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양이서점 북두당
우쓰기 겐타로 지음, 이유라 옮김 / 나무의마음 / 2025년 8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2024 일본 판타지소설 대상 수상작 《고양이 서점 북두당 (원제 猫と罰)》. 전생에 나쓰메 소세키의 곁을 지켰던 고양이가 환생해, 이번 생에서는 신비한 고서점 북두당의 책방지기로 살아간다는 설정부터 즐거운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저자 우츠키 겐타로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이야기 세계를 창조해온 신예 작가입니다. 《고양이 서점 북두당》은 문학과 창작, 생명과 기억이라는 깊이 있는 주제를 고양이의 시선으로 탐구하며 인간 존재의 본질과 창작의 의미를 선명하게 조명합니다.
더불어 나쓰메 소세키를 비롯해 이케나미 쇼타로, 이나가키 타루호 등 고양이를 사랑한 일본 근현대 작가들에 대한 오마주를 통해 독창적인 세계관을 구축하며 판타지 장르소설 특유의 재미도 놓치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검은 고양이 쿠로의 아홉 번째 탄생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여덟 번의 삶과 죽음을 거쳐오며 이미 수많은 기억과 상처를 짊어진 존재입니다. 전생의 기억을 간직한 채 세상에 태어난 쿠로는 담담하게 과거를 되짚습니다.
에도 시대 대기근부터 시작해 메이지, 다이쇼, 쇼와 시대를 거치며 여덟 번의 삶과 죽음을 반복해온 쿠로의 이야기는 역사의 격동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던 한 영혼의 기록과도 같습니다. 작가는 고양이라는 존재를 통해 인간 역사의 어두운 면들 - 생명의 경시, 폭력, 부조리함을 드러냅니다.
아홉 번째 환생한 쿠로는 어느 날 다른 고양이로부터 수수께끼 같은 말을 듣습니다. “뭐, 조만간 너도 북두당(北斗堂)에 오게 될 거야.”라고 말이죠. 북두당은 고서점이지만 특별한 공간입니다. 손님이 책을 사가면 저절로 재고가 채워지는 신비로운 장소이자, 점주 기타호시 에리카가 네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사는 공간입니다.
책이 저절로 채워지고, 고양이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그곳은 일종의 안식처입니다. 상처받은 영혼들이 모이는 피난처이면서, 동시에 그들이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쿠로의 가장 깊은 상처는 이름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전생의 주인 나쓰메 소세키에게 끝내 이름을 받지 못했던 경험을 떠올립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 작품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등장한 그 고양이라는 설정이라니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있을까요.
끝내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던 나쓰메 소세키. 그래서 쿠로가 택한 이름은 긴노스케, 바로 나쓰메 소세키의 본명이었습니다. 고양이가 스스로 이름을 선택한다는 설정은 존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이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존재가 인정받지 못한 상처와 닮아 있습니다.
북두당을 찾아온 열 살 소녀 마도카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은 인물입니다. 하지만 마도카는 이야기의 불씨를 잃고 방황합니다. 창작의 고통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겪는 삶의 좌절과도 같습니다.
쿠로가 마도카에게서 그리운 주인 소세키의 모습을 발견한다는 설정은 창작 의지가 세대를 넘어 전승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마도카를 통해 작가는 창작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그것을 지켜나가야 할 책임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문자에 홀린 저주받은 바보 중의 바보에게 내려진 벌……. 그것이 바로 글을 쓴다는 일이다." - p373

마도카의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 무언가를 잃고 주저앉아 있는 이들에게 용기를 건넵니다. “북두당은 언제나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잊지 마.”라는 편지처럼 우리 역시 잃어버린 이야기가 있다면, 북두당 같은 공간에서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무겁게만 흐르지 않는 이유는 곳곳에서 고양이들의 사랑스러운 장면이 미소짓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쿠로가 “왜냐하면 나는 작가의 고양이니까.”라고 말하는 장면은 누군가를 지탱하기 위해 곁에 머무르는 존재, 이름 없는 고양이에서 누군가의 동반자가 되는 존재로 다가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인생에서 작가의 고양이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곁에 머물러주는 존재, 그것만으로도 삶은 버틸 힘을 얻습니다.
이야기와 고양이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울림을 선사하는 《고양이 서점 북두당》. 이야기를 읽는 일, 쓰는 일, 그리고 나누는 일이 결국은 우리를 살린다걸 보여줍니다. 잃어버린 이야기의 불씨를 다시 발견하게 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