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서점 북두당
우쓰기 겐타로 지음, 이유라 옮김 / 나무의마음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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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2024 일본 판타지소설 대상 수상작 《고양이 서점 북두당 (원제 猫と罰)》. 전생에 나쓰메 소세키의 곁을 지켰던 고양이가 환생해, 이번 생에서는 신비한 고서점 북두당의 책방지기로 살아간다는 설정부터 즐거운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저자 우츠키 겐타로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이야기 세계를 창조해온 신예 작가입니다. 《고양이 서점 북두당》은 문학과 창작, 생명과 기억이라는 깊이 있는 주제를 고양이의 시선으로 탐구하며 인간 존재의 본질과 창작의 의미를 선명하게 조명합니다.


더불어 나쓰메 소세키를 비롯해 이케나미 쇼타로, 이나가키 타루호 등 고양이를 사랑한 일본 근현대 작가들에 대한 오마주를 통해 독창적인 세계관을 구축하며 판타지 장르소설 특유의 재미도 놓치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검은 고양이 쿠로의 아홉 번째 탄생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여덟 번의 삶과 죽음을 거쳐오며 이미 수많은 기억과 상처를 짊어진 존재입니다. 전생의 기억을 간직한 채 세상에 태어난 쿠로는 담담하게 과거를 되짚습니다.


에도 시대 대기근부터 시작해 메이지, 다이쇼, 쇼와 시대를 거치며 여덟 번의 삶과 죽음을 반복해온 쿠로의 이야기는 역사의 격동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던 한 영혼의 기록과도 같습니다. 작가는 고양이라는 존재를 통해 인간 역사의 어두운 면들 - 생명의 경시, 폭력, 부조리함을 드러냅니다.


아홉 번째 환생한 쿠로는 어느 날 다른 고양이로부터 수수께끼 같은 말을 듣습니다. “뭐, 조만간 너도 북두당(北斗堂)에 오게 될 거야.”라고 말이죠. 북두당은 고서점이지만 특별한 공간입니다. 손님이 책을 사가면 저절로 재고가 채워지는 신비로운 장소이자, 점주 기타호시 에리카가 네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사는 공간입니다.


책이 저절로 채워지고, 고양이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그곳은 일종의 안식처입니다. 상처받은 영혼들이 모이는 피난처이면서, 동시에 그들이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쿠로의 가장 깊은 상처는 이름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전생의 주인 나쓰메 소세키에게 끝내 이름을 받지 못했던 경험을 떠올립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 작품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등장한 그 고양이라는 설정이라니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있을까요.


끝내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던 나쓰메 소세키. 그래서 쿠로가 택한 이름은 긴노스케, 바로 나쓰메 소세키의 본명이었습니다. 고양이가 스스로 이름을 선택한다는 설정은 존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이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존재가 인정받지 못한 상처와 닮아 있습니다.


북두당을 찾아온 열 살 소녀 마도카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은 인물입니다. 하지만 마도카는 이야기의 불씨를 잃고 방황합니다. 창작의 고통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겪는 삶의 좌절과도 같습니다.


쿠로가 마도카에게서 그리운 주인 소세키의 모습을 발견한다는 설정은 창작 의지가 세대를 넘어 전승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마도카를 통해 작가는 창작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그것을 지켜나가야 할 책임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문자에 홀린 저주받은 바보 중의 바보에게 내려진 벌……. 그것이 바로 글을 쓴다는 일이다." - p373





마도카의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 무언가를 잃고 주저앉아 있는 이들에게 용기를 건넵니다. “북두당은 언제나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잊지 마.”라는 편지처럼 우리 역시 잃어버린 이야기가 있다면, 북두당 같은 공간에서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무겁게만 흐르지 않는 이유는 곳곳에서 고양이들의 사랑스러운 장면이 미소짓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쿠로가 “왜냐하면 나는 작가의 고양이니까.”라고 말하는 장면은 누군가를 지탱하기 위해 곁에 머무르는 존재, 이름 없는 고양이에서 누군가의 동반자가 되는 존재로 다가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인생에서 작가의 고양이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곁에 머물러주는 존재, 그것만으로도 삶은 버틸 힘을 얻습니다.


이야기와 고양이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울림을 선사하는 《고양이 서점 북두당》. 이야기를 읽는 일, 쓰는 일, 그리고 나누는 일이 결국은 우리를 살린다걸 보여줍니다. 잃어버린 이야기의 불씨를 다시 발견하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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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
민유하.제이한 지음 / 리프레시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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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민유하, 제이한 두 저자가 풀어낸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 지금 이대로 괜찮다는 메시지를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목소리를 빌려 담백하면서도 단단하게 들려줍니다.


