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보는 세계의 역사 - 인류의 기원부터 현대까지, 600가지 지도로 살아나는 생생한 역사의 현장
크리스티앙 그라탈루 지음, 정미애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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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역사를 시간의 흐름으로 알고 있습니다. 몇 년도에 무슨 사건이 터졌고, 누가 왕위에 올랐는지 같은 연대기적 나열 말입니다. 하지만 모든 역사는 특정한 장소에서 벌어졌습니다.


누군가 강을 건너기로 결심했거나, 산맥 너머의 비옥한 토지를 탐냈을 때 비로소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갔습니다. 역사의 본질은 시간(When)보다는 공간(Where)에 더 가깝습니다.


프랑스 지리학계의 거장이자 가장 역사적인 지리학자로 불리는 크리스티앙 그라탈루 교수가 프랑스 최고의 역사 전문지 <역사(L’Histoire)>의 방대한 아카이브를 털어 완성한 역작 『지도로 보는 세계의 역사』.


텍스트에 갇혀 있던 박제된 과거를 화려하고 정밀한 600여 개의 지도로 눈앞에 펼쳐놓습니다. 시각적 쾌감이 압도적입니다. 복잡한 사건을 한눈에 정리해주는 최고의 시각 자료입니다.





시작은 기원전 3000년보다 훨씬 이전, 우리 종의 태동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투마이에서 호모 사피엔스까지의 여정을 단순히 진화론적 관점이 아니라 공간적 확산의 관점에서 보여줍니다. 인류의 요람이라 불리는 동아프리카 대지구대의 지형적 특성이 어떻게 우리 조상들을 이동하게 만들었는지, 그 지도상의 동선을 따라가봅니다.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중동, 유럽, 아시아로 퍼져 나가는 과정은 마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안개 걷기와 같습니다. 저자는 식물 재배와 가축 사육이 시작된 근동의 본거지를 조명하며, 정착 생활이 어떻게 인구 폭발과 문명의 탄생으로 이어졌는지 지리학적 메커니즘을 설명합니다.


인류가 지구 곳곳에 뿌리를 내린 후, 역사는 각기 다른 대륙에서 독립적으로 혹은 은밀한 네트워크를 통해 교류하며 발전합니다. 구대륙의 네트워크를 추적하는데,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실크로드와 종교의 전파입니다. 불교, 유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지도 위에서 어떻게 번져나갔는지를 보면, 종교는 교역로라는 경제적 혈관을 타고 흐른 문화적 바이러스였음을 알게 됩니다.


14세기 전 세계를 휩쓴 흑사병 지도 파트에서는 텍스트로만 읽던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다"라는 문장이, 중앙아시아에서 시작해 지중해 연안을 따라 붉게 물들어가는 지도로 변환될 때 실체화됩니다. 당시 구대륙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연결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중세의 심장부로 들어갑니다. 제1차 십자군 전쟁(1095~1204년)을 다룬 지도는 당시의 복잡한 국제 정세를 한눈에 보여줍니다. 이 지도는 단순히 군대의 이동 경로만 표시하지 않습니다. 비잔티움 제국의 위기와 이슬람 세력의 분열, 그리고 그 틈을 파고든 서유럽 기사들의 야망이 교차하는 지점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점령이라는 결과값 뒤에 숨겨진 수많은 전투와 보급로의 고충이 지도 위의 화살표 하나하나에 녹아있습니다. 뒤이어 나오는 오스만 제국의 부상과 비잔티움의 몰락 과정은 지중해의 주도권이 어떻게 동에서 서로, 다시 서에서 동으로 이동했는지를 보여주는 드라마입니다.





역사는 바다로 향합니다. 대항해 시대의 서막입니다. 15세기 설탕 무역로 지도를 보며 우리가 매일 먹는 설탕이 사실은 거대한 노예 노동 시스템과 세계화의 산물이었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뉴기니에서 인도를 거쳐 중동, 그리고 마침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어지는 설탕의 여정은 제국주의와 식민 지배의 확장 경로와 일치합니다. "역사를 쓴다는 것은, 곧 보여주는 일이다"라는 서문의 문장처럼, 이 지도는 달콤함 이면에 숨겨진 인류의 고통과 갈등을 시각적으로 증명해냅니다.


