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던 대로나 잘 하라고? - 미어캣에게 배우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기술
존 코터.홀거 래스거버 지음, 유영만 옮김 / 김영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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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운영 방식에 관한 딱딱한 내용을 우화로 소개하니 어쩜 이렇게 잘 읽히는지. 10만 베스트셀러 펭귄 우화 <빙산이 녹고 있다고?>의 존 코터 신작 <하던 대로나 잘 하라고?>에서는 미어캣이 등장합니다. 존 코터의 경영전략 책은 각종 기업, 정부기관 및 경영연구소 필독학습서일 정도로 명성이 자자하다는군요. 과연~! 명성대로 이 책도 엄지 척입니다.

 

 

 

미어캣 무리에게 새로운 위기가 닥친 상황. 대처 능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실제 우리 조직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알려줍니다. 도전적인 리더의 전형 나디아, 철저한 계획에 근거해 행동하는 전형적인 관리자 스타일 니콜라스, 도전과 모험의 화신 에이요, 과감한 실행자 스타일 매트, 혁신적인 조직의 참여 촉진형 리더 레나 등 저마다 역할과 스타일이 다른 미어캣들이 등장하네요. <하던 대로나 잘 하라고?>를 읽다 보면 그 미어캣과 닮은 사람이 저절로 떠오를 겁니다. 흔한 동료, 상사의 모습이죠.

 

 

 

처음엔 이 미어캣 무리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덩치가 커져도 규율과 질서를 강조하며 규칙에 맞게 조직을 잘 관리해왔죠. 하지만 생각하지도 못한 위기가 발생했습니다. 가뭄으로 먹이와 물이 부족해지고, 날쌘 독수리의 공격에 대처하지 못하게 된 겁니다. 식량 문제와 공격에 대처하는 시간을 줄일 방법을 의논해보지만 결국 위로부터의 명령, 지시, 통제 상황 밖에는 별다른 대처방안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구성원들은 스트레스가 점점 쌓이게 되고요.

 

이때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해봐도 돌아오는 답은 "그건 우리가 하는 방식이 아니야."라는 말뿐입니다. 나디아와 에이요는 다른 미어캣 무리는 어떻게 하는지 찾아 나서게 되고, 낙관적인 레나가 이끄는 무리에 동참해봅니다. 비전을 제시하고 참여를 독려하는 리더 레나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죠. 하지만 이 무리 역시 구성원 규모가 커지게 되니 문제가 생깁니다. 이곳에서도 위기는 생겼습니다.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레나가 이끄는 무리 역시 위기를 원만하게 대처하지 못했어요. 혼란스러운 과정을 보며 오히려 나디아는 리더십과 관리의 본질을 깨닫게 됩니다.

 

원래 무리에서는 기존 방법을 답습하기만 하고 규칙과 절차에 어긋나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아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면, 혁신적인 조직의 낙관적 리더가 있는 조직에서는 동기부여는 잘 했지만 대규모의 일상적인 일에 관한 효율 면에선 취약했던 거죠.

 

"때로는 즐거움과 창의력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vs "아직은 어떤 평가도 하지 말아 주세요. 먼저 생각들을 모아 봅시다."처럼 우화에서는 이런 대사로 각 스타일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우화만 읽어도 존 코터 저자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정도로 탄탄한 구성의 스토리였어요. 후반부에 나오는 부가 설명 파트에서 더 명확하게 변화관리 이론을 정리해줍니다. 리더십과 관리의 차이를 명확하게 하는 것부터 시작이더군요. 둘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리더십과 관리 중 하나만 가지고선 조직 운영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나디아의 원래 무리에서는 리더십의 부재, 레나의 무리에서는 관리의 부재가 있었던 겁니다.

 

우화에서 끝내지않고 리더십과 관리의 조화와 균형을 바탕으로 이론을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변화관리 8단계를 알려줍니다. 서로 다른 스타일과 가치관의 충돌 시 문제 해결 방법, 새로운 대안을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시킬 것인지 등 성공적인 운영 방식 지침을 마련해주네요. 

 

 

 

미래를 위한 혁신과 일상의 맡은 업무를 잘 수행하면서 리더십과 관리의 조화,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 이렇게만 말하면 사실 실제 적용할 때 모호해지고 막막한 기분입니다. 유영만 역자가 작성한 미어캣의 변화관리 노트가 이때 큰 역할을 해요. 우화 중간중간에 변화관리 노트를 소개하는데 이건 뭐, 숟가락을 입 앞까지 딱 대준 것처럼 무척 유용합니다.

