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하포드의 세상을 바꾼 51가지 물건 - 새로운 것들은 어떻게 세계 경제를 변화시켰을까
팀 하포드 지음, 김태훈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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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언셀러 <경제학 콘서트>의 저자 팀 하포드가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로 돌아왔습니다. 경제학자이자 세계적인 경제전문지 <파이낸셜 타임스> 수석 칼럼니스트 팀 하포드의 이번 책은 현대 경제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색다른 시각으로 쉽게 풀어냈습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사소한 물건이지만 세상을 바꾼 발명품들을 통해서 말이죠.


<팀 하포드의 세상을 바꾼 51가지 물건>은 하나의 아이디어가 과학을 만나 마침내 물건으로 탄생한 여정 속에서 사회와 경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짚어줍니다.


그 첫 시작은 무시당하기 일쑤인 연필입니다. 푼돈으로 살 수 있는 연필처럼 언뜻 보기에 단순해 보이는 일상적인 물건들도 생산하는 과정이 얼마나 복잡한지 보여줍니다. 그저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하는 게 아닙니다.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연필을 만들어내는 경제를 설명합니다. 예기치 못한 연관성, 흥미로운 결과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쏟아집니다. 그 과정에서 연필 에세이, 벽돌의 역사 같은 덕후스러운 책들의 문장을 인용해 덕질의 깊은 역사를 만나는 뜻밖의 재미도 있었습니다.


세계 경제 규모가 커지는 데 영향 끼친 공장. 공장의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이라 알려진 것들 외에도 흥미진진한 지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한 곳에 밀집된 노동자들을 보며 노조, 정당 조직, 혁명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공장의 시작이 산업기밀이라는 것도 재밌습니다. 작업 과정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려고 했던 거죠.


자전거가 사회적 혁명과 제조업 혁명을 일으켰다? 넷플릭스와 스트리밍 서비스의 시작이 재봉틀이다? 인플루언서 협찬의 시작이 웨지우드사의 크림색 티세트에서 시작되었다? 네이버 검색 광고는 경매로부터 발전되었다?


세상을 바꾼 51가지 물건들은 사실 돈을 더 벌기 위한 이기적인 동기로 시작되었지만 사회적 진보를 끌어낸 것이 꽤 많습니다. 한마디로 대세가 되면 그로인한 파급효과가 상상 이상의 것을 초래한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1795년 프랑스 정부는 식품 보존 수단을 발명하는 대가로 1만 2,000프랑의 상금을 내걸었습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 침공을 시작하려던 시기였죠. 슬슬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을까요. 바로 통조림입니다. 통조림 외에도 GPS, 인터넷의 효시인 아파넷 같은 것들은 군사적 필요가 경제를 바꿀 혁신을 촉진한 사례입니다. 캔 식품이 나왔을 무렵엔 냉장고가 발명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식단을 넓히고 영양 상태를 개선했다고 합니다. 요즘도 재난 대비 귀중한 생필품을 챙길 때 통조림이 빠질 수 없죠.


옛날엔 바느질로 셔츠 한 장을 만드는 데 14시간이 걸렸습니다. 대다수의 아내와 딸들이 바느질을 했습니다. "바쁜 손가락과 아무 생각 없는 머리"라는 문장은 여성의 지위를 가늠하게 합니다. 재봉틀이 만들어졌을 때도 "여자들이 입을 다물게 만드는 유일한 일을 없애려고 하는군요."라는 말로 설명됩니다. 그 말을 한 사람이 재봉틀의 대명사 싱어의 아이작 메릿 싱어라는 게 우습지만요. 재봉틀과 관련해서는 여성 혐오 문제뿐만 아니라 렌털 서비스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볼 수 있습니다.


