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대동여지도 - 한글로 쉽게 읽고 활용하는 <대동여지도> (최신 개정판)
김정호 지도, 최선웅 도편, 민병준 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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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조선 후기 지도 제작자 고산자(古山子) 김정호. 그는 한 세기 앞서 빅데이터의 개념을 몸소 실천한 학자였습니다. 평생을 바쳐 전국을 답사하며 산줄기, 물줄기, 고을과 도로, 나루터와 봉수대까지 꼼꼼히 기록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1861년 철종 때 완성된 『대동여지도』입니다.


가로 3.8m, 세로 6.7m에 달하는 거대한 전도(全圖)였지만, 접으면 책처럼 휴대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더라도 디자인과 기능 면에서 압도적인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축척, 거리 계산, 기호 사용 등 실용적인 지리정보 시스템(GIS)의 원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위대한 지도를 우리가 직접 읽어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한자로 빼곡히 적힌 지명, 현대와는 달라진 표기법, 흑백의 제한된 정보가 장벽처럼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진선출판사의 『한글 대동여지도』는 그 어려움을 돌파합니다.


한국 지도 제작의 최전선에서 활동해 온 지도학자 최선웅과 백두대간을 종주한 산악·답사 전문 기자 출신 민병준 저자가 손을 맞잡고 펴낸 성과물 『한글 대동여지도』. 두 전문가의 합작은 지식과 체험이 절묘하게 결합된 결과입니다.


『한글 대동여지도』는 전국 11,677개 지명을 한글로 병기했습니다. 낯설었던 고을 이름이 지금의 어느 지역에 해당하는지 바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각 지도마다 해당 지역의 지형과 인문지리를 간략히 개관해 두었기 때문에, 지도만 펼쳐도 국토가 입체적으로 그려집니다.


『한글 대동여지도』는 원본을 65%로 축소해 만들되, 김정호의 원래 의도를 최대한 살렸습니다. 그리고 원본의 불완전성을 보완하기도 했습니다. 『대동여지도』에는 빠져 있던 독도(우산도)와 거문도(삼도)를 추가 표기했으며, 일부 잘못된 지명도 교정했습니다.


지도란 과거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메시지라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김정호가 19세기 국토의 효율적 이해를 위해 지도를 제작했다면, 『한글 대동여지도』는 역사적 유산을 현대적 의식으로 재해석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도성도, 경조오부도로 시작해 백두산에서 제주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모든 구석을 훑을 수 있습니다. 각 도엽은 미시적 세부를 보여주면서도, 전체를 연결했을 때 거대한 그림이 완성됩니다. 마치 퍼즐을 맞추는 듯한 쾌감이 동반됩니다.


조선 시대 교통로의 배치가 흥미로웠습니다. 봉수와 역참의 위치를 보면서 통신망이 어떻게 이어졌는지, 군사적 요충지가 어디였는지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오늘날 고속도로망이나 철도 노선과 비교해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줍니다.





『한글 대동여지도』는 국토를 어떻게 기억하고 해석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책입니다. 디지털 지도 앱으로 손쉽게 길을 찾는 세상에서 왜 종이 지도를 다시 들춰야 할까요?


종이 지도는 단순한 길찾기가 아니라 공간의 총체성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길 위에 있는 나를 넘어, 국토 전체 속에 내 자리를 자각하게 합니다. 김정호가 원했던 모두가 국토를 이해하는 시대, 『한글 대동여지도』가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이 책의 독창성은 제책 방식에 있습니다. 원본 『대동여지도』와 동일하게 22첩, 122도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 장 한 장 분리하여 이어 붙이고, 병풍처럼 접어 펼칠 수 있는 겁니다.


게다가 모든 도엽을 연결하면 가로 2.44m, 세로 4.14m의 대형 전도가 완성됩니다. 집 안 거실 벽을 가득 메우는 빅 월맵이라 할 만하지요. 아이들과 함께 우리 고장의 위치를 찾아보고, 조선 시대 도로망을 따라 여행 코스를 상상하는 순간, 지도는 살아 있는 역사 교재로 변합니다.