현대로 넘어옵니다. 전쟁과 혁명의 시기입니다. 1871년 파리 코뮌의 시가전 지도는 골목 하나하나에서 벌어진 시민들의 분노와 정부군의 진격로를 초 단위로 기록하듯 생생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역사를 낯선 관점에서 보게 하는 대목은 한국 전쟁입니다.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정전 협정까지, 전선이 남북으로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리는 과정을 4개의 시기별 지도로 요약합니다. 단순한 국경선의 이동이 아니라, 냉전이라는 거대한 빙하가 충돌하며 빚어낸 거대한 균열을 지리학자의 시선으로 포착해냅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역사도 펼쳐집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지도는 압권입니다. 전 세계가 붉은 점으로 뒤덮인 팬데믹 지도는 우리가 얼마나 촘촘하게 연결된 위험 사회에 살고 있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아울러 마지막 장을 장식하는 기후 변화에 따른 이재민 발생 지도, 남극과 북극의 영유권 분쟁은 역사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해결해야 할 생존의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지도로 보는 세계의 역사』의 방대한 아틀라스는 지도를 통해 공간 서사를 구축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뉴스를 볼 때 혹은 기후 변화로 인한 식량 위기 소식을 접할 때, 머릿속에서는 이 책이 보여준 지리적 맥락이 입체적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역사는 외워야 할 연도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굴곡과 인간의 선택이 빚어낸 거대한 무대임을 보여줍니다. 공간 위의 세계사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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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크래프트 최강 플레이 대백과 - 초보부터 고수까지 살아남고 만들고 탐험하는
GOLDEN AXE 지음, 곽현아 옮김 / 폴더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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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게임이라는 단어로 마인크래프트를 정의하기엔, 이 세계가 가진 매력이 만만찮습니다. 0과 1로 이루어진 가상 공간에서 누군가는 생존의 처절함을 배우고, 누군가는 건축가로서 자아를 실현하며, 또 누군가는 복잡한 레드스톤 회로를 통해 공학적 논리를 완성합니다. 전 세계 게임 역사상 최다 판매량을 기록한 이 디지털 레고는 하나의 문화 현상을 넘어, 세대와 세대를 잇는 언어가 되었습니다.


마인크래프트의 가장 큰 매력인 자유도는 입문자들에겐 장벽이 되기도 합니다. 아무런 튜토리얼 없이 던져진 황량한 들판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초보자, 매년 쏟아지는 방대한 업데이트 속에서 길을 잃은 마크 유저들을 위해 『마인크래프트 최강 플레이 대백과』는 최신 트렌드와 시스템을 분석했습니다.


2025년 6월 업데이트된 체이스 더 스카이의 핵심 콘텐츠를 짚어줍니다. 새로운 지형과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최신 요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마인크래프트의 시작은 적응입니다. 자바 에디션과 베드락 에디션(모바일, 콘솔 등) 사이에서 갈등하는 유저들에게 기준점을 짚어줍니다. 기기별 조작 방식의 미묘한 차이를 아이콘으로 구분해 친절합니다. 각 아이템 옆에 표시된 지원 기종 아이콘은 '내 기기에서도 이게 될까?'라는 의구심 없이 직관적입니다.


서바이벌 기초 지식은 생존의 철학을 다룹니다. 단순히 나무를 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 나무 블록이 문명의 기초가 되는지, 허기 시스템이 플레이어의 의사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접근합니다. 특히 밤마다 찾아오는 몬스터들의 스폰 메커니즘을 설명하며 '횃불'을 활용한 조광 작업의 중요성을 짚어줍니다. 초보 유저들이 흔히 겪는 혼란을 막아주는 전략들이 나옵니다.


생존이 안정화되었다면 이제는 확장할 차례입니다. 마인크래프트라는 거대한 서사의 정점인 모험을 다룹니다. 생물 군계(바이옴)별 특징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 지형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의 희귀도와 위험 요소를 짚어줍니다.


전투 기술과 제조 레시피까지 아우릅니다. 이계 '네더'와 최종 목적지 '디 엔드'에 대한 공략도 흥미진진합니다. 용암 바다를 건너는 스트라이더 활용법이나 겉날개를 이용한 공중 활주 기술은 중급 유저들이 고수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반드시 마스터해야 합니다. 이 과정들을 실제 게임 화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스크린샷으로 설명하고 있어 쉽게 이해됩니다.





마인크래프트는 파괴하는 게임이 아니라 쌓아 올리는 게임입니다. 우리 아이도 마크의 건축에 푹 빠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책에서는 미적 감각과 기능성을 동시에 잡는 노하우를 공개합니다.


단순히 집을 짓는 법을 넘어, 울타리를 활용한 테이블 다리 만들기, 아이템 액자를 이용한 대형 TV 연출 등 인테리어 커스터마이징의 디테일을 전수합니다. 무한 수원을 만드는 기하학적 원리부터 최신 업데이트로 추가된 제작까지, 동물과 식물을 활용한 생태계 구축 전략도 총망라합니다.