대체성을 해결하는 열쇠에 뛰어든 이들의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제조 공정을 자동화하는 기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제조 라인을 훨씬 빠르고, 보다 예측 가능, 보다 자동화한 시스템의 아이디어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비하인드스토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소위 '미국식 제조 시스템'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현대 제조 시스템의 초기 형태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연필, 자전거, 경매, 재봉틀, 산타클로스, 신용 카드, 블록체인, CCTV, '좋아요' 버튼, 연금, 챗봇 등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꾼 발명품들의 이야기 <팀 하포드의 세상을 바꾼 51가지 물건>. 물건 탄생의 비화 속에 숨은 영향력을 짚어줍니다. 어떤 아이디어는 아무리 좋아도 기술이 따라잡을 때까지 그저 기다려야 하기도 했지만, 뒷세대의 거듭된 혁신의 결과가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입니다. 생활 속 경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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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아이슬란드 - 2021-2022 최신판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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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전문가의 믿고 보는 가이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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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아이슬란드 - 2021-2022 최신판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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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 빙하, 호수 천국이라 자연으로부터 힐링 받을 수 있는 아이슬란드. 날씨가 부쩍 더워져서인지 아이슬란드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벌써 시원해지는 기분입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왕좌의 게임, 인터스텔라 등 촬영지로 유명한 아이슬란드는 <꽃보다 청춘> 방송 덕분에 우리에게 널리 알려졌습니다. 아이슬란드 정통 가이드북 <해시태그 아이슬란드는>는 수없이 아이슬란드 구석구석을 누빈 여행작가의 땀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여름이 성수기이지만 아이슬란드의 겨울을 안전하게 맘껏 즐길 수 있는 코스도 알차게 소개합니다. 유럽여행 중 단기 여행 일정부터 곳곳을 누비는 13박 14일 일정 등 계절별, 기간별 추천코스가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도시 간의 여행이 아닌 이동거리가 더 중요한 아이슬란드에서 이동거리까지 꼼꼼히 표시되어 여행 계획 세우기 편하게 도와줍니다. 반지 모양의 링을 닮아 링로드라고 불리는 아이슬란드를 둘러싸고 있는 1번 도로를 따라가면서 여행할 수 있는 최적의 코스를 소개하니 그대로 따라가면 됩니다.


집을 빌려 이틀 머물 예정이었던 곳을 한 달 살기 여행으로 마음을 바꾸게 할 정도로 아이슬란드의 매력에 푹 빠진 작가처럼 뉴노멀 시대 여행은 한 달 살기와 같은 장기여행과 렌트카 여행이 대세일 겁니다. 겨울의 아이슬란드는 4시면 해가 져 많이 보러 다니는 여행을 할 수 없었지만, 긴 밤을 현지인들과 소통하기도 하고 혼자만의 꿀같은 시간을 보내며 힐링 여행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한 캠핑여행 정보와 놓치기 힘든 아이슬란드 구석구석을 소개합니다.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서는 도보, 자전거, 관광 3인승 바이크와 세그웨이 등 다양한 방법으로 여행할 수 있다고 하네요. 도보 여행하기 좋은 곳이라 현지를 직접 걷는듯한 세심한 정보가 나와 있습니다. 현지인들의 핫한 카페도 소개하고 있어 로컬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온천의 대명사가 된 블루라군은 외계행성에 온 느낌을 받는 곳입니다. 몸과 마음의 피로를 다 풀고 갈 수 있는 장소랍니다. 세계인의 버킷리스트 10에 포함되면서 아이슬란드의 상징적인 여행지가 되었습니다. 그 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싱벨리어 국립공원, 마그마에 의해 데워진 물이 분출되는 게이시르, 계단식 3단 폭포 굴포스 등 골든서클 곳곳의 명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이슬란드에서 꼭 즐겨야 하는 액티비티 best 10, 초현실적인 관광지 best 5, 각종 투어 등 해보고 싶고 가보고 싶은 곳은 어쩜 이리 많은지요. 빙산으로 가득한 호수 요쿨살론도 절경이더라고요. 깊이가 250m로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깊은 호수인 요쿨살론을 수륙양용보트를 타고 얼음들 사이를 누빌 수 있습니다. 영화 007시리즈의 <뷰 투 어 킬>의 오프닝 장면과 <다이 어나더 데이>도 이곳에서 촬영되었다고 합니다.


신이 지구를 만들기 전에 시범 삼아 만들어놓은 곳이 아이슬란드라고 할 정도로 상상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슬란드. 초현실적인 장소가 많은 곳이죠. 여행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용기를 갖게 해주고 인생의 선물을 안겨줄 아이슬란드입니다.