거기에 더해서 색연필이나 수채 물감으로 산과 강, 도로와 경계를 칠하면서 나만의 대동여지도를 만들 수 있습니다. 목판 인쇄본이라 흑백 지도였던 대동여지도를 당시에도 용도에 따라 직접 채색해서 활용했다고 합니다. 컬러링북처럼 색칠을 하다 보면 평면적으로 보이던 지도가 입체적으로 살아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대동여지도에 표시된 방점을 통해 거리를 계산하는 방법, 방안표를 이용한 축척 이해, 각종 기호의 의미 파악 등을 통해 지도 읽기의 기초도 탄탄히 다질 수 있습니다. 특히 한양 성곽 안의 모습을 담은 도성도라든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160년 전의 지도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정보를 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습니다. 스마트폰 지도 앱에 의존하다 보면 전체적인 지리 구조를 파악하기 어려운데 『한글 대동여지도』를 통해 우리나라의 산줄기와 물줄기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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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우정 -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된다
김달님 지음 / 수오서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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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곁에서 성장한 한 사람이, 떠나보낸 두 존재의 빈자리를 안고 시작한 본격적인 노년 탐구의 여정. 김달님 작가의 에세이 『뜻밖의 우정: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된다』.


작가는 오랫동안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어로 활동했지만 이번에는 궁금해하는 마음만을 들고 노인들을 마주했습니다. 누군가는 "들려줄 이야기가 없다"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들의 삶은 소소한 순간마다 놀라운 반짝임을 품고 있었습니다.


총 3부로 구성한 『뜻밖의 우정』은 우리가 애써 외면하려는 노년이라는 시간을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1부에서 개인의 사연과 특유의 개성을 기록하고, 2부에서 노인의 삶을 단순히 타인의 것이 아니라 다가올 나 자신의 모습으로 비추어냅니다. 마지막 3부는 세대와 시간을 뛰어넘는 공감과 우정을 가능하게 하는 태도를 이야기합니다.





누구에게나 삶은 유한하고,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되지만, 실제 일상에서 노년은 저만치 떨어져 있는 남의 이야기로 취급되곤 합니다. 김달님 작가는 그 거리를 좁히려 합니다.


예순일곱 살에 검도 6단을 취득한 순자 씨, 여든에도 랩을 연습하는 정열 씨의 이야기는 기존의 노인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묘한 전율을 남깁니다. 여기서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나는 내 나이에 맞는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스스로를 나이로 제한하고 있지는 않은가라고 말이죠.


일흔이 넘어 만난 홍자 씨와 옥순 씨의 이야기는 우정이 어떻게 나이를 넘어서는지를 보여줍니다. 겨우 밥솥이 똑같다는 이유로 한바탕 소리 내서 웃는 것처럼, 노년에도 웃음과 연대가 여전히 생성될 수 있다는 희망을 들려줍니다.


삶을 기록한다는 건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이런 미세한 순간에 귀 기울이는 일임을 깨닫게 됩니다. 게다가 노인의 삶을 기록하는 일이 곧 나의 미래를 비추는 일이 된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여든의 윤자 씨는 “작가님…. 이제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이 질문은 세대를 가로질러 울림을 남깁니다. 누구도 완벽한 정답을 내놓을 수 없는 질문, 그러나 서로에게 건네는 것만으로 의미가 되는 질문입니다.


작가는 나이 듦을 억울한 일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노인들의 지혜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삶의 끝을 준비하는 성숙한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남의 이야기가 곧 나의 예행연습이 됩니다.





작가는 노년의 삶을 단순히 관찰하는 것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서로를 바라보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작가가 말하는 진정한 우정은 그저 동년배끼리의 친밀함이 아닌, 세대와 경험의 차이를 뛰어넘는 더욱 보편적인 인간관계의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나이가 들면 지금 내가 이걸 하지 않으면 이제는 영원히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는 한 노인의 고백이 울림을 줍니다. 청춘의 무모함과 노년의 과감함이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습니다. 시간이 한정적이라는 사실은 새로운 용기의 원천이 됩니다.


