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이꽃님 작가는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로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이후 『죽이고 싶은 아이 1, 2』,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등으로 청소년 문학계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신작 『내가 없던 어느 밤에』는 무려 10년간 가슴에 품고만 있던 이야기를 마침내 세상에 내놓은 작품입니다. 초판 한정 스페셜 더블커버 에디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작가 친필 인쇄 엽서도 있습니다.
작가는 “10년이란 세월을 가슴에 품고 있기만 했던 건 마음이 아파서였고, 슬퍼서였다”라고 고백합니다. 이런 무게감은 문장의 결에 녹아 있습니다. 과연 어떤 이야기이기에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망설이게 했을까요?

더는 돌아가지 않는 관람차, 조명도 음악도 없이 멈춰 버린 회전목마, 바람에 삐거덕대는 녹슨 놀이 기구들. 소설의 무대는 3년 전 문을 닫은 놀이공원 판타지아를 품은 지방 소도시입니다.
한때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을 공간이 이제는 음습하고 황폐한 폐허로 변해버린 모습은 그 자체로 이미 상징성을 지닙니다. 놀이공원의 폐허는 곧 주인공이 지닌 내면의 상처와 상실감을 투영하는 공간으로 기능합니다.
고등학생 소녀의 실종 사건을 계기로 10년 전 묻어두었던 비밀이 하나씩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본격적인 미스터리의 양상을 띠며 우리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하지만 이 미스터리는 사건 해결에만 집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내면, 특히 청소년들이 겪는 복잡하고 아픈 감정들을 세심하게 포착해냅니다.
소설 속 삼총사 가을, 유경, 균은 각자 말하기 어려운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청소년이 겪는 고립감과 소통의 단절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꽃님 작가는 실종의 서사를 통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다들 그냥 이렇게 어른이 된 걸까. 그렇게 어른이 되어도 되는 건가? 그래서 세상이 엉망진창인 건가. 진짜 어른도 아닌 사람들이 어른인 척 살고 있어서”라고 말이지요.
나이만 먹고 진정한 성숙에는 이르지 못한 기성세대에 대한 청소년들의 실망과 분노가 담겨 있습니다. 동시에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비극적 사건을 출발점으로 하지만, 희망의 가능성을 놓지 않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피상적인 위로나 성급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작가가 트라우마를 다루는 방식이 인상 깊었습니다.
『내가 없던 어느 밤에』에서 놀이공원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시대정신의 은유로 읽힙니다. 한때 지역사회를 지탱하던 판타지아가 폐허가 되면서 소도시는 불안과 무기력에 빠집니다.
청소년기의 심리적 공백만이 아니라 공동체 붕괴와 지역 소멸이라는 사회적 문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놀이공원의 불 꺼진 관람차는 곧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을 은유합니다.
미스터리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상실과 불안에 잠식된 시대를 기록하는 문학입니다. 이꽃님 작가는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꾼이 아니라, 동시대 문제를 응시하는 청소년 문학의 증언자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세월이 약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속엔 어쩌면 무책임한 낙관이 숨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시간이 흐르면 상처가 자연히 옅어질 것이라는 기대, 혹은 불편한 문제를 더 이상 들추지 않고 덮어두고 싶은 심리가 반영되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10년이 치유의 시간이 아니라 죄책감과 두려움이 고여 있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여전히 매일의 삶 속에서 되풀이되는 현재형의 고통으로 말입니다. 『내가 없던 어느 밤에』는 우리 사회가 아이들의 목소리에 얼마나 무심했는지, 또 어른들이 얼마나 쉽게 상처를 잊으려 했는지를 되묻는 작품입니다.
작가는 사건을 단순히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말하는 행위 자체가 치유와 성장의 출발이라고 말입니다. “차마 자라지 못한 아이들이 끝내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 작품이라는 점은 공감을 넘어 책임의 감각을 불러옵니다.
어른이 되지 못한 사회에서 청소년이 어떤 방식으로 자기 서사를 찾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내가 없던 어느 밤에』. 어른 독자에게도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어른이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