다니기에는 꽤 힘이 들지만 아이슬란드를 다시 찾는 여행자들은 꼭 가보는 곳 서부 피요르, 여름에 가장 인기 있는 트레킹 코스로 알려진 아이슬란드 내륙 란드만나라우가와 내륙의 퀼뤼르 루트, 스프렝기산두르 루트 등 색다른 아이슬란드 여행을 할 수 있는 정보가 가득합니다.


여행 일정을 직접 계획하고 꾸밀 수 있는 노트와 엽서가 굿즈처럼 뒷부분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아이슬란드 천혜의 자연을 만끽한 여행작가의 감상은 정보 가이드북의 딱딱함을 벗어나 깊은 여운을 줍니다. 온몸이 신선하고 깨끗한 공기로 채워지는 그 기분을 함께 만끽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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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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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와 지식을 손쉽게 얻을수록 충족되지 않은 배고픔. 바로 '지혜'가 빠졌기 때문입니다. 지혜가 없으면 시급한 것을 중요한 것으로 착각하고, 말이 많은 것을 생각이 깊은 것으로 착각하며, 인기가 많은 것을 좋은 것으로 착각한다고 합니다.


철학자 philosopher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는 그리스어 필로소포스 philosophos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소유가 아닌, 중요한 것은 추구하는 행위 그 자체에 있음을 의미하는 사랑입니다. 그렇기에 철학적 여행가 에릭 와이너 작가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서 철학자의 경험 속에서 삶의 지혜를 찾는 여정을 보여줍니다. 소유하는 지식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실천하는 지혜를 삶에 자리 잡게 하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미국, 영국, 독일, 인도, 일본, 스위스, 프랑스 등에 세계 곳곳에서 열차를 타고 책을 읽고 생각하고 또 읽은 에릭 와이너 작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열차' 같은 표현처럼 철학자의 말과 생각을 곱씹어 봅니다. 오로지 기차에서만 느낄 수 있는 리드미컬한 움직임과 옆으로 흘러가는 풍경들, 아늑함이라는 감각 덕분에 철학적 사고 행위가 더 잘 되는 느낌입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기원전 5세기 소크라테스부터 20세기 보부아르까지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데 관심을 뒀던 실용적인 철학자 열네 명을 선정해 소개합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양 철학 책의 익숙한 포맷인 철학자의 삶과 사상을 요약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마주하는 문제를 직접 끌어옵니다.


"반드시 침대에서 나가야 하나?"처럼 등짝 스매싱 각인 질문이 이곳에서는 진지한 철학적 문제로 둔갑합니다. 아침형 인간이 아닌지라 잠에서 깨어났을 때 가장 취약하다고 고백하는 저자는 평생 늦잠을 잤다는 로마 황제이자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돈독한 형제애를 느낍니다. 마르쿠스의 《명상록》에는 "침대에서 나오기가 힘들면…"이란 문구로 시작하는 글이 많다(!!!)고 합니다.


"《명상록》을 읽는 것은 곧 철학하는 행위를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것과 같다." - 책 속에서


소크라테스 편에서는 대화를 통한 질문의 힘을 강조합니다. 제이컵 니들먼 교수의 《철학의 마음》을 읽고 감명받은 저자는 교수와 직접 면담을 하기에 이릅니다. 제이컵 니들먼 교수는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말고, 질문을 경험하라고 조언합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찾아가는 과정에 등장하는 철학자가 소크라테스입니다.


커다란 질문을 던지고 경험하는 데서 오는 뜻밖의 즐거움에 매혹된다는 것. 이게 가능하려면 '어떻게'라는 질문에 관심을 두면 된다고 해요. 보통 질문의 힘을 강조할 땐 '왜?'에 집중하는데 '어떻게'에 집중하라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알 수 있지?처럼요. 이 이야기를 읽고 나니 철학은 불확실한 추측을 하는 학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에 관한 실용적인 학문이라는 게 와닿습니다.