쇼펜하우어의 난해한 문장을 오늘의 언어로 치환하면서 현대인이 직면한 네 가지 주제인 고독, 욕망, 나이 듦, 예민함을 다룹니다. 외로움에 시달리고, 끝없이 비교 속에서 자존감을 잃으며, 나이 듦에 불안을 느끼는 이들에게 현실적인 철학 안내서로 다가옵니다.





첫 장은 혼자만의 시간에 대해 다룹니다. 쇼펜하우어는 고독을 사회적 단절이 아닌, 자기 자신과 연결되는 중요한 시간으로 보았습니다. 저자는 고독과 외로움의 차이를 강조합니다.


당신은 혼자 있을 때 행복한가, 아니면 불안한가? 이 질문은 혼자 있는 시간을 회피해야 할 고통이 아닌 성숙의 자산으로 바라보도록 방향을 전환시킵니다. 고독이 주는 힘은 자기 성찰에서 비롯되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됩니다.


스마트폰 알림에 시달리며 잠시도 혼자 있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은 쇼펜하우어가 경계한 내면의 빈곤을 상징합니다. 반면 혼자 있는 시간에 일기를 쓰거나 산책을 즐기는 행위는 자기 자신을 재발견하는 통로가 됩니다. 이 책은 고독을 피하는 습관이 아닌 고독을 활용하는 기술을 권합니다.


각 장 끝에 붙은 '쇼펜하우어에게 배우는 삶의 자세' 코너는 철학적 통찰을 실제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도와줍니다.


두 번째 장은 욕망의 무게를 다룹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욕망을 끝없는 결핍의 연속으로 규정했습니다. 저자는 이 철학을 현대인의 현실과 연결하며, 욕망의 과잉이 어떻게 현재의 만족을 파괴하는지 보여줍니다.


“욕망이 클수록 불행도 그만큼 커진다.”라는 말은 충족되지 않은 욕망은 괴로움을 낳고, 충족된 욕망은 더 큰 욕망을 불러온다는 의미입니다. 지나친 욕망은 지금을 결핍으로만 보게 만듭니다.


잠깐의 만족 뒤에 허무가 남는 것을 경험했다면 이 이야기에 귀기울여보세요. 저자는 적당함의 지혜를 강조합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태도는 자기 삶을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시키고, 만족을 지금 이 순간에 불러옵니다. 철학이 곧 욕망의 다이어트라는 해석이 인상적입니다.





세 번째 장은 나이 듦을 다룹니다. 쇼펜하우어는 노년을 단순한 쇠퇴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깊어지는 삶의 지혜를 담아내는 그릇으로 여겼습니다.


나이 들수록 마음이 편한 단 한 사람의 존재가 더 소중해집니다. 저자는 이를 통해 관계의 질적 전환을 강조합니다. 은퇴 후 대기업 인맥보다 동네 친구와의 따뜻한 대화가 더 큰 힘이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는 나이 듦의 축소가 아니라 정수에 다가가는 과정입니다.


또한 저자는 인생 후반부를 두 번째 기회로 설계할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취미를 새로 시작하거나, 후배 세대와 경험을 나누며 삶을 이어가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마지막 장은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조언입니다. 사회는 예민함을 약점으로 규정합니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감수성을 예술적 창조와 자기 성찰의 원천으로 보았습니다.





저자는 예민함을 억누르기보다 활용하는 기술을 설명합니다. 타인의 말에 쉽게 상처받는 성향은 감정적 경계 설정을 통해 다스릴 수 있으며, 섬세한 감각은 오히려 창조적 영감을 불러옵니다. 이 책은 예민함을 삶의 결핍이 아니라 자신만의 무기로 정의합니다.


특히 예술과 자연이 예민한 사람들에게 내면의 평화를 준다고 강조합니다. 숲 속 산책이나 음악 감상 같은 활동은 감정의 파도를 가라앉히는 훈련이자,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계기가 됩니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철학과 심리학을 접목해 철학이 어떻게 현실 속 위로가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생활 철학서입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불안해하는 이들, 끝없는 성취의 압박 속에서 지친 직장인, 나이 듦을 두려워하는 중년 세대, 그리고 자신의 예민함을 단점이라 여겨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합니다.