 

위기라는 것이 왜 생기는지 기본으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될 것 같아요. 하던 대로 해봤자, 기존 방식으로는 대응할 수 없기에 위기 상황이 되는 거죠. 버릴 줄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미어캣 우화로 잘 보여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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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 신은 혼자서 상처받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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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Top 100 <오두막>의 저자 윌리엄 폴 영의 소설 <이브>. 작가 특유의 종교적 색채가 짙은 소설이지만, 시공간을 넘나드는 판타지 소설 구성이어서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자존감 치유와 회복이라는 소재는 작가의 특징으로 꼽을만 한데 <이브>의 주인공이 십 대 소녀여서 다른 책보다 더 부모 입장에서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어요.

 

지구와는 시공간이 다른 피난처라 불리는 곳. 처참한 몰골로 해안에 떠밀려 온 릴리가 몸을 치료함과 동시에 깨진 정신을 치유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치료 중 릴리는 자주 무의식의 세계로 빠져드는데 그곳에서 우주의 탄생과 아담의 탄생을 목격하게 됩니다. 릴리를 태초의 증인으로 이끈 이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라 불리는 마더 이브. 하지만 릴리는 왜 자기가 증인이 되었는지,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세 개의 세계가 충돌합니다. 릴리가 지구에서 겪은 회상의 공간, 환각이라 여기는 에덴 그리고 현재 있는 피난처. 릴리의 혼란과 마찬가지로 읽는 저도 처음엔 선뜻 이해하기 힘든 초반부였어요. 그렇다고 해서 또 재미없지는 않고. 이해하려고 들기보다는 직관적으로 읽은 책이었다고나 할까.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릴리는 스스로 무가치한 존재라 여깁니다. 망가진 릴리의 몸은 피난처에서 지내며 고쳤지만, 정신과 마음 그리고 영혼은 치료할 수 없었죠. 그녀를 보러 온 학자에게서 받은 진실의 거울에 비친 자신은 사악한 괴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모든 게 볼품없고 결점투성이였어요.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 수치심이 깊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잃게 됩니다. 그런데 거울을 건넨 자는 그녀를 릴리스라 부르며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부추기는군요. 아담에게 배신당한 이브가 다시 아담에게 돌아가는 것을 막는다면 이브는 영원히 에덴에 남을 것이고 그러면 역사는 바뀔 거라는 겁니다.

 

 

 

가치 없는 존재이기에 한 가지 선한 일을 해야만 나아질 수 있다고 믿게 된 릴리는 실행에 나서지만 아담에게마저 거부당한 릴리. 죽고 싶은 마음뿐이지만 때마침 '영원한 이'가 찾아옵니다. 극한의 고통을 경험한 릴리의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은 지극히 종교적입니다. 아마 유신론자가 이 클라이맥스 부분을 읽으면 무한감동받을 수 있겠는데 저는 오히려 그 부분만큼은 감흥이 덜했어요.

 

이 소설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주목한 점은 아담과 릴리의 공통점이었습니다. 혼자라는 외로움 속에 필사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려고 애쓰는 모습 말입니다. 아담이 어둠의 공간으로 빠져드는 것을 '돌아섬'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데, 우리에게 죽음의 그림자 병이 생긴 이유를 돌아섬으로 설명하더군요. 뱀에게서 비롯된 게 아니라. 성경 속 에덴과 관련한 이야기, 이브와 릴리의 존재 이유 등을 스토리 속에 녹여내면서 작가의 해석이 썩 괜찮게 들리더라고요.

 

 

 

요즘 읽고 있는 책, 달라이 라마와 투투 대주교의 대담 <JOY 기쁨의 발견>에서 읽은 내용과 소설 <이브>가 맥락을 같이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 책에선 기쁨의 근본적인 비밀 중 하나로 신뢰를 드는데, <이브>에서도 돌아섬의 반대 의미로 신뢰를 들고 있어요. 고통과 좌절, 괴로움으로부터 오는 가치를 이해하는 것과 그런 절망을 겪을 때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는 이야기 역시 릴리와 우리 자신들에게 해 줄 말인 것 같습니다.