마지막으로 마인크래프트 레시피 모음은 도구, 갑옷, 장치 그리고 복잡한 양조 물약까지 총 318종의 조합법을 체계적으로 분류했습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다가 조합법이 기억나지 않을 때, 인터넷 검색창을 뒤지는 수고로움을 덜어줍니다.


마인크래프트라는 무한한 캔버스 위에 자신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돕는 『마인크래프트 최강 플레이 대백과』. 훨씬 더 창의적이고 강력한 서바이벌을 맛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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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곤충책 - 가장 쉬운 곤충 안내서, 최신 개정판
한영식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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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대 데본기부터 이 땅을 지켜온 진정한 원주민, 100만 종이 넘는 압도적 숫자로 생태계를 지탱하는 곤충. 지구의 진짜 주인일지도 모릅니다. 그 거대한 세계로 통하는 가장 친절한 문, 한영식 저자의 『쉬운 곤충책』으로 작은 거인들과 친구과 되어보세요.


한영식 저자는 곤충 연구가라는 딱딱한 직함보다 곤충의 대변인이라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리는 분입니다. 곤충생태교육연구소 [한숲]의 대표로서 수많은 베스트셀러 도감을 집필하며 일반인들이 곤충을 징그러운 존재가 아닌 궁금한 이웃으로 느끼게 만드는 데 평생을 바친 분입니다.


『쉬운 곤충책』은 곤충이라는 생명체가 가진 공학적 경이로움을 먼저 설명합니다. 머리, 가슴, 배로 나뉘는 삼단 구조는 수억 년의 진화가 빚어낸 최적화된 생존 시스템입니다. 겹눈의 화려한 시각 정보 처리 능력, 더듬이가 감지하는 화학적 신호들, 그리고 가슴에 집중된 강력한 근육이 만들어내는 비행 능력까지. 알면 알수록 곤충이 결코 하등한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쉬운 곤충책』은 계절별로 곤충을 배열합니다. 기존 도감이 분류학 중심이었다면, 이 책은 시간의 흐름을 기준으로 766종의 곤충을 배치합니다. 각 계절 안에서는 딱정벌레목 → 나비목 → 벌목 → 파리목 → 노린재목 → 메뚜기목 → 잠자리목 → 다양한 곤충 순으로 보여줍니다.


봄 파트는 생동감으로 가득합니다.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껍질을 벗으며 나오는 곤충들의 모습은 마치 드라마틱한 부활의 현장을 보는 듯합니다.


봄의 주인공은 단연 나비목입니다. 화사한 꽃들 사이를 누비는 나비의 우아한 날갯짓 이면에 숨겨진 치열한 먹이활동과 번식 전략을 읽다 보면, 우리가 보던 풍경이 한층 입체적으로 다가옵니다.


여름은 명실상부 곤충의 계절입니다. 2,000여 컷에 달하는 고화질 사진의 위력이 대단합니다. 딱정벌레목의 단단한 갑옷광택이나 나방 날개의 기하학적 무늬는 그 자체로 예술 작품입니다. 특히 딱정벌레와 사슴벌레를 찾는 초보 채집가들에게도 유용합니다. 구체적인 서식지와 먹이, 그리고 이름의 유래까지 곁들여져 곤충의 퍼스널리티를 이해하게 만듭니다.


가을 곤충들이 맞이하는 생의 끝자락에 대해서도 배우는 시간입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알을 남기고 사라지는 곤충들의 한살이는 생명의 유한성과 연속성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책 하단에 실린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읽는 재미도 좋습니다.


겨울엔 곤충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나무껍질 밑, 차가운 흙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동면하는 곤충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관찰의 영역을 보이는 것에서 숨겨진 것으로 확장시킵니다. 인내의 시간을 견디는 생명체들의 고요한 투쟁을 읽다 보면,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게 됩니다.





용어 해설과 학명 찾아보기를 통해 전문 도감으로서의 기능성까지 갖췄습니다. 관찰의 문턱을 낮추는 『쉬운 곤충책』. 관찰을 돕기 위한 시각적 데이터로 기능하는 사진 자료도 유용합니다. 암컷과 수컷의 차이, 애벌레에서 성충까지의 변화, 짝짓기 장면 등은 텍스트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보완합니다.


