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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는 서점을 만들기 위해 2000일 동안 내가 한 일 - 117년 노포 서점의 유튜브 & 브랜딩 생존기
하야시 유타카 지음, 유서윤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6년 5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활자 사냥꾼들이 빚어낸 무적의 미디어 생존기 『사랑받는 서점을 만들기 위해 2000일 동안 내가 한 일』. 출판 시장의 장기 불황은 한국과 일본을 가리지 않는 공통의 재앙입니다. 종이책의 종말이라는 거대한 빙하기 속에서, 117년 노포가 온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물며 강력한 팬덤을 구축한 실전 조직 혁신 공식을 통해 돌파구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날것의 진실을 포착하던 저널리즘적 감각과 대중의 시선을 붙들어 매는 연출력을 두루 갖춘 하야시 유타카. 117년 역사의 노포 서점 유린도의 공식 유튜브 채널 《유린도밖에 모르는 세계(有隣堂しか知らない世界)》의 총괄 프로듀서 겸 디렉터를 맡게 됩니다.
그에게는 방송 현장에서 체득한 하나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재미없는 영상은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기업이 만드는 콘텐츠가 재미없는 이유는 대부분 스스로를 검열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렇게 저자는 마쓰노부 사장에게 "제게 유튜브를 맡겨주시겠습니까?"라며 2000일간의 위대한 여정에 닻을 올립니다.
새로운 채널을 기획할 때 흔히 저지르는 오류는 세상에 없던 완전히 독창적인 무언가를 창조해 내려는 강박입니다. 하지만 하야시 유타카의 접근법은 달랐습니다. 대중을 사로잡는 기획의 본질이 무에서의 창조가 아닌, 이미 검증된 맥락들의 정교한 계승과 변주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오래된 아이디어를 조합했습니다. 그는 캐릭터를 설계할 때 세 명의 선행 사례를 가져왔습니다. 독설과 솔직함으로 대중의 신뢰를 얻은 방송인 마쓰코 디럭스, 캐릭터의 독자적 세계관으로 팬덤을 구축한 시라이 빈센트, 편집의 리듬감으로 영상에 중독성을 부여하는 DJ 사장. 이 세 레퍼런스를 유린도라는 맥락 위에 재조합한 결과물이 바로 독설가 부엉이 캐릭터 R.B. 붓코로입니다.
2020년 6월 30일, 마침내 《유린도밖에 모르는 세계》의 첫 화가 세상에 공개됩니다. 첫 번째 영상의 제목은 대담하게도 자사에서 판매하지 않는 상품을 다룬 〈킴와이프스의 세계〉였습니다.
기업의 상식을 뒤집은 이 역발상의 결과는 수치로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첫 화 공개 1시간 만에 1,437회 재생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기존 채널인 《서점원 쓴도쿠의 책꽂이》의 마지막 영상 재생 수가 일주일 동안 42회에 불과했던 것에 비해 무려 30배가 넘는 성공을 거두며 화려한 서막을 알렸습니다.

과거 방송국 시절 밑바닥부터 케이블을 감아대며 현장 감각을 익혔던 저자는 유튜브라는 뉴미디어 생태계에 입성해서도 장인정신에 가까운 편집 철학을 고수합니다. 자본과 품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장인 기질의 컷 편집을 단행했습니다. 시청자의 시선이 단 0.1초도 지루함에 머물지 않도록 화면의 호흡을 정교하게 제어했습니다.
얄팍한 잔기술이나 자극적인 썸네일 낚시로는 지속 가능한 구독자를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을 간파한 저자는 날것의 재미에 집중했습니다. 특히 콘텐츠의 생명력을 지키기 위해 저자가 도입한 가장 혁신적인 규칙은 사전 확인 금지였습니다.
붓코로가 자사 매장에서 "아마존이 더 싸다"라거나 "이 물건은 비싸서 안 팔린다"라는 폭탄 발언을 던져도 필터링 없이 내보낼 수 있는 독보적인 진정성을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진정성으로 무장한 채널은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마침내 마주한 실버버튼 개봉식에서조차 붓코로는 감동적인 눈물 대신 특유의 심드렁하고 발칙한 태도로 시청자들을 폭소케 했습니다.
이후 진행된 굿즈 출시 작전 회의에서도 유린도는 팬들이 일상에서 진심으로 소장하고 싶어 할 만한 완성도 높은 아이템들을 기획했습니다. 붓코로의 거침없는 매력은 인터넷 세상을 넘어 지상파 방송의 러브콜로 이어졌습니다. 채널은 이제 서점의 홍보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강력한 커뮤니티이자 거대한 팬덤의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유린도는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콘텐츠의 경계를 더욱 과감하게 허물기 시작합니다. 영상 속에서 보여준 날것의 현장감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실시간 감동으로 이어지도록 설계합니다. 문구 대결, 종이 지도의 세계 등 기발한 주제를 거치며 채널은 문학 평론가, 타 분야 전문가, 경쟁 업계의 실무자들까지 기꺼이 찾아오는 거대한 문화적 플랫폼으로 진화했습니다.
그 정점은 바로 경쟁사라고 할 수 있는 쓰타야(TSUTAYA) 서점 점령 이벤트였습니다. 경쟁사와의 전방위적 협업을 통해 유린도는 자신들의 브랜드가 지닌 도량과 유쾌함을 대중에게 각인시켰습니다.
전통적인 대기업 관점에서 볼 때, 제어 불가능한 독설을 내뱉는 붓코로는 사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리스크 덩어리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무모한 실험이 지속될 수 있었던 본질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자는 브랜드의 영혼을 빚어내는 캐릭터 마케팅의 성공이 결국 조직의 결단과 리더의 책임에 귀결된다고 짚어냅니다.
이 책의 숨은 주인공은 사장 마쓰노부 겐타로입니다. 사장은 하야시 프로듀서에게 단 네 가지의 철저한 절대 원칙만을 제시했습니다.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반사회적인 일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다. 현저히 품위를 깎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장은 덧붙였습니다. 이 네 가지 외에 문제가 생기면 내가 세상에 고개 숙여 사과하면 되니, 당신들은 마음껏 날뛰어라고 말입니다. 위임하는 리더와 그 위임을 이끌어내는 실무자, 이 두 축이 맞물릴 때 비로소 조직의 관성이 깨집니다. 그 짜릿한 도전의 백미가 바로 24시간 철야 라이브 방송이었습니다.

유린도가 운영하는 성풍생활 니혼바시 매장의 24시간 영업 이벤트와 연계하여 진행된 생방송은 수많은 시청자와 밤을 지새우며 끈끈한 연대감을 형성했고, 유린도라는 브랜드를 찐 동반자로 격상시켰습니다.
2025년 4월 중순, 한 바탕의 치열한 녹화가 끝나고 돌아가는 하야시 디렉터의 차 안. 화면 너머로 독설을 퍼붓던 붓코로의 인형을 내려놓은 채 두 사람이 나누는 담담한 대화는 묘한 울림을 줍니다. 사양 산업의 한복판에서 대중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든 콘텐츠 노동자들의 뜨거운 자부심이 배어 있습니다.
『사랑받는 서점을 만들기 위해 2000일 동안 내가 한 일』은 사람들이 왜 어떤 브랜드를 사랑하게 되는지를 추적한 기록입니다. 단순히 유튜브 구독자를 늘린 마케팅이 아니라, 고사해 가던 오프라인 공간에 영혼을 불어넣고 책의 가치를 가장 트렌디한 방식으로 구출해 낸 눈부신 생존 투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