 

결말이 궁금해 중간에 책을 놓기 힘들 정도이긴 했습니다. 검은 피부의 마더 이브, 영원한 이와 신부의 관계, 천사와 수호자, 아담과 뱀, 릴리와 릴리스... 어떤 부분은 쉽게 이해되고 어떤 부분은 읽다가 검색해야 할 정도로 낯선 용어가 나오기도 했고, 여전히 이해 안 되는 부분도 있지만. 릴리의 내면에 주목한 작가는 희망을 잃은 릴리가 어떤 과정을 겪으며 변화하는지 판타지 구성에 잘 버무려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신뢰란 일생에 단 한 번 내리는 선택이 아니고, 매 순간 강물이 흐르듯 선택하는 거야.

너에게는 신뢰할 자유와 돌아설 자유가 모두 있다. 이처럼 사랑은 심오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수수께끼다.

분노와 슬픔에 빠져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기쁨을 놓쳐서는 안 돼요.

아가, 너는 단 한 번도 혼자인 적이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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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했으니까, 오늘도 야식 - 힘든 하루를 끝내고, 내가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 영혼을 달래는 혼밥 야식 만화
이시야마 아즈사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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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잘하진 않지만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고자 그렸다는 이시야마 아즈사 일러스트레이터. 새벽 2시에도 그림을 그리다 보니 배는 이미 꺼진지 한참. 한밤중에 먹으면 안 되는 악마의 음식이지만 한편으로는 짧고도 긴 혼자만의 밤을 달래주는 야식의 유혹이 넘실댈 수밖에 없습니다. <수고했으니까 오늘도 야식>은 한 끼 식사, 간단한 반찬, 달달한 음식 등 혼밥 야식에 어울리는 요리와 어린 시절 음식에 대한 추억담을 보여줍니다.

 

여러 음식 중에서도 특히 힐링 되는 음식이 있기 마련이죠. 가끔은 뜨끈한 국물 한 모금에 몸이 녹아날 듯 편안해지기도 하고요. 작가는 빵집에서 힐링하더라고요. 갓 구운 빵 냄새, 바게트 빵을 담는 전용 종이 등 얼마나 좋아하는지 "어떤 가전제품보다 음이온이 많이 나와!!!"라고 하는군요. 먹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음식으로 '찻물밥'을 꼽기도 하는데요. 물에 말아먹는 것과 같은 비주얼인데도 무... 척... 맛나게 먹는 걸 보면 저도 어느새 그 맛이 궁금해지더라고요.

 

 

 

음식 만화인 만큼 요리 과정도 상세하게 나오는데 그래봤자 한두 페이지로 끝. 야식이니 짧은 시간 안에 만들 수 있는 음식이에요. 스~윽, 휙, 찌이익, 꾸욱, 덥석, 삭삭, 터억, 주르륵, 잘각잘각, 또로록 같은 의성어와 의태어가 한가득 나오는 야식 만화. 소리가 들리는듯한 꼼꼼한 묘사에 절로 군침이 꼴깍~! 완성한 결과물을 보면 음~ 이건 먹어봐야 돼! 할만큼 (요리하는 취미 없는) 제 눈에도 제법 맛있게 보입니다.

 

 

 

한 가지 야식을 레시피처럼 정형화된 구성으로 소개하는 방식은 아니고, 에피소드식으로 이어지네요. 그러다 보니 음식과 관련한 추억담도 쏠쏠하게 풀어놓습니다. 밥공기 크기가 국그릇 크기라는 저자의 말에 우리 집도 그렇다고 고개가 절로 끄덕끄덕. 군것질하듯 사 먹던 좋아하는 가게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남은 건 추억. 그 맛을 떠올리며 만들어보기도 하고, 엄마 아빠가 해 준 음식, 라멘 파는 트럭을 기다린다든지... 지금은 혼밥을 먹지만, 가족과 함께 한 음식의 추억을 되살려봅니다. 그러고 보면 고향의 맛이라는 건 추억의 맛이지 싶습니다.

 

 

 

직접 해 먹는 야식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간편하게 할 수 있어야 제격. 우동을 끓이지 않고 전자레인지만으로 완성하기도 하는데, 설거지하기 귀찮으니 칼과 프라이팬도 최소한 자제하며 야식을 만들더라고요. 계란말이도 모양은 정석이 아니더라도 나님 전용으로 간편하게.