철학적 사유를 실용적 도구로 전환해 삶의 균형과 내적 평화를 찾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철학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도록 이끄는 네 개의 주제는 결국 하나의 메시지로 수렴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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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지구를 위한 리셋 그리고 우리의 선택 - ESG,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우리의 약속!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유재열 외 지음 / 소금나무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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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ESG경영인증원 소속 10명의 전문가가 공동 집필한 <환경, 지구를 위한 리셋 그리고 우리의 선택>. 환경공학, 행정, 경영, 자원순환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해온 실무자와 연구자가 함께 참여했습니다. 학문적 담론에만 머물지 않고, 정책·산업·소비 현장을 두루 아우른다는 점에서 실용적입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가 더 이상 방관자로 머물 수 없음을 전제로, 생활 속 선택의 전환을 촉구합니다. 각 장마다 지금 여기서 당장 실행 가능한 대안을 제시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이 무엇일까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돕습니다.





플라스틱은 20세기의 발명품 중 가장 빛나는 혁신이자, 21세기의 가장 골칫거리로 꼽힙니다. 유재열 저자는 플라스틱, 우리 일상의 숨은 영웅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의료기기, 식품 포장재, 가전제품까지 플라스틱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용 후의 처리입니다. 재활용되는 비율은 극히 미미합니다. 남은 것은 매립과 해양 유입, 그리고 미세플라스틱으로 되돌아옵니다.


저자는 플라스틱의 순환 가능성에 주목합니다. 폐플라스틱을 단순 소각이 아닌 자원으로 인식하고, 재활용 기술 혁신과 정책 지원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플라스틱을 악으로만 몰아붙이는 대신, 순환 시스템을 구축하는 새로운 산업적 기회로 바라보는 관점을 짚어줍니다.


권재철 저자는 패션 산업을 보이지 않는 쓰레기 제조기라고 표현합니다. 옷은 방대한 탄소와 물을 소비하는 산업의 산물입니다. 특히 패스트 패션은 값싼 옷을 대량으로 만들고 버리게 함으로써 환경 비용을 치솟게 했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소비자 인식입니다. 유행을 좇아 옷장을 채우는 대신, 가치 중심의 소비를 선택할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됩니다. 옷 한 벌이 아니라, 내 선택이 지구를 바꾸는 메시지라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이선우 저자는 쓰레기를 단순한 폐기물이 아니라 사회적 언어로 읽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버리는지 살펴보면 우리의 소비 습관과 가치관이 드러난다는 겁니다. 나는 무엇을 버리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버림의 방식과 과정 속에 숨겨진 무심함을 짚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쓰레기를 감각의 문제로 접근했다는 것입니다. 쓰레기 문제는 기술적 해법만이 아니라, 덜 버리는 삶을 되찾는 감수성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미니멀리즘, 업사이클링, 제로웨이스트 운동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여행은 자유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지구에 큰 발자국을 남깁니다. 항공 여행 한 번이 수 톤의 탄소를 배출하고, 인기 관광지가 쓰레기와 오염으로 신음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박종희 저자는 지속 가능한 여행의 사례를 제시합니다. 가까운 국내 여행으로 항공 이동을 줄이거나, 지역 사회와 상생하는 숙박과 소비 방식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여행이 탈출이 아니라, 지구와 조화로운 공존의 연습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와닿습니다.


유민형 저자는 친환경이 유행이 된 시대를 비판합니다. 기업들이 환경을 단순 마케팅 도구로만 활용할 때, ESG의 본질이 희석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팔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환경을 상품이 아닌 지켜야 할 가치로 바라보길 권합니다. 가격이나 편리함보다, 제품이 지닌 윤리적·환경적 가치를 우선하는 소비자가 늘어날 때 기업도 변합니다. 결국 ESG는 시장의 흐름이 아니라, 소비자와 기업이 함께 만들어가는 관계의 전환이라는 점이 강조됩니다.


행정학자 이은학 저자는 행정이 ESG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짚습니다. 기업과 개인의 실천만으로는 기후위기 대응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공 부문이 ESG의 촉매 역할을 해야 합니다. ESG 행정을 단순 규제가 아닌 참여와 협력의 플랫폼으로 제시합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시민과 함께 정책을 설계하고, 친환경 예산 집행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식처럼요. ESG가 기업만의 용어라는 인식을 깨는 중요한 장입니다.