무엇보다 작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의 가치를 일깨워 줍니다. 너무 사소해서,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비로소 꺼낼 수 있는 이야기들. 노년뿐 아니라 모든 세대에게 해당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SNS에 올리는 사소한 기록조차도 사실은 살아가고 있는 나를 증명하려는 행위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노년을 부담으로 여기거나,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뜻밖의 우정』은 노년 세대를 특별히 영웅화하거나, 반대로 무력하게만 그리지 않습니다. 대신 각자의 얼굴을 가진 개별적 존재로 존중하며 그 구체적인 삶 속에서 우정을 발견합니다.


노년의 삶이 결코 쇠퇴나 포기가 아닌, 오히려 더욱 순수하고 진정한 자기다움의 완성 과정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과 노년이라는 지평을 통해 삶 전체를 바라보게 하는 『뜻밖의 우정』. 단순히 노인에 관한 책이 아니라, 노인이 될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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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든 오사카·간사이 교토·고베·나라 2026-2027 에이든 여행지도
타블라라사 편집부.이정기 지음 / 타블라라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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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864페이지 가득 찬 미친 디테일, 에이든 오사카·간사이 교토·고베·나라(2026-2027). 기존 에이든 지도와 달리 이번엔 차원이 다른 두께를 자랑하는 여행 가이드북입니다.


150장이 넘는 세밀한 지도와 2,000여 개 여행지, 음식점, 카페, 드럭스토어 등을 망라한 정보가 담겨 있어 간사이 여행의 데이터베이스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mp3 오디오 가이드까지 있으니 색다른 경험을 해봅니다.


스마트폰의 신호가 닿지 않는 순간, 우리는 여전히 아날로그의 단단한 신뢰를 찾게 됩니다. 이번 가이드북은 정보를 충분히, 아낌없이 담자는 타블라라사의 가치를 오롯이 보여줍니다.





에이든 오사카·간사이 교토·고베·나라(2026-2027)는 일본 제2의 도시이자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이 있는 오사카, 일본 천년 수도 교토, 일본 3대 야경 도시 중 하나인 고베, 고대 일본의 심장 나라까지 일본인의 뿌리가 강하게 느껴지는 간사이 지역을 다룹니다.


책을 펼친 순간 마치 게임 속 맵을 열어보는 듯 여행 계획이 시각적으로 정리됩니다. 에이든 여행지도의 퀄리티가 고스란히 가이드북에 담겼습니다. 관광객이 실제 이동 동선을 따라갈 수 있도록 핵심과 디테일을 모두 잘 잡은 지도입니다. 구매자라면 주요 핵심 지도들은 PDF 맵북으로도 받을 수 있습니다.


간사이 지역을 테마로 읽어줍니다. 벚꽃 & 단풍 스팟, 일본 3대 편의점 간식 비교, 드럭스토어 쇼핑 추천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카페, 지역별 빵지순례 등 현지 생활과 취향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묶어냅니다. 쇼핑, 먹거리, 카페, 예술 공간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경험으로 엮어줍니다.


일본 여행의 가장 큰 난관 중 하나는 교통패스 선택입니다. 간사이 지역만 해도 주유패스, E패스, 각종 지하철·전철 패스 등 초보 여행자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이 책은 패스별 비교표를 정리해 무엇을 사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줍니다.


애플페이를 활용한 IC카드 발급법까지 최신 정보가 담겨 있어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도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여행 중 헤매는 시간을 줄이고, 목적지에서 보내는 시간을 극대화하는 것이야말로 가이드북의 존재 이유임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도톤보리의 네온사인, 거리를 채운 타코야키와 오코노미야키 냄새, 그리고 구이다오레(먹다가 망한다)라는 말까지 탄생시킨 미식 문화는 오사카를 대표하는 얼굴입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이나 오사카성 같은 명소는 가족 단위 여행객부터 젊은 세대까지 모두를 사로잡습니다.


2000곳의 여행지와 음식점, 압도적 정보의 향연 그 자체입니다. 우메다 공중정원 설명에서는 360도 개방된 루프탑에서 오사카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라는 기본 정보와 함께 주유패스 소지자는 09:30~15:00 사이 무료 입장 가능이라는 팁까지 실려 있습니다. 여행자가 실제로 필요로 하는 모든 정보를 한 번에 얻을 수 있게 합니다.


