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
조이엘 지음 / 섬타임즈 / 2026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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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정보 과잉과 확증 편향이 교차하는 지식의 정글 속에서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교묘하게 가공된 가짜인지 분별하기가 날이 갈수록 난해해지고 있습니다. 삶의 표준과 가치관이 흔들리는 위태로운 이 시대에 읽을만한 책이 눈길을 끕니다.


전작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을 통해 일상적 소재를 비틀어 보는 비범한 시선으로 저를 매료시켰던 조이엘 작가는 후속작 『더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에서도 특유의 맛깔나는 말솜씨와 기발한 관점을 펼쳐 보입니다.


저자 조이엘은 서울대학교에서 철학과 종교학을 전공한 인문학 연구자입니다. 그의 진가는 가장 치열하고 날 선 욕망이 들끓는 대치동과 목동의 교육 현장에서 발휘되었습니다. 학습 심폐소생술 전문가라는 부캐가 붙을 정도로요.


2025년까지 제주 학생들과의 동행을 마친 뒤 다시 서울로 복귀한 그는 여전히 학생들 곁에 밀착하여 국어·영어·수학이라는 외피를 빌려 궁극적으로는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전수하고 있습니다.





『더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은 인간의 착각과 사회의 반복되는 오류를 들여다봅니다. 이 책의 진짜 매력은 팩트 나열이 아니라 팩트 뒤집기에 있습니다. 영아돌연사증후군, 로또 명당, 이민자와 범죄율까지 우리가 뉴스에서 스치듯 접한 통계들이 실은 얼마나 허술한 인과의 그물로 엮여 있는지를 짚어내는 시선이 예리합니다.


역사, 철학, 종교, 문학, 과학, 정치, 심리학을 넘나드는 100편의 짧은 글이 독립적으로도, 하나의 지적 지도로도 읽히는 구성이라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어도 무리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이 가진 숨은 매력이자 신의 한 수 같은 디테일이 있습니다. 인문학 책은 엄숙한 표정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경건하게 읽으라고 강요하는 듯한 느낌을 주곤 하지요. 하지만 『더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은 페이지 하단에 언제든 맘에 드는 페이지를 툭, 접어둘 수 있도록 점선을 그려놓았습니다.


이 작은 선 하나가 주는 심리적 효과는 생각보다 엄청납니다. 이 책은 내 책이니까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유쾌한 허락을 받는 기분이 들게 합니다. 100편의 짧고 강렬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보니, 읽다가 "와, 이 통찰은 나중에 꼭 다시 꺼내보고 싶다"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자연스럽게 점선에 시선이 머물면 자석에 이끌리듯 무심코 접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저자는 "사소한 것들이 있다. 작아서 눈에 띄지 않는 것, 시간에 풍화되어 사라진 것,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 슬그머니 인과관계가 뒤집힌 것. 그것들이 진실을 낯설게 만들고 현실을 왜곡해서 악이 더 악해지도록 밑밥을 깐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갔던 일상의 작은 파편들 속에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꿰뚫는 마스터키가 숨겨져 있다는 겁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가장 큰 취약점 중 하나는 언론과 미디어가 쏟아내는 수많은 데이터와 통계치를 아무런 비판적 필터링 없이 그대로 믿어버린다는 사실입니다. 조이엘 작가는 인간이 얼마나 쉽게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착각하고, 생존자 편향 오류에 빠져드는지 짚어줍니다.


인간의 뇌는 본능적으로 복잡한 분석 과정을 생략하고 직관적이며 편리한 연결 고리를 만들고 싶어 합니다. 이런 뇌의 게으름이 사회적 통념으로 굳어질 때, 공동체가 얼마나 쉽게 선동당하고 엉뚱한 대상을 맹신하게 되는지 경고합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극우 정치인들은 이민자 때문에 미국 범죄율이 치솟는다며 대중의 공포심을 자극하고 이를 정치적 자양분으로 삼아왔습니다. 젊은 남성 비율이 높고 저학력층이 많다는 지표만 보면 얼핏 그들의 주장이 타당해 보이지만, 실제 경찰청과 공인된 기관의 데이터를 교차 검증해 보면 이민자들의 범죄율은 자국민 범죄율보다 훨씬 낮게 나타납니다.


그럼에도 대중은 사소한 착각과 선입견에 눈이 멀어 시스템의 진짜 문제점을 보지 못합니다. 저자는 이처럼 확증 편향에 갇혀 진실을 왜곡하는 현대 사회의 단면을 고발하며, 인문학의 진짜 역할은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거짓을 분별해 내는 거름망을 만드는 일임을 역설합니다.





정답이 없고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를 살아갈 때 우리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악의 세력이나 비밀스러운 조직이 세상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내곤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음모론이 탄생하는 심리적 배경입니다.


우리가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 이야기를 통해 음모론이 얼마나 치밀하고 정교한 인과관계의 그물망을 짜놓는지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대중은 여전히 유튜브와 커뮤니티 공간에서 음모론에 열광할까요?


세상에서 벌어지는 복잡다단하고 비극적인 사건들이 단순한 우연이나 시스템의 오작동 때문에 일어났다고 인정하는 것보다, 차라리 악랄하지만 치밀한 천재적인 흑막이 계획적으로 저지른 일이라고 믿는 것이 인간의 뇌에게는 심리적으로 훨씬 덜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깨알 같은 주석과 역사적 맥락을 바탕으로 음모론의 허구성을 파헤치며 가짜 뉴스에 흔들리지 않는 지적 면역력을 심어줍니다.


전쟁과 비극이라는 거대한 참사 앞에서 권력자들이 보여주는 공감 능력의 상실을 싸가지라는 속된 단어를 통해 해부하기도 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을 쥔 자들이 피지배층의 생명을 얼마나 도구적으로 대했는지 그 추악한 민낯을 폭로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수많은 참사와 사회적 비극(세월호, 이태원 등) 앞에서 국가와 공동체가 최소한 지켜야 할 양심과 도덕적 임계점이 어디인지를 엄숙하게 묻고 있습니다.


후반부에서는 이슬람과 유대교의 돼지고기 금기 문화, 그리고 제주도의 흑돼지 생태학으로 이어지는 서사가 흥미진진합니다. 유대교의 야훼와 이슬람의 알라가 왜 그토록 완강하게 돼지고기 섭취를 금지했는지 생태학적으로 분석하고, 제주의 돗통시(돼지 화장실)에 대한 현대사적 반전까지 위트 있게 덧붙입니다.


우리는 커다란 사건에는 쉽게 반응하지만, 그 사건을 만들었던 작은 균열은 바라보지 않습니다. 혐오가 언어에서 시작되고, 편견이 농담의 형태로 퍼지며, 잘못된 믿음이 반복을 통해 상식처럼 자리 잡는 과정은 언제나 조용합니다.


사소하고 작은 현상 뒤에 숨겨진 거대한 역사적 맥락과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영리한 혜안, 그리고 나를 지키고 타인을 위로할 수 있는 단단한 인간미야말로 우리가 갖춰야 할 진짜 무기임을 일깨워 주는 『더 사소한 것들의 인문학』. 맛깔나는 강연을 듣듯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지적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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