곤충은 작지만,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 않습니다. 꽃가루를 옮기고, 유기물을 분해하며, 다른 생물의 먹이가 됩니다. 생태계의 순환을 유지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길가의 작은 곤충 하나도 지나치기 어려워집니다. 이름을 알게 되면 존재가 보이고, 존재를 이해하면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자연을 읽는 눈을 기르는 안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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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나는 텃밭에 간다 - 판다 할부지 강철원의 다정한 식물 수업
강철원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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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돌봄의 최전선에서 평생을 보낸 강철원 주키퍼 『매일 아침 나는 텃밭에간다』. 자이언트판다 아이바오, 러바오를 맡으며 판다 아빠로 불리더니, 국내 최초 자연 번식에 성공한 푸바오 탄생으로 할부지가 되었고, 2024년에는 영화 〈안녕, 할부지〉에도 등장했습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흙 묻은 장화를 신고 나타났습니다. 텃밭 농부로.


저자 강철원은 전북 순창의 깊은 산골에서 태어나 동식물과 형제처럼 자랐습니다. 스무 살에 에버랜드에 입사해 평생을 야생동물과 호흡해 온 그는, 동물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동물학을 공부했고, 그들이 머무는 환경을 완벽하게 조성해주고 싶어 조경학까지 섭렵한 돌봄의 장인입니다.


이제 판다 월드의 담벼락을 넘어 산 아래 작은 땅, 남천바오 할부지 텃밭에서 우리에게 말을 건넵니다. 농사 이야기처럼 시작되지만, 읽다 보면 결국 삶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동물과 식물, 전혀 다른 존재처럼 보이지만 그의 손에서는 같은 돌봄의 대상으로 이어집니다.


『매일 아침 나는 텃밭에 간다』는 어느 중년 남자의 전원 로망 일기가 아닙니다. 30년 넘게 야생 동물을 돌봐 온 주키퍼가 식물을 통해 삶의 원리를 재발견하는 과정, 더 정확히는 돌본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끝없이 자문하는 사유의 기록입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 옥수수 씨앗은 얼마나 깊이 심어야 해요?", "한 구덩이에 몇 개씩 심으면 돼요?"를 물어보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동물원에서 판다의 출산까지 관리한 베테랑 주키퍼가 옥수수 심는 법을 어머니께 여쭤야 하는 초보 농부가 되었습니다.


이제 농사 노하우를 자세히 알려 주는 어머니도 계시지 않고, 옥수숫대를 갖고 놀던 푸바오도 곁에 없지만 어머니와 푸바오를 향한 진한 그리움은 옥수수 한 알 한 알에 빼곡히 담겨 있음을 들려줍니다.





옥수수는 떠난 이들을 이어 주는 매개이자, 상실을 감당하는 방식이 되었습니다. 그리움이 씨앗이 되고, 씨앗이 자라 수확물이 되고, 그 수확물이 다시 그리움을 영속시킵니다. 텃밭의 작물 하나하나가 바오패밀리와의 기억으로 연결되는 방식이 아름답습니다. 동물원과 텃밭, 돌봄과 그리움이 한 페이지 안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합니다.


귀엽고 앙증맞은 완두콩을 보며 '이뻐, 이뻐, 이뻐!' 하고 감탄사를 쏟아냈다고 합니다. 판다에게 쏟던 그 애정이 완두콩에게도 흘러넘칩니다. 씨앗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심었다가 처치 곤란이 되었을 땐 "내가 또 욕심을 부려 '적당히'라는 기준을 넘기고 말았다. 도대체 어느 정도여야 '적당히'라는 선을 맞출 수 있을까?"라고 고백합니다.


'적당히'는 텃밭의 교훈이자 삶 전체의 숙제입니다. 저자는 씨앗의 양을 조금씩 줄여 가며 그 선을 몸으로 깨달았다고 합니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체득하는 것, 그것이 텃밭이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수업이겠지요.


텃밭에서 수확한 재료로 함께 요리하고, 식탁을 채우는 과정은 저자가 강조하는 돌봄의 확장을 가장 일상적인 형태로 보여 줍니다. 생명을 기르고, 수확하고, 나누어 먹는 행위는 텃밭을 개인의 취미 공간에서 가족 공동체의 생활 공간으로 만듭니다. 당근을 키우며 바오패밀리를 떠올리고, 고수를 심으며 후배 가족을 생각하고, 딸기를 따며 아내를 향한 마음을 담는 저자의 텃밭은 관계 지향적 공간입니다.





나비, 새, 두꺼비, 개구리, 고라니, 멧돼지까지 텃밭을 찾는 야생 생명들과의 만남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30년 주키퍼 경험을 가진 관찰자의 시선으로 자연을 읽어냅니다. 방풍과 미나리에 산호랑나비 애벌레가 알을 낳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농약을 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작물의 수확량보다 생태적 공존을 선택합니다.


