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의 세계 - 보이지 않는 숨, 질병, 그리고 생명의 역사
칼 짐머 지음, 이상훈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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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매일 아침 지하철에 몸을 싣고, 밀폐된 사무실에서 모니터를 마주하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문을 닫아걸 때까지, 우리는 단 한순간도 공기라는 존재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를 뒤흔든 팬데믹을 지나오며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공유하는 그 투명한 공간이 실은 거대한 연결망이자, 누군가의 숨과 바이러스가 교차하는 가장 치열한 전장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심층 보도로 퓰리처상까지 거머쥔 미국을 대표하는 과학 저술가이자 예일대학교 분자 생물 물리학 및 생화학 겸임 교수인 칼 짐머(Carl Zimmer)는 『공기의 세계』(원제 Air-Borne)를 통해 이 무감각한 일상에 짜릿한 균열을 냅니다.


칼 짐머는 대기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세계를 미스터리 추리 소설처럼 추적해 나갑니다. 마음껏 숨 쉬어도 정말 안전한가? 이 질문은 단순히 질병에 대한 공포를 자극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환경과 사회적 책임을 다시 돌아보게 만듭니다.





2023년 5월 6일 밤, 한 공연장의 무대 위로 연주자들이 걸어 나옵니다. 바이올린과 첼로, 그랜드피아노 앞에 앉은 연주자들 뒤로 턱시도와 검은 드레스를 입은 합창단 단원 수십 명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무대 위에 있는 90명 중 마스크를 쓴 사람은 단 4명뿐이었고,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은 170명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지난 몇 년간 수없이 마주했던 혹은 팬데믹 이전에는 너무나 당연했던 평범한 공연의 한 장면입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음악의 공간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전장으로 돌변합니다. 칼 짐머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스캐짓 밸리 합창단에서 벌어진 집단 감염 사건을 들려줍니다.


당시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한 방역 당국은 코로나19는 공기로 전파되지 않는다며, 1미터 이상의 거리두기와 손 씻기만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 역시 기침이나 재채기로 배출되는 비말은 중력의 법칙에 따라 금방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라 믿었고, 열심히 손을 씻고 장바구니를 소독용 물티슈로 닦아내기에 바빴습니다.


하지만 노래를 부르고 숨을 나누는 그 밀폐된 공간에서 바이러스는 보란 듯이 공기를 타고 번져나갔습니다. 저자는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현대 의학이 오랫동안 마주하기를 외면했던 치명적인 맹점, 공기 전파의 진실을 환기합니다.


공기는 정말로 깨끗하고 비어 있는 공간일까요? 칼 짐머는 19세기 과학의 최전선으로 안내하며 공기 속 미생물을 밝혀내기 위한 거대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 중심에는 루이 파스퇴르가 있었습니다.


파스퇴르는 공기 속 세균을 눈으로 보여주려 했고, 이후 수많은 연구자들이 공기 전파의 증거를 찾아 나섰습니다. 하지만 과학은 언제나 증거가 많다고 해서 곧바로 방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기존 이론과 제도, 사회적 분위기가 함께 움직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현대 과학이 마주한 대기의 진실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2000년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의 실험은 공기가 가진 생태계로서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현대식 에어로스코프를 이용해 공기 140만 리터를 통과시켰고, 에어로스코프에 갇힌 세포에서 DNA를 추출하자, 300개 이상의 서로 다른 유전자 서열이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들이마시는 한 모금의 공기가 실은 수백 종의 세균과 바이러스가 춤추는 거대한 동물원이라는 비유가 와닿았습니다. 대기는 생명체가 단절된 진공이 아니라, 끊임없이 순환하고 소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 즉 에어로바이옴(Aerobiome)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토록 명백한 공기 속 생태계와 감염의 가능성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의학사에서 지워지고 외면당했을까요? 『공기의 세계』는 과학이 언제나 합리적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을 폭로합니다. 세균설이 확립된 이후 의학계는 철저하게 물, 음식, 손 접촉, 그리고 눈에 보이는 굵은 비말에만 집중했습니다.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는 미세한 비말핵을 통한 전파 가능성은 주류 학계의 권위 아래 묵살되었습니다.


공기 전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평생을 바쳤으나 외면당했던 윌리엄 파스 웰스 같은 선구자들의 잔혹사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주류 전염병학자들이 구축한 견고한 상식의 성벽은 새로운 증거들을 주변부로 밀어냈습니다. 게다가 공중생물학의 순수한 연구 성과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생물무기 연구 재료로 전락하기도 했습니다.


인류를 살릴 수도 있었던 공기 전파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주류 의학계에서는 철저히 지워진 반면, 군사 기지 내부에서는 가장 치명적인 무기를 만들기 위해 비밀리에 축적되고 있었으니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향한 집요한 추적을 멈추지 않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리처드 라일리 같은 학자들은 학계의 냉대 속에서도 공기 전파의 감염 경로를 입증하기 위해 실험을 이어갔습니다. 스스로 방독면을 쓰고 밀폐된 방에 결핵균을 채우는 이 눈물겨운 실험은 공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병원체를 품고 있을 수 있는지를 증명해 냈습니다.


그러나 제도적 권위와 관성은 무서웠습니다. 명확한 증거들이 축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 뒤 찾아온 새로운 팬데믹 국면에서조차 인류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습니다.


칼 짐머는 공기 속 미생물 생태계가 우리의 생존과 면역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진실을 꺼내놓습니다. 공기로 전파되는 병원체가 아무리 치명적이라고 해도, 이들 병원체는 전체 에어로바이옴의 다양성을 구성하는 아주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수천 킬로미터 밖의 밀밭에서 날아온 포자와 성층권을 돌고 온 세균이 나의 기도를 숨 가쁘게 드나든다는 칼 짐머의 묘사는 과학적 팩트입니다. 우리는 숨을 쉴 때마다 지구 반대편의 바다와 하늘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셈입니다.


이 에어로바이옴과의 공존은 우리의 면역 시스템을 훈련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과도하게 밀폐되고 소독된 실내 환경에서 자란 현대의 아이들이 오히려 알레르기와 천식에 시달리는 이유 역시 이 대기 생태계와의 단절에서 생깁니다.


공기를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가 지구상의 모든 존재와 얼마나 끈끈하게 얽혀 있는지를 깨닫는 일입니다. 우리가 내뱉은 숨은 거대한 투명한 바다가 되어 다시 타인의 숨으로 스며듭니다.





『공기의 세계』가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종착지는 정치 사회적 연대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다음 팬데믹을 막고 더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공기를 개인의 위생 문제가 아닌 공공의 인프라로 취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감염을 막기 위해 손을 씻고 손소독제를 바르며 모든 책임을 개인의 조심성에 전가해 왔습니다. 그러나 공기 전파 질병 앞에서 개인의 노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매일 머무는 학교, 지하철, 사무실의 공기 흐름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건물의 환기 시스템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그리고 국가가 실내 공기질을 어떤 사회적 기준으로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을 『공기의 세계』에서 짚어줍니다.


깨끗한 물을 마시기 위해 상하수도 인프라를 구축했듯이, 이제는 안전하게 숨 쉴 권리를 위해 공공정책과 사회적 투자가 움직여야 할 때라고 합니다.


우리는 공기 없이 살 수 없지만, 정작 우리가 어떤 거대한 숨의 바다에 잠겨 있는지는 까맣게 잊고 살고 있습니다. 감염병을 다룬 책이면서 과학사, 환경서, 공공정책을 이야기하는 책 『공기의 세계』. 우리가 매 순간 들이마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세계의 무게를 실감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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