천년 고도 교토는 일본 전통문화의 정수를 간직한 도시입니다. 금각사와 은각사, 기요미즈데라와 같은 사찰은 물론 기온 거리를 거닐다 보면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감각을 줍니다.


봄 벚꽃과 가을 단풍철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로 북적입니다. 다도, 정원, 마이코 문화까지 일본의 정신성과 미학이 일상에 녹아 있어 화려한 대도시 오사카와는 다른 차분한 매력을 선사합니다.





고베는 개항 이후 서양 문물이 들어오며 일본 속의 국제 도시로 성장한 항구도시입니다. 이진칸 거리의 서양식 저택, 롯코산에서 내려다보는 일본 3대 야경 그리고 전 세계 미식가들이 찾는 고베 규는 이 도시만의 상징적인 자산입니다.


일본 전통과 서양 문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고베의 매력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여행 동선을 세울 수 있도록 도움 주는 가이드북입니다.


나라에서는 일본 불교문화와 고대사의 숨결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나라 공원에 자유롭게 어슬렁거리는 사슴들은 이 지역의 특별한 풍경을 완성합니다. 고즈넉하고 목가적인 분위기 속에서 고대 수도의 위엄과 일상의 평온이 공존하는 것 나라의 매력을 놓칠 수 없습니다.


에이든 오사카·간사이 교토·고베·나라(2026-2027) 가이드북은 쇼핑과 문화, 생활까지 아우르는 종합 가이드 역할을 합니다. 일본에서 사면 더 저렴한 브랜드, 힙한 편집샵 체인 등의 정보는 젊은 여행자들에게 특히 유용합니다.


드럭스토어 추천템 정복, 100엔·300엔샵 가이드, 캐릭터 굿즈샵 총정리 등의 코너는 일본 여행의 묘미인 쇼핑을 즐길 수 있게 도와줍니다. 실제 여행 동선과 연결되어 있어 효율적인 여행 계획 세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스마트폰이 따라올 수 없는 깊이와 종이책만이 줄 수 있는 안정감과 아카이브적 가치가 있습니다. 압도적 두께의 가이드북을 보는 이유, 바로 그 무게가 불안을 덜어내는 심리적 보험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도 여행 계획을 세울 땐 무조건 두꺼운 종이책 형태의 가이드북을 참고해야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얇은 에이든 지도는 여행을 할 때 챙겨가기 좋고요.


직접 걸으며, 묻고, 기록한 길을 새겨 넣은 타블라라사의 미친 디테일을 만나는 시간 『에이든 오사카·간사이 교토·고베·나라(2026-2027)』. 인터넷 정보의 파편화에 지친 여행자라면 에이든 여행 가이드북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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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 덤핑 - 생각 정리의 기술
닉 트렌턴 지음, 김보미 옮김 / 넥서스BIZ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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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하루 동안의 사소한 대화나 지나간 장면을 곱씹느라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 왜 그렇게 말했을까? 혹시 오해하지 않았을까? 같은 질문이 좀처럼 멈추지 않습니다. 24시간 가동되는 공장처럼 머릿속에 쌓인 생각들이 널브러져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브레인 덤핑입니다.


『생각 중독』으로 전 세계적 주목을 받은 닉 트렌턴의 신작 『브레인 덤핑』. 생각 정리의 기술 실천판입니다. 경제학과 행동심리학을 공부하고 라이프 코치로 활동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철학적 성찰과 심리학적 기법을 교차시킵니다.