 

엄마표 계란말이와 아빠표 계란말이에도 두 분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났었다는 에피소드 재미있네요. 꼼꼼함과 적당주의의 비주얼은 서로 다르지만 이거나 저거나 다 맛있습니다. 저도 요리에서만큼은 적당주의여서 뭔가 묘하게 공감되는 장면이 많았어요.

 

 

 

제가 알지 못한 요리도 많았어요. 참 이색적인 야식 메뉴로 가지 피자가 있습니다. 가지, 피자소스, 치즈만 있으면 완성되니 정말 간단합니다. 한밤중이지만 피자에는 치즈를 듬뿍 얹어야 한다는 건 꼭 지켜야 한다네요. 치즈덕후인 저는 쫀드~~~윽한 치즈 비주얼 때문에 이 야식이 가장 꽂혔어요. 그 외에도 갓 만든 뜨거운 호박잼을 차가운 아이스크림에 넣어 먹으면 생각 외로 맛있나 봅니다. 꼭 호박잼이 아니어도 갓 만든 잼이라면 사실 어디에 먹어도 맛없진 않을 것 같지만, 아이스크림과의 조합은 신선했어요.

 

일본 책이다 보니 생소한 음식재료도 간간이 보였습니다. 채소류인 양하, 조미액에 담근 다시마를 졸여서 건조한 시오콘부, 고사리 전분을 설탕과 함께 반죽해 만든 떡 와라비모찌... 등 그 맛이 궁금하더라고요.

 

 

 

한 시간이면 쓱 다 읽을 수 있는 야식 만화이지만, 읽는 도중에 냉장고 문을 열고 두리번거리고 있을지도요. 야식의 매력은 아마도 밤이어서 더 특별한 맛이 나는 듯한 느낌이 아닐까 싶네요. 낮에 먹는 음식도 밤에 먹으면 또 다른 기분일 겁니다. 허전한 배를 채우는 야식 열전 <수고했으니까 오늘도 야식>. 궁극의 아로마 같은 야식. 그 맛과 냄새가 불러오는 소소한 추억은 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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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 -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순간에도
정희재 지음 / 갤리온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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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출간된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개정판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

 

"당신, 참 애썼다."로 시작하는 문장이 압권입니다. 사실 저는 서문에 나온 이 문장이 좋아 오히려 본문이 안 읽히는 부작용이 생길 정도였어요. 전체적으로 조곤조곤 말하는듯한 문체가 평온한 분위기를 만듭니다.

 

기억의 단편을 이야기하는 에세이여서 순서대로 읽기보다는 목차 보며 마음 끌리는 부분부터 읽었어요. 그러다 보니 그렇게 골라 읽은 소제목들이 바로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이구나 싶더라고요.

 

'왜 당신은 늘 괜찮다고 말하나요, 사람 때문에 마음이 다칠 때, 삶의 불친절에 대처하는 법, 한순간의 느낌에 속지 않기를, 난 네가 약한 모습을 보일 때도 참 좋더라, 삶이란 이토록 심플한 것, 살아 보니 행복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것, 단순하고 가볍게 너무 애쓰지 말고'...

 

 

 

괜찮아요, 됐어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면 첫 편부터 공감할 겁니다. 괜찮다며 버티다가 어느 순간 허물어질 수밖에 없을 때 어떤 방식으로 견뎌 낼까를 생각해 본 일은 없었습니다. 타인의 연민을 거부하게 하는 실체에 대한 작가의 물음에 생각이 많아졌어요. 상대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연습, 잘 받는 사람이 잘 줄 수도 있다는 조언을 작가 역시 들은 경험이 있기에 "괜찮아요"라며 거절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삶의 불친절에 대처하는 법 이야기에서는 감사의 두 단계에 관한 글이 인상 깊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서야 자신의 행복을 깨닫는 것을 넘어 어떤 비교 대상 없이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지극히 행복한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감사라는 것을요.

 

 

 

에세이는 작가의 이야기에 공감을 얼마큼 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극과 극인 것 같아요. 당시엔 별로였던 것도 세월이 흐른 후 공감하게 되는 이야기도 있고. 작가의 경험과 내 경험의 공통분모가 많을수록 책에 대한 애착도 커지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하고픈 말은 무엇일까. '감사'라는 단어를 꼽겠어요. 이런 일 저런 일 겪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감사하게 되고 자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 감사할 일이 전혀 없어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정희재 작가는 감사의 한끝을 붙잡고 있더라고요.