철학 책을 읽다가 빵 터지는 진기한 경험도 했는데 이 작가의 유머 코드가 제 취향인가 봅니다. 철학자들과의 닮은 점을 어필하는 대담함을 가진 에릭 와이너 작가. 짜증나는 인간이라는 소리를 지인에게서 듣곤 하나봅니다. 소크라테스도 그랬다면서 뿌듯해합니다. 물론 철학자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이유도 스스럼없이 밝힙니다. 그 지점이야말로 철학자들의 가치가 빛나는 포인트입니다. 저자의 자학 유머에 배꼽 잡는 와중에 철학자들의 위대한 말과 생각의 핵심이 자연스럽게 기억됩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철학을 어렵게 여기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를 사용합니다. 524페이지라는 두툼한 분량인데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작가가 기차에서 철학자들의 대표 명저를 읽고 그 핵심을 들려주는 글들은 작가처럼 리뷰 쓰고 싶을 정도로 문체가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내 주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은 바로 루소가 사용한 언어다.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운 루소의 언어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어려운 철학적 표현과는 다르다. 멋지네, 나는 샤르도네를 한 모금 더 마시며 생각한다. 샤르도네는 정말로 책과 잘 어울린다." - 책 속에서


루소처럼 걷고, 소로처럼 보고, 쇼펜하우어처럼 듣고, 세이 고나곤처럼 아름다운 작은 것에 감사하고, 에픽테토스처럼 역경에 대처하고, 몽테뉴처럼 죽음을 맞이하는 삶. 열네 명의 철학자들의 말과 생각은 인생에 의문이 생길 때마다 훌륭한 처방전이 되어줍니다.


철학이 우리 인생에 스며드는 순간의 하이라이트는 휴대전화를 떨어뜨려 액정이 깨진 상황에서 빛을 발합니다. 우울과 불안을 줄줄이 끌어와 망연자실한 작가에게 철학자들이 한마디씩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당장 멈춰 서서 나의 생각을 의심하라고 재촉하고, 에피쿠로스는 나의 위기에 침을 뱉고, 세이 쇼나곤은 벚꽃처럼 휴대전화도 영원한 것이 아님을 짚어줍니다. 마침표를 찍은 건 니체입니다. 똑같은 이 길을 걷고 또 걷게 될 거라고. 다시 휴대전화를 어설프게 만지작거리다 매번 액정부터 바닥에 떨어뜨릴 것이라고. 영원히. 영원토록. 😱


환상적인 위트와 철학의 지혜를 만끽할 수 있었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굿즈도 어쩜 이런 센스를 발휘했을까요. 열차 티켓 책갈피는 열네 명의 철학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고 해당 챕터마다 스티커를 붙일 수 있습니다.


열네 명의 철학자들과 잘 어울리는 음악이 소개된 유튜브 채널로 연결되는 QR코드도 있습니다. 음악과 함께하니 읽는 내내 진짜 기차 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쉽게 쓰여진 철학책이라고 해서 읽었건만 그것조차 어렵게 느꼈던 분이라면 에세이 읽듯 흘러가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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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스테프 차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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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3월 16일, 미국 LA 한인마켓에서 15세 아프리카계 미국인 소녀 라타샤 할린스는 총을 맞고 숨집니다. 주스 한 병을 가방에 넣는 것을 보고 절도범으로 생각하고 잡으려 한 주인은 체격이 컸던 소녀에게 주먹으로 몇 차례 맞은 이후 카운터 뒤에 숨겨둔 총을 집어 뒤로 돌아선 소녀를 향해 발포했습니다. 이 사건은 두순자 사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다음 해 LA 폭동 사태 때 한인타운의 피해를 촉발하는데 큰 영향을 끼칩니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스테프 차는 두순자 사건을 모티브로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Your House Will Pay)>를 내놓았습니다. 1991년과 2019년을 오가며 한인과 흑인 두 가정의 이야기 속에서 미국 사회 속 인종 차별과 혐오의 대상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들여다봅니다.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음을 모른 척 지나가기는 너무나 쉬운 세상. 경찰 총격으로 사망한 알폰소 쿠리얼의 추모 행사에 참석한 그레이스 박은 쓰라린 부끄러움과 정의로운 열정에 사로잡힙니다.


이민자 기백으로 열심히 살아온 부모 밑에서 어머니와 인연을 끊고 따로 사는 언니를 대신해 착한 둘째 딸 노릇을 하고 있는 그레이스. 한인 마켓의 약사로 가족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가부장적인 한국 가정의 모습에 답답해하기도 하고, 이상한 긴장감이 있는 가족 분위기에 불만이 있으면서도 가족애가 남다른 그레이스이기에 그러려니 합니다.