스토아 철학의 핵심 원리인 통제의 이분법을 끌어옵니다.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태도는 생각 과잉을 멈추는 첫걸음입니다. 불필요한 정신적 에너지 소모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부정적 감정에 휘둘리지 않도록 비판단적 태도도 강조합니다. 심리적 거리두기는 부정적인 경험을 내려놓는 능력을 기르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갈등이나 강렬한 감정의 원인으로부터 일정한 심리적 간격을 두면, 그 상황을 더 성찰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략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쿨함'의 심리학적 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의 오해나 인간관계의 갈등을 그대로 곱씹는 대신, 그 상황을 관찰자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감정의 격랑에 휩쓸리지 않고 전략적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끊어내려면 머릿속 내면의 비판자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내면의 비판자는 불안과 자기 의심의 지속적인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다행인 점은 내면의 비판자를 인식하고 맞서기 시작하면, 그 목소리를 잠재우고 더 자신감 있고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완벽주의를 내려놓고 건강한 탁월주의로 전환하라는 제안이 흥미롭습니다. 완벽주의는 100점이 아니면 0점이라고 생각하는 이분법적 사고인 반면, 탁월주의는 지속적인 개선과 성장에 집중합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목표로 한다면, 긴장은 줄고 집중은 높아집니다. 집착을 버리는 무집착의 개념도 주목할 만합니다. 무집착은 무관심이 아니라 결과에 대한 과도한 애착을 내려놓고 과정 자체에 몰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디어를 의식적으로 소비하는 습관 역시 부정적인 사고의 고리를 끊는 방법으로 제시됩니다. 끊임없는 정보 소비가 불안의 원천임을 명확히 짚어줍니다.





브레인 덤핑의 핵심 기법은 성장 마인드셋을 바탕으로 합니다. 브레인 덤핑은 해야 할 일들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해야 한다고 느끼지만 좀처럼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일들을 내려놓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우선순위가 분명해지면 진짜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고 그만큼 생산성은 높아지며 마음도 한결 평온해집니다.


브레인 덤핑은 머릿속에 있는 모든 생각들을 일단 종이나 디지털 기기에 쏟아내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단순히 메모하기와는 다릅니다. 일종의 심리적 해방 의식입니다. 머릿속의 해야 할 일들을 종이 위에 덤핑하듯 쏟아내는 순간, 더 이상 그 잡음들은 무의식 속에서 우리를 괴롭히지 않습니다.


시험 준비 중인 학생이든, 프로젝트 마감에 시달리는 직장인이든, 브레인 덤핑을 활용하면 당장 실행할 과제와 뒤로 미룰 수 있는 일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브레인 덤핑은 생산성 기술의 성격을 넘어 사고 과부하에서 벗어나는 치유적 과정입니다.


저자는 우리의 내적 서사가 얼마나 강력한 족쇄인지 보여줍니다. '그럴 줄 알았어. 나는 늘 이런 식으로 망쳐.' 같은 생각 말입니다. 부정적 자기서사는 현실을 고정시키고 가능성을 차단합니다.


『브레인 덤핑』은 이를 수정하기 위해 외재화 치료 접근법을 소개합니다. 문제를 개인의 정체성과 분리시켜 바라보는 방법입니다. '나는 우울한 사람이야' 대신 '나는 지금 우울감을 경험하고 있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언어적 변화만으로도 문제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상처를 이겨내는 법에 대해서도 다룹니다. 인간관계는 우리의 정신 건강에 결정적 영향을 끼칩니다. 살면서 한 번쯤은 우리를 지치게 하고 숨 막히게 만들며 때로는 깊은 상처를 주는 '해로운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이들을 인식하고 건강한 경계를 설정하는 것은 삶의 질을 크게 높이고, 더 건강하고 긍정적인 삶으로 나아가는 길을 닦아줍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단순히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조망수용을 통해 원망을 내려놓는 성숙한 태도입니다. 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해방의 과정임을 일깨웁니다. 상처를 넘어서 관계의 건강한 거리를 재설정하는 법은 불안 사회에서 누구나 적용 가능한 실용적 지혜입니다.


생각 중독에 갇힌 현대인에게 머릿속 공간 확보라는 심리적 혁신법을 알려주는 『브레인 덤핑』. 각 장마다 브레인 덤핑 워크시트부터 내면의 비판자 대화법, 감정 거리두기 연습까지 심리 상담사가 옆에서 코칭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생각을 멈추려는 생각조차 내려놓아야 한다는 역설적 메시지가 여운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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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그림으로 피어나다 - 다빈치에서 모네까지, 행복과 위로를 담아낸 화가들의 정원
이다(윤성희) 지음 / 슬:B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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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윤성희) 작가가 오랜 시간 이탈리아에서 미술품을 복원하며 쌓아온 지식과 감각을 바탕으로 화가들이 꽃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 속에 담긴 내면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풀어낸 미술 에세이 『꽃, 그림으로 피어나다』. 꽃이라는 매개체가 중심에 놓여 감각적이고 서정적인 색채를 띱니다.