 

그녀의 말을 한번 더 되뇌어봅니다.

 

당신, 참 애썼다.
사느라, 살아 내느라,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
부디 당신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직 오지 않았기를 두 손 모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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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경제학 뒤집어 보기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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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혹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그들의 욕구 때문이다."

 

이것은 1776년 정치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경제학에 대한 현대적인 정의를 내린 문장입니다. 그렇다면 스테이크를 실제로 구운 것은 누구였을까요? 애덤 스미스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어머니가 매일 저녁 식사가 식탁에 오를 수 있도록 보살폈기 때문입니다. 부제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경제학 뒤집어보기로 짐작하듯  이 책은 여성과 경제학의 관계를 살펴봅니다. 왜 가정은 시장 원리에서 벗어나는가에 대한 답을 원한다면 읽어보세요.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이 일하러 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부인, 어머니, 혹은 누이들이 하루 종일 아이들을 돌보고, 청소하고, 음식 만들고, 빨래하고... 우리가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 경제입니다. 여성은 주류 경제학에 포함되지 않는 성입니다. 

 

주류 경제학 모델이 된 경제적 인간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욕구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경제적 인간의 특징은 여성이 아니라는 것. 이 책 전반에 걸쳐 경제학이 여성을 어떻게 무시해왔는지 적나라하게 꼬집습니다.

 

여성은 절대 남성만큼 이기적이도록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여성에게는 사랑을 지키는 역할을 주고 가족을 위한 활동은 경제적 번영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1800년대 이야기가 지금도 통용되고 있습니다. 남성이 노동한 결과는 측정할 수 있고 돈으로 환산할 수 있어도 여성의 노동은 결과가 보이지 않습니다. 직장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집안일을 돌봐줄 보모가 필요하다고 하면, 그 보모의 딸은 누가 돌보는가의 문제가 나오죠. 여성 사이의 불평등 문제로 확장됩니다.

 

남성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노동 시장에서 전진해야 하는 여성. 경제적 인간이 이상적인 모델인 양 그에 맞춰 살아야 합니다. 이럴 때 나오는 조언은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을 잡으라고 하는 말이죠. 그런데 저자는 이 구조를 아예 변화시킬 수 없냐고 반문합니다. 여성은 노동 시장에 진입했지만 남성은 그에 상응하는 정도로 집안일에 진입하지 않았습니다.

 

경제학은 사랑을 아끼고자 했습니다. 배려, 공감, 돌봄 등의 덕목들은 경제적 분석에서 밀려난 겁니다. 그 결과 사려 깊음, 공감, 돌봄 등에 관한 논의에서 돈과 부에 관한 이야기가 빠지게 됩니다.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남성에 비해 훨씬 열등한 이유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희생과 돌봄의 대명사로 알려진 나이팅게일이 실제로는 간호사들이 정당한 보수를 받게 하려고 평생을 싸웠다는군요. 그 부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듯합니다.

 

소득불평등 문제가 요즘 화두죠. 신자유주의 사상으로 경쟁에 초점을 맞추고, 노동자 대신 자신의 인적 자본에 투자하는 경제적 인간 개념이 들어서면서 생긴 결과입니다. 게다가 우리 삶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투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되어버렸습니다.

 

 

 

경제학이란 퍼즐에서 빠진 조각은 애덤 스미스의 어머니 마거릿 더글러스입니다. 애덤 스미스가 근본적인 무언가를 생략해버린 실수는 현재 너무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여성에게 부과한 특정활동, 여성으로 태어났기에 그 일을 해야 한다는 믿음. 그러다가 이런 활동은 경제적 의미가 없다는 경제 이론을 만들어내며 우리 사회를 주도하는 공식적인 세계관으로 자리 잡혔습니다.

 

경제적 불평등은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된다는 카트리네 마르살 저자. 페미니즘 책인 줄로만 알고 읽기 시작했다가 경제학의 역사가 장황하게 나와 당황하긴 했습니다. 특정한 경제학적 시각이 우리의 가치관을 어떻게 장악했는지, 세계 경제와 우리 자신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이야기합니다. 애덤 스미스의 저녁이 어떻게 식탁에 올라왔는지, 그것이 경제학적으로 왜 중요한지를 봐야 한다는 것을 제기해 신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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