들인 금융 업종부터 경기 불황의 파도가 몰아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대표적인 경기방어주인 통신 업종 등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투자 전략을 알려줍니다. 자본이 부족한 2030 세대나 사회 초년생들이 자산을 가장 안전하게 굴릴 수 있는 적립식 배당투자 전략, 당장 생활비가 시급한 은퇴자에게 필요한 고배당 및 배당성장주 투자 전략 등을 짚어줍니다.


미국에는 50년 이상 배당을 늘려온 배당 귀족주가 잘 알려져 있지만, 국내에도 장기간 배당을 유지하거나 성장시켜온 종목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많은 투자자들이 모릅니다. 이 목록 자체도 유용합니다.





저자는 365일 마르지 않는 현금 파이프라인 만드는 법과 절세까지 완벽한 계좌 설계를 도와줍니다. 절세 전략이야말로 배당 투자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강력하고도 절대적인 변수임을 깨닫게 합니다. 세금을 아낀 돈이 곧 투자 원금이 된다는 논리는 절세를 나중에 생각할 일로 여긴 제게도 유용한 팁이었습니다.


수천만 원의 부채라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저자를 건져 올린 것은 한탕주의 대박 주식이 아니라, 매달 묵묵하게 통장에 꽂히며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국내 배당주들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증시가 거대한 밸류업의 날개를 펴고 비상하려는 지금, 이 책은 경제적 자유를 향한 여정에 신뢰할 수 있는 가이드북이 되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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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외주 -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출현
홍진기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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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검색창과 AI가 던져주는 정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는 스스로 사유하는 법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오타 하나 없이 완벽하게 정렬된 문단, 물 흐르듯 매끄러운 인과관계, 비문(非文)조차 찾아볼 수 없는 논리 구조. 하지만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기묘한 이질감이 밀려옵니다. 분명 흠잡을 데 없는 문장인데, 그 텍스트 어디에서도 글을 쓴 사람의 냄새가 나지 않는 현상 말입니다.


연세대학교 홍진기 교수가 마주한 풍경이 그러했습니다. 서울대 공학박사, MIT 박사후연구원, 그리고 현재 항노화 라이프케어 기업 바른바이오의 CEO이기도 한 그가 내놓은 책 『사고외주』는 강의실의 이질감에서 출발합니다. 홍진기 교수가 포착한 AI 시대의 가장 조용하고 위험한 병리 현상인 사고외주(思考外注)의 실체를 만나보세요.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기이한 역설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겉보기에는 놀라운 수준의 유능함이 가득하지만, 정작 알맹이를 들여다보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똑똑한 무능함'이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AI 도구를 활용해 단 몇 초 만에 그럴싸한 기획서와 보고서를 뽑아내는 이들은 겉보기엔 완벽한 전문가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왜 이 전제를 선택했는가?", "이 결론이 도출되기까지 어떤 대안들을 검토했는가?"라고 송곳 질문을 던지면 여지없이 밑천이 드러납니다. 결론에 이르는 지난한 논리의 계단을 단 한 번도 제 발로 걸어가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당황하기 일쑤입니다.





저자는 문장은 사고의 흔적이며, 문체는 살아온 경험이 남긴 지문이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문장이 유려해도 고민한 흔적이 사라진 순간, 글은 정보만 남을 뿐 사람은 사라집니다.


우리가 AI에게 문장 작성을 맡기는 행위가 사실상 세상을 해석하는 나만의 방식을 통째로 넘겨주는 대리전이라는 것을 짚어줍니다. 실력이라는 것은 대개 계단을 밟듯 차례차례 올라오거나 굴곡을 겪으며 자라나기 마련인데, AI가 제공하는 도약대는 인간이 겪어야 할 필수적인 시행착오를 생략하게 만듭니다.


저자는 이를 고통스럽고도 귀중한 성장의 골든타임을 박탈당하는 과정이라고 경고합니다. 문장을 고치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밤을 새우던 그 고독하고 비효율적인 시간이야말로, 뇌의 전전두엽을 자극하고 견고한 신경망을 다지는 유일한 통로라는 뜻입니다. AI를 효율적인 비서로만 대우하다가는, 우리 스스로가 비서의 지시 없이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무력한 존재로 전락할 뿐입니다.


고급 코딩 능력이 없어도, 유려한 글재주가 없어도 누구나 프롬프트 창만 두드리면 상위 10%의 결과물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홍진기 교수의 공학적 시선은 이 장밋빛 환상을 깨부웁니다. 누구나 비슷한 도구와 검색 엔진을 공유하는 동기화된 세계처럼 보이지만, AI는 평등의 도구가 아니라 미세한 차이를 천문학적 격차로 벌려놓는 무자비한 증폭기에 가깝다고 말입니다.