꽃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짧고 덧없습니다. 피고 지는 운명 안에서 우리는 인생을 비춰 보게 됩니다. 이다 작가는 꽃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상처, 치유와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이야기는 정원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정원은 신이 인간에게 남긴 또 하나의 선물이라는 말처럼 중세의 정원은 신과 인간, 자연이 공존하는 세계의 축소판이었습니다. 여기에서 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맺는 관계를 드러내는 상징이었습니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르네상스 정원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작품 「봄(Primavera)」의 꽃들은 계절의 풍요를 알리는 소재를 넘어 인간의 이상과 욕망을 꽃잎에 새겨 넣었습니다. 이다 작가는 보티첼리의 붓끝에서 피어난 꽃들을 읽어내며 르네상스가 꽃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인간의 탄생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어서 예술가들의 삶 속에서 꽃이 어떤 위로와 치유의 언어로 사용되었는지 탐구합니다.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 속 꽃은 평생 겪어야 했던 육체적 고통과 내면의 상처가 꽃과 얽히며 강렬한 생명력으로 다시 피어납니다. 꽃은 그녀에게 고통을 덮는 가면이자, 동시에 존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불꽃이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꽃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는 꽃을 향한 집착과 애정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모든 순간의 상처를 아름답게 기억하기 위해 고흐는 꽃을 그렸고, 우리는 그 그림을 통해 여전히 그의 영혼과 대화하게 됩니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은 상실과 치유의 시학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떠나보낸 뒤, 모네는 정원 연못 위 수련을 그렸습니다. 물 위에 떠 있는 꽃잎은 부유하는 듯 보이지만, 뿌리는 깊은 진흙에 닿아 있습니다. 모네는 그 모순적 아름다움 속에서 삶의 균형을 배워갔습니다.


화가들의 시선을 통해 꽃과 식물이 우리의 일상에 어떤 의미를 더해주는지 탐구가 이어집니다. 만능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식물학자로서의 눈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정밀한 꽃 드로잉은 자연을 관찰하는 과학자의 시선과 예술가의 감각이 절묘하게 결합된 결과물이었습니다.


존 에버렛 밀레이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오필리아」 속 꽃들은 문학과 회화가 만나는 지점에서 특별한 힘을 발휘합니다. 햄릿 속 비극의 여인 오필리아가 떠내려가는 강물 위에 흩뿌려진 꽃들은 그녀의 운명을 상징하는 동시에, 보는 이의 감정을 움직이는 장치가 됩니다. 이다 작가는 이런 장면을 통해 문학과 예술 속 꽃이 어떻게 인간의 감정과 결합되는지 설명합니다.


알폰스 무하의 봄, 클림트의 여름 정원, 레비탄의 황금 가을, 프리드리히의 고독한 겨울은 모두 인간의 삶과 계절의 흐름을 겹쳐 놓습니다. 『꽃, 그림으로 피어나다』는 계절을 따라 변해가는 꽃과 자연을 통해 인생의 주기를 비춥니다.





이다 작가는 계절의 꽃을 따라가며 봄에 피는 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시들어 떨어지는 꽃잎에도 삶의 깊이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계절의 변화를 따라 사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자연에게서 배워야 할 가장 큰 지혜라는 점을 깨닫게 합니다.


화가들의 그림 속 꽃을 통해 예술을 감상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림은 인간의 욕망, 상처, 치유, 희망을 함께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이다 작가는 미술 복원가로서의 전문성과 미술사가로서의 시선을 바탕으로 꽃과 인간의 삶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바쁜 일상에 치여 살다 보면 길가에 피어난 꽃 한 송이조차 지나치기 일쑤입니다. 『꽃, 그림으로 피어나다』는 예술이란 우리의 일상을 조금 더 빛나게 만들어주는 또 하나의 언어임을 깨닫게 됩니다. 꽃은 시들지만 그 순간까지도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도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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