하지만 그 평화로움은 주차장에서 엄마가 총에 맞으며 산산조각 납니다. 빈민가 뒷골목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하는 중년 부인을 누가 왜 해치고 싶어 한 건지 경악스럽습니다. 하지만 언니에게서 나온 말은 충격적입니다. "엄만 좋은 사람이 아니야, 그레이스."


흑인, 인종, 인종차별을 암시하는 말이 나오면 긴장하는 집. 여기엔 28년 전 그레이스를 임신한 엄마가 가게에서 한 흑인 소녀를 총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레이스만 이 사실을 모른 채 살아왔던 겁니다.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는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된 엄마를 둔 그레이스의 시점과 어린 나이에 죽었던 소녀의 동생 숀의 시점으로 진행하는 이야기가 번갈아 등장합니다. 고통을 견뎌내는 한인 가정과 흑인 가정은 닮은 듯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린 시절 갱단에 들어가는 건 허세를 부리며 친구들과 어울리는 과정이었지만, 결국 교도소 생활까지 하고 나온 숀은 이제는 마음을 다잡아 성실하게 생활합니다. 교도소에 있는 사촌 형 대신 사촌네 가족을 돌보며 열심히 일합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어두움이 가득합니다. 누나의 죽음이 안긴 분노와 슬픔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숀은 아주 오랫동안, 세상의 이목에 붙잡혀 있을 뿐, 한번 탁 하고 부러지는 순간 아무것도 거칠 것 없어질 감정과 싸워왔다." - 책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깡패들만 죽임을 당한다고 믿으려 하지만, 체계화된 인종차별은 무차별적이라는 걸 처절하게 알고 있는 흑인 커뮤니티. 그들에겐 너무나도 익숙하게 좌절감을 안기는 차별입니다.


과속 혐의로 체포된 흑인 로드니 킹이 4명의 백인 경찰관들에게 무차별 구타를 당했지만, 경찰관들에게 무죄 평결이 나오자 인종 폭동으로 번진 LA 폭동. 요즘 세대에겐 낯선 이야기일 테지만 당시 4·29 폭동의 한가운데서 가게를 지켜야 했던 첫째 이모네 가족을 둔 저는 당시 식구들이 불안에 떨며 통화를 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때만 해도 흑인 대 한인의 구조로만 바라봤고, 흑인에 대한 두려움만 커진 채 그 이면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했습니다.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를 읽으며 LA 폭동이 로드니 킹 사건으로 경찰이 곤경에 처하자 시선을 돌리려고 두순자 사건을 이용해 한인 사회로 분노를 터트리게 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경찰은 부촌에만 있었고 한인타운은 쓰러지게 그냥 뒀습니다.


"그들은 한 몸이 되어 본능적으로 위협에 손을 뻗어 반응하는 것 같았다." - 책 속에서


엄마는 28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 이제 벌을 받은 걸까요. 엄마에 대한 동정심, 분노, 사랑, 혐오가 뒤섞인 그레이스. 끔찍한 진실을 기억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면 그저 배부른 희망일까요. 공포를 가리는 희망과 행복을 구하는 그레이스의 심리를 스테프 차 작가가 내밀한 묘사로 펼쳐 보입니다.


분노를 죽이며 힘들게 일군 생활을 새로운 총격 사건이 터지며 평온이 흐트러지게 된 숀의 감정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 여자가 총에 맞았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이게 정의인가? 의문스럽습니다.


마음속 깊숙이 묻어뒀던 일이 봉인이 풀리며 두 가정의 격변이 예고되는 상황을 그려낸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아시아계 증오 범죄 뉴스가 잦은 요즘, 이 소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게 됩니다. 관습적으로 뿌리 깊게 박힌 차별. 가짜 평화 역시 결국 오랜 분노 앞에서 무너지고 있습니다.


인종 혐오 범죄에 깃든 암울한 비극을 담은 LA 타임스 도서상 수상작 <너의 집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의도적 눈감기가 만연한 역사를 들추고 회피하지 않는 스테프 차 작가의 걸작 범죄 스릴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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