AI라는 도구는 이미 모든 인간에게 기본값이 되었습니다. 이 동기화된 세계에서 차이를 만드는 결정적 변수는 역설적이게도 AI를 들고 있는 인간 본연의 역량입니다. AI가 내놓은 답변의 허점을 간파하고, 전제를 비틀어 높은 수준의 사고 과정을 직접 통과한 사람은 결론을 주도하고 해석하는 위치로 이동합니다. 반면 AI가 준 정답의 모양에 안주해 빠르게 받아 적기만 한 사람은 사유의 주도권을 완전히 박탈당한 채 결과를 전달받는 위치에 영원히 머물게 됩니다.


데이터가 풍부하고 목표가 명확한 최적화의 영역에서 AI는 인간을 아득히 초월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과 비즈니스는 결코 그렇게 획일적인 최적화 공식으로 굴러가지 않습니다. 중요한 순간마다 우리는 늘 모호함과 마주하며, 선택의 결과는 수년 혹은 수십 년 뒤에야 서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AI는 계산을 수행하지만 선택의 결과를 감당하지는 않습니다. 효율보다 정의와 책임이 더 중요한 가치 충돌의 순간에 AI는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이런 딜레마의 한복판에서 인간의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 바로 네거티브 케이퍼빌리티(Negative Capability 부정적 수용 능력)입니다.


불확실성과 의심의 모호한 상태를 잠시 유지하며 의도적으로 여지를 남겨두는 힘입니다. 이 멈춤의 시간 동안 인간은 비로소 사유의 삼각축을 가동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정체성), 우리는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가(욕망), 이 선택의 무게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윤리).


AI 시대에 인간이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자리는, 완벽한 계산 능력이 아니라 불완전한 상태 속에서도 끝내 책임을 지겠다고 선언하는 그 용기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결코 외주 줄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나는 어떻게 구축해야 할까요? 홍진기 교수가 제시하는 첫 번째 무기는 몸으로 축적한 경험입니다. 그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일같이 옥수수밭에 나가 관찰을 반복하며 기존의 유전학설을 뒤집고 노벨 생리의학상을 거머쥔 바버라 매클린톡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한 모델은 옥수수 유전자에 대한 수만 장의 보고서를 순식간에 작성할 수 있지만,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흙먼지를 마시며 직접 식물을 관찰할 때 마주하는 그 미묘한 현장의 예외성과 이질적 감각은 결코 학습할 수 없습니다.


질문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태어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아는 상태에서도 태어나지 않습니다. 오직 내가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의 위태로운 경계선에서만 위대한 질문이 잉태됩니다.





좋은 질문은 데이터의 바다를 부지런히 유영하며 직접 한계에 부딪혀본 인간만이 던질 수 있습니다. AI가 정답을 내놓는 속도가 빛보다 빨라질수록,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를 규정하는 인간의 시야와 경험의 깊이는 대체 불가능한 자산이 될 겁니다.


저자는 우리가 효율성이라는 미명 하에 잃어버리고 있는 진짜 소중한 가치를 짚어줍니다. "우리는 AI에게 번거로운 ‘일’을 맡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내 생각이 자라나야 할 가장 고통스럽고도 귀중한 구간을 조금씩 밖으로 넘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료를 찾는 수고, 상충하는 정보를 비교하는 지루함, 숫자를 직접 계산하며 느껴보는 불편함, 문장을 수차례 고치며 논리를 다듬는 고독한 시간. 겉으로 보면 비효율적이고 버려지는 시간 같지만 인간을 자라게 하는 거의 모든 것은 대개 이런 비효율 속에서 만들어집니다."라고요.


매끄럽고 완벽하지만 영혼이 없는 AI의 문장 뒤에 숨어 편안하게 '똑똑한 무능함'을 즐길 것인가, 아니면 조금은 투박하고 더딜지라도 내 손으로 직접 자료를 의심하고 검증하며 나만의 단단한 사고 회로를 구축할 것인가.


내가 내놓은 결과물에 자신의 이름을 떳떳하게 붙이고 책임질 수 있는가를 묻는 『사고외주』.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그저 타인의 논리를 배달하는 수행자에 불과합니다.


생각을 맡기는 습관이 얼마나 위험한지 일깨워줍니다. 경험하고, 질문하고, 논리를 세우며, 자신의 이름으로 책임지는 능력. 그것이 앞으로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 경쟁력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빠른 결과에 익숙해진 시대일수록 생각하는 과정의 가치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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