에너지 문제를 다룬 이광호 저자는 전기는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는 화력·원자력·재생에너지라는 복잡한 선택지에서 옵니다. 지금의 값싼 전기 뒤에 숨어 있는 사회적 비용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신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과 비용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장기적으로 피할 수 없는 선택임을 강조합니다. 에너지 전환은 단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 문제라는 관점도 짚어줍니다. 전기를 절약하는 행동 하나가 연대의 실천이라는 점에서 울림을 줍니다.


김춘택 저자는 배터리를 미래 산업의 심장이라 부릅니다.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배터리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폐배터리 문제는 아직 뚜렷한 해법이 없습니다. 그는 폐배터리를 자원으로 재활용하는 배터리 순환경제를 강조합니다. 전기차에서 나온 배터리를 에너지 저장 장치로 재활용하거나, 희귀 금속을 다시 추출해 새 배터리를 만드는 산업 모델이 그것입니다. 순환이 곧 경쟁력이라는 메시지를 통해 환경과 산업의 접점을 짚어줍니다.


책을 다룬 김헌준 저자의 장은 특히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책 한 권, 얼마나 많은 자원이 들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종이, 잉크, 물류, 포장까지 책은 적지 않은 환경 비용을 남깁니다. 전자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디지털 독서 역시 환경적 흐름은 결코 가볍지 않음을 짚어줍니다. 독서의 환경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소량 인쇄 후 주문형 제작 POD 방식, 공동구매형 출판, 중고서적 활용, 지역 도서관 이용, 북쉐어링 등 책을 읽는 행위가 단순한 지적 즐거움에 머물지 않고, 지구와의 관계를 고려하는 문화적 실천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이 신선합니다.


마지막 장에서 류지헌 저자는 시민참여와 연대를 강조합니다. ESG는 개인, 기업, 행정 어디 한쪽의 몫이 아니라고 합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할 것인가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일깨워 줍니다.


ESG 전문가 10인이 제시하는 일상 속 환경 혁명 『환경, 지구를 위한 리셋 그리고 우리의 선택』. 거대한 정책이나 기술 혁신을 기다리는 대신, 오늘부터 실천 가능한 작은 선택을 하라고 합니다. 플라스틱 컵 대신 텀블러, 값싼 옷 대신 오래 입을 옷, 가까운 여행지에서의 친환경적 소비. 이런 작은 리셋이 모여 지구의 미래를 바꾼다는 점에서 이 책은 실천의 안내서이자 다짐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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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명카피 필사 노트 - 恋が終わってしまうのなら、夏がいい。사랑이 끝나버릴 거라면, 여름이 좋다. 일본어 명카피
정규영 지음, 김수경 감수 / 길벗이지톡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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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명카피 핸드북』의 후속작인 『일본어 명카피 필사 노트』는 문장의 결을 손끝으로 느낄 수 있는 필사책입니다. 198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40년간의 일본 광고 중 완성도 높은 작품들만 골라내어 100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광고는 소비를 자극하는 도구로만 여겼지만 『일본어 명카피 필사 노트』를 펼치는 순간, 광고는 상업적 문구를 넘어 시대의 공기와 인간의 감정을 압축한 문학적 언어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정규영 저자는 30년 가까이 현장에서 광고를 써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광고가 가진 미묘한 언어적 힘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의 일본어 공부 시작점 역시 교재가 아닌, 광고 카피였다고 합니다. 일본의 고서점에서 수십 년 치 광고 연감을 모아 필사하며 언어와 감각을 동시에 체득했고, 그 결과물은 SNS에서 공유되며 큰 관심을 얻었습니다.


문장에 담긴 생각을 손끝으로 옮기면서 나만의 것을 채우는 필사를 통해 일본어 학습과 명상 리추얼의 힘을 모두 얻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장은 삶의 풍요로움에 대한 명카피 모음입니다.





일본 스트리밍 서비스 U-Next의 2021년 광고 "人生に ムダな時間を (인생에, 쓸데없는 시간을)."은 오히려 쓸데없음이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는 역설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무다(ムダ)’가 가진 이중적 뉘앙스를 포착합니다. 한자로 쓰였을 때는 사색적이고 무겁게 다가오지만, 가타카나로 표기되면 가볍고 유쾌한 톤으로 변주됩니다. 동일한 발음이 표기 방식에 따라 의미의 색조를 달리하는 것은 일본어 특유의 언어적 미학을 보여줍니다.