누군가에게 하찮아 보이는 일이, 그 생명을 살리는 가장 본질적인 행위라는 것. 이 관점은 식물에도 적용됩니다. 잡초를 뽑고, 흙을 갈고, 거름을 주는 반복적인 노동이 텃밭을 살아 있게 합니다.


사계절의 흐름 속에서 장마의 두꺼비, 가을걷이의 풍요, 겨울 견딤, 봄의 연둣빛 생기를 기록하는 문장들은 산문으로 쓴 자연 관찰 일지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투영합니다. 겨울을 견디는 식물처럼 삶의 버거운 시간을 버텨 내는 일, 봄의 새싹처럼 다시 시작하는 일이 텃밭에서 매년 반복되는 것을 목격하며 흙의 시간으로 자신을 재교정합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내가 키우는 텃밭 식물들이 오히려 나를 키우는 느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돌본다는 것의 의미, 그리고 자연의 리듬에 몸을 맞추는 삶이 왜 건강한지를 에피소드와 함께 체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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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장례식에 초대받았다
헬렌 듀런트 지음, 황성연 옮김 / 서사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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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영국에서만 누적 15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 작가, 헬렌 듀런트의 국내 초역작 『나는 나의 장례식에 초대받았다 The Funeral』. 10년간 영국 범죄 소설의 최전선을 지켜온 작가는 사람이 벼랑 끝에 몰릴 때 비로소 드러나는 심리의 균열을 포착하는 데 천재적인 감각을 지닌 작가로 평가받습니다.


이 소설은 그 균열 사이로 비어져 나오는 인간의 추악한 욕망과 자본이 잠식한 인간성을 파헤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날아온 장례식 초대장. 그곳에서 치러지는 장례식의 주인공이 바로 나 자신이라면 어떨까요? 이게 무슨 신종 보이스피싱인가 싶다가도, 등줄기에 흐르는 식은땀은 단순한 당혹감을 넘어 원초적인 공포로 변할 겁니다.


주인공 앨리스는 부유함과는 거리가 먼, 회색빛 도시의 그늘에서 숨죽여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어느 날 도착한 보낸 이 없는 이메일 한 통. 그것은 다름 아닌 장례식 초대장이었습니다.


앨리스 앤더슨은 과거 사채업자의 추적을 피하려고 이름을 도나 슬레이드로 바꾸고 밑바닥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작가는 여기서 첫 번째 미끼를 던집니다. 잊힌 존재인 그녀에게 누가, 왜 연락을 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앨리스는 의심하면서도 호기심에 이끌려 장례식장으로 향합니다. 압권은 고인의 이름을 확인하기 위해 무덤가로 다가가는 순간입니다.


"이 장례식의 주인공은 바로 나다. 새하얀 관 위, 황금색 명패에 큰 글씨로 글자가 새겨져 있다. ‘앨리스 앤더슨’ 바로 나다." - p11





내가 살아있는데, 저 관 속에 누워있는 앨리스 앤더슨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요? 나의 이름을 훔쳐 삶을 누리다 죽은 이 여자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나의 정체성이 타인에 의해 소비되고 폐기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정면으로 겨냥합니다.


앨리스는 도망치는 대신, 진실의 아가리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갑니다. 고인이 된 가짜 앨리스 앤더슨은 맥스의 비서로 일하며 화려한 삶을 살다 의문사한 인물이었습니다. 저택의 주인 맥스와 아내 타라, 부부의 딸 한나까지 저마다 위태로운 비밀을 갖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심리는 공포를 넘어선 생존 본능으로 치닫습니다. 작가는 인간성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갉아먹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앞서 던져졌던 복선들이 꿈틀거리며 맞춰지기 시작합니다. 언뜻 보면 툭툭 끊어지는 대화나 무미건조한 묘사 때문에 성기어 보일 수 있습니다. 이 정도 수수께끼는 풀 수 있다고 자만하며 느슨하게 헤엄치게 둡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그물을 확 조여버립니다.


『나는 나의 장례식에 초대받았다』는 읽는 동안보다, 읽고 난 뒤가 더 오래 남는 소설입니다. 소름 끼치는 반전의 반전이 거듭되기도 하거니와 인간의 추악함이 물리적으로 형상화된 불쾌한 공간인 돼지우리에 대한 심리적 공포가 생각보다 강했습니다. 자본이 배설한 추악한 욕망의 집결지입니다.


헬렌 듀런트 작가 특유의 벼랑 끝 심리 묘사가 매력적인 『나는 나의 장례식에 초대받았다』. 앨리스는 진실을 밝히고 자신의 이름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 비극적인 연극의 일부가 되어 안온한 죽음의 뒤편으로 사라질까요. 강렬한 심리 스릴러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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