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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나는 현대미술 - 21세기가 사랑한 예술가들
김슬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9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경매장에서 수백억, SNS에서 수백만 좋아요. 『탐나는 현대미술』이 들려주는 21세기 예술가 24인의 뜨거운 무대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도대체 이게 왜 예술일까라는 물음을 떠올리기 일쑤인 현대미술. 김슬기 미술 전문기자의 『탐나는 현대미술』은 이런 난감함을 풀어주는 친절한 길잡이입니다. 현장에서 미술을 취재해 온 저자의 눈은 대중과 전문가, 컬렉터와 아트페어를 연결하는 해설자 역할을 합니다.
이 책은 현존하는 가장 비싼 작품과 작가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술을 미학적 감상에 머물지 않고 사회, 자본, 그리고 시대의 욕망이 교차하는 장으로 풀어냅니다.

1부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초현대미술 작가들을 소개합니다. 지금, 여기의 예술가들 이야기입니다. 스위스 로잔의 한 소년은 경찰을 피해 도망 다니며 철길 위에 밤마다 그래피티를 그리고, 아침이면 지워져 사라지는 그림 앞에서 허무와 자유를 동시에 느꼈습니다. 그 소년이 바로 니콜라스 파티입니다.
그는 120미터짜리 풍경화 ‘일출, 일몰’을 워싱턴 D.C. 허시혼 미술관에 전시하는 작가로 성장했습니다. 그의 예술적 뿌리는 거리였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 불순함이 그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만들어냈고, 결국 미술 시장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비플의 등장도 충격적입니다. NFT를 통해 6,930만 달러라는 경매 역사상 3번째로 높은 가격을 기록한 그는 전통적인 미술계의 모든 규칙을 뒤집었습니다. 미술 시장이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지, 그리고 새로운 기술이 예술의 정의 자체를 바꾸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 외에 고전 회화의 장식성과 오늘의 시각문화를 오묘하게 접합한 플로라 유크노비치, 짧은 생애 속에서 강렬한 흔적을 남긴 매튜 웡, 아시아 아트페어에서 가장 각광받는 작가 중 한 명인 헤르난 바스 등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21세기는 여성 아티스트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시대입니다. 캐롤라인 워커는 일하는 현대 여성의 모습을 캔버스에 담아내며 시대정신을 반영했고, 록카쿠 아야코는 즉흥적인 붓질로 그려낸 소녀들의 세계를 통해 가와이 예술의 또 다른 장을 열었습니다.

2부에서는 컬렉터가 사랑한 20세기 거장들을 소개합니다. 이미 시장에서 확고한 지위를 구축한 거장들입니다. 현대미술의 제왕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회화는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유로움으로 세계 미술시장을 지배해왔습니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비싼 그림이 아니라, 현대미술의 사유를 압축한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온 생존 작가 중 경매 낙찰 최고가 기록을 가진 데이비드 호크니는 아이패드를 이용한 드로잉으로 세대 간 미술 경험을 잇고, 론 뮤익은 실물 크기를 뛰어넘는 조각으로 인간 존재의 본질을 극적으로 드러냅니다. 호크니의 색채와 뮤익의 사실적 조형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확장하는 미학을 구현합니다.
한국에서도 전시가 시작된 루이즈 부르주아는 개인적 트라우마를 예술 언어로 치환해낸 상징적 인물입니다. 그녀의 거대한 거미 조각은 보호와 위협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담으며, 현대미술이 개인의 상처를 어떻게 집단적 경험으로 변환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조지 콘도의 분열된 얼굴, 나라 요시토모의 순수하면서도 저항적인 소녀 캐릭터는 SNS 세대에게 특히 강렬한 울림을 줍니다. 미술관을 넘어 굿즈와 패션으로까지 확장되는 이들의 이미지 전략은 현대미술이 어떻게 문화의 아이콘으로 소비되는지 잘 보여줍니다.
43점에 달하는 현대미술 작품들을 수록하여 읽는 재미와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이 책에 실은 그림들의 가격을 한화로 추산하면 5000억 원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 자체가 하나의 가상 갤러리입니다.
『탐나는 현대미술』은 동시대의 욕망과 두려움, 자유와 불안을 동시에 담아내는 그릇 역할을 하는 현대미술의 가치를 잘 보여줍니다. 김슬기 기자는 동시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시장의 맥락과 함께 풀어내면서 현대미술의 난해함을 매혹으로 전환시킵니다.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입니다. 예술의 상품화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작동하는 원리를 이해하려는 것입니다.
미술 시장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작품을 보는 눈도 달라집니다. 『탐나는 현대미술』을 읽으며 왜 이 작품이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지, 어떤 요소들이 작가의 명성을 만드는지 알게 되면서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