일본어로 명카피 헤드라인과 바디 카피를 소개하고, 우리말 번역으로 진입장벽을 낮춰 줍니다. 일본어 단어 풀이는 물론이고 언어를 옮기는 것을 넘어 문화를 번역해 그 속에 담긴 미묘한 뉘앙스까지 우리말로 전달합니다.


일본어를 배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해도, 광고 카피 장르가 지닌 압축된 표현력과 정서적 파급력을 이해하는 것으로도 가치가 있습니다.


두 번째 장에서는 사랑과 계절이 교차하는 순간을 담은 명카피가 등장합니다. 루미네(Lumine)의 2009년 광고 "恋が終わってしまうのなら 夏がいい (사랑이 끝나버릴 거라면, 여름이 좋다)."는 이 책의 부제로 사용될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일본 광고가 가진 특유의 감각은 조건부의 서정성입니다. 사랑은 언젠가 끝나지만, 끝남에도 계절의 선택지가 있다는 발상이 신선합니다. 봄의 덧없음, 가을의 쓸쓸함, 겨울의 외로움 대신, 여름의 눈부심 속에서 맞는 이별은 덜 슬플 것 같다는 역설적인 위로를 담고 있습니다.


‘鬱陶しい(うっとうしい)’ 단어의 의미도 재밌습니다. 원래는 꿉꿉하거나 귀찮다는 의미이지만, 광고에서는 성가실 정도로 눈부신 햇살이라는 이미지로 변용됩니다.


광고 카피는 일상의 언어를 낯설게 전환해 감정의 새로운 층위를 만들어냅니다. 필사를 통해 일본어를 익히는 것을 넘어, 언어가 감정을 빚어내는 방식 자체를 체험하게 됩니다.





마지막 장은 자기 발견과 삶의 동력을 주제로 한 명카피들이 모여 있습니다. 혼다의 포스터(2012) 광고, "いつだって 僕らを突き動かすのは 好奇心だ (언제나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호기심이다)."라는 문장이 와닿습니다.


저자는 ‘突き動かす’라는 동사의 힘을 강조합니다. 그저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깊은 내면에서부터 찔러 자극하여 결국 행동하게 만드는 힘을 의미합니다. 이 광고에서는 그 힘을 호기심이라 정의합니다.


언어와 감각, 삶의 태도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일종의 철학 노트에 가까운 『일본어 명카피 필사 노트』. 광고가 전달하는 문구가 때로는 자기계발서보다 더 직접적으로 삶을 움직이기도 합니다. 필사라는 행위는 모사에 그치지 않고, 글자와 문장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이어주며 변화를 일으키는 자극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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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타이탄들의 전쟁 - 1조 달러 시장의 승자를 결정할 게임의 법칙
게리 리블린 지음, 김동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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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의 AI 전쟁터,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 1조 달러 게임의 법칙을 해부한 <AI 타이탄들의 전쟁>. 저널리즘 현장에서 수십 년간 날을 세워오며 퓰리처상을 수상한 게리 리블린 저자의 집요한 취재력과 문학적 감각이 결합된, 마치 소설처럼 술술 읽히는 논픽션입니다.


AI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지금, 이 책은 왜 지금이 AI 전쟁의 분수령인가를 질문하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사실상 돈을 벌 수 있는 기간은 18개월, 길어야 24개월입니다.”라는 인용은, AI 산업이 단순한 장밋빛 미래가 아니라 치열한 시한부 게임임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AI의 첫 번째 전투 무대를 닷컴 버블과 나란히 배치합니다.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누구나 아는 이름이 등장하지만, 게리 리블린 기자는 이들을 거인이 아닌, 순간마다 흔들리는 플레이어로 묘사합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단연 리드 호프먼입니다. 링크드인과 페이팔 공동창업자로 실리콘밸리 투자계의 전설이 된 그는 오픈AI와 인플렉션AI 창립에도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쉬운 돈벌이의 시대가 끝나고 있었다는 자각 앞에서 새로운 전략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혁신의 무덤이 되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후발주자들에게 공포를 안기는 폭군으로 재등장합니다. 사티아 나델라가 터닝포인트였습니다. 오픈AI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구글이 독점하던 AI 영역에 쐐기를 박았습니다.


기술력이 승부를 가르던 시대는 끝났고, 자본과 조직 문화가 운명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펼쳐집니다.


딥마인드 창업자 하사비스는 “AI 문제를 정말 해결하려면 회사를 구글만큼 키워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다는 걸 깨달았죠.”라며 혁신을 꿈꾸는 연구자는 늘 시간과 돈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히는 현실을 짚어줍니다. 딥마인드가 결국 구글 품에 안긴 과정은 스타트업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 항복의 상징처럼 다가옵니다.


반면 오픈AI의 서사는 드라마틱합니다. 일론 머스크가 떠나고 자금줄이 끊기는 순간조차 말입니다. 샘 올트먼의 리더십은 불안정한 구조 속에서도 속도전으로 돌파하는 전형적 스타트업 정신을 보여줍니다. 챗GPT를 일찍 내놓은 결정도 그 맥락입니다.


샘 올트먼은 “스타트업이 출시한 제품이 그것을 만든 사람의 마음에 들 정도면 이미 출시 시기를 놓친 것”이라며, “다소 부족한 점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일찍 세상에 공개한 이유는, 자료를 충분히 입력하고 시행착오를 거쳐 다듬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오늘날 모든 스타트업이 곱씹어야 할 교훈이기도 합니다.


리드 호프먼은 “스타트업 창업이란 절벽 끝에서 몸을 던진 후, 추락하는 동안 비행기를 만들어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2022년 챗GPT 공개 이후, 실리콘밸리 전체가 정지 상태에 빠졌다가 갑자기 폭발적인 열기에 휩싸이는 아이러니가 펼쳐졌습니다.


애플과 구글조차 안심할 수 없는 오늘날의 긴장감을 포착합니다. 저자는 AI 유성의 충격에 빗대며, 실리콘밸리의 권력 구조가 얼마나 불안정한지 생생히 묘사합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정면 대결이 특히 흥미진진합니다. 한쪽은 검색 제국, 다른 쪽은 오피스 소프트웨어 제국. 두 제국이 AI라는 신대륙에서 격돌하니 긴장감이 배가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와중에 딥마인드 공동창업자 무스타파 술레이만의 여정도 흥미진진합니다. AI계의 록스타로 불리던 그가 인플렉션AI를 창업하며 사람처럼 대화하는 AI 파이(Pi)를 개발했지만, 시장점유율 2%도 채우지 못하고 결국 마이크로소프트에 흡수됐습니다. 


그가 결국 마이크로소프트로 들어간 사건은 스타트업의 이상이 어떻게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지 보여주는 교본 같은 사례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빙과 코파일럿 등 AI 전략 전반을 이끄는 핵심 인물로 재탄생한 것입니다.


메타의 경우도 흥미롭습니다. 저커버그가 메타버스에 올인했다가, 뒤늦게 AI로 방향을 튼 사례는 기업의 오판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잘 보여줍니다. LLaMA를 오픈소스로 공개한 결정은 빅테크가 생존을 위해 전략을 유연하게 수정해야 함을 보여주는 신호였습니다.





<AI 타이탄들의 전쟁> 후반부는 거품론을 다룹니다. “이 말도 안 되는 회사들이 투자를 척척 받는 꼴을 좀 보세요.”라는 날 선 문장은 닷컴 버블의 환영을 떠올리게 합니다. 저자는 1990년대와 2020년대를 비교하며 혁신과 투기의 교차점을 드러냅니다.


예전에는 대학 기숙사에서도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거대 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AI 게임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일깨워 줍니다. 대규모 언어모델 하나 제대로 훈련시키려면 수천억 원이 필요하고, 엔비디아 GPU를 확보하는 것부터가 전쟁입니다.


저자는 생성형 AI 분야는 성공에 따른 보상이 엄청난 만큼 초기 자본 또한 많이 필요하다며 스타트업 신화의 종말을 예고합니다. 지금 실리콘밸리에 있는 대부분의 AI 스타트업이 결국 살아남아 부자가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냉정한 결론도 내립니다.


<AI 타이탄들의 전쟁>은 기술 책이 아니라 권력의 책입니다. 기자의 눈으로 본 이 산업은 알고리즘보다 돈, 코드보다 권력이 더 중요한 게임판이었습니다. AI 산업을 단순히 혁신 서사로만 소비해온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을 안겨줍니다.


기술이 세상을 바꾼다지만, 그 기술을 누가 소유하고 통제하느냐는 여전히 자본의 논리를 따릅니다. AI 시대의 진짜 승자는 가장 혁신적인 기술을 가진 자가 아니라, 가장 오래 버틸 수 있는 자본과 시장 지배력을 갖춘 자입니다.


AI 전쟁의 승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곧 기술 사회에서 진짜 힘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실리콘밸리의 심장을 해부한 리포트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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